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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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비이커에 물이 담겨 있다. 하나는 물의 온도가 15도이고 하나는 45도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개구리의 반응을 보여주는 실험도구이다. 15도의 물에 넣어진 개구리는 처음에는 안정을 느끼다가 서서히 가해지는 열로 인해 어찌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 한다. 45도의 비이커에 넣어진 개구리는 물속으로 넣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온다. 개구리실험 동영상이다. 자기계발을 주제로 하는 강의에는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이다. 개구리동영상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개구리는 온몸으로 말을 한다. 변해가는 자신의 환경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자신이 죽어가는지도 모르게 죽어버린다.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말일까? 아니면 다른 15도의 비이커를 찾으란 말인지? 비이커 정도가 아닌 아름다운 연못을 찾으란 말인지? 디테일은 없다. 45도의 물에서는 본능적으로 튀어 나오는 개구리가 15도에서 45도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대책도 반응도 없이 죽어가는 모습이 당신들의 모습이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보여주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는 잘 표현된 실험이다. 경영전략가의 한 사람인 게리 헤멀의 ‘경영의 미래’를 읽으니 개구리실험이 생각난다. 책은 기업이 스스로 변화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진화의 시대가 가고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스스로 경쟁의 룰을 바꾸는 자가, 기업이 성공한다.”로 말하고 있다. 경영혁신을 위한 핵심과제 중에 오늘날 변해가는 기업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규제장벽, 특허권보호, 유통독점, 소비자의 정보부족, 소유권제한, 규모의 경제 수입제한, 자본장벽등이 기존 기업들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는데 이런 장벽들이 무너지고 있다. 규제완화, 무역자유화는 산업내, 산업간의 진입장벽을 줄여나가고 있다. 웹의 힘은 세계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글로벌 인프라의 형성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비 수직화와 아웃 소싱등을 통한 대기업의 경영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참가자의 진입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기존 기업들은 초저가 비용구조를 앞세운 나라들과 싸워야 한다. 인터넷기업들은 기존기업의 이익이 줄어드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소비자의 정보부족이 곧 기업의 이익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는데 나날이 똑똑해지는 소비자 덕분에 기업의 수익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인터넷은 거래비용감소에 도움을 준다. 특히 딜러, 브로커, 대리인에게 주는 커미션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신문사나 잡지사와 달리 블로거(blogger)들은 그들의 정보를 알리기 위해 물리적인 네트워크가 필요 없다.
변해가는 산업환경을 잘 이야기해주는 대목이다. 나의 일터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증권업에서 일하는 나는 피부로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금융기관은 브로커산업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근본은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일터로 나왔을 때 기억이 난다. 마음만 먹으면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연수시간이 주기적으로 있었고 강사는 주로 지점장이었다. 회사의 법규에 대한 공부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다른 이야기도 해주시곤 했다. 이 삼십 명의 직원들을 모아놓고 하는 교육에서 지점장은 다른 나라의 금융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투자신탁산업의 성장성에 대하여, 앞으로 상당한 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이니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란 이야기였다. 2년차 금융인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이야기였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분이 했던 말씀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가끔씩 그 기억들을 떠올린다. 구체적인 비젼을 갖기에는 부족했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계기는 되었다.
오래 전 일이 기억이 나는 데는 지금의 환경이 많이 바뀌어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당시에는 성장산업이었던 것이 지금은 낮아지는 수익구조의 대명사가 되어있다. 정보의 비대칭이 사라져가고 있고 스마트한 IT환경은 브로커산업에는 치명적이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먼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금년에 우리회사는 영업점을 7개 폐쇄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영업점은 존재이유가 없다. 2008년에 촉발된 금융위기로 금융산업 전체가 심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터넷환경에서 소비자의 정보부족이 수익구조를 가져오는 산업은 줄어드는 수익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조하지 않으면 미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10년 후에 없어질 산업으로 증권브로커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다.
서서히 높아지는 물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하는 개구리와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자신의 환경이 변해감을 몸으로 느낀다.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 보고 싶지 않아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순간에 45도의 비이커에 던져지는 개구리는 자신의 살길을 찾는다. 어떤 비이커에 들어있는 상황이건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 튀어나갈건지, 나간다면 언제 나갈건지 생각해보자. 아마 그날이 오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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