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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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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6일 00시 00분 등록

 

1월의 어느 날 이었다. 하늘이 잔뜩 흐렸다. 이른 봄이면 요르단 강물은 해산을 앞둔 산모의 몸처럼 불었지만 아직은 겨울이었다. 요르단 강 너머 모압 광야는 특히 겨울에 척박했다. 이따금씩 돌개바람이 푸석한 먼지를 일으키며, 제 몸을 휘감아 하늘로 솟아오르곤 했다. 멀리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언덕이 보였고, 갈릴리 땅 너머 헤르몬 산에서 눈 녹은 물들이 흐르는 요르단 강은 맑았다. 기다리던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반드시 올 것이다. 신은 아주 오래 전 당신의 이름으로 약속했었다. 타락한 인간의 세상을 심판하고, 마침내 세상을 구원할 이를 보내주실 것이다. 언제나처럼 신은 당신을 외면한 이들에게 고통을 겪게 하셨고, 절망의 바닥에 이르러 반드시 구원의 손길을 주셨다. 요한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그가 올 길을 닦고, 그를 맞이할 때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이제 곧 그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강은 천상에서 왔지만, 지상의 삶을 살았다. 바짝 엎드려 땅 위의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흘렀고, 그 땅의 모든 생명들을 품어 키웠다. 유대의 사람들은 사마리아 땅을 꺼렸지만, 요르단 강은 갈릴리 호수를 지나 이단의 땅에도 흘렀다. 메마른 땅일수록 강물은 귀했고, 목마른 자들일수록 기다림이 간절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된 땅이었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민족을 이끌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광야에서 또 다시 40년을 떠돌다 마침내 닿은 곳이 요르단 강 건너편 모압 광야였다. 홍해를 갈라 뒤따르던 애굽의 군사들을 물리친 모세였지만, 그는 약속의 땅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신은 모세에게 그것까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모세는 모압의 광야에서 삶을 다했고, 신은 그의 생명을 거두어갔다. 대신 젊은 여호수아가 사제들로 하여금 ‘언약의 궤’를 앞세우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섰다. 요르단 강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설 때, 강물은 스스로 제 몸을 열어 길을 내주었다. 약속의 땅을 흐르는 요르단 강과 함께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의 끝을 보고 있었다.

 

지금 요한이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은 신성한 땅이었다. 신의 약속처럼 가나안 땅은 풍요로웠다. 광야의 한 가운데서 조차도 강물이 목마른 대지를 적시는 곳에서는 식물들이 꽃을 피웠고, 벌들은 꿀을 모았다. 염소와 양은 대지의 품에서 자란 풀로 배를 채우고 새끼를 키울 젖을 내었다. 대추야자와 올리브 그리고 포도가 강을 끼고 깊어진 골짜기들을 따라 자랐다.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 땅에서 충분히 번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이 내린 은총을 질투하고 땅이 키운 풍요를 탐내는 자들은 많았다. 알렉산더의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로마 제국의 병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의 길목에 자리한 이 땅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전쟁의 피바람은 그칠 날이 없었고, 이스라엘의 운명은 그때마다 흔들렸다. 제 민족들 간에도 사분오열하였고, 이교도들과도 몸을 섞었다. 풍요를 준다는 바알 신에 혼을 빼앗겼던 것처럼 유대의 백성들은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솔깃했다. 토라 경전에는 먼지가 쌓였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너무 흔히 약속을 잊었다. 신의 계율은 지켜지지 않았다.

 

로마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악티움해전에서 안토니우스가 패하고,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지중해 연안의 모든 땅이 로마의 지배아래 놓였다. 더 이상 가나안은 풍요롭던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제국의 지배는 오래된 나무의 뿌리처럼 이 땅에도 깊이 뻗어 내렸다. 로마의 황제는 이제 제국의 일부가 되어버린 유대의 땅을 다스릴 왕을 임명했고, 총독을 새로 파견했다. 예루살렘에는 로마의 군대가 상주했고, 성전의 대제사장은 사두개파의 율법학자들이 임명됐다. 대제사장은 황제와 왕을 위해 그리고 신전의 제사와 사제들을 위해 필요한 세금을 징수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호구조사가 실시됐다. 땅을 가진 자들에게는 토지세가 물렸고, 사람의 머리마다 인두세가 매겨졌다. 제국은 패전국의 백성들에게 전쟁배상금을 청구했고 대제사장은 성전세와 십일조 그리고 첫 열매의 제물들을 따로 받아냈다. 십일조는 곡식과 포도주, 기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적용됐다. 왕관세와 소금세 그리고 사고파는 모든 것에 세금이 징수됐다. 일 년에 한 번씩 최고의 금액을 제시하는 자에게 조세징수권이 넘겨졌다. 세금을 걷어 들이는 세리들이 그 밑에 고용됐다. 세리들은 왕실 재정부의 세금관리와 이스라엘백성들 사이에서 기생했다. 약속한 이상을 걷어가고, 약속만큼을 바치고, 남는 만큼을 챙겼다. 징수권을 따내기 위해 제시되는 금액은 해마다 늘어갔고, 땅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들판의 짐승과 나무의 과일에서 채우고 모자란 것들은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금을 내지 못한 자들은 땅을 빼앗겼고, 가진 것들을 모두 압류 당했다. 한동안 그들은 남의 땅에 붙어 소작을 짓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날품팔이가 되거나 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따금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고, 세금을 면제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길거리에는 구걸하는 자들로 가득 찼고, 훔치고 빼앗아 먹는 자들이 늘어갔다.

 

유대의 땅에 더는 유대인의 왕은 없었다. 로마제국의 지배아래서 유대의 왕이 된 헤롯은 이두메의 족속이었다. 유대의 핏줄이 아니었다. 헤롯은 눈치가 빠르고 세상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다. 유대의 하스몬 왕조가 몰락해갈 무렵, 스물아홉의 나이로 갈릴리 행정관을 지냈던 그였다. 그는 이두메의 심장을 가졌지만, 로마의 정신으로 무장했다. 자신의 힘과 권위가 로마로부터 오고 있음을 잘 알았다. 로마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으며, 헤롯도 변해야 했다. 케사르에서 안토니우스로 다시 옥타비아누스로 권력의 중심이 바뀔 때마다 헤롯은 한발 앞서 움직였고, 덕분에 그는 유대의 땅에 오래 군림할 수 있었다. 헤롯은 로마로 향하는 길을 넓혔고, 제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열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재건하여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봉헌했다. 왕궁을 신축하고, 신전을 개축했다. 로마식 경기장과 원형극장이 들어섰고 수로 공사가 추진됐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동원됐다.

 

말년이 되어 갈수록 헤롯은 고집스러워졌고, 잔인함이 더해갔다. 유대인들과의 친화를 유지하기 위해 결혼했던 하스몬 왕조의 딸 미리암을 부정한 여인으로 몰아세웠고, 자신의 아들들과 사위를 살해하고, 장모마저도 반역죄로 죽였다. 헤롯은 유대의 핏줄이었던 하스몬 왕조의 씨앗들을 아주 말려버릴 작정이었다. 사두개파도 바리세파 사람들도 모두 두려워 그를 꺼려했다. 헤롯이 죽기 직전, 급기야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헤롯은 새로 지은 신전의 문전에 로마의 상징인 황금독수리 상을 세웠었다. 유대의 현자 하나가 그것이 우상숭배라 일컬었고, 그 제자들이 밤사이 독수리 상을 허물었다. 말년의 헤롯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미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살해되었듯이 그 현자와 제자들도 쉽게 죽음을 당했다. 민심은 더없이 흉흉해졌고, 헤롯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은 더없이 커져 갔다. 떠도는 소문에는 베들레헴에서 두 살 아래 어린 아이들이 무참히 살해되었다고도 했다. 예언서에는 유대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두려워한 헤롯이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요한이 태어난 때도 그 즈음이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신께서 네 소원을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터이니,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테지만,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는 포도주나 그 밖의 어떤 술도 마시지 않겠고 어머니의 몸에서부터 성령을 가득히 받을 것이며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신의 품으로 다시 데려 올 것이다. 그가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올 사람이다. 그는 아비와 자식을 화해시키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어느 날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전에서 기도중인 즈카르야를 찾아왔다.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는 유대교의 사제였다. 어머니 엘리사벳 또한 사제 집안의 딸이었다. 그렇지만 늦은 나이가 되도록 이들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신앙심이 깊은 이들 부부를 찾은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의 임신을 알렸다. 그런데 천사의 출현에 두려웠던 나머지 즈카르야는 자신의 기도를 의심했고, 가브리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의심은 죄가 되었다. 그 대가로 벙어리가 되는 벌을 받았지만, 가브리엘의 예언은 이루어졌다. 마침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았고, 유대의 관습대로 아이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사람들이 찾아와 축복을 주며 아이의 이름을 묻자, 즈카르야가 작은 판에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신의 은총, 요한이었다. 그러자 닫혔던 즈카르야의 입이 다시 열렸고, 그는 다시 트인 입으로 신을 찬양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헤롯도 죽었고, 유대의 땅은 그의 자식들에게 나뉘어졌다. 옥타비아누스도 죽었다. 로마의 황제도 티베리우스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탄압과 수탈은 점점 더 심해졌고, 유대의 땅은 갈수록 흉흉해졌다. 로마는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지만, 식민지에서는 크고 작은 소요들이 끊이질 않았다. 봉기가 일면 제일 먼저 예루살렘의 채무기록보관소가 불타올랐다. 소식은 넓은 길을 따라 로마로 빠르게 전해졌다. 예루살렘의 로마 병력들이 증원되었고, 황제의 친구로 알려진 본시오 빌라도가 새로운 총독으로 왔다.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해직하는 일은 총독과 헤롯 후계자들의 몫이었다. 사두개파의 카야파가 대사제를 맡았고, 그의 장인 한나스가 귀족사회를 움직였다. 사제들은 부유했고, 성전의 금고에는 제사에 쓰려고 거둬들인 보물들이 채워졌다. 재물은 가질수록 부족했고, 욕심은 채울수록 더 허기졌다. 당시에 로마의 총독들에게 뇌물은 일상적인 관례였고, 성전의 보물은 신이 마련해준 선물같이 여겨졌다. 빌라도에게 그럴듯한 구실이 필요했다. 때마침 헤롯이 벌여놓았던 성전의 개축과 수로공사에 돈이 더 필요해졌다. 빌라도 총독은 성전 금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기름 같았다. 언제 불이 붙을지 알 수 없었고, 일단 한 번 붙으면 들불처럼 번져갔다. 사람들은 죽은 엘리야가 다시 부활하여 이민족들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다. 스스로를 구세주라 자칭하는 자들도 있었다. 민란과 반란을 따로 구분할 수 없었다. 반란은 잔인하게 진압됐다. 민심을 현혹한 주동자들은 십자가에 매달렸으며, 동조자들의 목이 베어졌다. 빌라도는 독사처럼 잔인했고, 여우처럼 노련했다. 사제들은 성전 밖의 일에 눈을 감았다. 유대의 자손들은 목자를 잃은 양들처럼 보였다. 땅에는 속죄양들 같은 피가 흘렀고, 버려진 주검들이 황량한 모래바람에 덮여갔다. 광야에 버려진 죽음들은 신의 위로조차도 받지 못했다. 푸석한 먼지바람들이 일었다. 메마른 바람은 요르단 강이 흐르는 모압의 골짜기 사이를 지나 대지의 깊은 곳으로 흘러갔다.

 

요한은 광야에서 나왔다. 더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세상의 고통은 사막의 바람을 타고 광야를 건너왔는데, 바람은 요르단 강의 골짜기에 부딪히며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다. 죽음의 냄새가 번져왔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은 더 이상 이 땅에 머물 수 없었다. 낙타 가죽으로 마른 몸을 가른 채 그는 요르단 강을 거슬러 올랐다. 예언서에는 그의 백성들이 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고 했다. 죄와 고통 그리고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한 요한의 외침은 절규 같았다. 사람들이 강가로 모여들었다. 병들고 지친 삶을 짊어진 걸음들은 무거웠다. 그들은 세상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겨진 영혼들이었다. 요한의 눈에 슬픔이 고였다. 헤르몬 산에서 흘러온 맑은 요르단 강물이 신의 눈물처럼 비쳤다.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아직 비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이도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강물로서 세상의 죄를 씻었지만, 이제 곧 도래할 이는 성령으로 영혼을 채울 것이다. 고통을 벗어던진 새로운 삶은 기쁨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고, 신과의 새로운 약속이 맺어질 것이다.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강, 세상의 밑바닥을 흘러왔지만 요르단 강이 닿은 곳은 바다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죽은 바다, 사해死海라고 불렀다. 그곳이 요르단 강의 끝이었고, 거기서 척박한 대지, 약속의 땅을 흘러온 강물은 하늘로 올랐다. 천상으로 돌아가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강물이 끌어안고 흘러온 세상의 모든 더럽고 추한 것들이 지상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고통 받는 땅,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흘러온 강물, 요르단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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