-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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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에 일어나 실처럼 연결된 글을 써나가다 보면 1년이 지나 책이 한 권 만들어 집니다. 책은 마치 밤사이에 조금씩 고이더니 아침이 되면 가득 차는 샘과 같습니다. 이번 책은 시작에 관한 책입니다. 막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이 어떻게 그 일과 친하게 어울리고 어떻게 그 일속에서 자신의 천복을 찾아낼 수 있는지를 다룬 책입니다. 나는 이 책의 서문 어딘가에 이렇게 써 두었습니다.
“밥과 존재, 내 안에 들어 있는 이 둘은 종종 서로 짖어 대고 싸운다. 밥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존재는 초라해 진다. 반대로 존재의 존엄을 위해 씨름하다 보면 배고픔을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갈등하게 되고 으르렁 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이 늘 싸우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 핥아주고 털을 골라주는 단짝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덧 그 일을 아주 잘하게 되어 존재를 마음껏 고양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밥걱정 없는 명예도 함께 얻게 된다. 이 때 그 일터는 훌륭한 자신의 뜰이 된다. ”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4년이 지나 시들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내게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거기서 무엇하고 있나. 나 하고 이 일을 함께 하세” 그리하여 나는 그 분과 함께 경영혁신실을 만들었습니다. 그 일을 만났을 때 내 마음 속에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이 일이 네 일이다.”
회사를 나와서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5년이나 되었습니다.
직장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을 맡아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우리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긴장과 흥분 속에 놓여 있을 때, 혹시 누군가의 어떤 말이 그대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 놓은 적은 없는지요 ? 혹시 그대의 마음이 그것과 공명하여 운명처럼 떨린 적은 없는지요 ? 그때 천둥처럼 덮쳐와 가슴을 울린 그 소리는 무엇이었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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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개인 메일로 아래와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필요한 부분만 정리하여 옮겨 두겠습니다.
********************************************************
선생님의 레터를 읽으며, 문득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시점이 떠오릅니다. 영문학과를 졸업하면서 그때 유행따라 외국계은행, 다국적 기업 등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어느날 친구를 따라서 같이 원서를 낸 회사가 IT 업체인 모그룹의 한 회사였어요.
저는 마지막 관문까지를 통과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공을 불문하고 시스템 엔지니어로 육성하여 전문직이 될 수 있게 하겠다는 회사 비전에 그저 마음이 좀 움직였을 뿐이었습니다.
>
그런데 입사를 한 달쯤 앞두었던 어느날, 여전히 다른 외국계 회사의 입사전형도 진행되고 있던 그 시점에, 입사확정이 되어 있던 그 회사의 인사팀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사팀 내에 있는 연수파트의 기능을 강화하려 하는데 관심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반기 신입사원들 중에서 몇 명을 대상으로 인사팀 연수파트로 근무할 한 사람을 선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직무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질문을 했더니 그 분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첫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할 것. 둘째, 외국의 교육매뉴얼들을 우리 말로 옮길 수 있어야 하고 합작사인 미국회사의 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셋째, 세심하고 꼼꼼하게 교육운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대답을 했습니다. "세 가지 조건의 충족을 3점 만점으로 했을 때 제가 2.5점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면 저를 선발하시겠습니까?
그날 저녁, 인사팀에서 근무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참 설레었습니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진행되고 있던 입사전형들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2주일쯤 후에 회사의 채용규모가 축소가 되어 본사부터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인사팀의 교육담당자 채용계획이 없어졌다, 그냥 사업부로 근무를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전화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교육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입사포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그 일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곳의 입사기회도 포기를 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 날에 저는 또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담당 임원에게 다시 보고를 해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렇게까지 근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선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비록 조금 일의 성격이 바뀌기는 했지만 18년 동안의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개의 회사원들은 '어디를 다닙니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저는 '교육업무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을 정도로 제 일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수'라는 일이 한직으로 평가받던 1990년대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지금도 많은 회사에서 그리 중요한
> 직무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요.) 그 일을 하다가 사람과 내면과 성장과 변화에 대한 관심을 더 깊게 갖게 되었고, 경영학, 상담심리, 요가, 조직 심리 등의 공부를 계획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지금의 일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아, 구 선생님의 책들도 그러한 과정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이 오늘 보내주신 레터가 제 일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더욱 성장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을 제 속에서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문득 18년의 세월이 물처럼 흘러갑니다. 오늘 선생님의 레터는 저의 18년이 한 흐름을 돌아보게 해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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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레터를 읽으며, 문득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시점이 떠오릅니다. 영문학과를 졸업하면서 그때 유행따라 외국계은행, 다국적 기업 등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어느날 친구를 따라서 같이 원서를 낸 회사가 IT 업체인 모그룹의 한 회사였어요.
저는 마지막 관문까지를 통과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공을 불문하고 시스템 엔지니어로 육성하여 전문직이 될 수 있게 하겠다는 회사 비전에 그저 마음이 좀 움직였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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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입사를 한 달쯤 앞두었던 어느날, 여전히 다른 외국계 회사의 입사전형도 진행되고 있던 그 시점에, 입사확정이 되어 있던 그 회사의 인사팀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사팀 내에 있는 연수파트의 기능을 강화하려 하는데 관심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반기 신입사원들 중에서 몇 명을 대상으로 인사팀 연수파트로 근무할 한 사람을 선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직무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질문을 했더니 그 분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첫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할 것. 둘째, 외국의 교육매뉴얼들을 우리 말로 옮길 수 있어야 하고 합작사인 미국회사의 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셋째, 세심하고 꼼꼼하게 교육운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대답을 했습니다. "세 가지 조건의 충족을 3점 만점으로 했을 때 제가 2.5점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면 저를 선발하시겠습니까?
그날 저녁, 인사팀에서 근무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참 설레었습니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진행되고 있던 입사전형들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2주일쯤 후에 회사의 채용규모가 축소가 되어 본사부터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인사팀의 교육담당자 채용계획이 없어졌다, 그냥 사업부로 근무를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전화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교육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입사포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그 일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곳의 입사기회도 포기를 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 날에 저는 또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담당 임원에게 다시 보고를 해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렇게까지 근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선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비록 조금 일의 성격이 바뀌기는 했지만 18년 동안의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개의 회사원들은 '어디를 다닙니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저는 '교육업무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을 정도로 제 일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수'라는 일이 한직으로 평가받던 1990년대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지금도 많은 회사에서 그리 중요한
> 직무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요.) 그 일을 하다가 사람과 내면과 성장과 변화에 대한 관심을 더 깊게 갖게 되었고, 경영학, 상담심리, 요가, 조직 심리 등의 공부를 계획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지금의 일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아, 구 선생님의 책들도 그러한 과정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이 오늘 보내주신 레터가 제 일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더욱 성장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을 제 속에서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문득 18년의 세월이 물처럼 흘러갑니다. 오늘 선생님의 레터는 저의 18년이 한 흐름을 돌아보게 해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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