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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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상징될 수 있을까
인동덩굴의 꽃, 금은화 /
80년대 중반, 나는 《김대중 옥중서신》을 읽었습니다. 모진 옥고를 치르면서도 자신을 놓지 않고, 가족과 국민과 국가를 염려하는 마음을 담았던 그의 편지 행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분이 죽음의 목전까지 내몰려야 했던 사건이 다섯 번이던가요? 그분은 매번 두려웠다고 고백하면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고난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개인의 삶만 놓고 보면 그분은 봄보다는 겨울이 길었던 분입니다. 하지만 겨울 앞에 시들지 않고 견디며 이 사회의 기본적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에 크게 공헌한 분이었습니다. 세간은 그분의 그런 삶이 숲의 ‘인동초(忍冬草)’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혹독한 겨울 앞에 무릎 꿇기보다 그 겨울을 굳건하게 견디며 세상의 변화에 기여한 그분의 삶을 비유하는 상징인 셈이지요.
‘인동초(忍冬草)’의 바른 표현은 ‘인동덩굴’입니다. 풀이 아닌 나무로 분류되기 때문이지요. 남쪽 지방에서 인동은 잎을 단 채로 겨울을 견디기도 하는데, 그래서 얻은 이름이 인동(忍冬)입니다. 인동은 늦은 봄에 금색과 은색의 꽃을 나란히 피웁니다. 해서 얻은 또 다른 이름이 금은화(金銀花)이기도 합니다. 은색은 수정이 안 된 꽃이고 금색은 수정을 마쳤음을 매개자들에게 알려주는 변화이기도 합니다. 줄기와 잎, 꽃 모두가 훌륭한 약재로 쓰입니다. 특히 열을 다스리는 약재로 매우 훌륭합니다. 겨울을 견뎌 마침내 이토록 아름다운 꽃과 소용을 만드는 인동이니, 그 분의 삶에 대한 상징으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한 사람의 삶은 종종 상징으로 요약됩니다. 어쩌면 우리 각자의 이름 또한 이미 작명한 이의 염원이 상징처럼 담겨 있는 것이겠지요. 나는 아버지로부터 ‘떳떳한 별’로 살기 바란다는 염원이 담긴 상징으로 용규(庸奎)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나아주신 분이 부여한 상징인 본래의 이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루어가는 삶의 궤적을 요약할 수 있는 상징이 실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상징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 전체가 만든 궤적을 통해 얻게 되는 실존적 비유일 테니까요.
인동으로 상징되는 삶을 살고 떠나시는 분을 가슴에 기억하는 오늘 나는 내게 묻게 됩니다. 나의 삶은 죽음 앞에서 무엇으로 상징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궁금해집니다. 오늘을 함께 사는 인연의 그대 삶은 어떨지요? 그대의 삶은 훗날 무엇으로 상징될 수 있을지요?
인동을 닮아 핍박과 시련 앞에 강인했고, 마침내 늦은 봄의 어느 날 숲을 향해 금 은색의 아름다운 꽃과 향기와 꿀을 나누다 떠나려 한 당신! 이제 부디 평안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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