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여! 어서 봄을 가져와다오
페르가마에 가면 많은 신전터가 있다. 제우스의 제단, 아테네의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등 다양하다. 그리고 페르가마엔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 신전터가 있다. 데메테르는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이며, 로마인들에게 케레스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황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며, 어머니다운 자세로 앉아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녀는 어머니 여신이자 곡식의 여신이며 엘레시우스 비의를 전수해 준 여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곡식의 여신이라면 때로는 풍년을 때로는 흉년을 가져와 우리의 먹거리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하는 인간의 굴레, 삶의 굴레. 먹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비참해지고, 비굴해져야 하는 그런 인간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곡식의 여신이 가지는 힘은 막강할 것 같다. 데메테르신전터는 다른 신전터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깨어진 돌조각에서 벼나 보리의 이삭형태를 발견하려고 애썼지만 보지 못했다.
데메테르는 오빠인 제우스와 결혼하여 아름다운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어느 날 처녀 페르세포네는 초원에서 장미와 백합, 히야신스와 수선화, 제비꽃을 따고 있었다. 이때 돌연 땅이 열렸다. 땅의 어둡고 깊은 구멍에서 검은 말이 끄는 황금마차를 탄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가 나와서 그녀를 납치하여 지하세계로 데려갔다. 그녀는 무서워서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페르세포네가 초원에서 사라진 후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는 온 세상을 뒤졌지만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인 제우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다. 데메테르가 비탄에 잠긴 채 딸을 찾아다니자, 보다 못한 헤카테는 페르세포네가 사라질 때 태양신이 그 소리를 들었을 테니 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태양신으로부터 ‘제우스의 허락을 받은 하데스가 저지른 일이었음’을 듣게 되었다.
화가 난 데메테르는 노파로 변장하여 떠돌다가 엘레시우스의 왕자이자 쟁기의 신인 트립톨레모스의 보모가 되었다. 데메테르는 트립톨레모스에게 불의 세례로 영생을 주었다. 엘레시우스왕은 감사의 표시로 데메테르의 신전을 지어주었다. 그 후부터 데메테르는 올림포스를 떠나 엘레시우스에서 머물렀다.
화가 난 데메테르는 씨앗들을 언제까지나 땅속에 숨겨둔 채 싹트지 못하게 할 것이며 또한 딸을 돌려받기 전에는 절대 곡물을 발아시키지 않겟다고 했다. 밭에 보리씨를 부리고, 소들이 쟁기를 끌고 밭을 갈았지만, 갈라진 땅에서는 아무 것도 발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아우성은 하늘을 찔렀다. 이에 놀란 제우스가 형인 하데스에게 약탈한 신부 페르세포네를 석방하라고 명했다. 만약 제우스가 돌려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기아로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지하의 왕 하데스는 제우스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고, 아름다운 신부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기도 싫었다. 그래서 한 가지 음흉한 안을 생각해내었다. 왕비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에게 석류를 먹였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지하세계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페르세포네는 1년 중 3분의 2는 지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머물지만, 나머지 3분이 1은 저승에서 남편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페르세포네는 겨울엔 남편 하데스와 함께 지하에서 머물다가 새싹이 돋고 꽃이 만발하는 봄이 되면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이 돌아오자 기쁨에 넘쳐 밭에 곡물이 싹터 올라오도록 했으며, 드넓은 대지 곳곳에 나뭇잎과 꽃들이 만발하도록 해주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도 너른 대지의 초록빛을 보는 것도 가을의 우수에 젖은 풍광도 다 좋아한다. 특히 행복을 느끼는 때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바람이 내 온 몸을 감싸고 돌 때이다. 자연이 나를 사랑한다는 느낌, 부드러운 남자로부터 애무를 받는 느낌이랄까, 이때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환희를 느낀다.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제사를 드리는 엘레시우스 비의(秘儀)는 7세기 초 기독교 시대에 억압을 받게 되지만 그때까지는 델포이 신탁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정수를 이루던 제의였다.
호메로스는 <데메테르의 찬가>에서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엘레시우스의 평원이 갑자기 황금물결의 곡물이 넘실대는 풍요의 들판으로 바뀌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비의가 시작되기 전 입문자들은 미리 금식을 해야 한다. 신도들은 횃불을 들고 들판을 행진하고, 양가죽이 씌워진 의자 위에 신도들은 복면을 쓴 채 말없이 좌정하는 의식에 참여했다. 신도들은 돌아가면서 철야로 불침번을 서야했다. 믿기 어렵지만, 음란하고 상스러운 농담이 오고갔으며, 성배로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신과의 엄숙한 교제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데메테르는 엘레시우스의 비의를 전한 여신이요, 곡물의 여신이요, 풍요의 여신이요, 딸에 대한 애정이 넘쳐흘렀기 때문에 어머니의 여신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리고 딸 페르세포네 때문에 봄이 되면 무덤에서 나오듯이 곡식줄기에서 싹이 터져 나오고 꽃들이 피어나니 곡물의 여신으로서 페르세포네의 지위 또한 아주 탄탄하다.
그리스인들은 근대까지도 데메테르여신의 존재와 은총에 의해 농작물의 수확이 좌우되며 따라서 그 여신상이 없어지면 흉작이 초래된다고 믿었다고 전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래도 봄은 오겠지. 지하에 있는 페르세포네는 봄을 데려오기 위해 부지런히 꽃단장을 하고 있겠지. 어머니 데메테르도 지상에서 딸을 맞아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고 있을 것이다. 꽃아, 꽃아 활짝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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