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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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백김치 한 조각을 씹자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마치 맑은 물에 파란색 잉크가 한 방울 떨어진 듯 단맛이 온몸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번엔 된장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뭅니다. 구수한 향기에 얼었던 가슴 한 켠이 녹아 내립니다. 이렇게 맛있는 아침밥을 먹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고급 한식집도 아니고 지난 몇 년간 매일 같이 점심을 먹던 회사 식당에서 이런 음식 맛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주방장이 새로 왔다거나 구내 식당을 운영하는 급식 업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메뉴가 나온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마술을 부린 것은 다름아닌 허기와 갈증이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반 년이 넘도록 자전거 출근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큰 맘 먹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막상 출발은 했는데 이게 생각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무섭도록 체중이 불어난 육중한 몸을 두 바퀴 위에 싣고 형편없이 떨어진 저질 체력으로 페달을 밟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2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려 회사에 도착하고 보니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었고 목은 바싹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식당으로 달려갔으니, 아침밥이 얼마나 맛있었을지 이제 상상이 가시나요?
부족함이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배가 고플 새가 없지요. 그런데도 끼니를 즐기려니 매번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됩니다. 더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됩니다. 평범한 음식으로는 더 이상 성이 차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겨우 끼니를 때울 뿐입니다. 한끼만 굶으면 세상은 온통 먹고 싶은 것들로 가득합니다. 먹고 싶은 게 많아지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의례히 식당으로 향하던 제게 ‘모자랄까봐 미리 준비해 쌓아두는 마음이 결핍이다.’라는 법정스님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힙니다.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도 없다는 사실을 왜 그리 자주 잊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백김치와 된장국 덕분에 하루가 정말 맛있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