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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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나는 환경재단에서 NGO 에 종사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30명 정도 모인 자리였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이 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난 늘 그렇게 내 청중들을 쳐다보곤 합니다. 오늘의 인연이니까요.
쳐다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 분들은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 그래서 물어 보았지요. 어쩌다 이 배고픈 길로 들어섰는지요 ?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들이 터졌습니다. 나는 이 질문이 참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질문의 답 속에는 우연과 필연과 운명의 요소들이 얼기설기 엮어져 있게 마련이거든요.
이 질문은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 무엇이 나를 마흔 세 살에 여기로 데려왔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글을 쓰기 전부터 글에 대한 근거를 알 수 없는 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글을 쓰게 될지도 몰라. 내 책이 한 권은 나오게 될꺼야. 내가 글을 쓰게 되면 아마 꽤 쓸 수 있을꺼야. 글을 쓰며 살아도 좋을꺼야. 이런 생각들이 어딘가 내면의 골방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던 이것이 방문을 열고 세상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이 나오면서 나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밝고 싱싱하고 내게 어울리는 세상입니다. 밥이 될지 죽이 될지 나는 모릅니다. 별로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쓸 것이고 쓰다가 죽을 것입니다. 달리는 열차에 탄 것처럼 나는 이제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변곡점, 내 운명의 분기점에 나는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어떤 점에 알 수 없는 끌림을 가지고 있는지요. ‘이 일을 하며 살아도 좋을 텐데’하는 어떤 일을 마음에 품고 있는지요 ? ‘언젠가 나는 이런 일을 하며 살게 될지도 몰라’ 라는 어떤 알 수 없는 운명을 감지하고 있는지요 ? 아마 그 알 수 없는 끌림이 가장 당신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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