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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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대한다는 것
흰 산이 가고 싶었다. 얼음 주름살이 금빛으로 빛나는 흰 산 말이다. 여전히 시간은 느리고 수천 년 전에 일었던 바람이 아직도 어슬렁대며 불려 가는 그 곳 말이다. 신의 말을 출렁대는 다리에 걸어놓고 바람에 태워 보내는 룽다가 가는 곳곳마다 넘실대는 곳, 인간은 신을 사랑하고 신은 인간을 보우하여 신과 인간이 한대 어울려 수많은 이야기로 출렁대는 그 곳 말이다. 그러나 산은 하얀 눈을 머금은 만큼 높다. 그리로 가기 위해서는 흰 산보다 더 새하얗게 나를 먼저 다려놓아야 될 터였다. 그 곳은 극한의 삶을 희구하는 자들만이 비벼댈 수 있는 무대고 수직의 길은 죽음을 피하며 오르는 자들의 꿈이었다. 신이 거하는 만큼 삶보다는 외려 죽음과 가까운 곳이고 신을 알현하기 위한 욕망의 인간들이 득실대는 곳이기도 했다. 오르려는 인간들의 열정을 숙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오르려는 인간들의 욕망의 모습을 민낯으로 볼 수 있는 장이기도 한 그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리도 하얗다.
높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그 높음. 인간을 죽여놓는 그 높이에 대해 이제 말할 차례다. 흰 산, 높은 흰 산에 대해 내 안으로 들어가 그것과 만난 다음, 나는 다시 흰 산에 대해 쓸테다. 물리적으로 높다는 것은 내 자의식이자 우리의 자의식이 그리 만든 것. 높다, 낮다라는 말은 이미 그 자체에 언어적 제약을 품고 있다. 누가 높음에 대해 낮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규정할 수 없는 그 높음에 대해 나는 스스로 답을 해야만 한다. 산을 오르는 수직의 운동이라는 단편적 사실에 더하여 일상을 거스르는 인식을 재발견해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진 거다. 그것은 내 자신을 내가 생각하는 사유의 방식과 언어 너머의 세계를 가늠해야 하는 무겁고도 혹은 무서운 숙제이지 않겠는가.
산과 나 사이에 아무런 매개 없이 발가벗기운 채 만나기 위해서는 내 언어와 산의 높음을 먼저 벗어 내야한다. 그리하면 내가 이제껏 지녔던 산에 대한 고착된 이미지를 버릴 수 있겠고 산도 그제야 그 높음을 한껏 낮출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다음, 비로소 나는 산을 비벼대고 산은 나를 기꺼워 할게다. 그제사 산과 나는 진정한 소통의 장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개 없는 소통, 物과의 소통의 힌트는 장자에서 찾는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입니다. 기술을 넘어 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는 법은 없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천리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 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저 뼈에는 틈이 있고 이 칼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으로 틈이 있는 데다 넣으므로 넓고 넓어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유명한 포정의 이야기다. 뼈에 틈이 있는 것은 내가 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다. 산이 인간을 위해 비워 놓았으나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들어갈 수도 없었던 자리다. 칼에 두께가 없다는 것은 내가 산에 대한 자의식, 즉 높다, 힘들다, 거칠다, 불편하다, 어렵다, 춥다, 덥다 등의 언어와 인식으로 정의되는 모든 것을 버린 모습이다. 장자는 소통을 위해 매개를 버리라 했다. 그리고 난 후 내가 나임을 지운 후에 모든 만물을 대하면 그것이 곧 소통이라 일렀다.
흰 산, 높은 흰 산은 그저 '산'으로 나는 그저 '사람'으로 마주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작업인지 안다. 내 마음의 자유만큼이나 멀고, 저 멀리 북극성만큼이나 아득함을 안다. 이 과제에 잘못 들어섰음도 안다.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주눅들게 할 것이니까. 그러나 간다.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내가 자유를 말하고 언어를 말하는 것이 가엾기는 하지만 쪽팔린다고 올라간 무대를 내려올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부끄러움을 죄다 느낀 다음 더 이상 내어놓을 부끄러움이 없을 때 나는 흰 산과 그 산의 높이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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