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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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 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더 정확히는 숲으로 떠나오면서 세운 나의 지향은 ‘자립하는 삶, 생태적인 삶의 실현과 전파’였습니다. 자립한다는 것은 스스로 서는 것. 나는 자립하는 삶을 누군가의 욕망과 성과를 빼앗아 사는 삶이 아닌, 오로지 나 스스로 빚고 길어 올리고 키워낸 것을 세상과 나누어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정의해 두었습니다. 생태적인 삶이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알고 그렇게 자연의 일부로서 사는 것. 따라서 나의 정의는 할 수 있는 한 자연에게 최소한의 부담만 주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생태적 삶의 전파는 이런 생각을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 하고 그들의 삶 속에도 받아들여 실천하게 하는 계기를 주는 활동으로 정의했습니다.
이제 꼬박 3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 이 지향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생활의 자립도를 평가해보면 그것은 여전히 낙제점입니다. 토종벌 농사로 자립의 기반을 다잡고자 했으나 지난해 전국의 토종벌 대부분이 사라지면서 올해는 아예 씨 벌을 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신 글 기고하고 강의하는 일을 더 많이 하며 겨우 한 해를 건넜습니다. 따라서 생태적인 삶의 전파에는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룬 듯 합니다.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알고 그 아래 머리 조아릴 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겪을수록 자연의 질서는 철저히 변증법적 절차와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노력과 경험과 시간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양적으로 충분히 축적되고 나서야 질적 전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숲이 점점 더 깊어지고 푸르러져 가는 원리와 모습에서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질서에는 변증법적 법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무자비함도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종종 운이라고 부르는, 우리 영역 밖에 존재하는 우주적 기운이 자연의 질서를 구성하는 일부로 함께 작용하기도 합니다. 나는 지난해 토종벌 농사가 속수무책이었던 것을 바로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노력하고 경험하고 최선을 다하여 양적 축적을 질적 전환으로 바꿔내려는 모색은 자립을 꿈꾸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신의 과제입니다. 야생의 새와 나비와 벌과 개구리 한 마리에게마저 주어진 과제가 그것입니다. 우주적 개입은 불완전한 우리로서는 다만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여기저기 강의를 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희망과 불안,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랑 앞에 한두 번 넘어져본 사람들이 새롭게 스미는 대상을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넘어질까 두려운 것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래서 올 한 해 나의 글 농사는 자연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 따라서 희망과 불안,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동시에 안고 있는 이들에게 소탈한 귀띔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을은 벌써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숲의 나 역시 한 해 농사를 그렇게 준비하려 합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짐해 봅니다. 인간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우주적 작용에 대해서는 다만 유순한 날씨를 기원해 봅니다.
다음 주에는 ‘무릇 무릎 꿇을 곳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첫 번째 귀띔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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