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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6일 15시 44분 등록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

폴 호프만 지음/ 신현용 옮김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jpg


1 저자에 대하여

 폴 호프만은 1986년에 에어디쉬를 처음 만났으며 그후 10년 동안 각종 수학 학술대회에 참석하며 그를 꾸준히 인터뷰 해왔다. 1987년에 <어틀랜틱>지에 실린 호프만의 에어디쉬 특집기사는 잡지계의 유수한 상인 내셔널 매거진 상을 받았다.수상위 원회는 그 기사가 “명석함과 재치가 번뜩이는 고전적인 특집기사”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엔사이클로피디어 브리태니커의 발행인이다. 그는 5부작인 PBS시리즈 “과학의 위대한 인물들”의 호스트였으며 <CBS 디스 모닝>,<짐 레러와의 뉴스 아워> 같은 텔레비전 쇼의 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호프만은 10동년 안 <디스커버>지의 사장/편집장으로 활약했으며 <<아르키메데스의 복수>>등을 포함 10여권의 책을 써내기도 했다.  그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와 뉴욕주 우드스톡에서 살고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REVIEW

수학적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 현실 바깥에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또 우리를 움직이는 핵심적 동력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믿음을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것은 무신론자에게 신의 개념을 설명하려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폴 에이디쉬 Paul Erdos는 수학적 진실에 대한 믿음을 몸소 실천하고 또 구체화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엄청난 재능과 정력을 오로지 수학의 신전에 바쳤다. 그는 자신의 수학적 탐구가 대단히 중요하고 또 대단히 절대적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그럼 믿음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라면 그 믿음을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아마도 종교인이라면 폴 에어디쉬의 그런 특별한 개인적 탐구를 잘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람을 폴 아저씨(Uncle Paul)로 기억하고 있다. 

-조엘 스펜서


금세기의 인물들 중에서 에어디쉬처럼 추상의 추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는 철학을 위해서 그의 모든 생활을 포기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자기고문의 한 방식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모두 포기한 사람이라면, 폴 에어디쉬는 정말로 돈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번 돈을 거의 대부분 남에게 주어버린 사람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이 거의 자살적인 충동에 내 몰린 사람이라면, 에어디쉬는 자신의 인생을 차근차근 쌓아올려 최대한의 행복을 이끌어낸 사람이었다. 

  • 에코노미스트  The Economist


0) 25억년을 산 사람

p10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어리석어지지 않는다

- 폴 에어디쉬가 스스로 작성한 묘비명


폴 에어디쉬

폴 에어디쉬 2.jpg

 폴 에어디쉬.jpg




p12 “아, 엡실론 (ε,epsilon) !” 

 그리스 문자인 엡실론(ε)은 에어디쉬가 어린 아이를 가리킬 때 쓰는 말로서, 수학에서는 미소한 양을 나타낸다. 

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할 때 처음 배운 과목이 미분적분학이었다. 미분적분을 할 줄만 알았지 미분적분에 나오는 정리들을 증명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적분학에서 처음 엡실론 기호를 사용했는데, 도대체 엡실론이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엡실론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에어디쉬가 엡실론을 어린아이를 가리킬 때 썼다니 재치있는 수학자 답다. 미적분학 책을 들춰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p13 “색수(色數, chromatic number) 3을 파괴할 수 있는 변(edge)이 아직 많이 있어. 이 변은 양분성을 파괴하지.” 

 에어디쉬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으며 졸리는 척을 했다. 

 여느 과학자들과는 달리, 수학자는 연구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아르키메데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목욕을 마치고 몸에 올리브유를 바르던 아르키메데스는 올리브유가 발라진 자신의 피부에다 손톱으로 도형을 그리던 중 기하학의 원리를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식당도 수학을 연구하는 장소로서 하등 손색이 없다. 수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는 마음의 평화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엔 때때로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수학의 매력이 바로 그겁니다. 누워서도 눈을 감고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 폴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레이엄이 말했다. 


p14 에어디쉬는 1996년 9월 20일, 향년 83세로 사망했다. 그는 평생 그 어떤 수학자보다 더 많은 수학 문제들을 제기하고 또 궁리했다. 그는 1,475편의 학술 논문을 저술(혹은 공동저술)했는데, 그 중 상당수가 획기적인 것이었고, 모든 논문이 알찬 내용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논문의 수량도 놀랍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다. 에어디쉬는 이렇게 말했다. 

 “Non numerantur, sed ponderantur(그것들은 수로 세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게로 달아진다). 옛날 헝가리 귀족 회의에서는 말이야, 투표를 세지 않고 무게를 달았다는구만. 이 말은 학술 논문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정말이야, 리만도 논문 발표 수는 적었고 또 괴델도 그랬지. 하지만 가우스나 오일러는 논문을 많이 발표했었지” 

 에어디쉬는 70대가 되어서도 연간 50편의 논문을 여러해 동안 발표했다. (그럼 일주일에 한 편이란 소리인데, 엄청나다.) 이러한 업적만 해도 대부분의 우수한 수학자들이 평생 걸려야 달성할 수 있는 실적이다. 그는 수학이 젊은이의 학문만은 아님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었다. 

 에어디쉬는 자신의 생애를 잘 조정하여 거의 평생을 수학에만 바쳤다. 그는 아내도 아이도 직업도 취미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구속한다고 생각하여 집도 없었다. 그는 남루한 여행용 가방과 센트럼 아루하즈(중앙창고 : 헝가리 최대의 백화점)에서 구입한 오렌지색 플라스틱 가방에다 살림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좋은 수학문제와 새로운 수학 인재를 끊임없이 찾아다녔던 그는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4대륙을 휘젓고 다녔고 이 대학에서 저 연구소 그리고 다른 대학, 이렇게 방랑을 계속했다. 그가 일하는 방식은 이런 것이다. 그는 동료 수학자의 문턱에 나타나 “내 두뇌는 열려있습니다. My brain is open”라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하루 혹은 이틀에 걸려서 그 집주인과 연구를 한다. 그 후 그가 따분해지거나 아니면 주인이 피곤해지면 그는 다른 수학 동료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에어디쉬의 모토는 “다른 도시에서는 다른 여자를”이 아니라 “다른 지붕 밑에서는 다른 증명을  Another roof, another proof”이었다. 그는 25개국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수학을 했고, 아주 외딴 지역에서 중요한 증명을 완성하는가 하면 또 아주 외딴 저널에다 그 증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동료 한 사람은 이런 유머러스한 5행시를 지었다. 


 깊고 시오한 추측 중에는 

 원이 둥근가 아닌가 하는 것이 있다네.

 쿠르드어로 씌어진

 에어디쉬의 한 논문에 

 반증이 있다네. 


A conjecture both deep and profound

Is whether the circle is round.

In a paper of Erdos

Written in Kurdish

A counterexample is found. 


p16 에어디쉬는 이 5행시 얘기를 전해 듣고서 쿠르드어로 논문을 발표하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쿠르드어 수학 저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p16 에어디쉬가 수학을 처음 접한 것은 세살 때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생애 만년의 25년 동안에는 하루 19시간 수학에 매달렸다. 그는 규칙적으로 하루에 10~20 밀리그램의 벤제드린(혹은 리탈린) 강한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인 알약을 복용했다. 에어디쉬는 즐겨 이렇게 말했다.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theorem)로 둔갑시키는 기계이다.”

 동료들이 좀 천천히 일하라고 충고하면 그는 늘 같은 대답이었다. 

 “무덤에 들어가면 휴식할 시간이 많을 거야.”

 에어디쉬는 수학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 거부했다. 뉴저지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도중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는 동료 얘기가 나오자, 에어디쉬는 그 동료에게 알려주기로 한 수학 결과를 생각해냈다. 그는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전화기로 달려가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집주인은 그를 제지했다. 서부 시간은 현재 새벽 다섯 시라는 것이었다. 에어디쉬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더욱 좋지. 그 시간이라면 틀림없이 집에 있을 거니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에어디쉬가 즐겨 말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다.  

 “루이 14세는 ‘내가 국가이다’라고 말했고, 트로츠키는 ‘내가 사회다’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나는 ‘내가 실재(reality)다’라고 말하고 싶다.” 


p17 에어디쉬와 의사소통을 잘 하려면 먼저 그의 특수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수학평론가 마틴 가드너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처음 물어온 것은 ‘언제 도착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대답을 하려고 했지요. 그랬는데 그레이엄이 이렇게 힌트를 주는 거예요. 그 질문은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느냐?’라는 뜻이라고 말이에요.” 

 에어디쉬는 같은 질문을 다르게 물어보기도 했다.

 “탄생의 불운이 당신을 덮친 것은 언제였습니까?”

 그의 특수용어를 간결히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SF- 지고의 독재자, 하나님.

엡실런 - 아이

두목- 아내, 혹은 여자

노예- 남편 혹은 남자

포획되다- 결혼하다

해방되다-이혼하다

재포획되다-재혼하다

소음-음악

독약-알코올

설교-수학 강의(강연)

샘-미국

조-소련

사망하다-수학연구를 그만두다

떠나다-사망할다


p18~19 그러나 에어디쉬는 수학이 아닌 것은 귀찮게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몇몇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사유재산이 훔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사유재산이 귀찮은 것이라고 말하겠어요.”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재산은 그의 수학 노트다. 그는 사망 당시 10권의 수학 노트를 남겼다. 그는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수학적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놓는다. 

수학적 영감이라...... 수학자가 예술가라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수학자들이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어린 시절 미술학원에 다녔다. 어머니는 나에게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을 가르치셨다. 어린시절 음악과 미술을 배울 수 있게 교육시켜주셨던 어머니께 감사하다. 미술학원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불조심 포스터를 그려 구에서 하는 대회에 나가 장려상을 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장려상 상품은 국어사전이었다. 

 내가 배웠던 미술 수업 단계는 다음과 같았다. 처음 미술학원에 가서 나는 이젤에 4절지 스케치북을 펴 놓고 선을 그렸다. 선의 굵기와 진하기가 일정하게 한 바닥 전체에 선을 그렸다. 그리고 선을 짧게 그리는 연습을 했다. 시작할 때는 스케치북을 꾹 눌러서 시작하지만 선의 마지막은 나비처럼 가볍게 손을 올려 마무리 쳤다. 즉 진하게 시작해서 점점 흐려지는 선을 그린 것이다. 선그리기 연습을 한 일주일 동안 했다. 그러니 처음에 구불구불했던 선들도 제법 직선으로 그려졌다. 힘조절도 가능했다. 

 그 다음엔 선생님께서 아주 단순한 입체도형을 보여주셨다. 정육면체, 육각기둥, 구, 원뿔, 정사면체 등을 보고 그리라고 하셨다. 먼저 스케치를 한 다음 선 연습했던 것을 활용하여 물체가 빛을 받는 부분, 그렇지 않은 부분, 그림자까지 다 그렸다. 입체도형은 점점 어려운 모양이 도었다. 예를 들어 사면체 중간에 원기둥이 뚫고 들어가 있는 모양들을 그렸다. 

 그리고 난 후 나는 정물화를 그렸던 것 같다. 중간중간 수채화도 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뎃생 수업 위주로 설명하자면 입체도형을 그린 후 정물화를 그렸다. 벽돌위에 있는 사과, 파, 야구공 등을 보고 그렸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미술을 배웠다. 나는 줄리앙이나 아그립바, 비너스는 그리지 못했다. 그 단계까지는 나가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아그립바와, 비너스, 줄리앙 등을 그렸다면 나는 미술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경험이 더 있다면 미술 작품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자, 이제 수학을 생각해보자. 초등학교 수학은 미술에서 선그리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1부터 9까지 배우고, 십의자리, 백의자리, 그리고 큰 수를 배운다. 사칙연산을 배우고, 분수, 소수, 약수, 배수 등을 배운다. 도형도 아주 기초적인 것을 배운다. 모두 수학에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기본 스킬을 배우는 것이다. 

 중학교에서는 미술 공부를 할 때 입체도형을 배우는 것처럼 기본적인 뎃생을 배운다. 방정식, 확률, 함수, 도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것을 배운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한다. 

 고등학교에서는 보다 심화 단계로 나아간다. 문과, 이과가 나뉘어서 이과학생들은 예술적 감각을 조금 더 키울 수 있다. 줄리앙 하나 정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과는 정물화에서 그치게 된다. 

 대학 수학을 배우게 되면 많은 작품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도 생기고, 스스로 느끼게 되기도 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는 법이니까. 

 그러니 수학의 심미성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에게는 씨알도 안먹힌다. 어떻게 입체도형에 명암 조금 넣은 그림을 보고 ‘아름답지 않니?’ 라고 물어 볼 수 있겠는가? ‘미술이란 아름다운 거야.’ 라고 걍요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다. 죽어라고 계산했는데, 답이 틀리게 나와서 속상한 학생에게 “수학은 아름다운 학문이란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놀리는 것밖에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수학을 아름답다고 느껴야 할까? 음... 그렇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느끼면 좋은 점은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예술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때, 신기하고, 훌륭하다고 생각될 때 우리가 가지게 되는 감정, 우리의 상태가 어떠해지나? 한마디로 ‘좋다’ 이다. 훌륭한 화가의 작품을 보고난 후, 천재 음악가의 연주를 듣고나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간 미친 수학자들이 발견한 수학적 정리를 조금 음미해보면 수학에 대하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아, 수학자들이 느낀 그 황홀경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하나에 미쳐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에 대해 인정해주고, 박수 보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조금 수긍이 되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소수가 무한개이다’라는 정리가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졌다. 소수가 무한개라니! 1과 자기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가 어찌 유한개가 아니고 무한개일 수 있겠는가? 놀라웠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저 정리를 봤고, 외웠고, 공부했다. 그런데 이제야 느꼈다. 소수가 무한개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약수를 가질 확률이 많아질테니까 언젠가 소수가 끝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수학자들이 왜 ‘무한’에 놀라워하고, 무한의 세계를 추구 하는지 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재미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수학적 지식과 읽은 책들이 이제야 꿈틀대기 시작한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재미있었다. 수학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수학! 아름답지 아니한가? 


p20 에어디쉬는 사례금, 강연료 등으로 받은 얼마 안 되는 돈을 친척, 동료, 학생, 낯선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주었다. 그는 집없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D.G.라만은 이렇게 회상했다. 

 “1960년대 초에 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학생이었습니다. 에어디쉬는 매해 우리 학교에 왔었습니다. 그가 첫 달 봉급을 받았을 때였어요. 유스턴 역에서 한 거지가 그에게 다가와 차 한 잔 값만 적선해 달라고 말했어요. 에어디쉬는 자신의 검소한 생활에 꼭 필요한 소액의 돈만 빼고 나머지는 봉투 째로 그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에어디쉬는 취지가 훌륭한 운동-가령 운영이 어려운 고전음악 방송국 살리기 운동, 이제 막 발족한 미국 원주민 살리기 운동, 부랑자 소년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 건립 운동-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즉시 적은 금액이나마 헌금을 했다. 

 “그가 사망한 지 1년이 되었는데도, 내게는 그가 헌금했던 기관들로부터 우편물이 오고 있어요. 오늘은 이스라엘 소녀보호원에서 보낸 엽서를 받았어요.” 


p21 1980년대 말 에어디쉬는 글렌 휘트니라는 똑똑한 고등학생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학생이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등록금이 약간 모자란다는 얘기였다. 에어디쉬는 그 학생을 직접 만나서 그의 재능을 확인한 다음, 1천 달러를 빌려주었다. 그는 휘트니 학생에게 재정적으로 곤란함이 전혀 없을 때 그 돈을 갚아달라고 말했다. 10년 뒤 그레이엄은 휘트니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마침내 에어디쉬에게 빌린 돈을 갚을 만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에어디쉬가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기를 원할까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휘트니가 그레이엄에게 물었다. 

 그레이엄이 에어디쉬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휘트니에게 그 1천달러를 가지고 내가 한 것처럼 하라고 말해주게.” 


p21 에어디쉬는 수학 신동이었다. 세살 적에 세 자리 숫자들을 암산할 수 있었고 네살에는 음수를 발견했다. 그는 회상했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어요. 100에서 250을 빼면 -150이 된다고 말이에요. 나의 두 번째 대 발견은 죽음이었습니다. 애들은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을 안 해요. 나도 네 살 때까지는 그랬지요.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가게에 갔다가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지요. 그 때 이후 나는 늘 좀더 젋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p24 에어디쉬는 역사상 그 어떤 수학자보다 더 많은 공저자들과 일했고 그 공저자들의 숫자가 485명을 헤아린다. 이 485명에게는 에어디쉬 번호 1이 부여되어 있다. 이것은 수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숫자로서, 대스승과 함께 작성한 논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코드이다. 만약 어떤 수학자의 에어디쉬 번호가 2라면 그는 에어디쉬와 공저한 사람과 논문을 공저한 경우이다. 만약 3이라면 에어디쉬와 공저한 사람과 다시 공저한 사람과 공저한 경우이다. 아이슈타인은 에어디쉬 번호 2를 가지고 있으며 현역 수학자 중 가장 낮은 번호는 7이다. 수학 논문을 단 한편도 써 본 적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은 에어디쉬 번호가 이다. 


p26 에어디쉬의 전문 분야 중 하나는 그래프 이론이다. 수학자들이 그래프라는 용어를 쓸 때에는, 로스페로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흔들어대는 차트와는 다른 어떤 것을 말한다. 그래프는 선(전문용어로는 “변”)에 의해서 연결된 점 (“꼭지점”)의 집단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삼각형은 세 개의 꼭지점과 세 개의 변을 가진 그래프이다. 이제 종이 한 장에다 에어디쉬의 485 협력자들을 485개의 점으로 나타내보자. 그리고 이들 수학자가 서로 협력을 한 경우에는 그 두 사람(“점”)을 선으로 연결해보자. 그렇게 해서 얻어진, 1,381개의 선을 가진 그래프가 바로 <공동 연구 그래프>인 것이다. 


p28 뉴저지 주 머레이 힐에 있는 그레이엄의 옛 사무실 벽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 수학을 다루지 못하는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기껏해야 그는 구두를 신을 줄 알고, 목욕을 할 줄 알며,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는 반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p31~32 수학자들은 최대 숫자를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 혹은 사하라 사막에 있는 모래알의 수에 비유한다. 


p34 그레이엄의 주방에서 다른 두 명의 수학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에어디쉬는 무명이든 유명이든 가리지 않고 그의 두뇌를 열어주었다. 

배우고 싶은 성품이다. 열어 줄 두뇌가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청소년들에게 열어 줄 두뇌를 가진 강사, 코치가 되자. 


p35 수학에 접근하는 에어디쉬의 스타일은 강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정공법이다. 그는 자신이 맞서는 문제에서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가 수학자로서 성공한 비결 중의 하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사색하는 것이다. 그는 수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서 답변을 얻어냈으나,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자꾸만 되풀이했다. 가령 쌀이 들어있는 그릇을 가리키면서 그게 무엇이며 어떻게 요리하는가를 물었다. 그레이엄은 일부러 모르는 척한다. 그러면 식탁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이 에어디쉬에게 쌀에 대해 천천히 대답해준다. 그러나 한끼 후 혹은 두끼 후 또 쌀이 나오면 그는 전혀 쌀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p37 그러나 수학 이외의 분야에 대한, 에어디쉬의 궁금증은 먹는 것, 운전하는 것 등 필수적인 것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는 섹스, 예술, 소설, 영화와 같은 것들은 거들떠볼 시간이 없었다. 에어디쉬가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1940년대였고,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50년대였다. 그 마지막 영화는 <냉혹한 시절>이라는 것이었는데, 유고슬라비아의 노비사드라는 곳에서 헝가리 사람들이 수 천면의 유대인과 러시아인을 무자비하게 죽인 사건을 다룬 것이었다. 가끔 그를 집안의 손님으로 맞아들인 수학자들은 수학과 관계없는 가족 나들이에 에어디쉬를 동반했다. 그러면 그는 몸만 따라갔을 뿐 정신은 다른 데 가 있었다. 그의 한 동료 수학자는 회상한다. 

 “그에게 로켓을 보여주기 위해 존슨 우주센터에 데려간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고개 한번 쳐들지도 않더군요.” 

 또 다른 수학자의 회상은 이렇다. 

 “그를 무언극에 데리고 갔었는데 무언극이 시작되자마자 졸더군요.” 

 아내가 뉴욕에 있는 현대미술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멜빈 나단슨은 에어디쉬를 그 박물관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그에게 마티스 그림을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요. 잠시 뒤 우리는 조각정원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었습니다.” 멜빈 나단슨이 말했다.


 

1) 하나님의 책에 있는 바로 그것

p38 나는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어했다. 왜 별이 빛나는지 알고 싶었다. 유동체를 장악하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거듭 제곱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 버트란드 러셀


수학자의 패턴은 화가나 시인의 그것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아이디어는 색채나 단어와 마찬가지로 조화로운 방식에 의해 연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름다움이 그 첫번째 기준이 된다. 이 세상에는 보기 흉한 수학을 수용해 줄 자리가 없다...... . 수학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시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시를 읽었을 때 그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다. 

  • G.H. 하디


p39 에어디쉬는 수학의 수도사였다. 그는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소유를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치열한 금욕적, 사색적 생활로 일관했다. 그의 목적은 수학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처럼 한 사람의 생애를 사로잡았던 이 수학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에어디쉬는 말했다. 

 “수학자가 수학을 창조하는 것인지 혹은 수학을 발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논의가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인간이 비록 알지 못해도 수학적 진리는 이미 저기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만약 당신이 신을 믿는다면 그 대답은 자명하다. 수학적 진리는 SF의 마음속에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그 진리를 재발견 하는 것일 뿐이다. 다음과 같은 5행 연시를 기억해 보라. 

 

 한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다네.

 하나님,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인데요.

 저기 저 4각 안뜰의 플라타나스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 거지요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젊은이에게, 놀랄 게 전혀 없네. 

 난 늘 4각 안 뜰에 있었다네. 

 그래서 그 나무는 언제나 존재하는 거지. 

 내가 늘 보살피니 말일세

 당신의 신실한 하나님으로부터. 


p40 “나는 신이 존재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어.” 에어디쉬가 계속 말했다. “그가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워. 하지만 SF가 초한-초한은 무한보다 더 큰 것을 가리키는 수학적 개념이다-의 페이지로 구성된 하나님의 책을 가지고 있음은 인정하네 이 책 안에는 수학 정리를 설명하는 최고의 증명, 우아하고 완벽한 증명 등이 가득 들어있다고 보네.” 


p41 그래서 에어디쉬가 동료 수학자의 업적을 칭찬할 때 최고의 찬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책에 있는 바로 그 것.” 

 에어디쉬는 나와 내 동료 수학자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주었습니다. 수학은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운 대상이라는 거였지요.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보석을 캐내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곱셈표를 외우느라고 애를 먹었고 또 소득세 신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계산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수학이 보석이라는 얘기를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사실 수학처럼 오해되고 또 경원시된 학문도 없다. 그러나 수학은 학교 때 억지로 외웠던 셈법이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계산 방식은 더 더욱 아니다. 수학자는 곱셈을 빨리 하는 방법, 가감승제를 손쉽게 하는 방법, 세제곱 근을 더욱 효과적으로 구하는 방법 등을 연구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p43 에어디쉬의 생애는 20세기의 주요 사건들-조국 헝가리의 공산 혁명, 유럽에서의 파시즘과 반 유대주의의 등장, 세계 제2차 대전, 냉전, 매카시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름다움과 진리의 추구인 수학을 단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학은 그가 보기에 잔인하고 무정한 세상을 견뎌내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비록 세상은 척박했지만 그는 보통 사람들의 선량함과 정직함을 믿었다. 에어디쉬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SF의 점수를 낮추는 게 중요해. 당신이 살아 가면서 나쁜 짓을 했다면 그건 SF에게 2점을 주는 거야. 어떤 좋은 일을 했어야 옳았는데 안 했다면 그건 1점을 주는 게 돼. 하지만 당신은 SF로부터 점수를 따낼 수가 없어. 그러니 SF가 언제나 이기는거야.” 

 하지만 인생의 목표는 증명하고 축측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학은 영원불멸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야. 만약 당신이 수학 분야에서 커다란 발견을 했다면, 모든 사람이 잊혀지는 그때에도 당신은 기억될 거야.” 

 

p44 수학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조차도 수학의 범위에 대해서는 오해를 하고 있다. 수학자 조엘 스펜서는 말한다. 

 “나는 수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기도 전에 수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공인회계사였기 때문에 나는 숫자를 살아했어요. 그래서 수학이 숫자를 길게 계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서야 수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지요. 만약 수학이라는 직업 대신에 숫자를 길게 계산하는 직업을 잡았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부자가 되었을 겁니다.” 


p45 추상성을 추구하고 형식적인 규칙을 준수한다는 점에서 수학은 체스에 많이 비유되어 왔다. 고도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 주변의 모든 상황을 압축하여 목적의 형식적 구조에만 몰두하는 것,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 등등이 수학자나 체스 선수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된다. 


p46 폴란드 태생의 수학자 스타니슬파르 울람은 말한다.  

 “창조적 과학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낙관론자라면 비관론자보다 한번 더 ‘시도’할 것입니다. 체스 같은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훌륭한 체스 선수는 자기가 적수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물론 그 생각은 때때로 오해이기도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게임을 계속해나갈 수 있고 또 회의에서 생겨나는 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체스의 여러 문제는 진정한 수학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사소한’ 수학일 뿐이다. 체스의 움직임이 아무리 교묘하고 복잡하고 독창적이고 또 파격적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본질적인 어떤 것이 결핍되어 있다. 체스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최선의 수학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진지하다. 체스 문제는 과학적 사고의 전반적인 발전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뉴턴, 아인슈타인은 과학발전의 총체적인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


에어디쉬, 그레이엄, 그리고 동료 수학자들에게 있어서, 수학은 가장 순수한 질서이며 아름다움이고, 또 자연계를 초월하는 질서이기도 하다. B.C. 3세기의 그리스 기하학자인 유클리드가 점과 선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 그는 구체적 대상보다는 이상적인 실체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점, 넓이가 없는 선을 가상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가령 물리학이나 엔지니어링-에 존재하는 모든 점과 선은 차원을 가지고 있으며, 기하학에서 가상하는 순수한 구성물의 불완전한 모조품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이상화된 세계ㅔ서만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정확히 180도가 되는 것이다.


p47 숫자 또한 초월적 성질을 가질 수 있다. 가령 2, 3, 5, 7, 11, 13 ,17 등은 1이라는 숫자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나누어 떨어지는 소수이다. 우리는 열 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숫자 체계는 10진법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진법에서도 동일한 성질을 가진 동일한 소수가 존재한다. 가령 우리의 손가락이 26개여서 26진법을 채택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소수는 동일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칼 세이건의 소설 <<접촉>>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이 소설에서 외계인은(그들의 손가락이 몇 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수의 퍼르를 가진 무선 신호를 지구인에게 보낸다. 그러나 10진법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열거하기 위해 굳이 키 작은 초록 피부의 외계인들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 여기 지구에서도 다른 사례가 많이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2진법 체계를 사용하고 있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60진법을 사용했다. 1분은 60초, 1시간은 60분이라는 수학적 단위 등은 이 진법의 흔적이다. 비록 이 60진법이 성가시기는 하지만 2진법도 똑같은 소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윌리엄 앤 메어리 칼리지의 수학자였던 휴 존스 목사가 제창한 8진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8세기 수학자인 존스 목사는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8의 배수(1쿼트는 16온스, 1파운드는 32온스)에 더 익숙하기 땜누에 10진법보다는 8진법이 더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하디는 숫자가 우주의 진정한 기본단위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1922년 한 무리의 물리학자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하디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p48 “실재에 보다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사람은 수학자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얼한’ 물질들을 더 많이 다루는 것은 물리학자들이니까요. 하지만 의자나 별은, 우리에게 보이는 그 모습이 실제 모습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감각이 점점 더 불분명해집니다. 그러나 ‘2’나 ‘317’같은 숫자는 감각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숫자는 우리가 연구하면 할수록 그 성질이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317은 소수인데,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지금처럼 생겨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수학적 실재가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317은 그 자체로 소수인 것입니다.” 


 소수는 원자와도 같다. 소수는 모든 정수를 쌓아올리는 벽돌이다. 모든 정수는 그 자체 소수이거나 아니면 소수의 곱이다. 가령 11은 소수이지만 12는 2,2,3이라는 소수의 곱이다. 13은 소수이지만 14는 2,7이라는 소수의 곱이다. 또 15는 소수 3과 5의 곱이다. 약 2300년전 <<기하학원론>> 제 9권, 명제 20에서, 유클리드는 하나님의 책에 들어 있는 증명을 제시했다. 즉 소수의 개수는 무한하다는 것이다

유클리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먼저 유한개의 소수가 있다고 가정하라. 그 중 가장 큰 소수를 선택하여 P라고 하자. 그런 다음 P보다 더 큰 Q를 생각해보자. Q는 2에서 P까지의 모든 숫자를 곱한 것에다 1을 더한 수이다. 바꾸어 말하면 Q=(2×3×4× ......×P)+1이다. Q라는 숫자를 놓고 볼 때, 2에서 P까지의 정수 중 그 어떤 정수로 Q를 나누어도 Q는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다. 즉 나눌 때마다 1이 남게 되는 것이다. 만약 Q가 소수가 아니라면 P보다 큰 소수로 나눌 경우 나누어 떨어져야 한다. 반면 Q가 소수라면 Q 그 자체는 P보다 큰 소수이다. 이것은 그 어떤 경우든지, 가장 큰 소수라고 가정한 P보다 더 큰 소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가장 큰 소수”라는 개념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개념이 허구라면 소수의 수는 반드시 무한이 되어야 한다. 


p49 시인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는 이렇게 썼다.

 “유클리드 혼자만이 아름다움의 알몸 상태를 보았다” 

 이 책에 씌어지고 있는 지금 현재, 알려진 가장 큰 소수는 2를 3,021,377제곱하여 얻은 수에서 1을 뺀, 909,526자리수의 숫자이다.(최근에 이 보다 더 큰 소수가 발견됨.) 이 소수는 1998년 1월 27일 GIMPS(Great Internet Mersene Prime Search : 대규모 인터넷 메르센느 소수 추적) 프로젝트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4천며으이 프라이미(primee : 소수 애호가)가 참가하여 인터넷으로 통신을 하면서 소수 추적에 그들의 컴퓨터를 공동으로 투입했다. 그러니까 4천대의 컴퓨터 각각에 체크해야 할 숫자가 일정 간격으로 일률적으로 배당되었다. 도밍게즈 힐스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2년생인 19세의 롤랜드 클라크슨은 자신의 200메가헤르츠 프레미엄급 PC를 가지고 이 프로젝트에 파트타임으로 참가했따. 그는 46일 동안 숫자를 추적한 끝에, 자신이 배당받은 숫자들 중에서 2^3,021,377-1이 소수임을 증명했다. 


p49~50 보다 큰 소수를 추적하는 작업은 17세기부터 내려온 유서깊은 전통을 가진 직업이다. 17세기 파리 수도사 마랭 메르센느는 수도원 일과 중에 틈틈이 소수를 찾아나섰다. 

2^3,021,377-1같은 소수는 소위 메르센느 수라고 하는 2^n-1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메르센느 수가 소수가 되기 위해서는 n 그 자체가 소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2^3,021,377-1이 소수이므로 3,021,377도 소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n이 소수라고 해서 메르센느 수가 반드시 소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p51 소수는 아주 파악하기 어렵다. 알렉산드리아의 에라토스테네스가 발명한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라는 2천년 된 방식도 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별명이 “베타”였는데 기하학에서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1등은 못되지만 2등은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에라토스테네스 체의 개념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2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양의 정수를 연속적으로 적는다. 그런 다음 첫번째 소수인 2를 남기고 2의 배수를 모두 지운다. 그런 다음 다시 3을 남기고 3의 배수를 지워낸다. 그 다음에는 5를 남기고 5의 배수를 지워낸다. 이렇게 해서 체질을 하듯 소수만 건져내는 것이다. 

 여러 세대 동안 소수는 수학자들에게 신비한 매력을 안겨주었다. 


p52 소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그 속성은 아주 복잡하기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면밀히 연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에 대한 각종 기본적 질문은 여전히 미해결문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면 1742년 크리스티안 골드바흐는 2보다 큰 짝수는 모두 두 소수의 합이라고 추측했다. 

 에어디쉬는 골드바흐 추측과 관련하여 이렇게 발했다. 

 “사실은 골드바흐보다 먼저 데카르트가 이걸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추측에 골드바흐 이름을 붙인 것은 잘 한 일이에요. 수학적으로 보자면 데카르트는 한없이 부자였지만 ㅗㄱㄹ드바흐는 아주 가난하거든요.” 


p57 1949년 에어디쉬는 소수 문제에 대해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승리에 대해서 너무 논의가 분분했기 때문에 그 승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고또 언급하지도 않으려 했다. 수학자들은 소수가 정확히 어디에 우치해 있는지 예측하는 정확한 방법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18세기 말부터 소수의 통계적 분포 즉 소수가 뒤로 갈수록 희박해지는 평균 분포를 보여주는 공식을 알고 있었다. 이런 공식을 추적하기 위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칭송되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15세이던 1792년 소수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796년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트와 게오르크 폰 베가는 400,031에 이르기까지의 소수 리스트를 발표했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은 그 상한선을 수백만으로까지 확대했다. 가우스는 기존의 수치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이 느렸다. 그러나 그는 그 수치들을 이중 확인하는 절차를 고집했다. 이렇게 하여 여러 개의 오류를 발견했으므로 그 작업은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p58 체비셰프의 정리와 마찬가지로 소수 정리에 대한 1896년의 증명은 중장비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의 최고 수학자들은 그런 중장비의 도움이 없으면 증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에어디쉬와 에이틀 셀버그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으로 소수 정리를 증명하여 수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두 사람은 당시만 해도 수학계의 무명 인사였다. 에어디쉬의 친구들의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각각 발견한 증명을 유수한 수학 저널에다 연속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에어디쉬는 이어 수학자들에게 엽서를 보내어, 그와 셀버그가 소수 정리를 정복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공교롭게도 마침 그때에 셀버그는 한 낯선 수학자를 만났다. 방금 에어디쉬로부터 엽서를 받은 그 수학자는 셀버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소식 들었어요? 에어디쉬와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공동으로 소수 정리의 기본적인 증명을 발견했다는군요.” 

 셀버그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단독으로 그 논문을 발표해버렸다. 그리하여 그 증명에 대한 공로를 혼자 차지했다. 1950년 셀버그는 소수 정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즈상을 단독 수상했다. 


p59 수학자들은 자기 자신이 SF의 책에 있는 내용을 추측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추축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텍사사의 유수한 수학자인 고(故) R.L. 무어는 노골적으로 말했다. 

 “내가 어떤 정리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아예 그 정리는 없던 것으로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p59 에어디쉬는 수학적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대해서는 특이할 정도로 관대했다. 그와 두 개의 공동논문을 저작한 알렉산더 소이퍼는 말한다. 

 “에어디쉬는 자신의 추측을 남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의 목표는 누군가가 그걸 증명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에어디쉬와 함께 해도 좋고 또 그 누군가가 혼자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폴 에어디쉬처럼 방랑하는 유대인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추측과 통찰을 동료 수학자들에게 골고루 뿌려대면서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p60~61 그레이엄도 이와 유사한 증언을 했다.

 “그는 상대방이 현재 풀 수 있는 실력보다 약간 어려운 문제를 놓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어요. 풀기가 불가능한 문제를 내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이 그 문제를 풀면 더욱 자신감을 얻어 수학에 몰두하게 되는 그런 문제만을 제기했어요. 그것은 등산을 할 때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바위에 등산용 못을 한개 더 박는거나 같았어요.

나도 이런 강사가 되면 참 좋겠다. 이런 코치가 되면 참 좋겠다. 이런 작가가 되면 참 좋겠다. 그러니까 청중이, 코치를 받는 사람이, 독자가 그들의 실력보다 약간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고, 풀어내고, 그 후 자심감을 얻어 자신의 삶을 힘차게 헤쳐나갈 수 있게된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p61 수학사상 에어디쉬보다 더 많은 분량의 저서를 발간한 수학자는 딱 한 사람뿐이다. 18세기의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그 사람인데, 그는 13명의 자녀를 낳은 한편 80권의 수학 책을 펴냈다. 그는 저녁 식사 전 30분 동안에 이 많은 책들을 썼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에어디쉬는 좋은 수학문제를 내놓아서 다른 사람들의 수학실력을 향상시킨 점에서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p61 에어디쉬에게 있어서 수학을 과학과 예술의 멋진 종합이었다. 우선 수학의 결론은 논리적으로 불가침이기 때문에 수학은 확실성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들과 달리, 에어디쉬, 그레이엄, 그리고 동료 수학자들은 사물을 증명해낸다. 그들은 삼단논법, 그러니까 “모든 대통령은 죽는다” “빌 클린턴은 대통령이다”라는 전제로부터 “빌 클린턴은 죽는다”라는 결론을 유도해낸다. 

 또한 수학은 미학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추측은 “분명”하거나 “돌연”한 것일 수 있다. 결과는 “사소”하거나 “아름다울” 수 있다. 증명은 “혼란”스럽거나 “놀랍거나” 혹은 에어디쉬가 즐겨 말하듯이 “하나님의 책”에 들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디는 이렇게 썼다.

 “훌륭한 수학적 증명에는 고도의 의외성이 있으며 거기에 필연성과 경제성이 가미되어 있다. 논증은 기이하면서도 경악스러운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또 사용된 무기는 심오한 귀결에 비해 유치하게 보일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론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는 것이다.” 


p62 더욱이 증명이란 어떤 결과가 왜 진리인지를 살펴보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가령 현대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결과의 하나인 4색 지도 정리를 생각해보자. 이 정리는 평면 지도의 경우, 아무리 국가 수가 많다고 할지라도, 서로 인접한 국가의 색깔을 서로 다르게 표시하는 데에는 4색이면 충분하다는 정리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대부분의 수학자는 이 간단한 정리가 진리라고 믿어왔고 그래서 124년동안 유수한 수학자들과 아마추어 수학자들이 이 정리의 증명을 추구해왔으나 헛수고에 그쳤다. 또 이 정리에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반례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p63 1976년, 무어의 5색 지도가 왜 불가능한 꿈인지 분명하게 밝혀졌다. 그 해에 일리노이 대학의 케네스 애플과 볼프강 하켄이 마침내 이 수학꼐의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던 것이다. 4색 지도 정리의 증명이 마련되었다는 소식이 각 대학의 수학과에 전해지자, 교수들은 강의를 끝마치고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러나 며칠 뒤 수학자들은 에플과 하켄의 증명이 초고속 컴퓨터를 사용한, 전례없는 것임을 알고 당황해 했다. 두 연구자는 세 대의 컴퓨터를 동원해, 1,000시간 이상 계산을 했던 것이다. 에플과 하켄이 증명한 것은 모든 가능한 지도는 1,500개의 기본적인 사례의 변형이라는 것이며, 컴퓨터는 4색으로 1,500개 지도를 모두 그려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증명은 손으로 확인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또 일부 수학자는 컴퓨터가 실수를 하여 가벼운 오류를 범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에어디쉬는 말한다. 

 “나는 4색 문제의 전문가가 아닙니다만 그 증명이 진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증명은 아름답지 않아요. 나는 왜 4색이면 충분한지 그 이유를 통찰하게 해주는 간결한 증명이 보고 싶습니다.” 

수학이란 이런 것이지... 내 목에서는 작은 탄성을 입 밖으로 보냈다. ‘아!’ 

수학자는 아름다운 것을 원한다. 우리도 그렇다. 무작정 계산하고, 경험해보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그것!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그것! 알고 싶지 않은가? 나는 알고 싶어졌다. 애를 엄청 쓰지 않고도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지만 그것이 진리임을 밝혀내는 증명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아, 느껴진다. 1,000시간 동안 계산하는 것은 왠지 증명답지 못하다. 그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해줬을 뿐인 것 같다. 


p63 아름다움과 통찰- 이 두 단어야말로 에어디쉬와 그의 동료들이 즐겨 쓰는 말이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지 못한다. 에어디쉬는 말한다. 

 “그건 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아름답냐 물어보는 것과 같아요. 당신 스스로 그걸 알지 못하면 남이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없습니다. 나는 숫자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요. 만약 숫자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말입니까?” 

나는 드디어 에어디쉬와 같은 수학자들의 마음을 알아챘다. 아름다움, 통찰. 

떨린다. 


p64~65 피타고라스는 확실히 기인이었다. 그는 콩이 남성의 고환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콩을 먹기를 거부한 채식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는 증명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수학을 보다 견고한 반석 위에다 올려놓았다. 그는 또한 개별 숫자에 대하여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제시한 친구 수는 모든 친구가 제 2의 자기라는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썼다. 

 “친구는 제2의 나인데, 이것은 220과 284의 관계와 같다.” 

 이 두 수는 특별한 수학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두 수는 상대방 수의 약수를 합한 수이다. 220이라는 숫자의 약수는 1,2,4,5,10, 11, 20, 22, 44, 55, 110으로 구성도어 있는데 이 수를 모두 합치면 284가 된다. 284의 약수는 1,2,4,71, 142가 되는데 이 수를 모두 합치면 220이 된다. 


p65  피타고라스는 어떤 정수와 자기와는 다른 약수 전체의 합과 같아질 때 그 정수를 완전하다고 보았다. 최초의 완전수는 6이다. 이 수는 1,2,3에 의해서 나누어지고 또 이 숫자들의 합이기도 하다. 두 번째 완전수는 28이다. 약수는 1,2,4,7,14인데 이들 약수의 합이 곧 28읻 된다. 

 중세 종교 학자들은 6과 28의 완전수가 보여주는 완전함이 곧 우주를 구성하는 조직의 기본질서라고 주장했다. 신은 이 세상을 6일만에 창조했고 달은 28일마다 한번씩 지구의 주위를 도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은, 자연계와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수의 속성 그 자체가 수를 완벽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p68 에어디쉬의 장점은 짧고 명확한 해법을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러 페이지에 달하는 등식들을 이어 붙여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예리한 논증을 구성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그의 수학적 재치는 천부적인 것이었고 그의 예리함은 전공 분야 이외에까지 퍼져나갔다. 


p70 에어디쉬는 한꺼번에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공동 연구자들에게는 그가 맡은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권유했다. 

 “자기가 맡은 일에만 신경쓰세요.” 

 그는 동료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눈치이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p71 에어디쉬가 개척한 수학 분야들 중 하나로서, 램지 이론이라고 불리우는 철학적 매력을 가진 조합론 분야가 있다. 

 램지 이론의 핵심적인 사상은 완전한 무질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질서라는 현상은 실제로 스ㅔ일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거대한 우주 속에서는 얼마든지 수학적 “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p77 “실제 적용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수학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요. 수학은 궁극적인 구조와 질서를 표상해요. 나는 수학은 곧 통제라고 봐요. 저글러(공던지기 곡예사)는 자신의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를 좋아해요. 저글링에는 이런 잘 알려진 격언이 있습니다. 

 ‘곤란한 점은 공이 저글러가 던진 곳으로만 간다는 사실이다.’


p78 에어디쉬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수학은 인간의 해위 중 유일하게 무한한 것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물리학이나 생물학에 관련된 것을 모두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수학에 관해서만큼은 모든 것을 알아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수학의 주제는 무한이기 때문이다. 숫자 그 자체가 무한인 것이다. 바로 그때문에 수학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인 것이다.” 

 “정수의 문제점은 우리가 소규모의 숫자들만 다룬다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두뇌라는 것은 비를 피하게 해주고, 딸기가 어디 있나 발견하고, 살해당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등의 행위에 동원되면서 진화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두뇌는 엄청나게 큰 숫자를 파악하고 그런 숫자의 차원에서 사물을 파악하도록 진화된 게 아닙니다. 나는 가끔 다른 은하계에 사는 어떤 존재, 어린아이의 존재를 상상해 봅니다. 그 어린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는 잠시 그 놀이가 따분해집니다. 그러다가 그런 숫자 헤아리는 일도 지겨워져서 다시 놀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p79 우리 지구인들은 숫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결과물-가령 정수와 그 두 배 사이에는 반드시 소수가 발견된다는 에어디쉬의 증명 따위-은 정수를 우주적으로 이해하는 목적을 향해 아주 조금 전진한 것에 불과하다. 에어디쉬는 말한다. 

 “우리가 그런 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수 백만 년이 걸릴 겁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완벽한 이해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한과 맞서서 싸우고 있으니까요.” 




2) 엡지(Epszi)의 수수께끼

p82~83 “네 자리 숫자 한번 말해봐.”

 에어디쉬가 요구했다. 

 “2,532.” 바조니가 대답했다.

 “그 숫자의 제곱은 6,411,024야. 하지만 나도 이제 낭가 들었는지 세제곱은 말하지 못하겠는걸. 이봐, 피타고라스 정리의 증명을 몇개나 알고 있나?” 에어디쉬가 물었다.

 “한 개.” 바조니가 대답했다. 

 “난 서른 일곱개를 알고 있어. 너는 직선 위의 점들이 가부번(번호를 부여할 수 있는)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니?”

 에어디쉬는 바조니에게 증명을 가르쳐준 다음,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에어디쉬가 가봐야겠다고 말하는 것은 곧 달려가겠다는 뜻이었어요” 바조니는 회상했다. “그는 걸어가는 적이 없었어요. 커다란 원숭이처럼 거리를 달려가는데 어깨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몸을 양옆으로 흔들면서 팔을 위아래로 내질렀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늘 고개를 돌리고 빤히 쳐다보았지요. 우리는 늘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갔는데, 스케이트 타는 모습도 꼭 원숭이 같았어요. 나는 빙판에서 여자 아이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 창피스러웠지요. 물론 그는 여자애들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원숭이 같은 걸음걸이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했어요. 그는 늘 빨리 움직였어요. 벽을 향하여 갑자기 뛰어가다가 벽 바로 앞에서 재빨리 멈춰서서 몸을 홱 돌려 뒤로 뛰어나오곤 했어요. 한번은 너무 빨리 달려서 제때에 멈춰서지 못한 적이 있었어요. 그는 벽에 쾅 부딪쳐서 부상을 당했어요. 

 나는 아직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네 자리 숫자의 제곱수를 물어본다든가 각종 증명을 물어본 것 따위 말입니다. 나는 그를 점점 더 잘 알게 되면서 그가 허세부리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의 인생관이 허세 따위와는 거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가 왜 그런 증명 따위를 쉴새 없이 지껄였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악명이 높더군요.” 


p84 에어디쉬는 1913년 3월 26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고 양친은 모두 고등학교 수학선생이었다. 


p90 아버지는 감옥에 가 있고 어머니는 학교에 나가 수업을 하는 동안, 에어디쉬는 독일인 여자 가정교사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는 엉금엉금 기는 어린 아이일 적에도 달력을 들여다 보며 얼마나 많은 날이 지나가야 어머니가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헤아리면서 숫자에 능숙해지게 되었다. 네살 적에는 그는 “기차를 타고 태양까지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황당한 계산”을 하면서 혼자 놀았다. 그는 어머니의 친구들에게 몇 살이냐고 물어본 다음, 그들이 지금껏 몇 초를 살아왔는지 계산해보여 그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당시에 역사, 정치, 생물학 등의 과목은 개인수업을 받았지만, 자신의 목표가 수학자임을 명확히 깨달았다. 


p93 쿤의 짧은 집권 기간 동안에, 에어디쉬의 어머니는 재직중인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승진되었다. 우익 그룹이 공산정부에 대해서 총 파업으로 맞서자고 요구해왔을 때, 그녀는 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쿤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은 단 한순간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안나 에어디쉬는 그런 결단으로 인해 교장직을 잃게 된다. 호르티 정부가 들어서자 그녀는 아무 이유없이 해고되었고 그 후 26년 동안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26년이 지나서 공산당이 다시 집권하게 되자 복권이 되었다. 


p102 “볼록(convex)”이란 4각형 안에 있는 어느 점에서도 그 사각형 안에 있는 다른 점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사각형은 볼록 4각형이지만, 화살촉 모양의 네 점은 아니다. 이 모양은 한 쪽 날개에 있는 점은 다른 쪽 날개에 있는 점을 직접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볼록 사각형을 정의하는 또 다른 방식은 오목한 형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p105 누군가가 이 아이디어를 새로 검토하여 이 문제에 획기적인 발전을 성취할지, 수학의 진보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p106 공격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는

저항함으로써 그 가치를 입증한다.


p111 하디는 에어디쉬에 비해 수학을 연구하는 방식이 아주 절제되어 있었다. 그는 하루 네 시간, 그러니까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까지만 수학 연구를 했다. 오후에는 크리켓과 테니스를 했고 저녁에는 러셀, 스노같은 사람, G.E.무어 같은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같은 논리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 같은 경제학자, G.M. 트레벨리언 같은 역사가, E.M.포스터같은 소설가, 리튼 스트래치 같은 전기작가, 레너드 울프와 같은 출판사 사장 등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p112 뉴턴의 시대 이래, 영국이 수학은 물리학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실 영국의 순수수학은 하디가 탄생한 해인 1877년에는 침체된 상태였다. 강력한 해석적 방법과 아름다운 패턴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는 하디는 20세기의 첫 25년 동안에 영국을 순수수학의 종주국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것은 단 한 시즌에 맨 꼴찌 크리켓 팀을 우승팀으로 만들어놓은 업적과 맞먹는다. 에어디쉬와 마찬가지로 하디는 공동 연구의 대가였지만 그보다는 훨씬 작은 인원으로 일을 했다. 그런 대신 집중도는 엄청나게 높았다. 

 1911년 하디는 리틀우드와 공동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수학사상 전례가 없는 파트너십이었다. 35년의 기간 동안 두 사람이 펴낸 100편의 공동 논문은 “시시한”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p113 하디와 에어디쉬가 만났을 때, 당시 57세인 하디의 해석 능력은 퇴조하고 있었다. 6년 뒤인 63세 때 하디는 <<수학자의 변명>>이라는 수학사상 가장 유명한 문학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점점 사라져가는 창조적 능력을 우울하게 시인하고 있다.

 “적업 수학자가 수학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우울한 경험이다. 수학의 기능은 뭔가를 해내고, 새 정리를 증명하고, 수학에 뭔가를 새롭게 덧붙이는 것이지, 수학자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디는 이렇게 말하고 난 다음, 수학은 젊은 사람의 게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갈루아는 스물한 살에, 아벨은 스물 일곱살에, 그리고 리만은 마흔살에 죽었다. 나는 쉰 지난 사람에 의해서 수학의 진보가 이루어진 경우를 보지 못했다.” 

 당시 21세이던 에어디쉬는 너무 어려서 자신이 하디의 추측에 가장 강력한 반증이 도리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에어디쉬는 하디에게 당신의 가장 훌륭한 수학적 업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하디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라마누잔의 발견이었습니다.” 


p113~114 라마누잔은 독학으로 수학을 공부한 가난하고 병약한 인도인이었는데 1914년 하디가 그의 영국 진출을 주선해주었다. 당시 라마누잔은 26세였다. 에어디쉬는 하디에게 라마누잔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디쉬와 라마누잔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수학적으로는 서로 마주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디가 에어디쉬에게 설명해준 라마누잔 발견 경위는 이러했다. 어느날, “1913년 1월 16일 마드라스”라는 소인이 찍힌 편지가 하디의 책상에 전달되었다. 그 편지에는 하디에게 친숙한 수학 공식들과 다소 생소한 기호등이 적혀진 여러 페이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존경하는 선생님, 

 선생님께 제 자신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마드라스에 있는 항만 관리소의 회계과에서 연간 20파운드의 작은 급료를 받고 있는 사무원입니다. 저의 나이는 대략 스물세 살쯤 됩니다. 대학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학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수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혼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저는 발산하는 급수에 대해서 특별 연구를 했으며 내가 얻은 결과는 현지 수학자들에 의해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디는 그 편지가 사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계속 읽어나갔다. 


 최근에 나는 선생님이 쓰신 <무한의 순서>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 36페이지에서 특정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를 표현하는 분명한 표현 방식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진술을 읽었습니다. 나는 실제적인 값을 아주 근사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발견하였으며, 그 오류는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입니다 .


 라마누잔은 전설적은 소수 정리의 보다 우수한 버전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디는 그 주장을 읽고 나서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편지를 한족으로 밀쳐 놓았다. 그러나 그 이상한 공식이 하루 종일 하디의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저녁에 하이 테이블에 나가서 그는 리틀우드와 함께 그 편지를 검토했다. 

 광인이냐 천재냐? 

 리틀우드는 그런 생각을 했다. 2시간 반에 걸쳐 수학계에서 가장 성공한 그 팀은 그 공식을 검토했다. 그리고 결론은 천재라고 나왔다. 


p116 하디는 그에게 답신을 보내면서 수학적 형식성의 대가답게 그의 멋진 추측을 입증하라고 라마누잔에게 요구했다. 하디로서는 증명이야말로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내가 5분 안에 죽으리라는 증명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내가 죽어서 슬프기는 하지만, 그런 슬픔은 증명을 얻었다는 기쁨으로 상쇄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나는 그의 그런 태도를 완전히 이해했고 그런 말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p124 소수 이론과 확률 이론은 같은 다양한 주제가 실제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수학의 폭과 위력을 증언해주는 것이다. 


p127 바조니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필요조건은 확보했지만 충분조건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당시 거의 매일 에어디쉬를 만나는 실정이었는데 그만 전화로 나의 발견을 그에게 말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어요. 왜 치명적이라고 했느냐면 그가 20분 뒤에 내게 전화를 걸어 그 충분 조건을 말해주었거든요. 젠장, 이렇게 되면 할 수 없이 그와 공동논문을 써야겠구만, 하는 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에어디쉬 번호 1이 얼마나 영광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e) 샘과 조와의 갈등

p128 위대한 수학자 데이비드 힐버트에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한 학생이 더 이상 수학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그 학생이 수학을 그만두고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자 힐버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했어 - 그 친구는 수학자가 될 정도의 상상력은 없으니까.” 

  • 로버트 오서맨


목성이 마치 사람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노래하는 시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인가? 만일 목성이 메탄과 암모니아로 이루어진 거대한 회전체라는 얘기를 해준다면 그들은 입을 꾹 다물 것인가?

  • 리처드 파인만


p131 그의 눈빛은 늘 수학을 생각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세계 정세와 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인 논평을 늘어놓거나 어둡게만 보았던 인간사에 대한 애기를 할 때를 빼놓고는 그저 수학 생각뿐이었다.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친 다음 다시 의자에 앉았다. 


p137 퍼듀 대학의 수학과 교수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다른 과 교수들과 모임을 갖고 비공식적인 대화를 나눈 다음, 이어서 자유로운 토론을 했다. 한번은 그날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는 연사가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대체 프로그램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그러자 에어디쉬가 강의를 하겠다고 일어섰어요. 그는 즉석에서 아무런 메모도 없이 꿀벌의 색채 감각에 대한 최근 연구조사에 대해 흥미로운 보고서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그 강의를 재미있게 경청하는 한편 그의 그런 즉석 연기에 놀라기도 했어요. 우리는 폴이 그런 문제에까지 흥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골롬이 말했다. 


p142 40년 뒤 에어디쉬는 정말로 울람의 부고기사를 썼따. 1948년 울람이 사망하자 50년 동안 지속되어온 두 사람의 수학적 협력관계는 끝나게 되었다. 에어디쉬는 이렇게 썼다. 

 “울람은 언제나 늙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했고 또 70이 넘어서도 테니스를 잘 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노년과 망녕이라는 최대의 액운을 피한 행운아였다. 그는 아직도 증명을 하고 추측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공포나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001번째 되는 날 밤에 왕은 ‘오 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라는 인사를 받는다. 수학자나 과학자는 이보다 더 사실적인 인사를 받는다. ‘오 수학자시여, 당신의 정리가 영원히 사시기를.’ 나는 스탠이 이런 운명을 누리리라고 기대하고 소망한다.” 

p145 18세기에 오일러는 n^2+n+17이라는 공식을 내놓았다. n에 0에서 15까지의 수를 넣으면 소수를 얻을 수가 있다. 사실, 다음의 16개의 소수는 울람의 작은 다이어그램에서 대각선을 형성했던 소수들이기도 하다. 


p147 오일러의 공식을 포함하여 그 어떤 공식도 소수만을 산출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에어디쉬는 동료들의 수학적 예민함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명으로 여겼다. 그들이 울람처럼 병이 들었을 때, 그는 그들의 마음에 자극을 주어 정상을 회복하도록 했다. 그러나 모든 동료들이 울람처럼 성공적으로 회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동료는 병이 들었다가 수학적 자신감을 회복했지만 일부 동료는 그렇지 못했다. 


p149 버트란드 러셀은 언젠가 한번 G.H. 하디에게 자신의 “끔찍한 꿈” 얘기를 털어놓았다. 다음은 하디의 회상이다. 

 “꿈속에서 러셀은 서기 2100년 경 대학 도서관의 맨 꼭대기층에 있었다. 도서관 사서가 엄청나게 큰 양동이를 들고서 서가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하나 하나 꺼내어 어떤 것은 서가에 도로 꽂아 넣고 어떤 것은 양동이에다 버렸다. 마침내 사서는 3권 짜리 커다란 책 앞에 왔다. 러셀은 그 책이 자신의 대작인 <<수학 원리>>임을 알아보았다. 사서는 그 중 한 권을 꺼내어 몇 페이지 넘겨 보더니 그 책 속에서 사용된 기이한 기호들 때문에 약간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책을 닫더니 손에 들고서 그대로 꽂아놓을까, 버릴까 망설이고 있었다” 


p149~150 우리는 라이프니츠에 대해서 많이 연구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괴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수학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어야지. 당신 자신이 그처럼 열심히 라이프니츠를 연구해서는 안 되네.’

나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문장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연구한다. 성공한 사람을 연구하고, 그 방식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나만의 방식으로 산다면 그리고 좋은 결과를 낸다면 과정도, 결과도 연구 대상이 될 것 같다. 물론 변치 않는 공식이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든지 스티븐 코비가 이야기하는 내적 성품, 원칙 등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모습과 방법으로 성공에 이르지는 않는다. 모두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을 갖는다면 나도 연구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 대상이 되는 ‘강사’가 되면 되겠다. 


p151 그들은 숫자 4와 같은 개념을 당연시하지 않고 그런 개별 숫자의 정의를 시도했다. 이런 형식적인 사고방식에 있어서, 숫자들은 집합의 관점으로 정의되었다. 가령 4라는 숫자는 무엇인가? 프레게는 이렇게 말한다. 주위를 한번 돌아다 보라. 그러면 어디에서나 4를 만날 수 있다. 카드의 같은 숫자 한 벌, 의자의 다리, 4개로 구성되는 모든 세트 등을 취하여 하나의 커다란 집합으로 보는 것이다. 이 집합들의 집합이, “4 FOURNESS” 의 개념을 형성한다. 

 이런 고통스러운 작업이 시작된 것은, 기하학에서 시작된 위기가 수학(산수)에까지 번지지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새로운 수학적 진실을 찾아보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몇개의 자명한 진리, 가령 두 점을 이으면 직선이 된다, 모든 직각은 같다, 직선은 양방향으로 무한히 뻗어나간다 등을 바탕으로 하여 유클리드는 13권으로 구성된 <<기하학 원리>> 제 5권에서 평면 위의 점과 선에 관한 수백개의 기하학 정리를 증명했다. 가령 3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와 같은 것이 그런 정리이다. 유클리드는 이렇게 하여 기하학을 보다 견고한 반석 위에다 올려놓았다. 그는 불확실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영혼들에게 확실성의 위안을 제공했다. 여러 세기 동안 유클리드 기하학은 뉴턴, 다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의 저작처럼 서구문화의 전통 속에서 그 자체의 생명을 유지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수학과 교수인 로버트 오서맨은 그의 저서 <<우주의 시학>>에서 이렇게 적었다. 


p152 “당초 수학이나 기타 과학 분야에서 연구의 도구 및 모델로 간주되었던 <<기하학 원론>>은 서서히 표준 교육의 기본적인 한 부분이 되었다. 모든 젊은 학생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지적 장비의 하나가 되었다. 비합리적인 믿음과 불확실한 추론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기하학 원론>> 속의 명제는 한 점 의혹이 없는 진리로 증명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2천년이 흐른 뒤에도 <<기하학 원론>> 속에서 실제적인 ‘오류’를 발견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책 속의 진술은 모두 주어진 추론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2천년 이상 동안 학문의 세계를 지배해왔지만 왕궁의 밀실에서는 늘 불만의 숙덕거림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클리드의 자명한 진리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평행선 공준은 자명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평행선 공준은 이런 것이다. 평면 위에 하나의 직선을 긋고 그 선 위에 있지 않는 점을 하나 찍었을 때, 그 점을 지나면 원래의 직선과 평행인 직선은 오직 하나 그을 수 있다. 이 공준은 그야말로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일부 까다로운 경험론자들은 그 공준이 잘못되었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 두 선이 공간 속에서 서로 만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리도 자신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졌다. 프랑스 수학자 쟝 르 롱 달랑바르는 약간 허풍을 떨면서 이것을 “기하학의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수학자들이 평행선 공준과는 모순되는 공준을 내놓기 시작하자 그 상황은 점점 스캔들이 되어갔다.

 1829년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로바체브스키 - 톰 레러의 담시에서 로바쳬브스키는 표절자로 묘사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는 평행선의 공리를 대체하는 낯선 주장을 제시했다. 한 직선과 그 선 위에 있지 않는 점이 있을 때 이 점을 지나고 원래 직선에 평행인 선은 최소한 2개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p153 비록 상식에는 위배되지만 이러한 대체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 못지 않게 내적으로 일치되는 점이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모순을 이유로 배척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런 새로운 기하학의 출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가령 리만 기하학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큰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 삼각형의 크기에 따라 내각의 합에 편차가 있으며 삼각형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180도에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람들은 생각했다. “실제로 콤파스를 꺼내서 실제 세상의 삼각형의 각을 재보면 180도가 된다는 것을 알리라.”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 대해서 리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마십시오. 실제 세상에서 당신이 측정해본 삼각형은 모두 자그마한 것들 뿐입니다. 우주라는 엄청난 공간에서 지구는 먼저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지구가 이처럼 작기 때문에 당신이 측정해본 삼각형은 모두 180도인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이 비좁은 지구에서조차도 측정의 부정확성을 감안할 때, 내각의 합이 179.99997이 아니라 180도라고 결론짓는 것도 속좁은 일일 겁니다.” 

 학계에서 평행선 공준에 대한 대체 주장을 내놓은 것과, 오랜 시간의 시련ㅇ르 견디어온 유클리드 기하학이 자연의 기하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럽 전역의 카페 사회에서 엄천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p15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에 나오는 회의적인 인물인 이반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지지한다. 


 일반 상식에서 통하는 얘기처럼, 만약 신이 존재하여 정말로 지구를 창조했다면,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거하여 지구를 창조했을 것이고 오직 3차원의 공간의식만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아주 유능한 기하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이 우주가, 아니 이 존재가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거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준은 부정하면서 평행한 두 선이 언젠가는 무한 속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내 친구여,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네... 심지어 평행선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내가 목격하여 그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네. 


p155 러셀이 발견한 역설은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에 관한 고대 그리스의 모순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 만약 에피메니데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되며,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셈이 된다. 러셀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과 본질적으로 같은 역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창조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이 종이의 뒷면에 있는 진술은 거짓이다’ 라는 글이 앞면에 적힌 종이를 준다. 그 사람은 종이를 뒤집어 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다. ‘이 종이의 뒷면에 있는 진술은 거짓이다.’ 어른은 이런 사소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p156 몇 년 뒤 러셀은 이 역설에 대하여 아주 대중화된 설명을 내놓았다. 가령 자기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면도해주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생각해 보라. 정작 세빌리아의 이발사 자신을 자기 스스로 면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는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면도를 해주는 것이 된다. 프레게는 아무리 애써보아도 러셀이 내놓은 모든 클래스들의 클래스에 대한 난처한 수수께끼를 풀 수 가 없었다.

 그 당시 수학계의 원로였던 데이비드 힐버트는 수학의 기초를 재구축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성원했고 그리하여 수학계에서 성가신 역설들을 영원히 축출하고자 했다. 힐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p157 “모든 수학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다. 수학의 결정적인 매력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수학 문제에 열심히 매달릴 때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서 늘 하나의 소리를 듣는다. 여기에 문제가 있으니, 그 해법을 찾으라. 너는 순수 사고에 의해서 그 해법을 찾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수학에서는 모르는 채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괴델은 그 어떤 복잡한 수학적 체계도 완비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괴델의 두 번째 발견사항은 첫번째 것보다 더욱 파괴적이었다. 어떤 복잡한 수학적 체계라 하더라도 그 체계가 일관성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일련의 공리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p158 그러나 러셀은 수학이 불완비하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학에서 확실성을 원했다. 나는 그 어느 학문보다 수학에서 보다 확실한 확실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스승들이 받아들이라고 말했던 많은 수학적 논증들이 오류임을 발견했다. 나는 끊임없이 코끼리와 거북이 우화를 생각했다. 수학 세계의 기반이 되는 코끼리를 구축한 그 순간에 나는 코끼리가 비틀거리는 것을 발견했고 코끼리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북이를 구축했다. 그러나 거북이도 코끼리만큼이나 불안정했다. 이렇게 20년 동안 힘들게 노력해 오다가 나는 수학적 지식을 명명백백한 것으로 만들려는 나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p161 아인슈타인이 강력한 주장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4차원은 우리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p163 에어디쉬도 한동안 고등학문 연구소에서 괴델과 아인슈타인과 함께 지냈지만, 그들과 공동 연구한 적은 없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들은 에어디쉬 번호 1은 아니었지요. 나는 아인슈타인과 절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를 잘 알고 있었어요. 그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나는 그에게 소수 정리를 설명했어요. 물론 그는 내 말을 이해했고 또 멋지다고 말했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달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은 아주 수학적이고 또 그는 현대의 가장 유명한 방정식인 E=mc^2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이 방정식은 에너지와 질량이 동등하다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c는 빛의 속도). 

 아인슈타인과 에어디쉬가 나눈 대화는 주로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1940년대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물리학보다 정치에 더 관여하고 있는 사실을 난처하게 생각했다. 그는 수학 조수인 에른스트 슈트라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그렇게 나누어야 해요. 정치와 방정식에 공평하게 말이에요. 하지만 내가 볼 때 방정식이 더 중요해요. 정치는 현재의 관심사일 뿐이지만, 방정식은 영원한 거니까요.” 


p164 한편 에어디쉬는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없었더라도 원자폭탄은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성 이론 없이도 그 폭탄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1945년에 그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40년 전에, 당신의 공식 E=mc^2이 당신의 생전에 실용화하리라고 생각했나요?’ ‘아니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실용화되리가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p165 루이스와 에른스트는 신혼부부였는데 에른스트가 아인슈타인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프린스턴 대학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적으로 검증해야 할 사항이 꽤 있었고, 연구소 당국에서 조수를 붙이도록 재원을 제공했다.

 “아인슈타인을 잘 아는 친구의 재촉을 여러번 받은 끝에 남편은 그자리에 인터뷰를 신청했어요. 아인슈타인과의 면접은 잘 되어 나갔어요. 그래도 남편은 양심상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대요. 

 ‘한 가지 밝힐 사실이 있는데, 저는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랬더니 아인슈타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더래요. 

 ‘그건 괜찮습니다. 내가 상대성 이론은 알고 있으니까요.’ 

 남편은 그래서 그 자리에 취직이 되었고 1944년에서 48년까지 아인슈타인 밑에서 일했지요. 


p167 에어디쉬는 많은 연구를 했고, 아인슈타인은 늘 자극을 주었으며, 폰 노이만은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어요. 


p168 에른스트 슈트라우스는 대물리학자와 대수학자의 스타일상의 차이를 직접 목격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에어디쉬의 70회 생일 때 슈트라우스는 덕담을 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수학을 피하고 물리학을 서낵한 이유를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학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문제들이 너무 많아서, 핵심적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채 평생 노력 낭비를 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물리학의 경우는 핵심적 문제를 잘 파악할 수 있다. 과학자의 주된 임무는 이런 핵심 문제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밖의 문제들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설혹 그 문제가 아무리 어렵고 또 매력적이라고 하지라도. 그런데 에어디쉬는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파괴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아름다운 문제들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문제들이 그에게 굴복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는 에어디쉬 같은 돈 쥬앙의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아인슈타인 같은 갤러해드 경의 스타일도 있다고 말입니다.” 


p175 그와 투란은 헝가리 고전시를 다시 쓰면서 수학연구의 피로를 풀었다. 야노시파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재작성하는 시의 핵심 주제는 노년과 망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는 그들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에어디쉬는 특별히 다음 2행시를 음송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 가지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해. 

 내가 알츠하이머 병(치매)에 걸려 천천히 죽어 가는 것. 


 그레이엄은 위의 시와 관련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에어디쉬는 자신이 사람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면 그건 정말 큰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3) 아인슈타인과 도스토예프스키

p176 내가 에어디쉬에게 큰 신세를 입은 것은 30년전 한 호텔에서였다. 당시 나는 로마의 파르코 델 프린키피 호텔에 묵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나에게 다가와 이런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가이, 커피 한잔 하겠어요?” 

 나는 별로 커피를 마시는 편이 아니지만 이 위대한 수학 천재가 하필이면 나를 커피 상대로 지목했다는 데 흥미를 느꼈다. 커피의 가격은 요즘엔 어디서나 1달러지만, 당시로서는 꽤 큰 돈이 었다. 우리가 커피를 뽑아들었을 때, 폴이 말했다. 

 “가이, 당신은 굉장한 부자입니다. 그러니 내게 100달러만 빌려주십시오.”

 나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의 그런 요구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런 요구를 선선히 들어준 나 자신에게 놀랐다. 다시 한 번 에어디쉬는 나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 나는 내가 굉장한 부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그런 물질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내가 수학을 좋아하고 또 에어디쉬를 직접 알게 되었다는 정신적인 관점에서 나는 굉장한 부자인 것이다.


  • 리처드 가이


p177 2n보다 작거나 같은, n+1개의 정수가 있다고 할 때, 그들 중에는 항상 서로소인 두 수가 있음을 증명하라. 나는 이 간단한 결과를 몇년 전에 발견하고 10분 정도에 걸쳐서 아주 간단한 증명을 만들어냈어요.” 


p189 “그건 아주 복잡한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심리적 비정상입니다. 나는 성적 쾌락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아주 특이한 거죠. 나는 늘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지고 싶다는 기본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주 뿌리 깊은 것으로서 타고난 것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남들과 비슷해야 한다는 압력을 자동적으로 거부해왔습니다.” 



π) 최악의 경우 전문가


p206 그레이엄의 박사 논문은 단위 분수 unit fraction를 다룬 것이다. 단위 분수는 1/5, 1/8, 1/127 같이 양수의 역수로서 1을 분자로 하는 분수를 말한다. 단위 분수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고대인들은 단위 분수가 아닌 분수는 취급하지 않으려 했다. (단 2/3와 같은 분수는 예외인데 이 분수는 특별 상형문자로 표기되었다). 

 우리들이 고대 이집트 수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3500년 이상 보존되어온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18피트 길이에 1피트 넓이의 린드 즉 아흐메스 파피루스이다. 


p207 린드 파피루스는 2/n를 서로 다른 단위분수의 합으로 표현한 계산표로 시작하고 있다. 


p213 단위분수의 대가인 피보나치는 수학계에서 탐욕스런 절차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가 제기한 우스꽝스러운 토끼 문제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이 벽으로 둘러싸인 어떤 곳에다 토끼 암수 한쌍을 집어 넣었다. 매달 한쌍의 토끼가 태어나고 또 그 선생 토끼의 쌍이 두달째부터 새끼를 낳을 수 있다면, 1년 뒤 원래의 한쌍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쌍의 토끼가 태어날까?” 

 처음에는 한쌍이 있었다. 한달이 끝나갈 무렵, 원래의 한쌍이 또다른 한쌍을 생산함으로써 두 쌍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두달이 끝나갈 무렵 원래의 한쌍이 또다른 한쌍을 생산하여 총 세쌍이 된다. 세달이 끝나갈 무렵 첫째달의 두 쌍이 두쌍을 더 생산하여 총 다섯쌍이 된다. 그리하여 이 결과는 다음과 같은 수열을 가지게 된다. 

 1,2,3,5,8,13,21,34,55,89,144,233,377,.....

 이 수열 속에서 3이후의 숫자는 바로 앞전의 두 숫자의 합이 된다. 피보나치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의 답이 377이라고 말했을 뿐, 377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수열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았다. 이 수열에 대한 연구는 6세기 후 프랑스의 정수론 학자인 프랑수아 에두아르 아나톨 뤼카가 해내게 된다. 뤼카는 2개의 정수로 시작하여 앞 두 항의 합이 다음 항이 되는 수열을 밝혀냈다. 토끼 수열은 이런 수열 중 가장 간단한 것이며, 이런 수열을 구성하느 ㄴ숫자들을 피보나치 수 라고 부르게 되었다. 

 피보나치 수에는 2,3,5,13 같은 소수가 있는데, 오늘날까지 이런 소수들의 개수가 유한한지 혹은 무한한지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두 수를 선택하여 소수가 나오지 않는 피보나치 수열을 만드는 것은 쉬운일이다. 가령 4와 6을 선택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피보나치 수열은 4,6,10,16,26,42,68이 되는데 이 수열은 모두 2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소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5라는 공약수를 가진 10과 15의 두 합성수로 시작되는 피보나치 수열, 즉 10,15,25,40, 65, 105... 등도 소수를 보유하지 않는다. 이들 숫자가 모두 5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소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p218 순수수학에서 발견된 사항들은 겉보기에는 현실세계와 별로 상관없는 것 같지만, 의외로 실용화되는 경우가 많다. 당초 그것을 발견한 수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다. 스튜어트의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수학의 천재들은 실용성과 무관한 수학을 연구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수학을 위한 수학이 그들의 신조였다. 실용성이 개재되면 수학만이 갖고 있는 그 순수한 질서와 아름다움이 훼손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클리드는 소수를 탐구하던 당시, 소수는 그리스인의 생활에 아무런 도우밍 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G.H. 하디 또한 수학의 무용성을 높이 평가했다. 

 “나는 ‘유용한’ 어떤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수학적 발견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좋든 나쁘든 실생활의 용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디는 변명이 아니라 하나의 도전으로서 그렇게 말했다. 하디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였고 자신의 정수론 분야가 결코 군대에 의해서 이용되지 않을 거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입증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무려 2,300년에 걸쳐 쓸모없는 물건으로 여겨졌던 소수가 미국방부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것도 군대의 가장 안전한 코드인 암호학의 기반으로서 말이다. 



p219 수학평론가인 존 티어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정말 수학의 역설입니다. 수학자들이 아무리 실생활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실은 이 세상의 이해에 꼭 필요한 최선의 도구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리스인들은 특별한 이유없이 타원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2천년 뒤 천문학자들은 타원이야말로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방식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1854년 도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아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준을 부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평행선은 언젠가 만날지 모른다는 우스꽝스러운 가정을 한 거지요. 그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의 평면을 굽은 공간이라는 기괴한 추상으로 대체시켰습니다. 그리고 60년 뒤 아인슈타인은 굽은 공간이야말로 우주의 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디와는 달리 에어디쉬는 수학의 실용화를 좋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에어디쉬가 이런 실용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에 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학의 실용화에 대해서 현실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p220 “좋은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나쁜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독가스의 살포를 측정하는 미분방정식이 공해오염 물질의 확산을 측정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독가스를 살포할 수도 있는가 하면, 현명하게 공해물질의 확산을 막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양면성. 실재는 어떤 특성도 가지지 않고 출현한다. 인간이 ‘실재’에 부여하는 의미, 가치, 기능이 여러가지 일 수 있다. 선용 될 수도 있고, 악용 될 수도 있다. 그럼 우린 선용해야겠지? 선용의 기준은 ‘원칙’이 되겠고. 원칙이란 자연법칙과 같은 보편타당한 진리이다. 


p220~221 오늘날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의 차이는 더욱 희미해졌다. 컴퓨터의 발명은 많은 분야의 수학을 개발시켰다. 컴퓨터로 수학을 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 아니라(물론 어떤 때는 그렇기도 하지만), 컴퓨터의 내부 작동원리가 본질적으로는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늘 수학의 언어를 빌려갔던 물리학은 이제 그 신세를 수학쪽에다 갚고 있다. 가령 현대 우주론의 “초끈”이라는 기이한 새로운 물리학적 대상은 완전히 새로운 수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벨코어나 AT&T같은 기업연구소의 경우,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얻으려면 새로운 수학적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한다. 


p223 “나는 저글링을 인생의 많은 일들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재주를 익히면 그 다음에는 또다른 공을 올려놓을 수 있는 겁니다. 수학에서 한 가지 정리를 증명하면 또다른 추측이 증명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에어디쉬는 증명의 월계관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어요. 언제나 다음의 추측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p226 효율적 알고리듬이 개발되지 않는 가장 유명한 계산 문제는 여행하는 세일즈맨 문제이다. 도시와 도로의 연결망을 알려 주고, 한 명의 세일즈맨이 모든 도시를 딱 한번씩만 방문하는 가장 짧은 거리를 구하라, 이것이 그 문제이다. 주어진 도시와 도로의 집합이 작다면, 점검해야 할 도로의 수도 많지 않을 것이르모 해법은 간단히 구할 수 있다. 설혹 도시와 도로의 연결망이 좀 넓다고 하더라도 운만 좋으면 최적 여행 스케줄을 짤 수 있다. 그러나 최적 해법을 항상 보장하는 방법으로서 유일하게 알려진 것은, 모든 도로의 가능성을 일일히 확인해 보는 무식한 방법 뿐이다. 


p229 한 무더기의 물품들을 여러 상자에 나누어서 넣을 때, 각 상자의 무게(또는 전체 무게)가 특정 숫자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레이엄은 이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배관공은 서로 다른 길이의 파이프를 잘라내면서 표준길이의 파이프를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은 서로 다른 길이의 상업광고 스케줄을 짜면서 정규 프로그램의 중단을 최소화해야 한다. 종이 제작자는 서로 다른 크기의 용지를 손님에게 제공하면서 표준 규격의 용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 등등이 이런 문제에 해당됩니다” 


p237 “폴, 다른 주에 사는 두 수학자들이 동시에 당신의 두뇌를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그레이엄, 내 어머니의 정리에 대해서 들어보았소?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폴, 너도 한번에 한 도시밖에 갈 수 없단다.’





4) 여백 원한

p238 세 제곱을 두 개의 세 제곱의 합으로 나타낼 수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2보다 큰 어떤 거듭 제곱도 두 개의 같은 거듭 제곱의 합으로 나타낼 수 없다. 나는 이 명제에 대한 놀라운 증명을 알지만 여백이 너무 좁아 기록 할 수 없다. 

  • 피에르 드 페르마


p242 소수에 관한 페르마의 진술은 악명높은 마지막 정리와 구분하기 위해 페르마의 작은 정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작은 정리라고 해서 그 의미마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1세기 후에 오일러에 의해 증명된 페르마의 작은 정리는 어떤 수가 소수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가장 현대적인 시험기준이 되고 있다. 

 n이 소수인가 아닌가를 시험하려면 2 이상의 다양한 정수 a에 대하여 a^n-a가 n의 배수인가를 살펴라. 만약 이 정리가 통하지 않으면 그 숫자는 합성수인 것이다. 가령 9라는 숫자가 소수인가 아닌가를 시험한다고 해보자(이 책을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는 당연히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2^9-2 는 510이 되는데, 이 숫자는 9의 배수가 아니다. 그러므로 9는 1차 테스트에서 불합격해버린 것이다. 어떤 숫자가 이 테스트에서 불합격하면 그것은 확실히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이 테스트에서 합격을 하고서도 소수가 아닌 경우도 있다. 


p244 페르마의 작은 정리는 제시된 지 1세기 후에 오일러가 증명햇지만, 그보다 한결 간단하게 보이는 마지막 정리를 350년 동안 가장 뛰어난 수학자들을 계속 좌절시켰다. 

 1630년대 후반 페르마는 자신이 그 정리의 증명을 가지고 있으나 남에게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정리의 진리를 드디어 1994년에 확립되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재직하는 앤드루 와일즈가 8년 동안 칩거하면서 연구하여 마침내 아주 길고 어려운 증명을 완성해낸 것이다. 그러나 에어디쉬는 와일즈가 혼자 칩거하면서 연구한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와일즈가 그 연구에 수학계의 지원을 받았다면 훨씬 더 빨리 증명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와일즈는 와일즈대로 고민이 있었다. 만약 공동 연구를 한다면 다른 동료가 결승점에 먼저 도착할 염려도 있었고 또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상대로 공격하려 한다는 야유를 들을 수도 있었다. 동료들이 자신의 연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와일즈는 그동안 일련의 사소한 논문들을 발표해왔다. 와일즈의 증명에 소중한 지원을 했던 켄 리베트는 이렇게 말했다. 

 

p245 아마도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연구 과제를 밝히지도 않고 일의 진척도 얘기해주지 않은 경우는 전무후무할 겁니다. 수학자들은 언제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면 격려를 받게 마련이죠. 사람들은 큰 일 한다고 말하면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빌려주기도 하죠. 이렇게 하는 것은 유익하기도 하고 또 이런 도움을 일체 거부한닫는 것은 심리적으로 아주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p246 피에르 드 페르마는 1601년 프랑스 남부에서 부유한 가죽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총명하기는 했지만 수학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페르마는 가족의 권유를 받아들여 프랑스의 공직 사회에 진출했다. 그렇게 하여 나중에 루이 14세 조정의 판사가 되었다. 페르마는 낮에는 이단자들을 화형대에서 불태우리라는 판결을 내렸고, 밤에는 혼자서 지냈다. 당시 프랑스 사법부는 언젠가 재판소에 끌려와 재판을 받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금했기 때문이었다. 

 은자처럼 조용히 보내는 밤생활은 그의 취향에 맞는 것이었다. 그는 고대사와 과학 교과서를 연구했고 드디어 수학의 세계를 발견했다 숫자는 곧 그의 밤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는 페르마처럼 뛰어난 수학 능력을 지니고서도 수학으로서는 싱계를 꾸리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유럽이 중세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던 17세기 초 수학은 고상한 학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수학적으로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회계사로 취직을 하여 부유한 상인들의 재무상태를 몰래 챙겨주었다. 부유한 사람들의 회계장부를 분석해주는 일을 하지 않던 수학자들에게도 몰래 수학연구를 하는 전통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페르마도 이런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수학적 발견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는지, 가끔 동료들에게 편지를 보내 수학적인 도전을 걸기도 했다. 이런 저런 정리를 증명했는데, 자세한 사항은 보내지 않을 테니, 당신이 능력이 되면 한 번 증명해 보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p248 신은 그에게 생애 1/6동안 소년으로, 다시 1/12동안 청년으로 보내게 해주었다. 그동안 그의 뺨에 솜털을 총총히 입혀주셨다. 그후 1/7이 지난 다음에 화촉을 밝히게 해주셨고 결혼 후 5년 뒤에 아들을 얻게 해주셨다. 아! 늦게 태어난 아들이여! 아버지의 나이의 절반에 이르렀을 즈음 그 아들은 운명의 손길에 의해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 4년 동안 수학으로 마음의 위로를 삼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D=D/6+D/12+D/7+5+D/2+4


p250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도 이 정리의 마력에 빠져들었고 상당히 노력했으나 일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1742년 그는 친구를 페르마의 옛집으로 보내어 혹시 밝혀지지 않은 여백의 논평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친구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채 돌아오자 오일러는 온 힘을 새롭게 쏟아 세 제곱의 경우에는 해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p251 그 다음의 진전은 소피 제르맹이라는 여자 수학자가 감당했다.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침공했을 때 그 도시 출신의 아르키메데스는 땅위에 쭈그려 앉아 기하학 도형을 그려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 로마 병사가 그의 뒤쪽에서 앞으로 나오면서 도전적인 자세로 그 도형을 발로 밟았다. 

 “내 원을 밟지 마세요!” 

 아르키메데스가 항의하자 로마 병사는 칼을 뽑아들고 75세의 수학자를 살해했다. 

 

p252 제르맹은 이처럼 사람의 목숨마저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위대한 학문에 헌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집 바깥에서 벌어지는 혁명시대의 공포정치를 잊어버리고 또 자신의 목숨과 육체에 가해질지 모르는 위협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p252 그녀는 20대에 들어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특별한 케이스(지수 n이 특별한 종류의 소수인 경우)를 풀어내는 일반적인 테크닉을 개발했다. 그렇게 하여 수학계에서는 특정 소수에서 두 배를 한 다음 1을 더하여 나오는 또 다른 소수를 소피 제르맹 소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p253 “불행하게도 내 지성의 깊이는 내 지식의 탐욕보다 크지 않습니다. 수학의 천재를 이처럼 귀찮게 하는 나의 뻔뻔함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우스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수학이 당신처럼 유능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p254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제르맹의 개척자적 연구 이후에, 또다른 중대 발전은 1840년대 후반 독일의 정수론 학자인 에른스트 에두아르트 쿰버에 이ㅡ해 이루어졌다. 


p255 쿰머는 프랑스 군대를 제압할 만한 무기를 개발하는 작업을 하지 않을 때에는 프랑스 수학자를 꼼짝도 못하게 하는 일에 바빴다. 당시 프랑스 과학원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3천 프랑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리고 파리의 카페 사회에서는 두 명의 현지 수학자인 가브리엘 라메와 오귀스트-루이 코시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페르마 정리의 증명 경쟁이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두 수학자의 연구 방식은 독일에까지 전해졌고 쿰머는 두 사람의 접근방법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간파하고 프랑스 과학원에다 장문의 편지를 날렸다. 라메와 코시는 크게 당황했고 그후 좀 더 다루기 쉬운 수학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p257 아마추어 수학가인 볼프슈켈은, 아르키메데스가 기하학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면 자신은 정수론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꿈속에서까지 연모하던 여인에 의해서 버림을 받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볼프슈켈은 엄청난 절망에 빠져서 거기에서 헤어나오려면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볼프슈켈은 충동적인 남자이긴 하지만 그 즉시 자살을 할 수는 없었다. 먼저 신변의 일을 정리한 다음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서 이승을 하직할 생각이었다. 신변의 정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러므로 정해진 자살 시간까지는 몇 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는 서재로 들어가 옛날의 수학 책을 뒤지다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리를 풀어보려고 애쓰다가 그만 자살 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볼프슈켈은 그 순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까다로운 여자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한결 보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살기로 결심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푸는 사람에게 내줄 상금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에피소드로 활용가능한 이야기


p258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할 운명을 타고난 앤드루 와일즈는 옥스퍼드 신학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선배이자 소피 제르맹이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읽고 수학에 마음이 이끌렸던 것처럼, 와일즈도 페르마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읽고서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열살 무렵 와일즈는 에릭 템플 벨의 <<마지막 문제>>(1961)을 읽었다. 20세기 전반기에 미국 수학계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벨은 수학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재간이 있었다. 벨은 이렇게 썼다. 


p259 “수학의 심오한 진리를 체험한 사람들은 의지가 강인한 사람들이다. 의지 박약한 자들은 그런 체험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인물의 성품을 간결히 요약하는 재주도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수학에는 신비주의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1/10은 천재이고 나머지 9/10은 순전히 사기이다” 

 벨의 문장은 때때로 너무 장식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마지막 문제>>와 이 책 보다 더 잘 알려진 <<수학의 사람들>>(1937)은 그후 3세대에 걸쳐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수학적 흥미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p260 어린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벨의 이야기를 읽고서 그 정리에 매혹되었다. 와일즈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정리는 너무나 간단해 보였는데도 역사상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그것을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열살 먹은 나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문제를 말입니다. 그 정리를 일단 알게 된 다음부터 그것이 내 머리에서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이 정리를 반드시 풀어내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페르마에 대한 벨의 책은 그의 사후인 1961년에 나왔다. 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기도 전에 인류문명이 핵전쟁에 휘말려 소멸해 버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버클리의 수학 교수인 켄 리벳은 다음과 같이 궁금해 했다. 

 “만약 벨이 몇 십년 더 살았다면 다음 두 사항 중 어떤 것에 더 놀랐을까?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사실과 1993년 6월 23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해결되었다는 사실 중에 말이다.” (이 처음 증명에는 결함이 있었고 1994년 9월에 완전히 증명되었다.)

 와일즈는 10대 소년 때부터 페르마 정리의 해결에 매달렸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당대 수학의 뜨거운 문제였던 타원 곡선(단순한 타원보다 더 복잡한 타원)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그 주제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와일즈는 그렇게 하여 그후 10년 동안 페르마 정리는 뒷전으로 밀어놓게 된다. 

 1986년 켄 리벳은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관련된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그 자신도 놀라게 된다. 


p261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은 오랫동안 해결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추측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아무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것은 수학 본류에 해당하는 문제였지요. 내가 이 추측에 대해서 뭔가 시도해 보면 비록 문제를 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치 있는 수학 연구가 될거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공연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고요. 그래서 평생 나를 사로잡아 온 페르마의 로맨스가 수학적으로 인정되는 문제가 결합하게 된 겁니다.” 


p262~263 그는 비좁은 자신의 사무실에 7년 동안 틀어박혀서 비밀리에 작업을 했다. 타니야마-시무라 추측에 관련된 자료는 모조리 찾아서 읽었다.

 “처음 몇해 동안에는 경쟁자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그 어떤 수학자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서서히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와일즈는 그 경험을 어두운 대저택에 들어가는 경험에 비유했다.

 “어떤 방안에 들어가서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서 가구를 더듬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천히 그 가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방은 불이 환하게 켜지게 되는 거지요. 그런 다음에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그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1993년경 그 대저택의 모든 방에 불이 켜졌다. 그러나 200페이지에 달하는 증명을 확인 또 확인하면서 그는 대저택에 사람이 몰려오는 것을 막아냈다. 1993년 6월 그는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가 “모듈 형태, 타원 곡선, 갈루아 표현”이라는 평범한 제목으로 일련의 강연을 했다. 사흘 동안 그는 강연의 종착역이 어디라는 암시를 전혀 하지 않은채 강연만 했다. 마지막 날에 운집한 수학자들은 그 강연장을 꽉 채웠다. 그들은 모두 그 강연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막연히 감을 잡고 있었다. 켄 리벳은 이렇게 말했다. 

 “클라이맥스는 단 하나뿐이었고 와일즈 강연의 끝이 어디인지는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나는 비교적 일찍 와서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나는 그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기 우해 카메라를 휴대했습니다. 매우 긴장되는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갖고 있었습니다. 강연 전 혹은 강연 후에 사람들은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지난 여러날 동안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강의의 끝 무렵에 와일즈는 칠판에다 마지막 명제를 기술하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합니다. 여기서 강연을 끝내고자 합니다.” 

 잠시 동안 강연장 안은 잠잠해졌다. 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고 와일즈는 일제 기립박수를 받았다. 


p264 그 증명은 정말로 기술적인 것이었다. 너무나 전문적이어서 처음에는 공룡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1993년 8월말, 와일즈 동료 중의 한 사람이 그 증명의 결함에 대해서 조용히 지적했다. 와일즈는 그해 가을 그 구멍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12월이 되자 와일즈 증며엥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e-mail 통신망을 통해 퍼져나갔다. 와일즈는 자신의 증명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것은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는 칭송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하기 싫은 인정이었다. 이번에 와일즈는 혼자서 일하지 않았다. 그는 케임브리지 동료인 리처드 테일러의 도움을 요청했고 1994년 9월이 되자 - 최초의 “증명”으로부터 14개월이 흐른 뒤- 그 구멍은 메워졌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이제 공식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었다. 


p265 20세기의 복잡한 수학 지식을 모두 동원한 와일즈의 증명은 페르마가 여백에 써넣은 증명과는 같은 것일 수가 없었다. 페르마가 정말 증명을 갖고 있었을까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여백에 써넣은 논평을 가지고 후대 사람들에게 장난을 건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오류있는 (그러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증명을 본인이 정말 갖고 있었던 것인가? 






5) 정수는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p269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역사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 정리를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만든 것은 그 정리 자체에 무슨 매력이 있어서일까?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물어본다면 그 정리를 수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인가?

 위대한 수학자 가운스는, 소피 제르맹이 이 정리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에 열중하자 격려를 해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수학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1816년 동료 천문학자가 당시 현금에 쪼달리던 가우스에게 프랑스 과학원에서 이 문제의 해결에 3천 프랑을 내걸었다는 소식을 편지로 전하면서 이렇게 권했다.

 “그러니 친애하는 가우스, 이 문제를 붙들고 한참 바쁘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가우스는 그 동료에게 곧 흥미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파리의 상금을 알려준 당신의 뉴스를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독립된 명제로 볼 때 페르마의 정리는 내게 별로 흥미를 주지 않아요. 사람들이 결코 풀지도 못하고 처리할 수도 없는 이런 정리라면 나 자신도 손쉽게 여러 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p273 통찰과 연결- 수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1777년 독일 브라운쉬바이크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남들이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연결관계를 밝히는 데 귀재였다. 에어디쉬와 마찬가지로 가우스는 수학 신동이었고 노년에 들어서는 자신의 어릴 적 업적을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가령 세 살 때에 그는 아버지의 회계장부에서 오류를 발견해냄으로써 아버지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많이 지불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또 자신이 글 읽기보다 숫자 계산을 먼저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그는 대단한 계산 능력을 타고 났다. 열살 때 그는 세인트 케더린 초등학교의 산수 시간에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그 초등학교는 중세 시대에 건축된 지저분한 건물이었고... 뷔트너라는 아주 엄격한 선생에 의해 운영되었다. 뷔트너 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1백 여명의 학생들에게 너무나 위압적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겁에 질려 자신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뷔트너 선생은 손에 등나무 회초리를 들고 교실 안으로 들어와 학생들에게 1에서 100까지의 숫자를 모두 합산하라고 지시했다. 제일 먼저 푼 학생은 선생의 책상 위에다 답안지를 올려 놓게 되어 있었다. 두번째로 푼 학생은 그 답안지 위에다 자신의 답안지를 올려놓는 것이다. 

 뷔트너는 그 시험문제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초 뒤 가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선생의 책상에다 답안지를 올려놓고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뷔트너는 가소롭다는 듯이 가우스를 노려보았다. 가우스는 동급생들이 한 시간 동안 낑낑거리며 문제를 푸는 동안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뷔트너는 학생들의 답안지를 모두 회수하여 틀린 경우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마침내 그는 가우스의 답안지를 펴들었다. 거기에는 5,050이라는 합산의 결과만 있을 뿐, 계산 근거가 없었다

 깜짝 놀란 뷔트너는 어떻게 정답을 알았느냐고 가우스에게 물었다. 그에 대해 에어디쉬는 이렇게 말했다. 

 “가우스가 그 요령을 얘기하자 선생은 이처럼 뛰어난 학생은 평생 처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늘 가우스와 함께 작업했다. 그에게 온갖 수학 책을 내주면서 수학 공부를 독려했고 가우스는 평생 이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가우스의 요령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우스는 덧셈을 연속적으로 위아래로 두 번, 즉 하나는 작은 수부터 오름차순으로, 다른 하나는 큰 수부터 내림차순으로 마음 속에서 그려보았다.  

그런 다음 수평으로 합산하지 않고 수직으로 합산했다. 그러헥 해보니 총 100쌍이 나왔고 그 쌍의 합은 101이었다. 가우스는 100곱하기 101을 한다음, 각 숫자가 두 번 계산되었으므로 나누기 2를 해서 5,050을 얻은 것이다. 

가우스의 계산 에피소드를 어디에 넣으면 좋을까? 뷔트너 선생 캐릭터도 괜찮고, 어딘가 소개하고 싶은데 ‘수’에 관련된 부분에 넣으면 좋을 것 같다. 


p275 그레이엄은 가우스의 이 요령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가우스의 계산 방법이 아주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여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첫 50개의 정수, 혹은 첫 1,000개의 정수, 혹은 첫 10,000개의 정수, 혹은 그 어떤 정수의 합을 구하는 데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우스는 1에서 n까지의 수의 합을 구하는 데 있어서 n×(n+1)을 2로 나눈 것이 정답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수학은 구체적 문제와 보편적 결과에 대한 관계, 혹은 어떤 개념과 그에 무관해 보이는 개념(그러나 실은 관계가 있는)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유효한 가치가 있는 수학적 개념은 절대로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피보나치 수도 그렇고, 잘 알려진 파이도 그렇고 소수도 그렇다. 심지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와일즈의 증명도 그렇다. 이 증명은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디오판투스 방정식의 대수와 타원 곡선의 기하, 이 두 가지 사이의 깊은 관계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피보나치 수열 1,2,3,5,8,13,21,34,55,89,144,233... 은 토끼의 번식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생견나 것이지만, 일단 생겨난 이후에는 자연의 디자인이나 인간이 만든 디자인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되었다. 가령 해바라기꽃의 씨앗은 항상 서로 반대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두 개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지는데, 그 두 소용돌이의 씨앗 수가 서로 다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다른 정도가 항상 피보나치 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소용돌이가 144개의 씨앗으로 되어 있따면 시계반대 방향의 소용돌이에는 89개 혹은 233개의 씨앗이 있는 것이다. 

 이 피보나치 수열은 사람이 만든 디자인에서도 등장하는데, 이 수열이 무한에 점점 가까워지면 연속된 피보나치 수의 비율은 “황금비”에 가까워지게 된다. 황금비는 그리스인들이 그림을 그릴 때나 파르테논 신전 같은 건물을 지을 때 애용했던 것으로서, 직사각형의 가로 세로 길이의 이상적인 비율을 뜻한다. 실제로 이 피보나치 수는 다른 사물들과도 많은 관계를 갖고 있어서 이 수열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피보나치 계간>>이 있을 지경이다. 


p276 소수 정리와 관련하여, 가우스는 소수의 배열을 로그와 그 유명한 상수 e와 관련시켰다. 


p278 자연상수 e는 이름처런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상수는 성장과 소멸이라는 삶의 기본적 과정에서 수학적 모델을 구축할 때 너무나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성장과 소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매우 관심이 많은 돈 문제 - 물론 에어디쉬는 돈에 초연했지만- 에서도 이 상수가 등장한다. 이 상수는 복리계산에서 필수적인 공식인 것이다.

 가령 당신이 연간 1백 퍼센트의 이자를 보장하는 은행에다 1달러를 예탁한다고 해보자. 연말이 되면 당신은 원금 1달러, 이자 1달러 도합 2달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은행이 반년마다 복리로 이자 계산을 해준다고 해보자. 이것은 더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당신은 6개월 후에 투자액의 절반 즉 50퍼센트에 해당하는 이자를 받게 될 것이고 연말에는 그 이자에 대한 복리이자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연말에 총 2.25달러를 받게 된다. 가령 3개월마다 복리계산을 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연말에 2.44달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주 관대한 에어디쉬 은행이 등장하여 1년 내내 연속적으로 복리이자를 계산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연말에, 에어디쉬가 즐겨 말하는 대로, “무한히 돈이 많은 부자”가 될까? 글쎄, 그렇지는 않다. 1년에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상수 e달러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2.718...달러가 되는 것이다. 


279 가우스는 그 위대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소수가 배열되는 패턴을 발견해냈다. 소수가 버질 수록 다음 소수가 나오는 사이는 벌어진다. 즉 소수가 발생하는 밀도는 자연 로그에 반비례하는 것이다. 소수 정리에 의하면 - 가우스가 1790년대 후반에 추측해내고 에어디쉬와 셀버그가 1949년에 기초적인 방법으로 증명한 것- 특정수 n근처에 있는 2개의 연속되는 소수의 평균 거리는 n의 자연로그에 의해서 추정해낼 수 있다. n=100일 경우, n의 자연로그는 약 4.6이다. 따라서 소수 정리의 예측에 의하면 100 근처에 있는 숫자들은 평균 4.6개에 1개 꼴로 소수가 나온다. 이 예측은 얼마나 정확할까? 

 가령 75와 125사이에 있는 숫자 중에서 소수는 9개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가 있는데 이것은 평균 5.5 개에 1개 꼴로서, 소수 정리의 예측과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n의 값이 크면 클수록, 즉 n이 무한에 가까이 갈 수록 자연 로그에 의한 추정 밀도와 실제 밀도는 제로(0)에 가까워진다. 모든 정수의 기본 벽돌이라고 할 수 있는 소수가 왜 성장과 소멸의 상수인 e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은 오로지 SF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다. 


p279 만약 수학적 업적이 표면상으로 상관없는 아이디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능력에 의해서만 측정된다면, 당연히 오일러가 1등을 차지할 것이다. 그는 수학계에서 가장 획기적이고 가장 유명한 공식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는 대담한 방식으로 가장 기본수인 0과 1은 물론 파이와 e, i(-1의 제곱근인 허수) 등을 모두 동원하여 멋진 공식을 만들어냈다. 상수 e에다 파이와 i의 곱을 거듭 제곱하고 이어서 그 값에다 1을 더하면 그 결과는 0이 된다. 


p280 이 공식의 순백한 우아함, 상형문자적인 아름다운, 촌철살인격의 간결함은 수학자들에게 커다란 매력의 원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비주의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e^π i +1=0 의 아름다움과 간결함에 사람들이 매혹되어온 역사는 오래 되었다. 왜냐하면 수학자들이 π, e, i 등의 개념을 손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0, 음수, 2의 제곱근 같은 비 순환 무한 소수등을 받아들이는 일도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4살 때에 이미 음수의 개념을 깨우친 에어디쉬는 조숙한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서구문화에서는 17세기가 될 때까지 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에어디쉬의 조숙성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유클리드 시대의 수학자들은 1,2,3,4 와 같은 양수로 만족했고 단위 분수로 표기되는 분수(비록 우리 현대인의 눈에는 번거롭게 보이지만)도 편안하게 여겼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로나 허수의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연 1이 숫나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통상 숫자는 복수를 측정하는 것인데 1은 하나의 단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뺄셈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고대의 목축업자들은 여섯 마리의 암소에서 세 마리의 암소를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3마리의 암소라는 개념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틴가드너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논평했다. 

 “암소 한 마리에서 암소 한 마리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3마리의 암소를 더하여 3마리의 암소가 0이 되어버린 다는 개념은 마치 소립자와 반 소립자가 부딪쳐서 상쇄되어버린다는 얘기로서 아주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옛날에 존재했다는 아주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연상시킵니다. 이 사람이 파티장으로 들어서면 손님들이 주위를 돌아다보며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떠나갔지?’” 


p281 1660년 확률 이론의 아버지인 블레즈 파스칼은 0보다 적은 것을 수라고 부른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자들은 음수를 가지고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수량을 “허구의”수량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발흥은 이러한 허구의 수를 실제의 수로 만들어주었다. 차변과 대변을 설정하고 손해를 빨간 글씨(적자)로 표기하는 부기방법 때문에 서구 문명은 마침내 17세기에 들어와 음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음수 이야기 할 때 인용


p282 피보나치는 오늘날 서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힌두-아랍 숫자가 로마 숫자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p283 6세기의 인도 수학자들은 자리값 체계를 개발했고 숫자의 자리값 위치를 지키기 위해 제로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렇게 해서 1 뒤에 0이 붙은 숫자, 즉 10은 그냥 1과는 다른 숫자가 되었다. 늘 자신을 늙고 우둔하다고 말했던 에어디쉬는 인도 사람들이 아주 똑똑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제로를 발견해서가 아니라 우둔한 사람과 늙은 사람을 가리키는 흰두 말이 비슷하게 발음되기 때문이었다 


p284 7세기에 들어와 힌두 학자들은 이슬람 사람들에게 인도의 수체계를 소개했고, 0과 자리값의 개념이 아랍 세계 전역에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6세기 뒤 피보나치는 힌두-아랍 숫자의 간편성에 감명을 받아 피사 상인들에게 이 숫자 체계를 널리 알리고자 애썼다. 1202년 그는 <<주산의 책>>을 저술했는데, 책 내용은 제목과는 달리, 주산과는 별로 관계가 없고 로마 숫자의 구속으로부터 계산을 해방시키자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20세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낡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을 애써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게 시작된다.

 “9개의 인도 숫자는 9,8,7,6,5,4,3,2,1 이다. 이 아홉개의 숫자와 0이라는 기호만 있으면 그 어떤 숫자도 표기할 수 있다.” 


p284~285 17세기에 들어와 서구의 수학자들은 무한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에어디쉬가 좋아했던 개념들 중의 하나인 무한은 17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비주의의 영역으론 ㅏㅁ겨져서 경원시되던 것이었다. 로지 오의 신능권이 무만한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따라서 신의 권능을 단지 방정식의기호로 축소시키려는 인간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만약 신이 이런 기호를 좋아하지 ㅇ낳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p285 미적분은 행성의 움직임이나 가마 속의 열의 움직임 등 순간적인 변화나 변화율을 수량화하는 기술의 집합이다. 그래서 미적분은 무한히 작은 것과 무한히 큰 것을 함께 다룬다. 무한히 작은 것ㅇ, “곡선으로 둘러싸인 영역”을 점점 더 작은 부분들(‘무한소’라고 불린다)로 나누고 또 나눠진 부분들을 다시 더하여 그 영역의 넓이를 알아내는 과정, 즉 ‘적분’에 쓰인다. 무한히 큰 것은 ‘극한’이라고 알려진 미적분의 기본 개념에서 발생한다. 각각의 분모가 바로 앞 분모의 두배 값을 가지는 1/2+1/4+1/8+1/16+1/32+...+1/2^n+...이라는 소위 기하급수를 한 번 생각해보라. 이 수식을 아무리 더한다고 하더라도 비록 1에 가까워지기는 하겠지만 1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극한에서는 항의 수가 무한에 접근하면서 총합은 정확히 1이 된다. 

 

p287 수학자들이 무한급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했을 때에도 무한의 개념은 여전히 많은 이례적 사항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19세기에 이르러 무한은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개념임이 증명되었다.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그 페르디난트 루드비히 필리프 칸토어는 1845년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무한은 정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크기로 등장한다는 놀라운 설명을 내놓았다. 칸토어보다 250년 앞서서 저술된 갈리레오의 <<두 개의 새로운 과학에 관한 대화>>에서, 갈릴레오는 셀 수 있는 정수와 그 정수의 제곱이 무한히 대응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우리들이 직관적으로 느끼기에 숫자의 크기에 있어서는 제곱수가 정수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여겨지는데도 말이다. 


p288 갈릴레오는 이런 난처한 대응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지만 칸토어는 해석할 수 있었ㄷ. 칸토어는 1대1대응이라는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이것은 무한히 많은 정수가 있는 것처럼 무한히 많은 정수의 제곱이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정수가 무한인 것처럼 짝수의 정수 또한 무한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정수에 대응하는 소수도 마찬가지로 무한이라고 말했다. 


칸토어는 이러한 모든 무한집한 - 제곱수, 정수, 소수 등-은 같은 크기라고 결론짓고 이런 크기를 아페프 -널이라고 불렀다. 알레프는 히브리 알파벳의 처번째 글자이다. 알레프-널 크기의 집합은 가부번 혹은 가산 무한이라고 정의되었다. 왜냐하면 이 집합의 구성 숫자들은 셀 수 있는 숫자와 1대 1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p291 힐버트 호텔은 무한한 개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이다. 어느 날 밤, 모든 객실이 만원인데도 ‘방 있음’의 간판이 호텔 밖에 내걸렸다. 그때 한 투숙객이 도착했고 접수부의 직원은 그에게 1번 방의 열쇠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직원은 1번 방에 있는 투숙객은 2번 방으로, 2번은 4번 방으로, 3번은 6번으로, 4번은 8번으로, 5번은 10번으로, 이런 식으로 각자 있는 방의 번호에다 곱하기 2를 한 짝수 방으로 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많은 새 손님이 오더라도 무한히 받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무한히 많은 홀수 번호의 빈방이 생기기 때문이다. 


p293 “나는 초한수의 진리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수를 발견했습니다” 칸토어는 말했다. 

 칸토어의 이러한 연구 업적은 그 출현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 그가 이 증명을 발표하자 마자 화답이라도 하듯이 당시 교황 레오 13세가 과학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라는 회칙을 반포했기 때문이다. 교황이 우연찮게도 그의 입장을 거들어주는 바람에 칸토어는 많은 청중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로 인하여 기독교의 철하 사상 최초로 무한의 진정한 이론이 제공될 수 있었습니다.” 칸토어는 뻐기듯이 말했다. 


p298 칸토어의 업적 중 또 하나 멋진 결과는 초월 수(비 순환 무한 소수, 이 설명은 정확하지 않음. 역자주)가 실제로 존재함을 증명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수학계에서 파이와 e를 널리 인정하고 있지만 19세기 전만 해도 아무도 이것들을 초월 수라고 증명하지 못했다 


p299 당시 수학계의 지식으로는 파이와 e의 소수점 이하 자리를 몇 자리만 확장하면 다른 숫자가 나오는 것이 끝나고 같은 숫자가 반복되라고 보았다(이 문단의 설명은 초월수의 정확한 개념과 잘 맞지 않음) 이런 생각이 그후 계속되다가 칸토어가 초한 수의 존재를 증명한 1873년에, 찰스 허마이트가 e의 초월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 증명은 그를 완전히 탈진 시켰다. 허마이트는 한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파이의 초월성을 증명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 일을 맡아 성공한다면 난 정발 기쁘겠어요. 하지만, 그 일은 엄청 난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 


허마이트의 증명이 있고 나서 8년이 흐른 뒤, 뮤니히 대학의 페르디난트 린데만이 마침내 파이의 초월성을 증명했다. 그것인 1882년이었고 아르키메데스가 파이의 값을 대략 소수점 이하 두 자리까지만 개략적으로 계산했던 시절로부터 2,100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오늘날 파이는 소수점 이하 500억 자리 이상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공학의 세계에서는 대체로 파이의 소수점 이하 39자리까지 만 계산하면 되는 것으로 정해져있다. “그렇게 하면 이미 알려진 우주를 둘러싸는 원의 둘레를 구하는 오차가 수소 원자의 반지름보다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p300 “다루는 대상의 숫자가 많아지면 당연히 구조를 피할 수 없게 되지요. 그게 바로 램지 이론입니다. 에어디쉬는 확률론적 방법을 도입하여 다루는 대상의 숫자가 많더라도 특정 구조를 피할 수 있다고 증명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방법은 실제로 그런 구조를 피하는 구체적 방법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뭐라고 할까, 이런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수가 합성수임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어떤 소인수로 구성되어 있느냐를 보여 줄 수는 없는 것과 같지요. 그런 인수가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인수에 대한 단서는 없는 거예요. 확률론적 방법이 꼭 이와 같습니다. 이 방법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숫자가 상당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숫자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p301 수학적인 문제를 동전을 던져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는 정밀도를 최고로 치는 수학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이제 컴퓨터 과학에서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여기서 아이러니라고 할만한 사항은 컴퓨터를 경원시한 에어디쉬가 컴퓨터 계산 이론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무작위 선택은 때때로 데어터 흐름의 정체를 막는 탁월한 방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바스 피터슨은 <<무작위성의 정글>>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두 사람이 보도 위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다가 마주쳤습니다. 둘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는데 계속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춤을 꼐속 추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정체된 상황이 풀릴 때까지 말입니다. 이때 동전 던지기가 이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서로 갈등하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컴퓨터, 혹은 2개 이상의 현실적인 코스를 선택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컴퓨터에도 이 동전 던지기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6) 염소를 뽑을 확률

p306~309 <확률 문제하면 나오는 이 문제! 지난 컬럼에 썼었는데 더 자세하다. 이 부분을 내 말로 풀어 컬럼을 다시 수정할 필요있음>

당신은 현재 게임 쇼에 나와 있고 당신에게 세 개의 문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한쪽 문 뒤에는 경품인 승용차가 한 대 숨겨져 있고 다른 두개의 문 뒤에는 말라비틀어진 염소가 각각 한 마리씩 들어 있다. 만약 승용차가 있는 문을 연다면 그 차량은 당신의 것이 된다. 가령 당신이 문 1을 마음 속으로 선택했다 치고, 어느 문에 차량이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게임쇼의 사회자가 염소가 들어있는 문 하나를 당신에게 열어보인다고 하자. 그런 다음 사회자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문 1을 그대로 고수하겠는가 아니면 다른 문으로 옮겨가겠는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문제를 소위 몬티 홀 딜레마라고 한다. 몬티 홀의 전형적인 게임 쇼인 ‘흥정합시다’에 출연한 손님들은 이와 유사한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단지 상품이 염소가 아니라는 사실만 약간 달랐다. 보스 사반트는 정기 구독자들에게 다른 문으로 옮겨가라고 조언했다. 문 1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1/3 확률밖에 안되지만 옮겨가면 2/3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독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1백만 개의 문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당신은 문 1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문 뒤에 뭐가 있는지 훤히 아는 사회자가 문 777,777을 제외하고 나머지 문들을 모두 열어보였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당신은 재빨리 그 남아 있는 문으로 옮겨가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보스 사반트는 말했다. 

 그러나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그녀의 칼럼이 나가자마자 항의하는 독자들의 편지가 마구 날라들었고 그 중에는 수학자의 편지도 들어 있었다. 그들은 문을 옮겨갈 경우 확률은 2/3이 아니라, 50대 50으로 같다고 주장했다. 1990년 12월 2일 컬럼에서 그녀는 일부 독자의 편지를 공개했다. 

 

 수학을 전공하는 수학자로서 일반대중의 수학 지식이 이처럼 결핍되어 있는 것에 우려를 느낍니다. 당신의 오류를 시인함으로써 도움을 주시기를... 

 로버트 자크스, 조지메이슨 대학, 수학박사


 당신은 틀렸어요. 아주 크게 틀렸어요.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하지요. 사회자가 염소를 보여주고 난 다음에는 두 문 중 하나를 고르면 확률이 50대 50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을 바꾸든 말든 확률은 그대로인 거예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수학 지식이 너무나 결핍되어 있어서 걱정입니다. 제발 세계 최고 IQ운운 하면서 선전하지 말기 바랍니다.정 말 창피한 일이에요! 

스코트 스미스, 플로리다 대학, 박사


이번에 보스 사반트는 자신의 분석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6개의 결과를 모두 예시한 도표를 만들었다. 



1

2

3

결과(1 고수)

염소

염소

승리

염소

염소

패배

염소

염소

패배




1

2

3

결과( 이동)

염소

염소

패배

염소

염소

승리

염소

염소

승리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이 표에 의하면 문을 바꾸면 3번 중에 2번 이기며, 문을 그대로 고수하면 3번 중에 1번 이길 뿐입니다.” 

 그러나 그 도표는 그녀의 비판자를 침묵시키지 못했다. 동일한 주제를 다룬 세번째 칼럼(1991년 2월 17일자)에서 그녀는 9대 1정도로 그녀를 비판하는 편지가 많으며 비판자 중에는 국립건강원의 부원장, 국방정보센터의 부소장 등도 있다고 밝혔다. 그 편지들 중에는 보스 사반트야말로 염소이며, 여자는 남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수학문제를 푼다고 공격했다. 조지 타운에 사는 박사인 E.레이 보보는 이렇게 적었다. 

 “당신의 게임 쇼 문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엉터리입니다. 이 논쟁을 계기로 우리 나라의 수학 교육일 얼마나 위험한 수준인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오류를 솔직히 시인한다면 당신은 이 위기 상황의 타파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학자들이 분노해야 한단 말입니까?” 

 보스 사반트는 자신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현실이 그들의 직관과 상충될 대 사람들은 동요하게 됩니다.” 

 이번에 그녀는 다른 설명 방법을 썼다. 가령 사회자가 문을 열어서 염소를 보인 다음, UFO가 게임쇼 무대 위에 내렸다고 해보자. 그리고 거기서 초록색 피부의 키 작은 외계인이 내린다. 당신이 원래 무슨 문을 선택했는가를 묻지 않고, 그 초록색 여자에게 남은 두 문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때는 차가 나올 확률이 50대 50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 초록색 여자가 원래 게임 참가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사회자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만약 차가 문2뒤에 있었다면 사회자는 당신에게 문3을 열어보였을 것이다. 만약 차가 문3 뒤에 있었다면 사회자는 당신에게 문2를 열어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문을 옮겨간다면 상은 문2나 문3 뒤에 있게 된다. 당신은 어느 쪽으로 가든 이기게 된다! 그러나 옮겨가지 않고 문1을 고수하면 당신은 차가 문1 뒤에 있을 때에만 이기게 된다” 

 보스 사반트의 말은 백퍼센트 맞는 말이었다. 수학자들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그 말을 시인해야만 되었다


p310~311 바조니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은 확률이 사물에 부착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가령 동전의 경우를 들어봅시다. 앞쪽이 나올 확률은 절반이지요. 과학자들은이 절반의 확률이 곧 동전의 속성 혹은 구체적 성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동전을 공중으로 100번 집어던져 매번 뒤쪽만 나오면 사람들은 뭔가 잘못 되었다. 즉 동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전은 전혀 바뀐게 없어요. 내가 맨처음 던질 때와 똑같은 동전일 뿐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구체적 정보에 의해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죠. 이것이 베이즈의 확률인식입니다. 내가 확률이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에어디쉬는 확률이 곧 구체적 사물에 부착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문을 옮겨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p322 “그 강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강의실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폴이 조용한 목소리로 링겔에게 질문을 했어요. 질문도중 그는 앞으로 거꾸러지면서 정신을 잃었어요. 날 그정오 무렵 의사들은 그에게 맥박 조정기를 부착시켰습니다.그 리고 그날 저녁 폴은 종강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심장 전문의 두 사람이 그의 양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폴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 그 의사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자, 이제 오전에 링겔 박사에게 물었던 질문을 끝마치고 싶습니다.’

 이 일화는 에어디쉬라는 인간을 잘 말해주고 있어요. 수학은 곧 그의 목숨이었습니다.” 



7) 남은 자들의 파티

p329 “체스의 챔피언이나 발레의 스타와 마찬가지로, 권위있는 수학자들도 자신의 능력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날이 오리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노망의 첫번째 표시는 수학의 정리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표시는 바지의 지퍼를 올리지 않는 것이요, 세번째 표시는 지퍼를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p330~331 나머지 청중들은 강의실에서 나와 두 개의 커다란 갈색 플라스틱 탱크가 놓여져 있는 접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그 탱크는 커피 통이었는데 하나에는 ‘카페인 있음’이라고 표지가, 다른 하나에는 ‘카페인 없음’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수학자들은 그래프 이론 강연을 듣기 전에 한 차례 커피를 마셨는데 이상하게도 커피 통의 표지들이 바뀌어져 있었다. 약간 당황한 그들은 커피 통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들이 가진 두뇌의 힘은 최신의 그래프 이론을 완벽하게 검증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지만 카페인의 존재 여부를 가리는 데에는 무력했다. 

 ‘집합의 즐거움’이라고 씌어진 티셔츠를 입은 볼록한 아랫배를 가진 한 수학자의 머리에서 전구가 반짝하고 커졌다. 그는 앞으로 나서더니 손에든 일회용 컵으로, 반은 한쪽 커피 통에서 나머지 반은 다른 커피 통에서 받았다. 그때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게임 이론적 해법이로군!” 

 그때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한 깡마른 수학자가 앞에 나섰다. 

 “또 다른 해법이 있지.” 

 그는 하나의 커피 통 앞에 컵을 내밀고 4분의 1만큼만 채웠다. 

 “이건 점근 해법이지. 난 카페인 과다섭취 상태라소 조금만 있어도 충분해. 컴 안에 무엇이 들어 있어도 나는 언제나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거든.” 

 그때 그들 옆에는 물리학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수학자들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한쪽 탱크가 다른 탱크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더 큰 탱크가 아마도 카페인이 든 커피일 거라고 짐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마시니까 말이다. 수학자들은 그 간단한 해결법에 깜짝 놀랐다. 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생판 다른 접근법은 내게 오래된 농담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어느날 함께 국토 횡단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수 사람은 각자 여행 일기를 써습니다. 그들은 아이오와 주에서 하얀 말 위를 날아게가 되었습니다. 물리학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오와에는 하얀 말 한마리가 있다.’ 

수학자는 반면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중서부 어느 곳에 하나의 말이 존재한다. 그 말의 등은 하얗다.’ ” 

수학자와 물리학자 


p336 지금은 멤피스 대학의 학장이 되어 있는 포드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가 70년대에 처음 멤피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하루 세시간밖에 자지 않았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개인 편지나 수학 관련 편지를 썼어요. 그는 주로 일층에서 잤어요. 그가 처음 우리 집에서 잔 날, 시계가 잘못되어 있었어요.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실은 4시 40분이었어요. 그는 우리들이 다 일어났으리라 생각하고 아주 소리 높여 텔레비전을 틀었어요. 나중에 나를 더 잘 알게 된 후에는 아침 일ㅉ기 내 침실의 문에 노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랄프, 당신은 존재하고 있습니까?’

 정말 그가 일하는 속도는 살인적이었어요. 그는 오전 8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새벽 1시 03분까지 일했어요. 물론 식사를 하기 위해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식사 시간 중에도 냅킨에다 뭔가를 쓰면서 수학 얘기만 했어요. 그는 보통 1주 혹은 2주 정도 머물다 갔는데 그가 가고 나면 탈진해서 뻗어버리게 되었지요. 그가 가고난 다음에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증명을 완료했나요? 타이피스트에게 타자를 부탁했나요?’

 나는 한번은 아래층에 있는 에어디쉬 스위트에 가서 직접 자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게 나의 수학적 정력을 도와주지 않더군요. 나는 다른 수학자들에게 한번 그 방에서 자보라고 권하기도 했어요.” 



∞)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p347 나는 수학자가 아니다.(이 책의 저자 폴 호프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추측을 내놓은 적도 없고 또 정리를 증명한 일은 더더욱 없다. 나의 에어디쉬 번호는 뭏나대이다. 하지만 나는 멤피스에서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파티”에 참석했다. 나는 마치 내 집에 온 것처럼 그 파티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나도 폴 에어디쉬의 인품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직함, 그의 취약함, 그의 놀라운 집념, 그의 관대함, 심지어 악동같은 신에게 도전하는 그의 장난기까지도 나는 사랑했다. 


p348 수학은 광기와는 아주 친숙한 분야이다. 에어디쉬는 즐겨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1935년에 케임브리지에서 란다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Wir Mathematiker sind alle ein bifschen meschugge.’ 이 독일어의 뜻은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이다. 그리고 1932년에 나는 삼각급수를 주로 연구하는 시돈이라는 헝가리 수학자를 만났다. 그는 아주 뛰어난 수학자였으나 보통 수학자보다 약간 돌아버린 데가 있었다. 그는 경계선상의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사람들 말로는 그가 대화를 할 때는 이런 태도를 취했다고 했다” 


p350~351 수학계에서는 내시와 시돈만이 정신병을 앓은 것은 아니다. 칸토어는 망상증 환자가 되었고 괴델은 편집증 환자가 되었고 합성수의 날에는 성행위를 하지 않으려 했던 수학자는 폭행을 저질러 죄수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유나보머라는 우편물 살인법으로 유명한 디오더어 카진스키도 1962년 미시간 대학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레이엄은 수학과 광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의 수많은 분야에서는 자신만의 수학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선택안을 가질 수 있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많은 선택안을 가질 수 있게 되지요. 그들은 이런저런 성질을 가진 구조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구조만을 원하고 저런 구조는 배척할 수가 있는 거지요. 반면 물리학자에게는 이런 자유가 없어요. 그들은 실제 세계에 의해 제약을 받고 또 그것을 연구하려고 애씁니다. 물리학에서는 중력이 역 제곱인 상황에서 역 세제곱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지만 하수학에서는 이런 것을 언제나 상상할 수가 있어요. 슈트라우스가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한 말을 기억하세요? 아인슈타인은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리학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니까 그 문제만 붙들고 늘어지면 되는 겁니다. 이에 비해 수학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불분명합니다.

 “수학에서는 새로운 어떤 것, 색다른 어떤 것을 한다는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학자를 평생 사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또 수학자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A+B가 B+A와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이게 같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어떤 수학자는 같지 않다고 일단 생각해보는 거지요. 

 “물론 속으로 이렇게까지 기괴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천재들이 그렇게 하니까 일부러 그런 우스꽝스런 흉내를 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한때 과학적 명성의 대가에 대하여 친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를 찾아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그 친구는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머리를 자르는 시늉(미친 척)을 하면 그들을 단번에 물리칠 수 있다고 말입니다. 


p352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동의합니다. 인간을 예술과 과학으로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는 고통스러운 일, 황량한 일, 늘 바뀌는 욕망의 족쇄 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상한 마음을 가진 성격은 개인적인 일상사에서 벗어나 객관적 지각과 사색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버트란트 러셀은 혼란스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자살도 생각해보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수학 문제 때문에 자살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러셀이 그토록 풀려고 했던 문제들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했다. 논리학자들은 암울하고 어두운 정리에 대해서 농담을 한다. 그 정리는 발견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정리이다.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훌륭한 수학자들이 정신병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구출을 당합니다. 그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지요. 만약 당신이 우표수집가라면 이 세상에 있는 우표를 모두 수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수학에서는 모든 정리를 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사람의 기를 꺾는 일이지요.” 


감사의 말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 정말 재미있다.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이 책을 쉽게 써서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일단 이 책은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폴 에어디쉬라는 천재 수학자의 생애에 천재 수학자들의 이야기들과 수학 문제를 적절히 잘 섞었다.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수학 문제를 통해 수학에 대해 생각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수학자 이야기도 읽을 수 있고, 또 해결되지 않았던 수학적 스캔들, 수학자들간의 논쟁, 협력, 수학의 특성, 역사 등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썼지? 북리뷰도 빼먹지 않고 다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차례 구성도 잘 살펴보면 특이하다. 0부터 시작해서 1, 2, e,  3, π,  4, 5, 6, 7, ∞ 로 끝난다. 총 11개의 챕터로 이루어져있다. 

 폴 에어디쉬라는 수학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긴 하지만 각 수학자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해준다. 출생과 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어려움, 발견한 정리 등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정말 재미있었다. 나도 읽으면서 현대 수학, 특히 정수론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수학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수학의 특성 중 심미성이 있다는 것을 책으로 배웠다. 느끼진 못했다. 그래서 학생들 앞에서 수학이 얼마나 아름다운 학문인줄 아냐고 말하면서도 솔직히 양심이 찔렸다. 수학은 엉뚜한 데가 있다. 소수가 무한개 있어서 어쩌라고? 이런 질문을 내밷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드디어 소수가 무한개 있음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디까지 소수가 등장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모든 수의 벽돌이 되는 ‘소수’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니 소수가 무한개라는 증명도 잘 이해가 됐다. 이 증명도 10년 정도 계속 배우고, 봤던 것 같은데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할 수 있다. 완벽히 알겠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와는 다른 구성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각 꼭지마다 형식이 있다. 분명하다. 구조 분석이 아주 쉽다. 그런데 이 책은 구조 분석이 조금 어렵다. 물론 같은 패턴이 있기는 하지만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더 잘 읽혔다. 스토리가 가지는 강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난 주에 읽은 <<수맹>>도 재미는 있었지만 이 책과 같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쓰는 책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와 같은 형식이 알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학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글쓰기 능력이 더 는다면 폴 에어디쉬의 삶을 쓴 이 책처럼 쓰고 싶다. 그럼 수학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뿌듯한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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