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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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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8일 11시 11분 등록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저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를,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최초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그냥 얼굴이 아니었다. 그때의 그의 얼굴은 행복할 때의 그것이었다. “늦어도 11월에라는 소설에서 남자와 여자의 첫 마주침이 있던 순간이다. "상공인협회 문학상"을 제정한 회사의 대표부인과 그 상을 받게 된 작가의 만남.   남편과 함께 참석해야 하는 자리이다. 평소 같으면 그렇게 했었다오늘은 남편의 일정이 허락치 않아 어쩔수 없이 혼자 참석한 자리였다. 여자는 남자의 말에 집으로 와서 가방을 싸고, 그 남자와 같이 자신이 살았던 집을 떠난다. 남편과 아이로 부터의 떠남이다. 여자는 말한다. "누구라도 그 날의 그 남자의 표정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자신과 같이 행동을 했을 거다"라고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 여자의 무엇이 한 순간에 자신의  삶을  바꾸게 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다면, 그래서 똑 같은 상황이 만들어 진다면그리고 주인공 여자처럼 남자를 따라 나선다면, 그건 그 동안의 나의 삶이 이미 가방을 싼 상태로 살고 있었다는 말일 게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던 길을 바꾸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있다. 그것이 사람일 때도 있고 돈 일 때도 있다. 돈은 사람만큼이나 강력한 무엇이 있다. 우리는 가끔 피 같은 돈이란 표현을 한다. 사람의 몸에 없어서는 안될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사람이야기를 하다 왜 갑자기 돈 이야기냐고?  소설 속의 한마디만큼 내게 삶을 바꾼 돈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나는 돈과 함께하는 삶을 31년 살았다. 누구나 돈과 함께 살지 않느냐고? 맞다. 누구나 돈과 함께 산다. 아니다. 돈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이다. 자본주의이다. 내가 말하는 돈과 함께하는 삶은 좀 다르다.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현장을 말함이다.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돈,

내 고객의 구좌에서 녹아버린 그 돈. 

 

2010324 9, 주식시장이 개장했다. 천재지변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증권거래소의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아직 그런 일은 없었다.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공휴일을 뺀 나머지는 매일 9시에 개장하고 3시에 폐장한다그 날도  9시 정각. 모니터의 시세판에는 빨강과 파랑이 곳곳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반짝거린다는 것은 시세판에 표시된 특정회사의 주식이 거래 되고 있다는 말이다. 매도하는 자와 매수 하는 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누구는 매도를 누구는 매수를 한다. 매매가 되면서 시세는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상한가, 하한가 제도가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하루에 오르고 내릴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양방향 그러니까 상승과 하락 15%씩이다. 하루 변동폭의 최대치가 30%인 셈이다. 주식시장은 하루 24시간 중에 6시간 개장을 한다. 나머지 18시간은 거래를 할 수는 없지만 그 사이에도 주식의 가치는 끊임없이 움직인다시장이 개장되어 있지 않은 시간에도 회사의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들은 일어난다. 나머지 18시간 동안 생긴 일들은 다음날  개장을 하면 그 회사의 주식시세에 반영된다. 어제의 종가(마지막 가격)가 오늘의 시가(처음 시작하는 가격)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내 관심종목에는 N사가 있었다. 태양광업체이다. 이 회사의 하루 전 그러니까 323일의 시세는 만원 이었는데 324일은 7-8%떨어진 가격으로 시작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기억도 가물거린다. 10시쯤 되니 어제의 가격인 만원에서 15%가 하락한 8,500원이 되었다. 하한가, 더 이상 내려갈 자리가 없는 가격. 어제까지 공시해야 하는 감사보고서가 나오지 않아서라는 뉴스가 올라온다. 어제  저녁 통화가 된 지인의 말로는 오늘 정상적인 공시가  나올 거라고 했다주식은 공시지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제 시간에 감사보고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지인인 세무사의 말로는 그건 보통사건은 아니다. 왠만하면 회계사와 회사가 담판을 지어서라도 감사보고서는 나온다고 했다. 자신이 아는 허접한 회사들도 모두 감사보고서는 적정의견을 내 놓는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N사의 감사보고서가 적정의견이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감사보고서가 적정의견이 아니라는 것은 그 회사를 상장폐지 할 수 요건이다. 흔치 않은 일이고 중대한 일이다. 보통 이런 징조는 주가에 반영된다. 다시 말하면 회사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정상의 감사보고서를 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면, 이미 주가는 한참 내리막을 걷고 있다. 몇 년의 누적된 적자로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는 회사임을 인지할 수 있다.

 

매년 영업이익을 잘 내고 있는 회사에서 이런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대규모의 분식회계가 저질러졌다거나, 대표나 직원의 횡령 같은 문제가 아니면 말이다. 

 

N.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가?  

 

자본금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잘 나오는 회사였다. 공시된 재무재표가 맞다면또한 MB정부 747공약에 등장한 회사이다. 747공약이란?  5년 평균 경제성장율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세계7대 경제강국에 진입시키겠다는 새 정부의 공약이다. 선거를 위하여 공약은 그냥 공약일 뿐이라고 하면 그만인가! 지나고 보니 공약은 공약일 뿐이었다. 정치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지만 내가 그것을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던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N사를 이야기하려 하니 747공약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2008년 당시 N사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 정책공약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였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내용이었는데 국제적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단지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국내금융기관에서 자금조달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중소기업 살리기를 말할 때 모델이 되었던 기업이다. 이 회사에 투자한 국책은행도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대명사로 불리던 태양광산업은 에너지의 미래를 이야기하기에 충분했다. 2009년 우회상장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이 회사는 증권시장에 상장되었다. 그리고  6개월만인 2010324 1024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이라는 이유로 거래정지가 되고 다시 5개월의 개선기간을 부여 받았으나 상장폐지가 확정된다. 7일간(8.25~9.2)의 정리매매기간을 끝으로 주식시장에서 N사는 사라진다. 상장 첫날의 시세가 17,000원 수준에서 150원을 끝으로 시장에서 없어진 거다.  어떤 가격이 이 회사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날 그날의 시세가 그 기업의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까. 상장폐지 된 N사는 현재는 청산절차를 거치고 있다. 청산이라고 해봐야 주주에게 돌아올 몫은 없어 보인다 

 

200712월 나는 증권회사 지점장이었고 지인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비상장 기업인 것 같은데 이러이러한 회사가 있는데 회사의 전망이 좋다고 하더라. 그러니 재무상태와 회사전망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말이었다. 늘 하는 증권회사의 일이다. 종목을 발굴하고 확인하고 매력적인 회사에 투자하는 일. 직원을 불러 동사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라고 일렀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연말이었다. 주식시장은 폐장을 하고 난 다음이니 시간적으로는 괜챦지만 심적으로는 굳이 연말에 기업탐방을 가느냐고 신년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의 말에도 직원을 가보겠노라고 했다. 수치로 본 회사에 상당한 매력을 느낀 모양이었다. 투자하기 전에  기업탐방을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업무보고를 하는 직원의 얼굴에는 약간의 흥분이 보였다. 매력적인 이성을 보면 체온상승이 일어나는 것처럼. 재야의 좋은 회사를 발견했다는 묘한 쾌감. 그런 것인 듯 했다. 재무상태 양호하고 업종의 전망도 좋아서 비상장이지만 투자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비상장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비중을 의미 있게 가져가지 말고 투자자산의 10%수준으로 투자하는 것은 무난해 보였다. 직원과 내가 N사의 주식을 샀다.

 

우리가 주식을 매수한 것은 선 투자의 의미는 아니다. 시장에 수많은 기업이 있다 보니 가끔  좋은 투자대상이라고 하면서 정작 그것을 제안하는 증권사직은 자신은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형편상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고객들은 질문을 한다. "당신도 여기에 투자했느냐?" 또는 "당신 돈이라면 어디다 투자할거냐?" 이런 류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자문을 한다. '이 상품은 정말 투자하기에 좋은 상품인가?' '무리가 없는 상품인가?' 스스로의 답이 ""가 나와야 한다 

 

 그 동안 대부분의 상품을 제안할 때  그렇게 했다. ‘내가 투자하기에 좋은 상품이라야 고객에게도 좋은 상품이다라는 것이 나의 영업 철학이기도 하니까. 이런 인연으로 N사는 나와 우리의 고객들 계좌 포트폴리오에 들어오게 되었다. N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무난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회사측에서 예상한 시기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2009 9월에 상장이 되었다 

 

 N사가 상장되기 일년 전인 20088월 나는 퇴직했다. 이변이 없는 한 정년퇴직을 하겠노라고 생각했던 계획은 변경되었다. 이변이 생겼다. 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사건은 진행되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이 회사의 규정을 위반하는 일이 생겼다. 그 친구의 영업행태가 늘 위태위태 하던 직원이라 나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중간중간 주의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지점에 감사가 나오고 실태파악이 되고 나니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있었다. 특별히 사건을 은폐할 것도 없었다. 그다지 큰 사건도 아니기도 했고, 전혀 예감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수시로 주의를 주었고 관리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우선은 회사의 피해규모를 생각한다. 고객이 얼마나 피해를 보았느냐 보다는 그로 인해 회사에서 물어줄 배상액이 얼마이냐가 관심사항이다. 모든 불법적인 일에는 쌍방이 있기 마련이니까. 뒷수습을 위한 절차를 하고 있는 중간에 강등발령이 났다. 예상치 못한 곳으로의 발령이었고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출근을 하다 본부장의 호출전화를 받았다. 이른 시간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서 도착한 사무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오후 인사발령이 있을 텐데, 그 대상이 나이고 결과는 이렇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조금만 때를 기다려라. 이런 내용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면 사람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디부터 잘 못 끼워진 단추일까. 어디서 어그러졌을까. 어떤 선택이 잘못되어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정말 억울한가. 뭐 이런 일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하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나의 결론이다. 회사는 늘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 피합병회사, 그리고 사장의 교체.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교체된 사장이 데리고 올 새로운 직원들. 그들의 자리가 필요했다. 아무런 일이 없이 잘 굴러가는 지점장을 교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인가 핑개꺼리가 필요한데 그때에 맞춰서 문제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지점이 문제였다. 곧 나의 문제이다. 물론 잘 해결될 수 있다. 존재하는 불법이 적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터진 사고가 문제라면 문제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짐을 싸러 사무실에 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있는 시간에 짐을 싸기는 싫었다. 집으로 짐을 실어오고 업무용으로 쓰던 자동차는 회사에 반납 했다 

 

그럴만한 이유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발령장 하나에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피고용인의 처지가 아닌가! 언젠가 회사는 떠나야 하는 곳이다. 정년퇴직을 하든 중간에 그만두든, 그것이 자발적이든 타인의 의지이든 마지막은 떠남이다.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왔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결정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부터는 선택의 주도권을 내가 갖기로 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는 타인의 선택으로 나의 존재가 흔들리는 상황을 더 이상은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관리직이 아닌 영업을 하면 된다. 영업은 실적으로 말을 하는 자리이다. 나와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고 회사에서의 직위나 직책에 대한 마음만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내가 좋은 하는 일을 하고 고객이 필요한 일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면 족했다. 누구  말 대로 회사에서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동안 잘 살았는데 이제는 그 인연이 마무리되는 구나' 로 생각을 정리했다.

 

공식적인 발령이 나고 다음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함께 일하던 선배의 전화였다. "발령 난 것 봤다. 점심 한번 먹자" 그 선배는 동종의 다른 회사에 임원으로 근무하는 분이다. 며칠 뒤 점심을 했다. "앞으로 어찌할 거냐?" "생각 좀 해 봐야지요. 그렇다고 이 꼴로 사표를 쓰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으니까요"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라" 이런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영업을 하는 사람은 고객이 있어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직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게 고객이 있어서였다. 나름 혼자서 목록을 작성해보았다. 나와 함께 기꺼이 거래금융기관을 옮겨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자산은 얼마나 될지? 생각대로라면 나쁘지 않은 데이터였다. 물론 내 생각하고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도 감안해야 했다. 실제 이직을 한 선배들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생각만큼 녹녹치 않음을 알고 있다. 그것까지 감안했다.

 

두 가지를 천칭저울에 놓고 달아본다. 기존 회사에 남는 것과 회사를 옮기는 것,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잃어야 하는지를. 살아갈 미래를 보면서 주도적인 삶을 꿈꾸는 나를 보면서 결정을 했다. 그래...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번 해보자. 나의 이직은 대형사에서 중형사로 옮겨가는 일이고, 지점장에서 부장으로 강등되어진 상태에서 수평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이유를 가늠하기에 부족했다. 고객은 말한다. 회사도 좀 안 좋아졌고 하니 월급을 많이 받나? 그럼 왜 옮겼는데? 부연설명을 하고 싶지만 구차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곤 했다. 손에 익은 시스템이 없고 아는 직원이 없는 상태에서 옮긴 직장은 낯설기만 했고 주식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아서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호기롭게 결정을 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다시 시작이다'이 생각으로 일을 했다. 10만원의 적립식펀드를 받으러 고객을 만나고,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주식계좌를 유치하기 위해 다녔다. 한 구좌 두 구좌 모았다. 시간에 비례하여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력직원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모두 힘이 든다. 신입직원이 아닌 이상 일정기간이 지나면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것이 그리 긴 기간은 아니다. 보통은 6개월 정도이다. 성과라고 하는 것은 고객의 수익율이나 자산의 규모를 말하지 않는다. 회사에 얼마의 수익을 발생시키느냐가 기준이다. 회사수익을 위하여 직원이 어떻게 일을 했느냐는 따지지 않는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개중에는 불법적인 영업을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퇴직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N사 주식에 더 투자를 해 놓은 상태였다. 아직 상장을 하지 않은  N사 주식을 장외에서 팔기로 결정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명 자기매매이다. 부족한 실적을 일부 충당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비상장주식을 유동성이 있는 상장주식으로 그 동안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주식을 팔기로 결정을 하고 전직장의 동료에게 매도부탁을 하니 이 직원은 펄펄 뛴다. 조금 있으면 상장을 할 것이고 그러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는 주식을 왜 지금 헐값에 파느냐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직원 말대로 가능할 수도 있다. 당시 내 상황은 언제 상장할지 모르는 주식에 넣어두기 보다는 유동성이 있는 주식에 투자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N사의 상장일정은 미뤄지고 있었다.  괜챦다고 했다. 30%정도의 손실이기는 하지만 주식투자 하면서 그 정도의 손실은 발생가능 한 일이고 또 당시 주식시장은 많이 하락한 상태라 충분히 손실액을 다른 주식에서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 주식을 팔면 다른 사람만 좋은 일 시킨다며 극구 말렸지만 현금화하기로 했다. 이때 주식을 팔면서 걱정이 하나 있기는 했다. 이 주식은 내가 지점장으로 투자를 먼저 시작한 것이고 나를 보고 많은 고객들이 따라서 투자를 결정한 주식이다. 그러니 너무 늦지 않게 상장이 되었으면 좋겠고, 또 내가 파는 이 가격이 바닥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다. 혹시라도 상장이 되지 않거나 내가 상장 전에 주식을 처분했는데 나중에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분명 원망을 들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장외에서 판 가격은 당시의 저점을 찍었고 거짓말같이 다음날부터 시세가 오르기 시작하여 불과 일주일 사이에 매도단가대비100%이상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삼사일은 병이 날 지경이었다. 비록 내 필요에 의해서 팔았고 마음에는 저점을 내가 찍는 편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현실로, 그것도 일주일 사이에 수천 만원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이 드니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며칠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개인적으로는 N사와 결별했다.

 

몇 달 후에 N사는 상장을 했다. 동사의 주식시세는 상장전의 가격에 미치지 못하고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상장을 즈음한 기대감이 회사가치를 과대평가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상장초기에 시가총액이 1조에 육박하던 회사가 4000~5000억 수준에서 머물러 있기를 몇 개월이다. 회사에서 공시하는 만큼 실제로 실적이 나와주지 못하고 있었다. 시장은 냉정하다. 회사의 가치가 또는 성장성이 담보되지 않는 회사는 시세가 그것을 말해준다. 투자자가 회사의 모든 정보를 알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해도 "매일매일의 시세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라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12월 결산법인인 동사가 다음해 323일까지 공시해야 하는 감사보고서에 의견거절이 나오면서 거래정지 되기에 이른다. 수천 명의 주주가 있는 회사이고 회사의 규모도 상당한지라 다른 회사들과는 다르게 거래정지에 따르는 온갖 음모론이 난무했다. 처음 맞는 일이고 그 음모론이 정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초기에는 나도 했다. 많은 주주들이 주주연대를 만들었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가지고 설왕설래하는 시간이었다. 당시까지 N사의 대표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회계법인 그리고 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억울함을 밝히겠노라고 했다. 결국 개선기간부여라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지고 회계법인의 재 감사를 거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정말 음모론이 존재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적대적 M&A도 있으니까. 결과는 음모론이라기 보다 회사의 분식회계로 결론이 났다. 지금 그회사 사장은 위조여권으로 도주상태이다. 

 

개선기간 동안 우리는 한여름 땡볕에 감독원 뜰 앞에서 고객과 물을 나눠 마시며 스트라이크도 하고, 정치권에 연줄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국회에도 가보고, 방송국에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PD도 만나보고, 회계법인에 회계감사를 했던 회계사도 만나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해 보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회사는 상장폐지 결정이 나고 지금은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나로 인하여, 나와 인연이 되어 N사의 주식을 매수한 고객이 수백 명, 돈은 수백억에 이른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자기 책임으로 하는 것이 투자이다. 비상장주식을 투자할 때 그것이 가지고 올 위험에 대하여도 고지했지만, 내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사람들이 투자결정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회사의 재무상태를 보고 결정할 수도 있고, 신뢰하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하기도 한다. 기대하는 수익의 크기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비상장이라고 하는 특수성 때문에 더 큰 수익을 기대하는 경향도 있다. 이 주식이 시장에서 사라진 지 3년째이다. 처음보다 지금은 나도 많이 잊었고 투자했던 사람들도 조금씩 잊고 있다. 혹시 모른다. 그것이 새록새록 더 피부에 와 닿는 사람이 있을지도. 무리하게 투자한 몇몇은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재산만 파산 난 것이 아니고 가정도 파산이 났다 

 

감당할 수준의 투자를 하는 것이 좋다라고 하는 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현장에서는 무리한 투자로 재기불능상태로 가는 사람도 심심챦다.

 

고객들의 구좌에서 돈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 줄곧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해온 일은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물음에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내 밥벌이를 위한 일이기만 했는가? 남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살았는가? 적어도 내가 신입사원시절이 아닌 어느 정도 일을 하고 나서 부터는 고민에 고민을 하며 일을 해왔다. 늘 시장은 변동성이 심했지만 어떻게 그것을 활용해서 괜챦은 수익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일하고, 공부했던 시간들이었는데무슨 공부를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단 말인가? N사의 투자로 인해 내가 물질적으로 얻은 것이 과연 있는가? 없다. 회사의 실적에도 계산되지 않는 비상장주식을 무엇 때문에 고객에게 권했던가? 이유는 단순했다. 투자기회의 확대. 좀더 많은 수익의 실현이었다. 

 

아주 많은 수업료를 지불한 이 실패사례는 투자공부도, 인생공부도 많이 시켜주었다. 삶도 일도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던 시간을 견디고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실패에서 배우는 투자의 태도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돈에서 자유롭지 않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잘 벌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돈이 넘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돈을 세대이전 시키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상속이나 증여를 잘 할 수 있나를 고민한다. 또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은 늘 따라다니는데 누구나 아까워하는 세금을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절세할 수 있나 하는 것은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이다 

 

그렇다. 내가 비록 한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돈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많아졌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픈 과거에서 배운 실패하지 않을 방법도 알려줄 수 있다. 전문가의 최대덕목은 기본을 몸에 익히고 실전에 임해서는 그것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투자에 있어서 전문가는 리스크를 피하는 것, 살아남아서 다시 투자기회를 갖는 것이다. 시장에는 늘 기회가 있으니까. 파산을 하고 나면 그 기회란 놈을 절대로 잡을 수가 없으니 오직 살아남는 것 만이 최대덕목이라 할 만하다. 이제 나는 갈림길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하려고 한다.

 

지혜로운 투자의 방법을 고객과 나누고 또 그 이야기를 책으로도 나누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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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9 10:23:23 *.154.223.199

행님의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은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이어서 읽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행님 바닥의 용어로, 행님이 쓰고 싶으신 대로 마구 써대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싶긴 합니다.

그 말씀대로 잘 하고 계신 행님,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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