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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2일 09시 48분 등록

고깔모자를 쓴 미다스왕과 신라인

 터키의 수도가 앙카라임을 모르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스탄불이 당연히 수도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즈미르에서 밤 버스를 탔다. 밤 열시에 출발한 보스는 두 곳의 휴게소에서 쉬었을 뿐, 밤새 달려 아침 여덟 시쯤에 앙카라에 도착했다. 밤새 버스 속에서 잠을 자는 승객들을 위해 차창에 앉은 승객들에겐 작은 베개가 제공되었다. 버스회사에서 도시락까지 제공해 주었다. 이것은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다.

  밤새 달려 앙카라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으로 가자고 했다. 눈이 사파이어보석처럼 빛나고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운전기사는 무척이나 친절했다. 내릴 때 요금을 지불하려했더니 안내책자의 요금보다 세 배 정도는 더 비싸게 부른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운전사는 미터기를 가리키면서 가이드북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할 말이 없다.

  바가지요금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운전사가 가리킨 건물을 찾아갔다. 입장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 박물관 앞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이 아니란다. 무거운 배낭 매고 낑낑대면서 찾아간 곳은 민속박물관이었으며 수리 중이었다. 터키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앙카라 박물관에서 특히 보고 싶은 것은 ‘황금의 손’으로 유명한  미다스왕의 무덤이다. 전설 속의 왕이라 생각했던 미다스왕의 무덤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무덤의 양식이 경주 대능원의 ‘적석목곽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적석목곽묘의 방식은 북방기마민족의 이주를 뜻하는 것이다. 신라의 지배계층은 북방기마민족임을 알 수 있다. 미다스왕과 신라의 지배계층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미다스왕은  ‘황금의 손’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두 개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별로 명예스럽지 않은 별명이다. ‘황금의 손’이라는 별명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를 극진히 대접하는 데서 시작된다. 

   장미의 나라 프리기아에 미다스 왕이 있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온 마을을 쓸고 다니는 실레노스를 본 프리기아 농부들이 디오니소스의 스승을 붙잡았다. 프리기아 농부들은 이 실레노스를 꽃사슬로 묶어 미다스왕에게 데리고 갔다. 미다스 왕은 장미덩굴 밑에서 자는 주정뱅이 실레누스를 잘 대접하고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돌려보냈다.

  미다스왕은 디오니소스의 스승임을 알아보고 실레노스를 반갑게 맞아들여 밤 열흘 낮 열흘 잔치를 베풀었다. 열하루 째 되는 날, 실레노스는 제자 디오니소스에게 인도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스승이 돌아온 것을 보고는 크게 반가워하면서 미다스왕에게 선물을 하나 내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디오니소스가 간절한 소원 한 가지를 대라고 하자, 미다스왕은 이렇게 말했다.

  “제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황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미다스는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다. 미다스왕은 너무나 행복해 커다란 나무도 만져보고, 궁전의 기둥도 손으로 쓰다듬었다.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다.

이에 대해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미다스는 탐욕스러운 자다. 단지 황금을 선택했기 때문에 탐욕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황금이란 무척이나 멋진 것이어서 누구도 황금의 유혹 없이 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세속의 웬만한 부귀는 이미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를 넘어서는 무제한의 욕망을 원했으니 탐욕스럽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자 미다스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 행복이 길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와인도 입에 넣는 순간 황금으로 변했다. 빵을 만지는 순간 왕금으로 변해버리니 그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그는 야위어갔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디오니소스에게 달려가 자기의 소원을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디오니소스는 처방을 내려주었다.

“강으로 가라. 팍톨로스 강으로 가서 머리와 손을 씻어라.”

미다스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었던 능력은 사라졌다. 그 대신 그때부터  팍톨로스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많이 가진 자의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그것이 바로 탐욕의 본질’이라고 했던가.

  황금에 된통 당한 미다스는 그 후 숲으로 들어가 목양신인 판(pan)을 섬겼다. 트몰로스 산속에 살고 있는 판은 요정들을 모아놓고 피리를 불곤 했다. 판은 피리의 명수였다. 그는 자신의 피리 연주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의 수금조차도 자신의 피리 소리를 당할 수 없다고 자랑했다. 판의 오만함은 아폴론을 노하게 했고, 드디어 두 사람은 각각 자신들의 악기로 시합을 하기에 이르렀다.

  미다스는 판과 아폴로가 벌이는 음악경연대회의 심판관으로 뽑혔다. 미다스는 판의 음악이 더 훌륭하다고 손을 들어주었다. 강한 힘을 가진 아폴로는 화가 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귀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미다스의 귀를 당나귀의 귀로 만들어버렸다. 그때부터 미다스는 보라색의 고깔모자를 쓰고 다녔다.

  미다스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더니, 스스로 화를 자초하여 자신의 귀를 당나귀로 만들어버렸다. 어리석음의 상칭처럼 느껴지는 미다스왕의 무덤은 1950년대에 미국인 고고학자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미다스왕의 시신은 큰 방 같은 관에 청동그릇, 토기 등과 함께 있었고, 관의 외부는 큰나무 기둥으로 막은 다음 잔돌을 넣고 다시 나무로 마감한 형태였다.

   2300여년이 지나는 동안에 도 미다스 왕의 시신과 그 부장품이 크게 훼손되지 않은 것은 외부공기를 차단시킨 특이한 공법때문이라 한다.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 모형을 만들어 전시해둔 미다스왕의 무덤은 무덤을 반 잘라 그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 경주의 대능원과 비슷하다.

프리기아의 왕인 미다스왕이 고깔모자를 쓴 것과 비교하여 신라 금관이 고깔형태임을 들어   문화의 유사성에 앞서 프리기아인들이 동쪽으로 이주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프리기아인들이 동쪽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중앙아시아의 사카족과 섞이어 천산을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미다스왕의 우매함을 잊어버린 채 붉은 색 등불이 켜져 있는 미다스의 모형무덤 앞에서 서성거렸다. 신라의 문화가 시베리아에서 온 것이 아니라 터키라는 멀고 먼 나라에서 건너 온 것이 반가웠다. 터키는 확실히 형제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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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06:02:51 *.154.223.199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게 여기저기에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삼국유사에도 그 이야기가 나왔지요?

사파이어 눈빛을 한 남정네라...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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