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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5일 10시 37분 등록

솔로몬 탈무드

 

이희영, 동서문학사, 2004.

 

 

1. 저자에 대하여

 

■ 이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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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분야

번역가, 인류학자, 유대학연구자, 여성생활문화연구소 대표 역임

 

•발 자 취

성균관대학교 국사학과,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EHESS 역사인류학 여성학 박사과정 수학

 

 

여성생활문화연구소 대표

 

•저 서

・탈무드황금률 방법

2005. 살아가는 나날 꼭 알아야 할 88가지

 

 

・솔로몬 탈무드

2007. 지적 여성 생활방법ⅠⅡⅢ

 

 

・탈무드 황금률

-Ⅰ. 끌리는 여성은 1% 열정 다르다

 

 

・유대부자철학

-Ⅱ. 끌리는 여성은 1% 열망 다르다

 

 

・바빌론 탈무드

-Ⅲ. 끌리는 여성은 1% 열성 다르다

 

 

・카발라 탈무드

2008. 여자가 놓쳐서는 안될 1%찬스

李 希 榮

 

 

・유대인 공부 잘하는 방법

2008. 여자가 강해지는 88습관

<사진:지적 여성 생활방법, 동서문화사,

 

 

・유대인의 예지방법

 

2007>

 

•번역서

・세계 최강성공집단 유대인

・펄벅의 어머니 통곡하지 마세요

……

 

열정과 열망과 열성을 지닌

여성

 

……

 

 

・불굴 5000년 유대역사의 비밀

・베르그송의 웃음·창조적 진화

 

 

・로스차일드-유대최강상술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아들아 돈을 쏴라

・시몬느 보봐르 제2의 성

 

 

・아미엘 인생일기

・시몬느 베이유 중력과 은총, 철학강의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

・사르트르 구토

 

 

・어린왕자

 

 

 

■ 이희영의 열정(熱情) : 탈무드 그리고 유대인

 

저자는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다. 이후 석사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간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및 연구 기관인 사회과학고등연구원(École des Hautes Études en Sciences Sociales;EHESS)에서 박사과정을 밟는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은 1975년에 설립된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 및 연구교육을 임무로 삼고 있는 기관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역사인류학과 유대학을 공부한다.

저자의 유대인에 대한 매혹은 유대인 생활사 강의에서 시작된다. 낯선 나라에서 듣는 낯선 민족의 생활사였다. 그러다 점점 낯선 민족과 가까이 하게 된다. 강의를 듣던 유대 친구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사귀게 되는 것이다. 이들과의 사귐으로 유대의 문화와 생활습관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는 유대인 친구들이 권하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유대학자가 되는 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친구들이 권하는 책들은 에드와르 라이셔 <유대인의 인생Une Vie de juif>, 조지 아이젠베르 <탈무드 입문>, 바라자니 <탈무드 주해와 히브리어‧프랑스어 성서사전>, 마크 알랭 <탈무드로의 초대>, Y. 간즈 <장구한 세월 유대인들의 6000년 오디세이 역사>, 도리 로트느메어-우아크넹 <유대인 웃음의 백과사전>, D. 말키 <탈무드와 그 지도자들>, 레베레흐트 슈트락 <탈무드 입문과 마드라시 입문> 등이었다. 친구들이 권하는 책들을 읽으며 저자는 점점 유대인에 매혹된다. 유대인의 어떤 점에 이끌린 것일까. 저자에게 유대민족은 피와 눈물의 박해 속에서도 강철같은 심지와 유연한 발상과 정신을 겸비하고 있고 독선적이면서도 적응력이 높고 사물을 보는 눈이 넓은 민족이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데가 있는가 하면 낙관적이기도 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민족이었다.

유대인들과의 사귐과 유대인들에 관한 책에 이끌리는 것은 저자에게는 필연적 운명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유대에 관한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대인에 관한 책들을 번역하고 묶어 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특히 저자는 제 나라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이 많은 유대민족의 성공요인과 저력에 대해 주목했다. 저자가 보기에 그것은 탈무드였고 그것은 그들의 생활철학이었다. 이로써 저자는 읽은 다양한 책들을 정리하고 보다 쉽게 풀어 탈무드에 관한 본격적인 책을 집필하게 된다. 그것은 5년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이 흐른 끝에 <솔로몬 탈무드>를 세상에 내놓는다.

저자는 <솔로몬 탈무드> 외에 1,000페이지 분량의 <바빌론 탈무드>, <카발라 탈무드>를 출간하여 탈무드 시리즈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대인들의 생활철학과 지혜를 찾아내어 관련 저작들을 만들어 내고 번역한다.

그리하여 <세계 최강 성공집단 유대인>, <불굴 5000년 유대역사의 비밀>, <로스차일드-유대최강상술>, <아들아 돈을 쏴라>와 같은 책들을 번역하고 <유대인 공부잘하는 방법>, <유대인 예지방법>, <탈무드 황금률 방법>, <유대 부자철학>과 같은 책들을 저술하였다. 이렇듯 유대인의 지혜와 철학, 그들의 경제철학 등을 담은 책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또한 개정하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유대학자이자 탈무드 연구가로서 저자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 이희영의 열망(熱望) : 꿈이 열리는 책나무, 여성

 

저자는 꿈은 이루어질 가능성보다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 중 1%만 이루어진다 해도 꿈은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저자가 가지는 꿈은 무엇인가. 저자는 꿈이 열리는 책나무 하나를 품는다. 그리하여 여성의 삶이 힘을 주는 글을 모으기 시작한다. 여러 나라의 신문칼럼, 잡지기사, 오랫동안 걸쳐 해온 일, 지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스크랩하면서 여성들을 위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것이다.

처음 저자가 펼친 꿈나무는 <살아가는 나날 꼭 알아야 할 88가지>이다. 이 책은 1988년 권미영 선생이 엮은 책을 저자가 다시 옮긴 것이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긴 것으로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인생의 지침 88가지를 모았다.

이와 같은 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저자 자신 역사인류학 공부 이외에 박사과정 중 여성학 공부를 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것에서 나아가 저자는 여성생활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지적 여성 생활방법Ⅰ‧Ⅱ‧Ⅲ>권과 <여자가 강해지는 88습관>, <여자가 놓쳐서는 안될 1% 찬스>를 내놓는다. <지적 여성 생활방법Ⅰ‧Ⅱ‧Ⅲ>권은 각각 <끌리는 여성은 1% 열정 다르다>, <끌리는 여성은 1% 열망 다르다>, <끌리는 여성은 1% 열성 다르다>라는 제목의 3권이다. <여자가 강해지는 88습관>은 평범한 사실 가운데서 아주 특별한 습관을 이끌어내어 글을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으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관념으로부터 실생활에 빛나는 기지를 발휘하는 가르침을 뽑아낸 책이다. <여자가 놓쳐서는 안될 1%찬스>는 행복에 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경쟁하는 이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와 같이 여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어낸 이 저작들은 공통적으로 탈무드의 우화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삶에 대한 어떤 이론을 강론한다거나 교훈이나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부드러운 언어로 얘기하듯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책들 요소요소에 저자가 열정으로 다듬었던 탈무드나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지적 여성 생활방법 Ⅱ권-끌리는 여성은 1% 열망 다르다>에서 저자는 책 속의 샤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한다. 39살이라는 나이를 겪으며 살아온 많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인생의 조언을 하겠다고 말이다(2007년 저자가 39세라면, 지금 저자는 40대 중반이다). 그 나이 또래가 되면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 세상에 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때때로 우울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들이 가졌던 열망이 사그러들듯 꺼져가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열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사원으로 시작하여 온갖 노력 끝에 대학교수와 여성생활문화연구소 CEO가 되었는데 이와 같이 저자가 이어온 노력의 여정과 자신을 연마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것이 미래의 꿈에 대한 ‘열망’이었다고 말이다.

 

■ 이희영의 열성(熱誠) : 감성

 

저자는 여성에겐 곱고 맑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성들이 부러워하는 여성들만이 가진 고유한 본질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아 저자가 받은 사랑과 지혜를 젊은 여성들에게 되돌려 줄 기회가 있음을 감사해 한다. 삭막한 바람에도 시들지 않는 마음 속 열성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준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와 같은 감성과 열성은 또다른 감성으로 발현된다. 바로 유대인에 관한 번역서가 아니라 문학과 철학들에 대한 번역이 그것이다. 저자는 저자가 가진 여성학적 감성과 오랜 공부와 열정으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열성적으로 번역물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사르트르의 <구토>, J.D 샐린저의 연인이었던 조이스 메이나드의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를 비롯해 <아미엘 인생일기>, 시몬느 보봐르의 <제2의 성>, 철학자 베르그송의 <웃음> <창조적 진화>, 시몬느 베이유의 <철학강의>가 그것이다. 이와 같이 저자는 지성과 감성을 넘나들며 다양한 책들을 펴내고 번역하며 저자의 감성을 녹여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참고 자료

 

•이희영, 지적 여성 생활방법Ⅰ‧Ⅱ‧Ⅲ, 동서문화사, 2007.

•이희영, 여자가 강해지는 88습관, 동서문화사, 2008.

•이희영, 여자가 놓쳐서는 안될 1% 찬스, 동서문화사, 2008.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Talmud

⇒ 탈무드는 히브리어로 연구, 배움이라는 뜻으로 유대교의 <토세프타>를 포함한 규전 율법 모음과 <미슈나>에 대한 학문적 주석이다. 유대교의 율법, 전통적 습관, 축제・민간전승・해설 등을 총망라한 유대인의 정신적・문화적인 유산이다. 유대교 두 학파가 각각 <바빌로니아 탈무드>, <팔레스타인 탈무드>를 만들어 계승되고 있다.

⇒ <미슈나>는 유대 구전 율법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법전이다.

 

 

유대인은 솔로몬 탈무드를 만들고 솔로몬 탈무드는 유대인을 만든다

 

p68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 팔레스타인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65만 명의 유대인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지도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북받치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다.

“유대 민족의 역사적 권리와 국제연합 결의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수립하고 이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을 선포한다.”

⇒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 이 날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듯 그들의 오랜 유랑과 고난과 핍박의 설움을 날려버릴 역사적 순간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 건국 선언을 외친 이는 유대 국가건국위원회 의장 ‘벤 구리온’이다.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의 탄생지다. 여기서 최초로 국가를 만들었고 책 중의 책(성경)을 세계에 전했다.우리는 이곳에 이스라엘 이라는 유대인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다.”

⇒ 팔레스타인들의 입장에서 : 유대인들은 건국적이고 역사적인 승리의 날일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잘못도 없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재앙의 날’(알 나크바)이다. 이스라엘의 독립선언 직후 ‘이르군’(Irgun, 히브리어로 '민족군사조직')과 ‘하가나’(Haganah, 히브리어로 '방어')를 비롯한 유태 무장 조직들이 행동을 개시한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그들의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해 테러도 불사한다는 극렬 유대민족주의 무장조직으로 1946.7.22일,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을 폭파해 91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독립선언 이틀 후인 5.16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 아랍 연합군 2만 명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진입하며 제1차 중동전쟁은 서막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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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영토 변화

<출처: 올리브나무(원본), http://across1000.tistory.com/230>

 

⇒ 유대인들이 말하는 역사적 권리란 무엇일까. 아주 오래 전 그들이 그 땅에 살았다는 것?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땅에서 살게 되리라는 성경말씀? 국제연합의 결의가 그들을 그 땅에 살게 하지 않았다면 그 터전에 자리잡지 않았을 것인가? 유대인의 오랜 유랑과 핍박을 이해한다. 특히 나치에 의한 유대학살 때문에 더욱 더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장들을 접하고 책 서두에서부터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을 동일선상에 두고 보면서, 팔레스타인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게 그들을 탄압했던 유럽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민족일 뿐이다.

 

p68 1882년 팔레스타인에 최초의 시온주의자 정착촌이 건설됐고, 1918년 중동을 점령한 영국은 벨푸어 선언을 통해 시오니즘을 지지한다. 그러나 유대인과 아랍민족의 지지가 동시에 필요했던 영국이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임으로써 유대인 국가 건설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벨푸어선언은 1차대전 기간 중 영국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한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의 선언이다. 이것은 미국내 유대인의 환심을 사 미국을 1차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1차대전에서 독일편에 서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하였다. 제1차대전이 얼마나 많은 나라들의 이익을 위한 이해가 얽히고 설키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맥마흔 선언이다.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Henry Macmahon)은 아랍인들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면 전쟁 종결 후 아랍지역의 독립(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국가 건설 포함)을 보장해준다고 했다.

시오니즘(Zionism)은 고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이다. BC 11세기경,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던 땅에 유대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나와서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부터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던 유대인들의 국가는 BC 8세기와 BC 6세기, 각각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를 떠돌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자 ‘시오니즘’이 확산되어 간다. ‘벨푸어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유대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2차 대전 종결 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되었다. 이와 같이 유대인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유대무장 조직들의 테러 활동은 거세졌고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던 영국군, 아랍인, 동족 유대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테러를 벌인다. 특히 1948.4.9일, 예루살렘 서쪽 5km 지점에 위치한 '데이르 야신' 마을을 공격한 '이르군'은 254명의 마을 주민들을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당시 이 작전의 총지휘자 '메니헴 베긴'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어, 1982년 레바논 침공을 명령한다(참조:http://blog.ohmynews.com/gompd).

 

p69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세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최대 강국으로 떠오른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친(親)시오니즘에 힘입어 팔레스타인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갔고, 1947년 11월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국가와 유대국가 둘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우리나라에서도 3․8선으로 자행되었던 UN의 줄긋기. 이들의 줄긋기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거기에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 1947.11.29일, UN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의 약 56%를 유대인들의 국가에 주는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한다. UN 결의안은 아랍세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고, 반 년 뒤 이스라엘이 국가를 선포하자마자 팔레스타인 지역은 본격적인 전쟁에 휩싸였습니다. 이듬 해 2월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계속된 치열한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당시 인구의 1%에 해당하는 6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아랍측 에서는 그 이상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휴전 결과 해안 평야 지대인 갈릴리와 네게브 지역은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고,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은 요르단이 통치,가자 지구는 이집트의 행정권 아래 편입되었다. 예루살렘은 양분되어 요르단이 구시가지가 포함된 동부를 관할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서부를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삶의 근거지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아랍세계 사이에서는 세 차례의 전면전이 더 일어났고, 불안한 휴전 상태를 지속해 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유대인을 탄압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지만 유대인을 억압한 것은 그들인데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 2차 대전 중 유대인 학살에 책임을 느낀다면 이스라엘인을 그들(유럽) 땅으로 이주시켜 살도록 해야 한다.” 이란 대통령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말이다(참조:http://blog.ohmynews.com/gompd)

 

p69 인류 역사에서 유대인은 제국을 세우지도, 대성전을 짓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모든 에너지를 인간성 연구에 쏟았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예지 습득에 힘써 왔다. 그것은 인내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 인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그들의 인내를 2천년 역사 동안 객관적인 자기 나라라는 땅이 없이 떠돌아 왔음에도 제 땅에서 그들의 건국을 이루어냈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 진다면, 글쎄, 인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p70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유대인은 철학 스피노자·베르그송·마르크스·룩셈부르크·비트켄슈타인·스미스·사무엘슨·촘스키가 있다. 또한 심리학 프로이트·아들러, 자연과학 뉴턴·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 음악 멘델스존·쇼팽·말러·발터·거쉰, 미술 피사로·모딜리아니·샤갈, 영화 에이젠슈타인·채플린·와일러·알렌·스필버그·스트라이선드, 문학 하이네·프루스트·카프카·싱어·챌린저·샐린저, 경제금융 로스 차이들·뒤퐁·시트로엔·머독·소로스·GE·IBM·골드만삭스, 언론출판 퓰리처·로이터·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정치 디즈레일리·레닌·키신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예수 또한 유대인이다.

⇒ 유대인들은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고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집단으로 평가받는다. 역사적으로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업적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모두 유대인이다. 이들의 개별적인 특성을 넘어 어떻게, 무엇이 ‘유대인’이라는 민족적인 정서 속에서 교집합을 이루는 것일까.

 

p71 그들의 생활철학이 유대민족 힘의 원천이었고, 그것은 탈무드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 모든 나라에는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관습과 규율과 지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유대민족의 탈무드가 경외되는 까닭은, 탈무드 자체의 힘일까 아니면 뛰어난 업적을 보이는 유대인들로 인해 더욱 가치가 부여되는 것일까.

 

1. 불굴의 방패, 절대의 가치

 

유대 5000년 솔로몬 탈무드

p101 그들은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폭넓고, 깊고, 새롭게 전하고 있다. 그 전통은 신의 계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나 그 연구와 응용은 인간의 손에 있었다. 이것을 위해 인간에게 요구된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이성을 버리면서 인간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 신으로부터 이성을 받았다. 인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성을 버리는 판단이라면, 신에 의해 부여받은 ‘이성’이란 어떤 의미인 것일까.

 

p103 유대인들은 삶에는 미리 정해진 답이 없고, 상황 상황에 따라서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므로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토론은 자기의 길을 찾기 위한 훈련의 흔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속담이 유대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한 마디로 나타내 주고 있다.

⇒ 우리들 모두의 삶에도 미리 정해진 답이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삶에 미리 정해진 답하나는 있다.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땅이고, 그들은 종국에는 그 땅에서 살게 되리라는 것이다.

 

p103~104 수천 년에 걸쳐서 기록된 인간의 행동양식, 사고방식, 반응, 기쁨이나 슬픔, 고난, 성공이라는 것을 배움으로써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는 전체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이나 한도를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랑인이 되어도 힘을 잃지 않고 늘 새로운 힘을 유지한 것은 오로지 유대인이 성서를 마음의 지주로 삼고 탈무드를 지력의 지주로 삼아서 배워왔기 때문이다.

 

p104 자신의 머리로 전통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남의 손에 의존해야만 하는 장님과 같다.

 

p105 유대인은 신체적인 특징이 없고 인종적으로는 혼혈민족이다. 전 역사를 통해 각양각색의 민족과 접촉해 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피가 섞여 있다. 유대인이란 최종적으로는 유대교를 믿고 그 생활 방식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유대인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한국인, 일본인이라고 부를 때처럼 해석을 내려야 할지,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행할 때, 그들이 유대인 구별방법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유대인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신체적인 특성에서 그것이 나타나는지, 그들은 왜 유대인이라 박해를 받았는지..일단, 유대인은 유대인이란 신체적인 특징이 없다 한다. 혼혈민족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유대인은 그들의 신념을 믿는 이들을 유대인이라 칭한다. 결국 유대인이란 그들의 전통과 관습을 이행해 가는 이들이 아닌가.

 

p108 각 지역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저마다 랍비들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환경에 맞도록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했다. 그래서 논쟁과 토론이 그치지를 않았다. 그러기에 유대인의 삶에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는 탈무드는 수많은 논쟁과 토론의 기록이다. 그들은 논쟁과 토론을 하되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대해 소수의 의견과 다수의 의견은 있을지라도, 어떤 견해는 틀리고 어떤 견해는 맞다는 식의 선을 긋지 않는다. 이러한 탄력성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유대인이 유대인으로서의 동질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 어떤 의견에 대해 옳고 그름보다는 보다 바람직함이 타당하지 않을는지. 토론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리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다. 다양한 생각들을 통해 생각을 전진해 나가는 것.

 

p109 유대 민족사에서 바빌론 포로기와 그 이후 시기는 토라를 유대인 공동체의 규범으로 하여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는데, 그 가르침을 현실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는가가 중대한 문제였다.

⇒ 토라는 율법서로 모세오경 혹은 구약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약성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책이다. 토라는 모세 오경(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을 가리키나 좀더 넓은 의미에서 성경 말씀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성경 전체란 오로지 구약성경만을 가리킨다.

 

율법학자 랍비

p113 그들에게 있어 율법은 생활과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윤리적, 정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법적 수단이었다.

랍비는 계율을 보다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 언제나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랍비가 관장한 율법은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 rabbi란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님’(요한 9:2)이라는 뜻의 헤브라이어다. 1세기에 이르러 보편화된 용어로 유대교의 지도자제도로 정착되었다. 랍비가 될 사람은 구약성서와 탈무드에 대한 연구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랍비교육과정에는 다양하고 총체적인 지도력 배양을 위한 과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기능은 유대교 내의 다양한 분파들에 따라 서로 다르다. 유대인들 사이에도 정통파·보수파·개혁파가 있어 분파마다 랍비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따로 있다.

 

p113 랍비는 구조적으로 완성된 일관성 있는 사상체계를 구축한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변화나 열정에 흔들리지 않고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지적인 세계에서 사색에 잠기는 학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랍비는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대 사람들과 같은 대지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랍비는 늘 공동체와 함께 했다. 그들은 사회 속에 있었으며 사회의 일원이었다.

⇒ 일반적인 기능과 역할은 종교행사와 각종 의식을 주재하며, 각종 교육활동에 폭넓게 참여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와 봉사활동에도 관여하며, 여러 형태의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일부 랍비는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지면서 시간제 봉사직으로 랍비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공식으로 임명받은 랍비가 없는 경우 공동체 내에 의식을 행할 만한 경건함과 인격을 구비한 사람이 랍비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14세기 이후 랍비들에게 봉급이 지급되었는데, 이는 생활에 구애받을 경우 그 직책수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제자들이 랍비라는 경칭으로 부르는 것을 경고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참교사이며 그들은 모두 ‘형제들’이기 때문이었다(마태 23:7~8).

 

p113~114 그들이 세속의 과학적인 일이나 연구에도 손을 댄 것은 토라 해석의 성과를 높여 응용하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갖 지식은 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계시이고, 신이 창조한 우주를 아름다움과 경이로 충만케 한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유대인들의 모든 생활은 신과 그분의 말씀, 성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14 탈무드의 좋은 점은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런 교사들의 좋지 않은 기록을 배제하지 않고, 정직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던 랍비는 교사로서 전해주고자 하는 가치관을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 보여주였다.

⇒ 최근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 교사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 가리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대책을 세우고 문제해결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재빠르다. 이것은 잘못을 덮는 문제와는 다르다. 적극적인 문제해결과 보다 나은 것에 대한 고민없이 ‘이미지’만을 생각하는 ‘학교’사회의 문제이다.

 

p117 지금도 속죄일 예배에서는 이런 현자들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유대 역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고난의 시대를 산 현자들의 영웅적 행동과 결의의 증언일 뿐만 아니라, 랍비들이 항상 적극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왔다는 것을 상기하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18 로마군 포위 아래에 잇던 예루살렘에 최후의 순간이 닥쳐오고 있었다.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군사적인 승리는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의 신전이 로마인들에게 파괴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유대인은 로마인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을 가져야만 된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했다.

⇒ 요한나 벤자카이라는 랍비는 예루살렘의 최후의 순간, 교육을 지켜낸 사람이다. 로마 군대가 유대 성전을 파괴하는 그 순간에 요한나는 자기가 아프다는 소문을 내고 곧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게 했다. 그의 장례를 위해 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관 속에서 유대인 내의 반대파와 로마 군의 칼에 찔릴 뻔하고 로마군 사령관을 만나게 된다.요한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사령관에게 랍비가 일할 수 있는 학교를 하나 마련하고 그것만은 절대로 부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예루살렘이 파괴되어도 학교만 있으면 유대인의 전통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고 사령관 역시 그 약속을 지켰다. 마치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에 상록수에 나오는 것처럼 수많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것이 생각난다. 교육의 힘이 개인을 성장하게 하고, 그 힘이 모여 전체를 성장하게 한다. 만약 그 순간 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유대인들은 달라졌을까?

 

p120 유대인이 상복을 입는 기간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아주 짧다. 그 기간에는 몹시 슬퍼해야 하지만, 상복은 너무 오래 입으면 안 된다. 거기에는 슬픔은 너무 젖어, 현실을 직시할 수 없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혜가 들어 있다.

⇒ 유대인의 가르침과 유교의 가르침의 차이가 나타난다. 유교에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상복을 입고 3년동안 묘 옆 여막을 짓고 기거하며 보모님이 살아 있을 때 처럼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올리는 상이 있다. 보통 3년이다. 공자는 이에 대해 "자식이 태어난 지 3년이 된 뒤라야 비로소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이다. 대체로 3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법이다"라고 말한다.

 

p120 기도하는 것은 신을 위하여 희생을 치르는 것이다. 자기보다 큰 존재에 대하여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겸허해지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공하고 건강할 때라면, 살아남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그리고 삶이 위협받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만큼 용기가 필요하다.

⇒ 고난이 사람을 보다 강하게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p121 유대인들은 패배를 통하여 설사 외부의 힘에는 질지라도, 자신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운다. 외면적으로 패하는 것과 내면적으로 패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민족들이 남의 영토를 정복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동안, 유대인들은 자기의 마음을 정복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패배해도, 그리고 어떤 역경에 처할지라도, 결코 자기들의 내적인 힘을 잃은 적은 없었다. 내적인 것이란, 곧 그들의 정신이요, 가족이요, 문화요, 교육이다. 그리고 가족과 민족의 단결인 것이다.

⇒ 외유내강. 역사에 전하는 많은 위인 중 내면적인 강함으로 보다 많은 것을 이끌었던 이들이 많다. 본질적으로 내면적으로 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p121 미슈나와 그 주해 게마라를 합친 것이 바로 탈무드이다. 그러므로 탈무드는 2종류의 책이 한 권에 묶인 것과 같다. 미슈나는 히브리어, 게마라는 아람어로 씌어졌고, 완성된 연대도 약 300년의 차이가 있다. 지은이도 다르다. 그러나 테마는 똑같이 구전율법이다.

⇒ 미슈나란 헤브라이어의 ‘반복(反復)’이란 뜻의 슈나(šānāh)에서 유래한 말로 되풀이해 가르치는 구전이란 뜻이다. 이것은 《탈무드》의 제1부를 구성하며 글로 된 율법이나 구전 율법에 근거하고 있다 내용은 농경·제례·여자(결혼)·법(민법·형법)·희생·정결법 등의 6부로 나누어져 있다. 유대교에서는 모세의 율법(토라) 다음으로 중요시해 왔는데, 신약시대 유대교에 관한 연구에는 아주 중요한 문서이다.

⇒ 게마라(Gemara, 설명을 한 각주, 주후 300~400)는 다른 여러 의견들의 분석을 통해 율례가 된 것을 의미한다.

 

p122 성서는 원래 신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보기에 모호한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거기에는 신의 말씀을 사람이 행동으로 옮길 때의 확실한 방향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의도가 분명하지 않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나열된 부분도 있었다. 법률과 제도가 일반적인 언어로 적혀 있을 뿐 세세한 기술이 없어서, 그것을 지키는 방법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러 번 되풀이해 나오면서도 왜 그렇게 빈번하게 나오는지 까닭이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명백한 모순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 성서가 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신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인가. 근본적인 것은 믿음의 문제이겠지만 성서의 명백한 모순을 찾는 것, 재미가 쏠쏠하다.

 

p122~123 성서의 경우, 이러한 모호함과 어려움을 저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을 읽는 사람의 연구와 이해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성서를 저술한 바로 그 손으로 창조된 ‘자연’도, 언뜻 보아서는 그 운행법칙을 읽어서는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모순으로 보이는 말도, 탐구심과 끈기를 가지고 연구했을 때, 비로소 그 숨겨진 의미가 명백해진다. 그것이 가능하고 안하고는 적절한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 애매모호함으로 그에 대한 연구는 자의성이 부여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해석의 기본은 기독교에 대한 위대함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면 비기독교인들에겐 반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p134 미슈나에 견해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양쪽의 견해를 모두 기록한 뒤, 어느 견해가 바람직하고 어느 견해가 권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지지하는 교사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익명의 의견도 따라야 할 관행과 원칙의 규범으로 여겼다.

⇒ 견해에 대해 바람직한 의견과 권위가 있는 견해는 확연한 차이가 있을 듯하다. 우리는 때때로 권위있는 자의 의견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니까 말이다.

 

p139 게마라는 예시바에서 주고 받은 토론을 모조리 기록해 놓았다고 해도 좋다. 토론과 여러 의견이 서로 부딪힘으로써 생생한 표현이 있고, 질문과 논쟁으로 넘치고 있다. 장황한 의견이나 인용도 많다. 구두로 하는 토론이 불러일으키는 폭넓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옆길로 새기도 하고, 하나의 말이나 법률, 사건, 혹은 특정 선생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연상이 떠오르기도 하며, 논쟁의 본론과는 거리가 먼 말이 언급되는 일도 있다. 한 절을 인용하면서 다른 한 절을 말하기도 하고, 반드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는 해석이나 의견을 언급하는 일도 있다.

⇒ 예시바는 종교학교이다. 예시바의 이 토론분위기, 참 좋다.

 

p139 ‘비유한 이야기는 그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토라의 말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유한 이야기를 옹호하는 인용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중요한 진주를 잃은 여왕이 값싼 촛불로 그것을 찾은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야 하겠다.

⇒ 비유한 이야기는 사물의 특징적인 것을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도록 해준다.

 

탈무드의 두 갈래

p145 랍비들이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한 과제는 일상생활과 관습적인 관계 속에 신에 대한 의무감을 넣어 성스러운 신의 뜻을 끊임없이 느끼는 일이었다. 신의 존재를 신성한 장소에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길을 걷고 있을 때도, 누워 있을 때도, 일어날 때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일상속에서의 체화로군.

 

p145 그들에게 최대의 목표는 사람들을 법률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현세의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보다 높은 생활, 보다 높은 길에 몸을 바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을 법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많은 듯하다. 이제야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띄어쓰기 하나 되지 않은 법령, 한자로만 기재된 법령들.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령들을 보며 이것이 결국 인간에게 적용되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p146 이기주의와 탐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로 우리의 에너지와 의지와 행동을 위쪽으로, 또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 에너지가 멈추어진 것은 아닌가, 에너지가 빠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끊임없이 행동하고 사고하며 내 스스로 에너지의 방향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긍정적인 에너지.

 

p147 밖으로 나타난 행동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한 인간의 성격에도 관심이 쏠린다. 못된 짓을 저지른 사람에게 희생된 자의 고통과 괴로움을 인정하면서 아울러 그 못된 짓을 저지른 사람의 인간성이나 비극적인 면도 인정하고 있다.

 

p147 행실보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가지는 많이 있지만 뿌리가 뻗지 않은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한 나무는 바람이 불면, 뿌리째 뽑혀 쓰러진다. 그러면 행실이 지혜보다 나은 사람은 무엇에 비유될까? 가지는 적지만 뿌리가 많이 뻗어 있는 나무에 비유된다. 그러한 나무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 음. 행실보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뿌리가 깊은 것이 아니라? 이 비유를 곱씹어 본다.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행실이 뻗어나간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첫 물음에 대해 반대로 생각했다. 행실이란 지혜의 힘에서 뻗어나가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행실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뿌리가 튼튼한 것은 지혜여야 하고, 가지는 행실이어야 하는데.....

 

p150 사람은 주어진 기쁨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그에 대한 설명을 해야만 한다.

⇒ 주어진 기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그에 대한 설명 또한 할 수 없음이 아닌가.

 

p151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기 6장 5절)라고 하는 것은 선한 충동과 악한 충동 두 가지를 다 포함하는 것으로 당신의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악한 충동도 하느님을 향한 예배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 사악한 충동도 하느님을 향한 예배에 쓸 수 있다. 사악한 행동을 하면서도 나를 굽어 살펴주시옵고 그 일을 한번만 하겠다거나, 그러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악한 이유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때문이다라는 둥, 어떤 변명을 위해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2. 유대인은 누구인가

 

엘리트 유대인

p155 유대인은 이 무렵부터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집착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타향에서 살고 있는 모순된 국민성을 갖고 있었다. 박해에 의한 유대인의 이산을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그들은 이 이전부터 세계에 흩어져 있었다.

⇒ 디아스포라(Diaspora)를 겪으면서도 유대인은 이 세계에서 엘리트 집단으로 꼽힌다. 이들이 엘리트 집단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유대인’ ‘이산의 땅’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分散) ·이산’을 뜻한다. 한마디로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디아스포라에 관한 것 중 이것이 반유대풍조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대인들의 민족적 배타성, 경제적 번영, 특권들 때문에 많은 도시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혐오가 퍼졌다.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체사레아 등지에서 반유대인 폭동이 일어났고, 법정에서는 유대인에게 무거운 벌금이 부과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끊임없는 반목이 계속되어 결국 칼리굴라의 박해로 이어져, 학자 필로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로마 법정에 박해의 중지를 호소하였다. 그런데 이 박해는 칼리굴라의 암살로 끝났다. 반유대적인 편견(偏見)은 키케로, 페르시우스, 세네카, 퀸틸리아누스, 타키투스 등 로마의 문학가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2000년을 두고 전유럽과 중근동(中近東)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 집요하고도 비이성적인 반유대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참조:두산백과)

 

p156 교리에 의하면 유대교는 유대민족이 ‘선민(選民)으로서 하느님과 계약을 한 데서 시작된다. 그 계약이란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가나안(나중에 팔레스타인)을 받는 대신 인간으로서 보다 완성된 존재가 됨으로써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다.

⇒ 유대인들에 대한 배격의 이유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저 ‘선민사상’때문이 아닐까.

 

p157 유대인 배척을 국시로 삼은 나치 독일은 결국 유대인을 ‘인종’으로서 정의했다. 독일 정부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5년 뒤인 1938년 3월에 정령(政令)을 발표해 ‘각 조부모 2명 이상이 유대인인 사람을 유대인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라는 한 사람이 주도하여 확산되었지만, 이에 동조한 것은 당시의 힘을 가지고 있던 유럽의 나라들 역시 부추겼다는 것도 부인하지 못할 듯하다. 미국을 포함하여. 유대인이 신체적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유대인이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 외견상으로 유대인을 식별할 수 없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p157 유대인은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동의 셈계 민족이므로, 오늘날에도 셈족의 특징적인 골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유대인은 피에 의해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유대교라는 ‘사상’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유대인이 된다.

⇒ 유대인들은 그러한 민족대학살 속에서도 그들의 ‘사상’을 버릴 수 없었던 사람들..

 

p158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하는 것은 유대적인 정신과 발상이다. 즉 유대인은 유대인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자이다. 유대인에 관하여 경탄해야 할 일은 전세계에 흩어져 압박받고 살아왔음에도 저마다의 땅에서 몇 십 세대에 걸쳐 독자적인 문화를 잃지 않고 지켜온 것이다.

⇒ 반대로 어쩌면 그렇게 제 나라 없이 떠돌며 압박을 받았기에 제 문화에 대한 고수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외국을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p159 힘으로 성립된 국가는 국가 자체가 멸망해 버리면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사상으로 통치해온 국가는 국가가 없어져도 그 정신이 계속 존속한다. 유대인은 물질적인 부보다 정신적인 숭고함을 충실하게 넓힘으로써 현대까지 발전해 온 것이다.

⇒ 그렇게 믿는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도 정신적인 숭고함이 위대함을 알아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벌써 오래도록 힘에 의해 국가가 이끌린다. 힘에 대한 그들의 숭고함을 확장함으로써 국민은 멸망해 가는데 국가는 멸망하지 않고 있다.

 

p161 유대인에게 시간을 녹슬지 않고 썩지 않는 영원한 존재이다. 학교와 대학 등의 공간적 존재와는 달리 시간은 분리되는 일이 없고, 파괴할 수도 없다.

⇒ 시간은 분리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을 인식하는 이의 분리와 파괴가 있을 뿐.

 

p163 오랜 세월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자였다. 그러나 유대인만은 누구나 글을 읽을 줄 알았다. 오늘날 의무교육이란 유대인을 제외한 유럽 사람들에게는 아주 최근에 생겨난 제도이지만, 유대인이게는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는 몇 천 년 이전부터 실시되어 온 일이다.

⇒ 생각보다 문맹자들이 많고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낮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또한 이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으로 이어진다. 한글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이지만 참 예쁘다.

 

p163 유대교는 글자에 의해 지탱되어온 종교이다. 유대 어린이들은 우선 글자부터 읽는 것을 배웠다. 유대인의 지적 수준이 높은 것은 유대교가 글자로 지탱되어온 종교이기 때문이다.

⇒ 아랍권 뉴스가 나올 때 자막으로 쓰여진 글자를 보면서 놀라워하던 것이 생각난다. 글자가 아니라 그림 아닌가 하며 몇 번을 다시 쳐다보았던. 언어라는 것이 자의성을 가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러한 상형문자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p164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처음으로 자기 민족의 자유를 선언한 것은 18세기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자유야말로 인간생활의 기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대인 중에는 사회주의나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 자기민족의 자유를 선언한 것은 프랑스와 미국이라고 하지만, 자기 민족의 박해를 받아온 것이 유대인이기에 그들은 그들 자유에 더욱 강한 인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p165 사회사상가 E.프롬 또한 유대인으로, 그는 인간 사회심리 속에는 전체주의와 휴머니즘이라는 두 가지 조류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나치즘의 전체주의를 비판했다. 개인의 자유야말로 귀한 것인데, 그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적 권위에 의존하고 종속하려 하는 안일한 심리가 인간에게 작용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역시 유대인. 유대인이란 외모적인 특성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으로 구분된다고 했다. 혹자는 전체주의에 대한 선택 역시 개인의 자유의지라 주장할지도.

 

p166 로젠스토크는 유대교인 로젠츠바이크를 공격하고 그리스도교인이 되라고 몰아세웠다. 로젠츠바이크는 27살 되던 여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 이 시점에서 주욱,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의문에 집착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른 거야? 유대교가 기독교가 아닌가?

⇒ 유대교(Judaism)는 천지만물의 창조자인 유일신(야훼)을 신봉하면서, 스스로 신의 선민(選民)임을 자처하며 메시아(구세주)의 도래 및 그의 지상천국 건설을 믿는 유대인의 종교이다. 보통 유대교라고 하면 바빌론 포로(BC 586∼BC 536) 이후 '모세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발달한 유대인의 고유 종교를 말한다. 유대교 본래의 특색은 율법(律法)에 있다. 율법의 기초는 계약의 개념으로서, 이것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경제적·사회적 통념이었는데, 그것을 신(神) 대 인간의 관계 속에 끌어들인 점에 유대교의 특성이 있다.

⇒ 그리스도교는(Christianity) 1세기에 태어난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믿는 종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불교·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 인류의 구원자로 믿는 것을 신앙의 근본교의로 삼는다. 그리스도교 역시 로마카톨릭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파들로 나뉘어 퍼져 있다.

 

p166 만 하루 동안의 속죄일의 엄숙함은 다른 어느 행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유대인이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무거운 공기에 휩싸인다. 그것은 유대인 내면에 신의 심판에 불려나간다는 강렬한 공포감을 심어준다. 안식일이나 유월절을 무시할 수 있는 유대인이라도 속죄일에선 도망칠 수 없다.

⇒ 방언이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솔직히 초등학교 1학년도 안 되던 시절 옆집 아줌마의 방언하는 소리는 나를 무서움에 떨게 했다. 아마 그래서였나 어느 일요일, 아줌마가 자기 딸과 함께 나를 자기 교회로 가라고 한마디 했을 뿐이었는데, 고스란히 따라간 것은.

 

p168 유대의 신비주의는 본질적인 신학이며, 신의 세계 및 신의 움직임의 신비를 ‘창조와 세계 존재의 수수께끼’와 관련해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유대 신비주의는 신의 영광과 그 현현(顯現)에 관한 환상적인 신학을 가르쳤지만, 그것은 하늘 세계와 그 속에서 신의 나타남, 특히 영혼이 황홀한 무아지경 속에서 신적인 것을 환상적으로 경험하는 것 등에 관한 신비론이다.

⇒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 신비주의와 환상이 사라지는 듯하다.

 

p170 탈무드는 종교상의 최고 지위까지 올랐을 때에는 끝까지 성직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신과 사람과의 중개자인 대제사장의 신성성은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돈

p172 개인적인 재능 이외에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동일민족으로서의 강한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를 초월하여 서로 굳게 단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에도, 유대인끼리는 서로 굳게 뭉쳐 있었다. 온 유럽의 유대인들은 항상 서로 긴밀한 정보 교환을 하여, 국제적인 통상망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와 같은 조직망은 유대인들이 살아남는 경제적 기반으로서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 유대인들의 통상망. 연결.

 

p173 유대인 이외의 외국 상인들은 독일이나 폴란드에 정착하면 이윽고 그 나라 생활에 동화되고 만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사회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외국인’이었다.

⇒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사회를 고수하는 않은가.

 

p180 탈무드에서 랍비 라바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우선 하늘나라 문에서 ”너는 거래에서 정직했느냐?“라고 심문한다. 이것은 사후에 받는 첫 질문이다. 신이 제일 먼저, ”너는 얼마만큼 기도를 했느냐?“ ”너는 얼마만큼 자선을 베풀었느냐?“ ”너는 얼마만큼 사람을 도와 주었느냐?“고 묻지 않고, ”거래에 정직했느냐?“고 질문한다고 랍비들이 생각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 랍비 라바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그럼에도 아마 이는 탈무드 전체의 내용에 대한 대표성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고 본다. 탈무드는, 율법이라고 얘기했는데, 유대인을 나타내는 강한 인상과 더불어 황당한 면도 없잖아 있다.

 

p181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전제로서 자기애가 없어서는 안 된다. 자기애란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다. 상업의 목적은 자기의 이익을 완수하는 일이지 결코 자선은 아니다. 자기의 물질적 이익을 더욱 확대시켜 가는 것이 그 목적인 것이다.

⇒ 자기혐오 역시 극적인 자기에의 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p182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최대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강한 인내력을 들 수 있다. 둘째로, 해내고야 마는 정신이다. 셋째로 자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즉 자신(自信)이다. 넷째로 높은 교육수준이다.

⇒ 유대인에게는 문맹자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유대인의 금전철학

p185 속이 비어 있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 무엇인가 가득 들어 있는 자루는 무겁다. 그러나 빈 자루가 더 무겁다는 속담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빈 지갑이다.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빈지갑! 요즘처럼 빈지갑만 들고 다니는 때에 절로 공감이 된다.

 

p186~187 자신이 생존을 보장하는 만큼 유대인은 돈에 관해서는 남보다 더 냉정한 동시에 민감하며, 생명을 건 진지함으로 대한다. 그 심각함과 진지함의 정도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대인들의 속담이 이것을 집약해 보여준다. ‘돈은 모든 것을 움직인다.’

⇒ 돈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 돈은 양심을 움직인다. 신뢰를 움직인다. 사람을 움직인다.

 

p189 촛불과 돈이라는 주제를 연관지어 보면, 하누카의 8일 동안 밤마다 아이들에게 학업 성공에 비례한 금액만큼 돈을 주는 관습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된다. 그 돈은 아이들이 지난해 모은 ‘빛(light)에 대한 보상이다.

⇒ 하누카(Hanukkah, 히브리어: חנוכה ‘봉헌’)는 유대교 축제일의 하나로, 키슬레브의 25번째 날부터 8일간 치르는데, 이는 11월 말이나 12월에 있다. 첫째날에는 중앙 혹은 가장자리에 조금낮거나 높은자리에 위치해 다른 초를 켜 주는 역할을 하는 봉사의 초를 먼저 켜고 그 봉사의 초로 켜는자의 오른쪽부터 첫 번째가 되는 초를 점화하며, 이틀째, 삼일째 차례대로 한개씩, 오른쪽 바깥쪽 초에서 중앙쪽 초로 더해가며 불을 붙인다. 제 8일이 되는날은 9개의 구멍의 촛대에 모든 불이 켜진다. 하누카를 지킬때 사용하는 촛불을 메노라라고 하며 하누키야는 그 촛대이다(참조:위키백과).

 

p190~191 "돈은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되게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게 없으면 모든 것이 나빠지게 될 것은 뻔하지요."

덧붙여서 “세상에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요. 자기가 돈이 없으니까 억지로 태연한 척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돈이 가져오는 효과, 즉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에 불과해요.”

⇒ 참 유대인은 현실적이다라는 생각.

 

p192 인간이 권력이 있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때는, 그 인간 자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가 갖고 있는 권력과 지위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 그렇다. 내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 그들의 권력과 지위에 경의를 표하는 척 하는 것.

 

p195 가난뱅이는 4계절밖에 고생하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 가난뱅이는 4계절밖에 고생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하하.

 

 

3. 유대 부자철학 78:22

 

유대인의 경영원칙

p199 리더가 된다는 것이 달갑지 않고, 마음에 내키지 않고,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지라도,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용하라. 누군가는 리더가 돼야 하며, 그것이 당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라. 스스로 타고난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때로는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인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 내 자신에 대해서보다 타인의 리더 자질에 대한 평가를 하는 일이 있다. 결론은 아직까지 멋진 리더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적인 일과 관련하여 더욱 그렇다.

 

p204 유대인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교섭에 감정이 개입되면, 자기에게 불이익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억울해도 교섭하는 자리에서 감정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감정을 터뜨리면 상대는 자리를 박차고 떠나 버리고, 결국 교섭은 결렬되고 만다.

⇒ 교섭은 감정싸움이 아니라 이성싸움이면서,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p205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박해로 고통받아온 유대인의 교섭술이야말로 최고의 교섭 기술이다. 약점이 있는 자가 의지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교섭술이므로 자기 입장이 불리하다고 하여 두려워할 것이 없다. 상대편이 교섭의 마지작 순간에 나왔다는 것은 교섭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결국 상대방은 이쪽편을 힘으로 압박할만큼 강하지 못하거나, 용기를 내어 힘껏 강행하면 상대방 손해도 클 수 있다는 것 중 하나인 것이다. 어느 쪽이든 교섭의 여지는 있기 마련이다.

 

p207 모든 일이 그렇지만, 교섭에 있어서는 특히 깨어있는 안목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감정을 철저하게 억제하고 이익을 추구하여야 한다. 평소에 자기 감정을 내보이면 상대방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감정은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운치 못한 응어리를 남긴다. 깨어있는 안목을 가지고 자기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계산하면서 교섭할 것.

⇒ 교섭의 목적은 자기 이익을 성취하는 것. 누구든 자기 이익에 관한 한 탁월한 집착을 가지고 있어서 각자의 교섭 승리를 위한 노력은 치열할 듯하다. 교섭상태에서의 감정배제. 쉽지 않은 일일지라도 교섭의 상대방이 감정을 숨기는 상태에서는 감정이 배제된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갈 수 있을 듯하다.

 

p212 일상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고없이 철학·신학·법학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정보없이 비즈니스는 있을 수 없다.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이것이 유대인의 생활신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감정과 감성이란 다른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감정이란 내 기분이라면 감성은 자극에 대한 내 감각이다. 감정은 비즈니스 상에서 배제되어야 하고, 감성은 부흥되어야 하는 것.

 

p212 유대인은 고객이 원하는 것이나 불만을 재빨리 찾아 문제해결 방법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이 장사를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비록 하찮은 것이라 해도 그것은 점차 쌓여 큰 수요가 된다. 이것이 마케팅이다. 고객 한 사람의 문제라도 시장 전체로는 큰 잠재적 수요를 기대할 수 있다.

 

돈을 낳는 생활

p217 격렬한 주장, 독특한 의견, 상쾌한 결말, 이런 것들은 중동의 여러 민족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사막성’과 관계가 있다.

⇒ 사막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의한 성질이 사막성이라고 할 것이다. 중동의 민족들이 격렬한 주장에서 독특한 의견을 제시하고 나아가 상쾌한 결말을 형성한다는 사막성, 실제적인 사례로 겪어 보고 싶다.

 

p217 가장 중요한 것은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는 일이다. 작은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 큰 약속을 지킨 예는 없다. 작은 약속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다. 이런 사람은 꼭 막판에 가서 배신하는 법이다.

⇒ 늘 사소한 약속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큰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다. 갑자기 약속에서의 ‘사소한’과 ‘큰’의 차이를 묻고 싶다. 무엇이 사소한 약속이고 무엇이 큰 약속이란 것일까. 그에 대한 규정은 무엇인가. 결국 개인에게 있어 사소함이나 큰이란 그의 상황과 사고에 의한 것이다. 타인의 의견과 일치할 수도 상충할 수도 있을 것이고.

 

p219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비유에, 주인이 여행을 떠날 때 고용인에게 각기 1달란트씩의 돈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 한 사람은 주인이 준 1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파내어 돌려주었다. 그런데 다른 두 사람은 저마다 돈놀이를 해서 주인의 재산을 불렸다. 주인은 돈을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그래도 돌려준 고용인에게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을 알고 있었다면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 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마태복음 25장 26~27절)”하고 꾸짖었다.

⇒ 이를 유대인의 돈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예로 그냥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을 보자마자 왜 울컥했는지 몰겠다. 고용인이 노예로 느껴졌던 것일까.

 

p223 ‘해주었으면 하는 것’에 비하면 ‘해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훨씬 명백하게 느껴지며 ‘하지 마라’는 더욱 명확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 있을 수 없다. 설명도 단서도 필요하지 않다. 잘못이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해버린 뒤에 ‘아뿔싸! 잘못 착각했다’고 하는 것과, 아무튼 하지 않고 있는 것과의 차이---긍정형과 부정형에서는 그것이 다르다.

⇒ 우리나라는 표현에서 부정형을 더욱 강하게 쓴다. 내 어투를 되감기 해보니 나 또한 부정형의 말을 더욱 강조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p224 집단의식이 강한 사회에서는 혼자만으로 움직이는 어려움은 확실히 크다. 아무도 스스로 손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첫발을 내딛는 의의도 크다. 아무도 크지 않으면 사태는 바뀌지 않는다. 먼저 행동에 나서면, 이제까지 모호했던 의식도 따라서 확연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느리기는 하겠지만 주위로 파급된다. 전체는 바뀌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단념하지 말고, 먼저 나부터 시작한다.

⇒ 집단의식이란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 모른다. 세 명만 되도 의견의 일치를 강조하며 다수의 의견에 대한 횡포가 일어난다. 집단의식의 폐해를 알린 연구가 얼마나 많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역시 집단의식의 폐해이며...

 

p225 집단의식에 애당초 대단한 의미도 내용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숫제 무시해 버리는 것이 옳다. 정체가 분명하지 않는 것에 휘둘림을 당하면서 보내기에는 인생이란 너무나 짧다. 비록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이것이 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자기 혼자 걸어갈 수밖에는 없다.

⇒ 정체불명의 것에 흔들리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라는 말이 와 닿는다. 내 개인의 의견과 생각을 이루어가기도 모자란데, 잡단의식은 생각할 시간을 없애버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p228 여기서 말하는 죄란 신에 대한 반역을 뜻한다. 노동을 함으로써 신이 천지창조를 하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이 생긴다. 또한 율법을 배움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신의 규정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어 생활의 내면이 윤택해진다. 그러나 실생활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 관념적인 공부는 학자를 오만하게 만들어 오히려 위험하다.

⇒ 관념적인 공부의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고시공부가 아닐까 한다. 오랜 시간을 고시원이라는 곳에 갇혀 공부하다가 시험으로 법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며 현실과 유리한 관념적인 법 질서를 들이대기도 하는.

 

p228~229 그들은 인격적 자유란 확실한 경제적 독립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유대인을 상승지향으로 몰아가는 근원적 동기이다. 때문에 20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오니스트 개척자들은 유대인의 자유실현을 위해 노동에 힘썼다.

⇒ 청소년기 아무리 독립을 외치며 독립된 인격체라 주장하지만, 경제력이 없으면 결국 독립되지 못하는 것이고, 노인이 되어서도 경제력이 없으면 결국 살아가야 할 나날들 홀로 외로이 고립될 뿐이지 독립하지 못한다.

 

p229 우리는 육체노동을 그리스도교인처럼 신이 내린 저주라든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육체노동을 생활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 육체노동은 인간의 숭고한 기능이며 인간생활의 기초이며, 인간생활 가운데 가장 숭고한 것이다. 그것은 자유롭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긍지로 여겨야 할 것이 육체노동이다.

⇒ 나는 아직 육체노동을 인간의 숭고한 기능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난 가끔 이것은 살아가는데 있어 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초이며 숭고한 것이며 자유롭고 창조적일 수 있는 노동생활에 대한 기대가 그렇기에 나타나는 모양이다.

 

p232 노역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경우 그 고통의 정도가 동등하다면 등가교환의 원칙이 성립되지만, 한쪽이 가벼운 노동일 경우는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이 무효가 된다.

⇒ 이러한 공평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한다.

 

유대부자철학

p234 유대인의 역사는 구약성서 이래 유대 역사가 가르치는 바로는 남자라는 것은 일하고 돈을 벌어 오는 것이고, 여자는 남자가 벌어들인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러므로 상술이라는 것은 타인의 돈을 우려내는 것이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벌려고 생각한다면, 우선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가 가지고 있는 돈을 뺐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유대상술의 ‘공리’이고 “여자를 노려라”는 것은 유대상술의 금언이다.

⇒ 유대상술이 여자와 입을 노리는 것이라 한다. 여자들에게 소비되는 상품과 먹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역시 여자들의 소비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높다. 된장녀, 명품녀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여자들에게만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싶다. 남자들은 차인표 오토바이나 차 같은 고가의 제품에 이른바 ‘환장’하지 않은가.

 

p236 입에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소화되고 배설된다. 한 개 500원 하는 아이스크림도, 한 접시에 1만 원인 비프스테이크도 몇 시간 후에는 폐기물이 되어 배설된다. 즉, 입에 들어간 ‘상품’은 시시각각으로 소화되고 몇 시간 뒤에는 다음의 상품을 필요로 하게 된다. 팔린 상품이 그날로 소비되고 폐기되어 간다.

⇒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직장 때려 치우고 음식 장사나 할까하는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것이 바로 유대인과 같은 이러한 생각 때문이 아닐까.

 

p237 한국어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겨우 유교나 불교 정신을 기초로 하는 것 이외에는 전개할 수 없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 나의 사고방식은 겨우 유교나 불교 정신을 기초로 하는 것 이외에는 전개할 수 없다.

 

p239 유대상술에는 ‘모호’하다는 것이 절대로 있을 수 없고, ‘변명’도 절대 있을 수 없다. 극히 자그마한 일이라도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메모하여야 한다.

 

p239 사물을 하나의 각도로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으로서도 반인간이며 상인으로서도 단연 실격이다.

⇒ 사물을 하나의 각도로 바라보면 무언가는 나올 것이다. 다각도로 바라본다는 것은 한 각도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나 역시 한 각도보다는 다각도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카메라로 여러 각도에서 풍광을 담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p241 유대인이 믿는 것은 3개월 동안의 숫자뿐이며,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것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돈을 벌 작정으로 장사를 시작한 것이라면 냉정하게 합리주의에 입각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p244 유대인에 있어서 고유의 사상은 계약사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사실 계약은 불안정·북확실·불신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당사자간의 합의에서 성립되며, 계약에 참가하고 있는 자가 그 이행과 완수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 계약은 불신 사회에서 당사자의 신용과 선의를 전제로 하는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제도이다.

⇒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는 내내 상인의 철학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p246 상식적으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큰 변화나 대역전이 있을 수 있다. 변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그 변화를 발전의 기회로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 변화는 시시각각으로 찾아온다.

 

p248 경 위로는 해(咳), 잡, 상(상), 융(융), 면, 정(正) ,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

⇒ 불가사의가 수를 나타내는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p249 유대상술의 기본 법칙에 ‘78:22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1의 오차가 있으므로 이는 때에 따라 79:21이 되기도 하고 78.5:21.5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과 그에 내접하고 있는 원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의 면적을 100이라 한다면 그에 내접하는 원의 면적은 약 78이 되고 나머지는 22가 된다. 또 공기의 성분이 질소 78에 산소와 기타가 22인 비율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의 신체도 수분이 78, 기타 물질이 22의 비율로 이뤄져 있다. 이 ‘78:22의 법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질소 60에 산소 40인 공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또 인체의 수분이 60이 되면 인간은 죽고 만다. 그러니 ‘78:22’의 법칙‘은 결코 ’75:25‘나 ’60:40‘으로는 되지 않는 절대의 법칙이다.

이 법칙 위에 유대인의 상술이 성립되어 있다. 세상에는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연코 만다.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어다가 일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만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은행은 당장 문을 닫는다. 이를 유대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빌려주고 싶다는 사람’ 78에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22의 비율이 성립한다. 이와 같이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도 ‘78:22의 법칙’은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은 78이고 실패율은 22인 것이다. 실패율 22을 생각지 말고 나도 하면 78이 성공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 유대인들은 돈을 좋아하고 따라서 셈에 익숙한 것인지 이러한 78:22법칙이라는 특이한 수이 법칙을 생각해 내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법칙. 딱 떨어진 숫자도 아닌 이 법칙.

 

p252 유대인의 행복이란 인생의 목적인 사치스러운 만찬을 충분하게 취하는 데에 있다. 유대인은 그 행복을 즐기기 위해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쓰더라도 돈을 벌어들인다.

⇒ 유대인의 행복의 전제는 돈.

 

p253~254 이것이 유대인의 교육방법입니다. 토미는 장식장에 혼자 뛰어내릴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 말에 끌리어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손을 거두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두 번, 세 번 거듭하는 동안 토미는 아버지라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일지라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지금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어린 나이부터 가르친다니. 세상에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것 아닐까.

 

p256 지혜는 유산과 같이 좋은 것이라, 해 아래 사는 사람치고 그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혜의 그늘에서 사는 것이 돈의 그늘에서는 것이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틀림이 없다. 인생의 길을 깨친 사람이라야 이런 이득을 본다(전도서 7장 11~12절)

⇒ 해 아래 살고 있지만, 그 해를 가리는 것이 있다면 늘 그늘에서 살게 된다. 유대인은 지혜를 강조한다. 지혜는 중요하다. 그들의 지혜는 일상생활에서 ‘돈’과 함께 활성화되는 듯이 보이는 건, 그러한 부분만을 읽고 있기 때문이겠지.

 

p260 유대인들은 명승고적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타인종, 타민족의 생활이나 심리, 역사에 대해서는 전문가 이상의 호기심을 가지고 그 민족의 뿌리까지 알아내려고 든다. 이러한 호기심은 오랫동안 방랑과 박해의 역사로부터 온 타민족에 대한 경계심과 자기 방위 본능에 의한 슬픈 습성인지도 모르지만, 이 호기심이 유대상술의 바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것을 보게 되면 외피만을 보는데 급급하다. 큰 산만을 보는데 바빠 다른 것에 눈돌릴 새가 없는데, 유대인의 호기심이 비록 유대상술로 이어진다 해도,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것, 타인의 생활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봐진다.

 

p261 유대인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의 화살을 멈추지 않는다. ‘질문은 순간의 부끄러움’이란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쪽이 모호한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 도리어 큰 망신을 당할 지경이다. 그들은 완전하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완전하지 않으면 납득하지 않는다는 유대인의 성격은 상거래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무엇이든 완전히 납득한 뒤에 비로소 거래를 튼다는 것이 유대 상술의 경제 철학이다.

⇒ 모호함으로 불만족스러운 것보다 질문으로 모호함을 깨치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상술의 철학이다.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 거기에서 또다른 이어짐을 갖지 못하는 것.

 

p265~266 유대인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호화로운 만찬을 매일 밤 즐길 수 있는 사람이고, 매일 밤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을 몹시 존경한다. 유대인의 입장으로서는 청빈을 감수하는 학자 같은 존재는 훌륭한 사람도 아닐뿐더러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학문이나 지식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가난하다면 경멸하고 멸시한다.

⇒ 호화로운 만찬을 매일 밤 즐길 수 있는 것이 유대인의 행복이니까, 행복한 이들을 존경하는 것이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의 그 청빈한 학자들에 대해 유대인들은 얼마나 콧방귀를 낄 것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현자라 불리는 랍비들 모두가 부자여야만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듣는다는 것인데, 그들의 율법이 전해질 수 있는 것은 탈무드라는 경전과 그것을 가르치는 랍비들의 힘이 아닌가?

 

p268 유대인들은 일상적인 창조 활동 및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행동을 하는 창조의 주체가 되는 것을 피한다. 대신 세계의 마술에 걸리는 객체가 된다. 주위 환경에 창조적인 힘을 가하지 못하도록 막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 환경이 제시하는 바를 보다 잘 흡수할 수 있는 위치가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의 7분의 l에 해당하는 이 쪼개진 시간은 대단한 호사이기도 하지만 그 주의 나머지 시간 동안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데 필수적인 도움을 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들의 존재는 ‘송신 상태’가 아닌 ‘수신 상태’가 된다.

⇒ 창조의 힘을 부각하는데 창조는 모방에서 나온다는 말을 생각하며 유대인들처럼 행동해봄직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늘 우리는 하나의 가치에만 몰두한다. 역발상의 논리.

 

역경을 떨치고 일어서라

p282 유대인이 살아남은 것은 돈의 권력 때문이 아니라 위기를 참고 견디는 지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혜를 활용하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 위기를 참고 견디는 지혜가 돈과 연결되어 그들의 지혜는 든든한 경제력을 뒷받침한다. 유대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경제력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고 본다.

 

p294 내가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영리해서가 아니라 넓은 인맥 덕분에 남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난 최상의 조건을 추구했습니다. 항상 파느냐 마느냐, 사느냐 마느냐를 확실하게 했습니다. 타협이란 그 순간에 어느 쪽인가에 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애서 인간의 판단과 인간관계의 요소가 내 능력의 대부분입니다.

⇒ 성공의 요인이 사람이라는 것, 특히 그것이 상업이라면 중요한 부분이다. 영업왕, 판매왕들은 항상 사람들과의 인맥을 중요시하며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이끈다고 했다.

 

p300 냉철하고 논리성이 풍부한 두뇌가 개인이나 조직을 위기로부터 구하고, 휴머니즘에 가득 찬 애정이 사회를 구한다는 것이 로하틴의 삶의 방식이다.

⇒ 펠릭스 로하틴은 투자금융전문가다. 윌스트리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린다. 미국 투자은행 업계 대부로 평가받으며 워렌 버핏, 폴 크루그먼과 함께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견했고 이로써 통찰력 깊은 세계적 금융전문가로 평가받는다.

 

p307 탈무드에 의하면 예수살렘의 멸망은 사람들이 학자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한다. 소로스만이 아니라 유대인 실업가는 학문진흥을 위해 사재를 아끼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이 없는 세상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 예루살렘 멸망은 신약성경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에도 전한다고 한다. 기원전 589년 정월,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부터 유대인이 전세계로 흩어졌다고 한다.

 

4. 돈 버는 방법, 돈 쓰는 방법

 

유대식 협상

p316 자폐증적 인간과 대조적인 것이 유대인이다.

⇒ 오히려 나는 유대인에게서 자폐증적 증상을 느낀다.

 

p318 현대 사회에서는 강자와 약자의 차이도 상대적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지닌 힘은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가치관이 다양해져 사람들 사이의 의견대립이 더 많아졌는데, 이러한 현대의 대립은 ‘협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억압에 의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협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 거시적으로 보았을 대 사람들이 지닌 힘이 거의 균형으로 맞추어진다면 정말로 좋겠다. 아무리 봐도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시 저울이 올라갈 길이 없어 보인다. 협상을 이룰 테이블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기울어진 채 살아야 하나 심히 걱정이다.

 

p324 교섭은 일방적으로 이익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해결해야 함을 뜻한다. 한쪽 당사자가 100% 만족하려는 생각으로는 상대방과 합의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둘 다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하게 끝날 수도 있으나 서로 양보하는 것이 바로 교섭이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교섭이 서로 양보하는 것이라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섭은 내 것을 쟁취하는 것이란 개념이 더욱 지배적인 것 같다. 교섭장에 들어섰을 때 우선, 양보하겠노라 생각하며 들어서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일단은, 이룰 수 있는 것부터 챙기고본다가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p326 정직함도 중요하나, 상황 판단도 못하는 정직함이라면 있느니만 못하다는 뜻이다. 납기일을 무리하게 지켜 큰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반대로 상대가 먼저 약속을 깨는, 다시 말해 속는 경우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p329~330 유대인들의 재치는 인간미와 페이소스로 가득하고, 지적이며 기지로 넘치기 때문에 그 재미에는 깊은 맛이 있다. 거기다 조소와 야유, 게다가 역설 등을 스스럼없이 평소에 쓰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재밌는 것이다.

⇒ 유대인들의 재치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어릴 적 느꼈던 탈무드의 웃음의 포인트를 다시 읽으면서 자꾸 놓친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기에 이다지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행복한 부자 되는 법

p342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며, 자기답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남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돈을 찾아 헤매며,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시적으로 손에 넣은 돈을 잃어버리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 때로는 건강마저 놓치게 된다.

⇒ 남이 원하는 삶이 내 삶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는 삶. 그래서 그 착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데 때때로 그 착각 속에서 그것이 또한 안전함이라 또 착각한다.

 

p343 자기를 알고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꿈을 추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안정된 삶을 선택한 사람은,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지루한 인생의 종신형’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에 자신을 알려고 하는 작업을 게을리한 대가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법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면 사회적으로 아무리 성공해도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생에서 유리한 일을 찾은 결과가 지루한 인생의 종신형이라는 말은 좀 비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 꿈이 안정된 삶이었던 사람은.....안정된 삶이란 꿈을 이루고 난 뒤 행복해 할까, 아니면 새로운 어떤 욕구를 느낄까.

 

p350 성공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 보잘것없는 사람도 가족처럼 상담에 응해주고, 자신의 인맥 중에서 가장 적당한 인물을 소개해 준다. 그 뒤에도 정중하게 대하며, 마치 당신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거래 상대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런 대접을 받으면, 언젠가 반드시 무언가의 형태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한 젊은이를 도와주고 싶어 할 뿐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 성공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난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알 듯하다. 이 세상은 결국 인간관계의 연속이고 관계맺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 결국 사업도 사람이고 인간관계의 연속인 것이다. 인간생활의 모든 바탕은 인간과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p351 여러 부류의 사람과 친구가 되라. 그들은 당신의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인맥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 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평소에 만나기 힘든 톱클래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과 대등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교제하라. 그러면 당신의 성공은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란 말처럼 사람은 대체로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늘 논쟁을 일으키거나 오히려 단절된 관계를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관계가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사에 더욱 친밀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와 다른 이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p354 실패란 포기해버렸을 때 일어나는 현실이다. 성공하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실패가 되는 것이다. 실패를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본격적인 성공이 머지않았다고 할 수 있다.

⇒ 실패가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포기의 다른 말이라는 것. 다시 한번 새겨봄직하다.

 

p359~360 풍부한 표정을 지으면 무언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즐겁다. 그러므로 회사나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무언가 매력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라. 단순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여겨라.

⇒ 열정을 가진 이와 함께 얘기를 나누게 되면 따라서 열정적이 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을 식혀버리는 존재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p360 자기 일에 의욕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은 한쪽 손을 뒤로 묶고 권투를 하는 것과 같다. 자기 일에 흥미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이 되었든 자극이 사라지는 순간들은 분명히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에 대해 열정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햄버거를 뒤집는 일이든 수십억 원짜리 회사를 운영하는 일이든 상관없다.

⇒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역시 힘이 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도 지치거나 힘이 드는데, 하물며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더더욱 힘들어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냐며 이직하거나 퇴직하려는 경우에 많은 이들이 말리지만, 그들 또한 마음 속에는 같은 열망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p361 좋은 스피치는 그 사람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느끼는 대로 자신의 감정을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최고의 스피치라고 할 수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영혼의 일부를 함께 나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얘기이다’라는 열정으로 조용히, 그리고 힘차게 얘기하라. 훌륭한 스피치는 사람의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

⇒ 열정이 무조건 에너지가 넘치고 활력적이고 시끄러운 것은 아니다. 조용한 가운데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조용한 열정을 가진 이들, 그들의 열정과 스피치를 배우고 싶다.

 

p363 직관은 단순한 느낌과 어떻게 다를까? 직관은 흔들림 없는 감각이고, 느낌은 변하기 쉬운 감각이다. 이 직관을 키우는 방법은 오직 훈련뿐이다. 사용하면 할수록 근육이 발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으면, 머리에 행복의 기초가 되는 사고방식을 담아야 한다. 머리에 들어간 것이 그 사람의 사고를 만들고, 사고가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p365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나쁜 것, 바람작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5. 유대 역전의 발상

 

유대인의 발상법

p37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평소 생각과 일치하는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확인하지만, 유대인은 일부러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책에 도전한다. 이런 책이 평소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 내 생각과 일치하는 책을 읽고 내 생각의 깊이를 깊게 한다.

 

p374 하느님은 태초에 단 하나의 인간인 아담을 창조했다. 왜 처음부터 10명, 100명, 1000명의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한 인간을 죽이면 모든 인류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누구나 하느님이 자기를 위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p375 한 남자가 한눈 팔지 않고 급히 가고 있었다. 랍비가 그 사나이를 불러서 물었다.

"왜 그렇게 급히 서두르고 있습니까?“

"삶을 쫓아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습니까?”

랍비는 계속해서 말했다.

“삶을 쫓아가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단 말이죠? 그러나 실제 삶은 당신 뒤에 있고 당신을 쫓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서두르면 오히려 삶에서 도망치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p376 일에 열중한 나머지 본래의 인간다운 생활에서 멀어져 버리는 사람이 많다. 바쁘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근면하니까 칭찬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은 때로 일손을 멈추고, ‘자기가 왜 태어났는가. 어떤 사명을 띠고 있는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설령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준다.

⇒ 난 늘 바빠서 참 칭찬을 받았던 것 같다. 늘 바쁘게 일하고 일하고 일하니까 말이다. 사람들에겐 그것이 부지런함으로 여겨지는 일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겐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p376 자신을 해방시키는 날이 휴일

⇒ 내 삶의 휴일은 언제쯤.

 

p378 탈무드에는 ‘휴일은 인간에가 주어진 것이지, 인간이 휴일을 준 것이 아니다’라고 씌어 있다. 휴일에도 일에 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 집에까지 일거리를 가지고 가서 그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또는 휴일에 일하는 날과 마찬가지로 정력적으로 노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휴일은 쉬는 날이다.

⇒ 휴일에도 휴일근무를 하러 나가는 것에 반발해 일거리를 집으로 들고 온 적이 많았다. 사무실에 오래 있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상사들이 있는 한, 창조적인 열정도 성실한 일이나 개인적인 발전도 없을 것이다. 개인의 성장이 없다면 결국 회사의 성장도 없게 되는 것이다.

 

p378~379 탈무드 가운데는 랍비들이 어째서 하루가 일몰부터 시작되는가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다. 랍비들의 결론은 밝을 때 시작하여 어두워서 끝내기보다는 어두울 때 시작하여 밝을 때에 끝나는 편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유대인이 낙관적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진실로 유대적인 생각이다.

⇒ 일주일의 시작이 월요일인지, 일요일인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네이버에서였던가 기독교인은 일요일이 시작이고 다른 이들은 월요일이 시작이다라고 하는 것을 본 것 같다. 어두울 때 시작하여 밝을 때 일을 끝내는 것이 낫다는 것, 음,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른 듯하다. 운전을 잘 못하고 밤늦게까지 무엇을 하는 것보다 새벽부터 하는 것이 더 편한 나는 어딘가를 갈 때 밤 늦게 출발하는 것보다 새벽부터 출발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길을 가는 것보다 점점 밝아오는 길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21세기 가장 우수한 이노베이션 유대

p395 그는 공평을 취지로 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유대인 편을 드는 기사는 피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전 나치 히틀러가 대두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의 무서운 계획을 진행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옥스가 범한 과오, 즉 역차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래서 공평이란 말보다 공정이라는 말이 더 와 닿는 것 같다.

 

365일 용기가 필요하다

p407 그로브는 <석세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하고자 하는 의욕은 업적을 달성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에서 생긴다. 승리를 하고 나면 또다시 고난도의 승리를 목표로 세우려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업적 하나를 달성하면 그 다음 업적도 달성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서 단계별로 기한을 정한다. 그리고 한 단계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나면 조촐하게라도 축하하는 시간을 갖자.”

⇒ 성공을 길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처럼 끊어서 가는 것, 이런 방법이 잦은 성공을 만들고 자신감을 제공해 주리라는 것, 생각해 봄직하다.

 

p410 시간은 여벌이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 그러나 만일 시간을 유익하게 쓰지 않으면, 시간이 자신을 처리하게 된다. 시간은 재빠르고 값진 짐승과 같은 것이다. 잘 잡는 사람이 성공한다.

⇒ 시간에 대한 끊임없는 딜레마. 시간은 흘러가게 두는 것, 시간은 잡아야 하는 것!

 

p411~412 전세계를 유랑한 유대인만큼 행운을 갈망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한 곳에 오래 정주하여 확고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행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압박을 당하고 차별을 받으며, 가난하기 때문에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한 유대인은 행운을 동경하였다. 그러나 행운은 나비같은 것이다. 산들거리며 눈앞을 날아다니는 나비같은 행운을 붙잡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 한 곳에 오래 정주하여 확고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들 나름의 행운을 기대한다. 어떤 경우라도 행운은 자꾸 바라게 되는 것, 그리하여 행운이란 끊임없이 쫓아가게 되는 것이다.

 

 

6. 유대정신 어떻게 솟아나나

 

유대의 힘

p420 탈무드는 이 지상에 신의 나라가 실현될 때, 모든 사람은 세 가지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정직하게 장사했는가?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했는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는가?” 유대교의 신앙에 의하면, 지상에 ‘신의 나라’가 세워지면 죽은 사람도 모두 소생하게 되어 있다.

⇒ 거래를 정직하게 했는가라는 질문이 역시 첫 번째고 공부와 결혼이다. 신의 나라에서 죽은 사람도 소생하게 될 때 정직과 공부와 결혼이 기본 자격이 된다는 말이겠다. 유대인들은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탈무드를 공부하고 그들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가족 공동체를 실현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핵심인 것이다.

 

p422 창조가 파괴를 하는 것이 아니다. 파괴는 스스로의 부주의가 가져오는 결과이며, 계속 창조하는 자에게 파괴란 없다.

⇒ 창조라는 말 자체에서 하나의 파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창조란 파괴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창조란 모방에서 나온다고 할지라도 모방을 깨뜨려야만 창조가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갇힌 것에서는 고이기 마련이고 흐르지 않으니까.

 

p437 사람은 원래부터 고독하다. 태어날 때는 물론 죽을 때도 혼자서 죽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해서든 그 고독을 멀리 하려고 애쓴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자기를 속인다. 아무튼 불안에서 도망치려는 일념에서 우선 눈앞에 있는 것에 매달린다. 그러나 이윽고 결과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리 가도 출구는 없다.

⇒ 고독이란 것이 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 고독해 질 수 있고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기도 한다. 고독이란 때때로 창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p441 랍비 엘레아자르가 말했다. “단식은 자선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단식은 자기 몸으로 행하지만 자선은 오로지 돈으로 하기 때문이다.”

⇒ 단식은 내 자신에게 하는 것이고 자선은 남에게 하는 것이다. 단식이 자기 몸으로 행하는 것이고 자선은 돈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나의 노동이 필요로 된다. 그래서 자선은 ‘돈’을 중개로 한 내 몸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자선은 중요하다. 그리고 단식은 내 개인의 변화를 이끌지만 자선은 나와 보다 많은 이의 변화를 이끈다.

 

p441 어린이는 세 가지 것을 가르쳐준다.

이유도 없이 즐거울 수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바라는 것은 꼭 손에 넣는다.

- 투브 벨 판 메첼리추

⇒ 어린이는 바라는 것은 꼭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이에게 약한 어른이 그렇게 만드는 것, 어린이 스스로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그렇게 하도록 하는 주체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p445 사람은 자기 마음에 생각이 있을 때 반드시 말이 많아진다. 일이 자신의 입장을 좌우할 만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랍비는 그릇된 질문에는 대답하려고 하지 않고 무방비한 등을 군중에게 보인 채 여자 옆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말없이 등을 보이고 있는 그. 그 뒷모습에는 깊은 표정이 담겨져 있었다. 사람들의 호색적인 눈길 속에서 피고의 자리에 끌려온 여자의 고독, 어쩔 수 없는 부끄러움, 군중들의 손에 쥐어진 운명의 가엾음 등 이들의 무게를 자기의 무제로 느끼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 뒷모습에도 표정이 담긴다는 말이......뒷모습에서 느껴지는 많은 이미지는 쓸쓸함이다. 뒷모습은 뒤돌아섬을 전제하고 그렇기에 이별이나 헤어짐이 따른다. 그래서인지 뒷모습에서는 늘 그렇듯 애잔함이 느껴진다. 또한 뒷모습은 완고함과 거부당함의 모습이 읽혀지고, 때때로 뒷모습에서 자신감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p449 영웅이라 하더라도 절대시하지 않고 도리어 상대화하는 방식이 유대에서 배워야 할 교훈의 하나이다.

⇒ 영웅의 상대성. 절대적인 영웅은 근접할 수 없게 느껴지고 상대적인 영웅은, 충분히 근접할 수 있고 내게 없는 다른 것을 가진 이로서 느껴진다.

 

p456~457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다만 완전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와 노력할 것을 포기한 자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가끔 자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탈무드는 설파한다.

 

p460 ‘인간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어째서 신은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이런 해답이 적혀 있다.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하여 밝은 곳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어두운 곳을 통해 밝은 곳을 보는 것이 그 밝음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흰바탕의 검은 글씨보다 검은 바탕의 흰 글씨가 명암효과가 뚜렷하다.

 

p461~462 괴로움이라는 것은 흔히 일방통행로처럼 생각하기 쉽다. 괴롭히는 사람과 일방적으로 괴로워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이 있어서, 괴롭히는 쪽은 오로지 상대를 괴롭힐 뿐이고, 괴로워하는 쪽은 그냥 말없이 괴로움을 참고 있을 뿐이라는, 일방통행로처럼 양쪽의 역할 분담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p466 사무엘 울만의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가리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합니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도 60살 노인에게 청춘이 있습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을 늙지 않습니다.

     이상을 잃어 버릴 때 비로소 늙습니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듭니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됩니다.

 

    60살이든 16살이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그리고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습니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혀버릴 때

   스무 살이라도 인간은 늙습니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도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살이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습니다.

 

 

7. 유대인 세상살이 방법

 

p472 신은 여자를 남자의 머리 부분으로 만들지는 않으셨다. 왜냐하면, 남자를 지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은 남자의 발로 여자를 만들지도 않으셨다. 그것은 남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이유는, 여자를 언제나 남자의 가슴 곁에 두기 위함이었다.

 

p484 결혼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행복을 얻는 기회를 줄 뿐이다. 결혼은 실험이 아니라 남녀가 힘을 합쳐 원만한 가정을 만들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우자를 얻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배필이 되도록 매일 노력함으로써 행복해진다.

⇒ 결혼은 실험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쉽게 말을 한다. 해보고나서 후회해도 늦지 않다라거나 또는 이혼을 하더라도 결혼을 해봐야 한다고. 말로는 결혼 생활이 좋지 않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떠벌이면서도 끊임없이 결혼을 권유한다. 이것은 악마의 유혹일까.

 

p484 결혼은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남녀관계는 인간에게 가장 친근하면서 가장 어려운 이문화(異文化)가 뒤섞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 결혼은 이문화이다. 같은 문화에 속하는 가족과 형제들 사이에서도 다른 가치관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이란 개인,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두 문화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한다.

 

p489 신을 경외하는 자보다 노동의 결실을 기뻐하는 자가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신을 경외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씌어 있고, 자기 노동의 수확을 즐기는 자에게는 ‘네 손의 수확을 먹을 때 그것이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을 경외하는 자에 대해서는 ‘네가 만족하게 될 것이다’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 유대교의 교리와 탈무드의 율법, 교리와 실생활, 어느 것에 우선이 있을까.

 

p492 누구든지 자기 아들에게 노새몰이나 낙타꾼이나 선원, 의사, 백정 기술은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둑질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 의사를 도둑질하는 직업으로 보는 것 일순 이해가 간다. 노새몰이꾼이나 낙타꾼은 왜 도둑질하는 직업이 되는 걸까.

 

p493 탈무드는 왜 인간이 자기의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p500 랍비 아키바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사라일지라도 고귀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지 말고, 가난한 것을 좋게 여겨라’는 성경 말씀은 역설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서 착취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무드의 대답은 단순명쾌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느님이 명령한 것은 아낌없이 주라‘는 것이다.

⇒ 신약성경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누구를 낳고 또 낳고 낳고 했다.. 죽는다는 이야기는 없이 낳는 이야기만 이어져서 읽는데 헉헉해댔던 것이 생각난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임을, 고귀한 인간이라는 태생을 자랑스럽게 나타내는 것이었구나.

 

p501 예수는 일찍이 한 젊은 사람에게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충고했지만, 랍비들은 이 충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의무를 다한 결과, 자기 가족에 대한 의무가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남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회적으로 자기가 파멸하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이다.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의 5분의 1 이상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랍비들은 말한다. 다른 동네의 가난한 사람을 돕기 전에 먼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가난한 사람에게 손길을 펴야 한다는 것을 랍비들은 철칙으로 삼고 있다.

⇒ 봉사활동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차인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차라리 도울 것이면 우리나라 아이들을 도울 것이지 왜 남의 나라 아이들을 돕느냐고 사람들이 말할 때 자신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베풀고 도움을 주는 것은 해야하는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이다. 오늘 이 차인표의 말이 랍비의 말과 이어진다.

 

p505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신문·잡지·책들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책을 읽더라도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 사실 정보를 읽어내느라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렇게 넘쳐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한데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보를 알지 못하면 뒤쳐진다. 때문에 빠르게 정보를 주입시키는 매체가 흥행하는 것일 것이다.

 

p506 완전히 침몰한 배는 다른 배의 항해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쯤 침몰한 배는 다른 배의 항해에 방해가 된다.

⇒ 무언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의 고집과 반만 아는 이의 고집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완강하다. 물러서는 법도 없다. 전자는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데 방점을 두나 후자는 자신은 조금이라도 안다는데 방점을 둔다.

 

 

8. 남보다 뛰어나게 아닌, 남과 다르게 키우는 교육

 

p512 교육이란 관념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교육의 결과가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기본 개념을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하다. 우리는 개념과 관념의 나열과 주입으로 정신없다.

 

p515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일수록 쓰지 않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해보겠다는 의욕과 용기, 자신을 다스리는 의지, 인내력,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정신 같은 것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에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남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남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내 자신을 이해하는데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p517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야훼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야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끝까지 선택의 여지가 주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죽게 되었지만, 똑같은 모양으로 죽을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짐승처럼 죽어서야 되겠는가? 야훼가 우리를 불행에 떨어뜨렸지만, 우리를 타락시킨 것은 아니었다.

⇒ 운명은 정해져 있다라는 말에 흔들리는 나다. 그것은 의지를 상실케 하는 원천이기도 했다가 의지를 북돋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p528~529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를 배격한다. 따라서 늘 추상적인 영역 속에서 하느님을 생각하게 된다. ‘구상화할 수 없는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는 습관이 어릴 때부터 훈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물을 논리적, 추상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큰 지적 자극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 유대인들의 우상은 하나. 우상 숭배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으니 하나의 우상만을 섬기라는 것 아니겠는가.

 

p535 유대인들은 업무에 골몰한 나머지 가정을 내팽개쳐 버릴 정도의 주관적 자세를 싫어하며, 식욕·성욕·음주·금전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탐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은 관념의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극을 주거나 흥분을 자아내는 것들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서는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업무를 하는 것이 미덕이자 기본이며 가정일이 있음을 알리면 무능하다는 핀잔을 듣기 쉽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문화적인 분위기가 가장의 가정을 소홀히 하며 가정의 근간을 뿌리뽑는 원흉이 되고 있다.

 

p538 유대인들은 자식들이 친구집에 놀러 갈 때도 형제를 함께 보내지 않는다. 서로 취미가 다를 것이므로 같은 장소에 가기보다는 다른 장소로 가서 서로 다른 세계를 접하는 편이 그들의 장래에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 우리는 아이들을 같은 곳으로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의 관심과 가치를 떠나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남과 다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남과 같이, 남이 하는 만큼이 교육의 중요한 틀이었다.

 

p539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유대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므로 놀 수 있는 시기에는 마음껏 놀게 한다. 다시 말해서 어린 시절에 놀 기회를 빼앗아버리면 배움의 길에 들어섰을 때 놀 수 있는 시간을 얻지 못하게 된다.

⇒ 우리도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교육의 개념도 나타나고 이루고 있다. 다만 그에 대한 기본 생각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듯하다. 우리는 직업을 얻고 난 일과 연관된 업무관련성의 교육을 받는데 적극적이다. 인문학적 가치가 배격되었던 이유이다.

 

p540 자녀들을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남의 간섭에 대해 엄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자녀들은 의지가 약한 어린이로 성장할 위험성이 많아진다.

⇒ 아이들은 판단력이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의 판단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른들의 행동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른들의 판단력이 매우 미숙하고 미흡하다. 그런 것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p543 유대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만큼 개성을 중시한다. 유대인에게 한 단계 높은 친구라는 것도 바로 공부는 잘하는 편이 못 되더라도 자녀의 개성과 가능성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상대를 말한다. 또 하나 친구를 평가할 때 어머니 자신의 좋고 싫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자녀가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개성이 향상될 수 있다면, 설령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는 형의 친구라도 반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녀의 입장에서 판단한다.

⇒ 우리나라는 몰개성을 중시한다. 남과 다름에 대한 두려움.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 예전에 내가 학생이던 시절은 이스트팩 가방이 요즈음은 노스페이스가 이런 것을 나타내 주었다. 노스페이스가 평준화되고 나서 새로운 브랜드가 대세라고 하고 있다. 우리가 몰두해야 하고 장려해야 할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은, 늘 어른이다.

 

p545 합리주의를 부르짖는 유대인은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다.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많은 기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구약성서의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입증할 만한 것들이다.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일어난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다. 1백년에 한번 정도 지중해에서 강풍을 받아 조류가 빠지면서 홍해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얕아진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더라도 그것을 기적이랴 여기지 과학이라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대인들이 구약에 나타난 기적을 믿었기에 그 기적에 의해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한다.

 

p547 '내일엔 또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유대인에게는 없다. 오늘이라는 시간 내에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의 계획된 습관이 들어 있으므로, 그 일을 진행해 감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은 폐허가 된 타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의지의 여주인공의 힘이다. 이것은 오늘 하루를 살아낸 자들의 내일에 대한 기대이다. 이것 역시 오늘의 치열한 삶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p556 탈무드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을 정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뛰어넘으려고 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남들보다 훌륭하게 된다.

⇒ 이러한 말들처럼, 노력하는 이에게 그만큼의 결실이 주어지는 결과라면 사람들이 이다지도 힘들어할까. 그렇지 않기에, 노력으로 따라주지 않기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닐까.

 

p558 대체 겸허란 무엇일까?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상대편이 말하려고 하는 것, 바라는 것들을 되도록 인정하려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친절은 겸허함과 같다. 겸허하게 되지 않으면 친절해질 수 없고, 친절하지 않으면 겸허할 수 없다.

⇒ 겸허함을 미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겸허함은 상대적으로 보인다. 그 상대성도 때에 따라 다르게 여겨지고 말이다. 가진 자에게는 겸허함으로 비춰지는 것도 없는 이에게는 궁상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가진 이의 겸허함을 청빈으로 보기도 하면서 가진 이의 겸허함을 자만이나 허사라 여기기도 한다. 우리는 늘 어떤 상황 속에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여긴다.

 

p559 흔히 ‘내 친구들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타인을 가볍게 ‘친구’라고 부른다. 이같은 습관이 과연 합리적인가? 어떤 이유 때문에 쉽게 친구란 단어를 쓰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정관계는 일방적으로 상대편을 ‘친구’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성립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만큼 상대편을 수용하고 있으니까 상대편도 당연히 자기와 같은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친구란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다. 나는 경직된 친구관계를 여기고 있었다. 나의 친구는 나이로 한정되었음을 말이다. 나랑 나이가 같으면 친구고, 많으면 선배, 적으면 후배라는 개념으로 살아왔다. 이렇게 나이로 인한 친구관계는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일까. 벗이라는 것은 나이를 뛰어넘는다고 하는데 내 사고 속에 친구라는 범위를 보다 확장하고 싶다.

 

p562~563 유대인 세계에서 자살만큼 큰 죄는 없다. 예전 유대에서는 자살한 사람은 무덤에 매장하지도 않았다. 무덤에 매장되지 못한다는 건 유대인 사이에서는 완전히 말살된다는 뜻이다. 매일 조금씩 자살하는 사람은 이 세계를 즐기지 않으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자살한 사람은 말살되기 때문에 저 세상에도 속할 수 없다.

⇒ 기독교에서는 자살이란 지옥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들은 자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자살이 한 의견의 표시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것이 주어진 제 운명이라 말하기도 한 것 같다. 자살한 이에 대해 분명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들의 선택이 조금만 달랐기를 염원하기도 하는 것은 어느 민족에게나 느끼는 바가 아닐까.

 

p563 만일 어떤 남자가 소 두 마리를 갖고 있는데, 한 마리는 힘이 세고 다른 한 마리는 약하다면 어느 쪽에 쟁기를 메울까? 물론 힘센 쪽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합당한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신다.

⇒ 난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오. 절대.........내 어깨 위의 짐들을 풀어 주시오.

 

p564 많이 배운 사람에게는 책임이 주어진다. 지적인 사람에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부여되며 또한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그들은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하며 지적인 자유를 존중하는 동시에, 탈무드에 들어 있는 정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 요구된다.

⇒ 탈무드에서 요구하는 책임, 우리나라의 이른바 엘리트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배워야 할 텐데.

 

 

9. 눈물과 웃음의 예지

 

p570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멸망하기 쉽고, 또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세상을 웃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음으로써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고, 고도의 문화를 가진 사람일수록 유머를 느낄 수 있다.

⇒ 내 안의 문화가 많을수록 깊고 넓게 볼 수 있음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p573 유대인의 해학은 거의 잔인하다거나 야만적인 경우가 드물고, 따뜻하고 철학적이며 뜻이 깊다. 거기서는 분명히 어리석음과 천박함, 그리고 탐욕과 위선, 협잡이 계속 웃음거리가 된다. 또한 가식적인 무지와 허영심을 통쾌하게 폭로한다. 그러나 독선적이지는 않고, 전반적으로 인간의 약점에 대하여 너그러운 태도를 취한다.

⇒ 해학이란 늘 여운이 남는 웃음이다. 세상을 위트와 해학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조화와 융화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개그프로 하나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면 답답함을 떠나 짜증과 분노가 치민다.

 

 

10. 인생 최고의 지혜

 

p614 왜 나같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매일매일이 고생의 연속인걸. 내 입에 들어가는 거라곤 메마른 빵과 풀뿌리, 그리고 산딸기뿐이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닭고기도 한 번 먹어본 적이 없어.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지만 금화 한 개 만져본 적도 없고, 땔감을 팔아 손에 들어오는 건 구리돈이 전부야. 상인과 환전상들이 가지고 있는 금화 조각이라도 있다면, 나는 집에서 하루 종일 신을 찬양하고 있을 텐데!

⇒ 내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지...이렇게 쓰인 글을 보니 부끄러워진다.

 

p616 행복한 사람의 셔츠

⇒ 많은 재산을 가진 자가 중병에 걸렸으나 아무도 그 병을 고치지 못했다. 한 수도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남자의 셔츠를 그의 등에 걸쳐주면 나을 것이라 했다. 병자의 가족과 하인들은 곳곳을 돌아 이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동굴에서 행복하다고 외치는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셔츠를 벗기려고 보니 그 남자는 알몸이었다. 그들은 그 남자에게 셔츠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셔츠가 있었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p621 속담에 이르기를 ‘숲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은 나쁜 나무와 좋은 나무를 동시에 태운다’고 한다.

 

p650 가난한 남자의 운

⇒ 두 형제가 있었다. 한 사람은 부유하고 한 사람은 가난했다. 형제는 몹시 우애가 깊어서, 부유한 형은 가난한 동생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늘 궁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운을 가로챌 수는 없는 법.

어느 날 부자 형은 가난한 동생에게 한번에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금화가 든 자루를 동생이 늘 지나가는 길목에 두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가난한 동생은 가까이 오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대체 장님은 어떤 느낌일까? 어디 한번 체험해 보자.” 그는 눈을 감더니 장님을 흉내내며 조금 걸어보았다. 그리고 금화자루가 있는 곳을 지나가 버렸다!

 

p677 어떤 고아

⇒ 한번은 부자인 구두쇠가 가난한 사람들이 무교병을 살 수 있도록 돈을 기부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위원회에 쥐꼬리만한 돈을 주었다. 사람들은 빈정거렸다.

“당신의 아들은 가난한데도 당신보다 많은 돈을 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째서 당신은 나를 내 아들과 비교하는 거요? 그에게는 부자인 아버지가 있는 반면에 나는 아버지가 없어요.”

 

 

11. 걱정하지 말고 살아라

 

p684 공정한 해결책

⇒ 랍비가 길을 걷다 담배를 피우는 뚱뚱한 부자와 바싹 마르고 가난한 사람을 만났다.

그들에게 “왜 담배를 피우시오? 그것은 끔찍한 악덕이오!”라고 하자,

“저는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 소화에 도움을 주려고 담배를 피웁니다.”라고 뚱뚱한 사람은 말했고 “저는 배고픔을 쫓아내느라 담배를 피웁니다.”라고 가난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소리쳤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 당신의 정의는 어디 있습니까? 뚱뚱한 부자가 바싹 마른 사람에게 자기 저녁에서 약간만 나누어 주었더라도 둘 다 건강하고 행복할 것을! 저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담배를 피울 필요가 없었을 것을!”

 

p705 활기찬 대화

⇒ 유명한 이디시 작가인 숄롬 알레이헴이 길에서 혼잣말을 했는데, 어떤 친구가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소리쳤다.

“자네는 진정 자신에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숄롬 알레이헴은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나? 내가 똑똑한 얘기 상대를 찾았는데 자네가 말 참견할 이유가 무엇인가?”

 

p715 쯧쯧

⇒ 어린 메리 맥헤일은 학교에서 옆에 앉은 소년을 좋아하여 쉴새없이 엄마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는 어떤 국적을 가졌어요?”

엄마는 “그도 물론 너와 마찬가지로 미국인이지”라고 말했다.

“나도 그건 알아요. 그러나 다른 국적은 없어요?” 메리는 물었다.

그녀의 엄마는 “아! 그는 유대인이란다”하고 말해 주었다.

어린 메리는 깊이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어린데 벌써 유대인이라니…….”

 

 

12. 뿌린 대로 거두리라

 

p809 규칙위반

⇒ 어느 추운 겨울 눈 오던 날, 지나가던 한 부자가 떨고 있는 가난한 남자에게 하룻밤동안 알몸으로 산꼭대기에 있으면 상으로 많은 돈을 주겠노라 말했다. 가난한 남자는 상금에 욕심이 나 밤새 산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었다. 어두워지면서 산기슭의 켜진 등불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아침이 되자 상금을 청구했다.

부자는 남자가 등불을 본 것이 규칙위반이라 했다. 불빛이 남자를 따뜻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알몸으로 아무 보호도 받지 않고 앉아 있으라는 규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윗 왕에게 갔다. 왕은 “부자의 말이 옳다”라고 선고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내려오다 솔로몬을 만났다. 솔로몬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더니 왕께 재판을 다시 청구하라고 하였고 다시 재판이 열렸다.

부자와 남자는 솔로몬에게 갔다. 솔로몬은 하인에게 새끼 양을 잡게 하더니 거기서 떨어진 곳에 불을 피우도록 명령했다. 한참뒤 그는 하인을 불러 고기가 익었느냐고 물었다.

“고기가 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고기가 익겠습니까?” 하인이 말했다.

“내 하인의 말을 들었는가? 이와 마찬가지다. 이 가난한 남자는 산 위에 있었고 불빛은 멀리 아래쪽에 있었다. 어떻게 그의 몸이 따뜻해졌다고 할 수 있냔 말이냐?”

솔로몬은 부자에게 상금을 지불할 것을 명령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 모든 것은 솔로몬의 지혜 덕택이었다.

 

 

13. 행복을 만드는 유대 사고방식

 

p846 혀의 이중성

⇒ 랍비 시몬 벤 감리에르는 이스라엘의 장관직에 있었으나, 할아버지 힐렐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을 성심껏 따르고 있었다. 그 제자는 수없이 많았는데 하인 토비도 늘 곁에서 시중을 들며 심본에게서 토라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날 시몬이 토비에게 시내에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다. 토비는 푸줏간에서 소 혓바닥을 샀다. 다음에는 제일 맛이 없고 값이 싼 것을 사오라고 했다. 토비는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골똘히 생각한 끝에 소혓바닥을 사왔다.

“혀가 맛있다고 느낄 때는 그 이상 맛있는 것이 없지만, 일단 혀가 맛이 없다고 느끼면 그보다 더 맛이 없는 것도 없습니다. 토라의 가르침을 배울 때나 기도를 할 때나 아름다운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우리 혀는 아주 훌륭합니다. 그러나 욕설을 하거나 남을 중상하고 비웃을 때, 혀는 아주 못된 놈이 되지 않습니까?”

랍비 시몬은 하인 토비의 깨달음을 알고 기뻐하며 제자들에게도 좋은 것만을 입에 올리도록 말을 삼가라고 가르쳤다.

 

p876 사다리에서 떨어진 이유는?

⇒ 상인 둘이 이문이 높은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에 한 사람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여행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배의 출항을 연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업자는 다리를 다친 동료를 두고 혼자 배를 타고 떠났다. 남은 남자는 한 밑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잃은 불운을 탄식하며 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얼마 뒤, 배가 승객 전원과 함께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래서 상인은 자신의 다리를 다치게 하여 죽음에서 보호해 준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하고, 신을 의심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14. 불멸의 영원한 가르침

 

p904 마흔을 넘긴 어떤 작가의 생활

⇒ 막 학업을 마친 한 젊은 탈무드 학자가 랍비 엘리야에게 와서 추천장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랍비 엘리야는 연민의 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보게나, 그대는 냉엄한 현실을 맛보아야 하네. 그대가 훌륭한 저자(著者)가 되고자 한다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그릇 행상처럼 이집 저집 다니면서 그대의 책을 팔기고 하고 굶주림도 맛보아야 되네.”

“제가 마흔 살이 되면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 젊은 작가는 희망을 걸고 물어 보았다. 이에 랍비 엘리야는 다음과 같이 격려하며 빙긋 웃었다.

“그대가 마흔 살이 되면 그 일에 익숙해져 있을 걸세.”

 

p912 관대함은 마음에서 나온다

⇒ 랍비 힐렐의 황금률을 실행에 옮기려던 아주 자비롭고 이해심많은 랍비에게 곤경에 처한 사람이 찾아와 10루블을 얻을 수 있는지 요청했다. 그의 아내가 병들었지만 의사에게 줄 돈이 없다는 것이다. 랍비는 당장 현금이 없었으므로 은촛대를 주며 10루블에 저당잡으면 직접 찾으러 가리라 했다. 얼마 뒤 랍비가 은촛대를 찾으러 전당업자에게 갔더니 그 사람이 가져간 것은 20루블이었다.전당업자는 화를 내며 그 사람은 사기꾼이라 외쳤다. 랍비는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 말은 옳지 않소. 이 불행한 사람은 아주 겸손하며 사려 깊소. 그가 정말은 20루블이 필요했는데도 내게 10루블 이상을 얘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구려.”

 

p917 랍비의 실수

⇒ 한 제자가 랍비를 찾아와 아내가 중병에 걸렸으니 거룩한 사람에게 아내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랍비는 그에게 염려말라며 집으로 가라고 했고 며칠 뒤 제자는 가슴을 치며 아내가 죽었다며 애곡했다. 랍비는 흥분하며 말했다.“그럴 리가 없다. 내가 직접 죽음의 천사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는데!” 그러자 제자는 “그것은 제가 알바 아닙니다. 그러나 아내는 죽었습니다”라고 울먹였다. 그러자 랍비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죽음의 천사가 그녀를 맨손으로 목졸라 죽였구나.”

 

 

15. 토라에 진리가 있다

 

⇒ 토라란 구약성서의 처음 오경이라는 의미(모세오경), 인생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또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유대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토라는 닫힌 당자 속의 지혜로서 후세에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열린, 영원히 계속되는 대화이다.

 

p934 유대교로 개종하고 싶은 사람들, 즉 이스라엘의 종교와 역사를 온전한 모양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러나 전세계를 유대교화 한다는 따위의 일은 결코 유대교의 목표가 아니다.

⇒ 유대교의 문은 열려 있다고 하나, 닫혀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 이스라엘의 종교와 역사를 온전한 모양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937 “그 땅으로 가거라”고 한 야훼의 명령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으며, 대부분의 유대 현자나 학자들은 모든 유대인에게 한 종교적 명령으로 보고 있다. 그 땅이란 그날그날의 ‘현실’ 생활 속에서 향해 가야 할 땅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를 신비적인 약속의 땅으로 추상화해서는 안 된다.

⇒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로 정리했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최초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보았다면 상황은 어떠했을까. 차라리 신비적으로 추상화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944 아브라함와 이사악의 관계는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자녀교육 문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행동하는 아버지,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말씀과 행동이 틀림없는 것이라고 믿는 아들. 이같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야훼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 나는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믿고 있음보다는 하느님이 왜 이들을 시험하는가, 믿음이라 외치며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기도한다던 예전 어느 뉴스와 고발 프로그램의 부모들을 떠올렸다.

 

p949 라울 힐베르그는 그의 저서 <유럽 유대인의 붕괴>에서 역사 속에 사용된 세 가지 반유대정책을 간결히 정리했다. 그 세 가지란 개종, 추방, 말살이었다.

⇒ 내가 영화에서 본 것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났으리라는 것을 안다. 영화로 보는 것만해도 끔찍스러운 장면들을 직접 겪은 그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마루타로 일제 시대의 고난을 경험한 바 있다. 타국가를 정복하고 타인종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반복적인 죄악들, 그래도 그래도 독일인들은 그들 선조들의 죄를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다케시마의 날이라고 떠들어대며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힘없는 한국이란 국가, 유대인처럼 엘리트집단으로서 영향력 있는 인물 하나 없는 민족, 국제사회의 이익에 따라 일본에게 독도를 빼앗길지 모른다.

 

p961 자유란 억압받는 대중이 봉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것이 아니다.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은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다.

⇒ 자유에 대한 오랫동안의 숙원. 그러나 늘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우리의 자유는 돈과 권력에게 빼앗기고 있다.

 

p969 백성들은 어째서 그토록 빨리 잊어버리는가. 무엇이 전형적인 대중심리의 예일까? 대중은 지도자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가? 금송아지와 모세,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러나 대중에게는 이와 같은 차이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자,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백성들은 맹목적이어서 모세든 금송아지든 어떤 지도자라도 상관하지 않고 따르려고 한 것이다.

⇒ 대중들은 맹목적이다. 휩쓸림도 잘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냄비라고 한다. 들끓기는 빠르나 그것은 순간적이다. 우리들이 이루었던 민주화는 우리 스스로 져버리고 있다. 우리에겐 민주보다는 경제가 중요하다. 이미 민주화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굶주림으로 밀가루 포대를 건네준 이에게 감사하며 복종하고 추앙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들의 창고엔 온갖 쌀포대가 즐비해도 그 포대가 어떻게 쌓인 건지에 관심 두지 않고 내 손에 들어온 밀가루만 움켜쥔다. 2월 25일은 대통령 취임식이다. 소방관들이 취임식에 쓸 의자를 닦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아직까진 춥고 찬바람이 분다. 곳곳에 화재 소식이 끊이지 않는데, 얼마 전 종로에서는 대형화재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그저, 내 자신도 대중의 하나이다. 속상하고 슬프다.

 

p975 인간은 누구나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이 지상에 태어났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선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자기 결단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날마다 순간순간, 선과 악을 선택해야 한다.

⇒ 선악은 선택의 결과이다. 늘 선을 선택한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악 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결국 자기 결단의 부족이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솔로몬 탈무드’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유대인은 솔로몬 탈무드를 만들고 솔로몬 탈무드는 유대인을 만든다(서문)

 

1. 불굴의 방패, 절대의 가치

    유대 5000년 솔로몬 탈무드

    율법학자 랍비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생명의 물줄기 탈무드

    탈무드의 두 갈래

 

2. 유대인은 누구인가

    엘리트 유대인

    유대인과 돈

    유대인의 금전철학

 

3. 유대 부자철학 78:22

   유대인의 경영원칙

   돈을 낳는 생활

   유대 부자철학 7822

   역경을 떨치고 일어서라

 

4. 돈 버는 방법, 돈 쓰는 방법

   유대식 협상

   돈과 지혜의 조크

   행복한 부자 되는 법

 

5. 유대 역전의 발상

   창출하는 머리, 선택하는 눈

   21세기 가장 우수한 이노베이션 유대

   365일 용기가 필요하다

 

6. 유대정신 어떻게 솟아나나

   유대의 힘

   전통을 안고 가는 생활

   정신의 자유를 가져라

 

7. 유대인 세상살이 방법

   여자 다루는 법 남자 다루는 법

   이마에 땀 흘리고 빵을 먹어라

   일하며 공부하며

 

8. 남보다 뛰어나게 아닌, 남과 다르게 키우는 교육

   아이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라

   무엇이 되라는 말 절대 하지 마라

   매일 머리 훈련하는 유대인

 

   

9. 눈물과 웃음의 예지

   한바탕 배꼽 잡고 웃어라 길이 열리리라

   단 한 번뿐인 인생이 아닌가

 

10. 인생 최고의 지혜

   신이시여, 왜 이런 일을 하셨나이까

   슬픔을 익사시키는 방법

   기적을 일으키는 랍비

   행운은 누구의 편인가

 

11. 걱정하지 말고 살아라

   너의 생애에 끊임없는 기쁨이 이어지리

   모든 일은 받아들이기 나름

   위대한 것은 작다

 

12. 뿌린 대로 거두리라

   기쁨이 윙크할 때

   신은 누구를 사랑할까요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일까

 

13. 행복을 만드는 유대 사고방식

   사랑과 우정

   깨달음이 머무는 곳

   신이 내린 선물

 

14. 불멸의 영원한 가르침

   마음을 밝히는 등불

 

15. 토라에 진리가 있다

   유대정신의 샘

   노아 자식들의 계율

   이상을 찾아서

   소중한 것은 몸가짐

   시험

   우물이 가르쳐주는 것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귀환

   밖으로부터의 충고

   정치적 교훈

   탄생의 신비

   생명에의 경외감

   죽음에 이르는 혀의 죄

   넉넉한 마음으로 손을 펴라

   위대하며 존경해 마지않는 지도자

 

 

 

 솔로몬 탈무드는 크게 총 15장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유대인과 랍비, 탈무드에 대한 소개가 1장과 2장에서 제시된다. 3장과 4장은 유대인의 경제적인 부분인 돈과 그에 따른 철학을 살펴본다. 5장과 6장은 유대인의 발상과 유대인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7장은 유대인의 세상살이, 8장은 유대인의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9장에서 14장까지는 탈무드 우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9장과 10장은 각각 유대인의 예지와 지혜에 대한 우화를 11장은 걱정하지 말아라, 12장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 13장은 행복을 만드는 유대 사고방식, 14장은 불멸의 영원한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제목에 맞는 우화들을 엮어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5장은 토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솔로몬 탈무드는 1장에서 8장, 15장은 저자가 탈무드와 유대인에 대해서 서술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9장부터 10장은 우화들을 엮어 놓고 있다.

각 장마다 소제목을 두고 있고 소제목에 또 다시 하위 범주의 제목을 두어 내용을 전개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을 보다 보면 저자가 한 단락 정도의 내용에도 소제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단락의 내용을 나타내는 핵심의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와 같이 핵심의미를 단락마다 마다 제시하고 있어 내용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요점을 파악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게 한다. 탈무드의 우화들이 각각이 제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형태가 전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이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쓴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자료수집과 쓰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읽는 나 역시 그러했으므로 저자의 노고가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얼마나 공들인 것일까. 사실, 서두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부분에 감정이입해 탈무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가 그러했듯이 나는 유대와 유대인에 많은 매혹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관한 생각을 강하게 접어두고 탈무드의 내용으로 보고자 하며 책을 읽었다.

탈무드에 대해 지금까지 가져왔던 것이 우화이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랍비들의 이야기, 우화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어릴 적 보았던 우화들도 있고 처음 접하는 우화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우화에 대해 나름의 결론과 해석은 나의 몫이기에 내가 부여한 우화의 해석을 쫓으며 즐겼다.

또한,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부분은 유대인의 경영원칙인 78:22의 법칙에 대한 설명이다. 유대인들의 부자철학은 유대인의 특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교적인 틀에 묶인 우리나라에게 상인에게 가지는 생각이 다르기에 그 다름으로 유대인의 금전에 대한 생각들이 재미있게 읽혀졌다. 이 부분은 3장이다. 3장 중 유대인의 기본 법칙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p249 유대상술의 기본 법칙에 ‘78:22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1의 오차가 있으므로 이는 때에 따라 79:21이 되기도 하고 78.5:21.5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과 그에 내접하고 있는 원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의 면적을 100이라 한다면 그에 내접하는 원의 면적은 약 78이 되고 나머지는 22가 된다. 또 공기의 성분이 질소 78에 산소와 기타가 22인 비율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의 신체도 수분이 78, 기타 물질이 22의 비율로 이뤄져 있다. 이 ‘78:22의 법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질소 60에 산소 40인 공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또 인체의 수분이 60이 되면 인간은 죽고 만다. 그러니 ‘78:22’의 법칙‘은 결코 ’75:25‘나 ’60:40‘으로는 되지 않는 절대의 법칙이다.

이 법칙 위에 유대인의 상술이 성립되어 있다. 세상에는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연코 만다.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어다가 일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만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은행은 당장 문을 닫는다. 이를 유대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빌려주고 싶다는 사람’ 78에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22의 비율이 성립한다. 이와 같이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도 ‘78:22의 법칙’은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은 78이고 실패율은 22인 것이다. 실패율 22을 생각지 말고 나도 하면 78이 성공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 보완점

 

1. 유사 내용의 카테고리 재분류

 

탈무드의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의 느낌이 든다. 그것은 유대인의 지혜를 이야기하며 유대인의 금전에 관한 탁월한 철학을 논하면서 지혜의 내용들이 금전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많은 책의 내용이 유사한 내용을 한데 묶어 장을 통합하면 장이 줄어들어 보다 간결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_ 범주화하여 재구성 해 본 목차 -

 

1 유대인의 힘의 근원을 찾아라

 1) 유대인

 2) 탈무드

 3) 토라

 

2. 유대인의 생활을 보아라

 1) 유대인의 생활

 2) 유대인과 돈

 3) 유대인의 교육

 

3. 유대인의 발상과 정신을 들어라

 1) 유대인의 예지와 지혜

 2) 유대인의 발상

 3) 유대인의 해학과 유머

 

 

2. 제목 및 소제목 형태의 통일성

솔로몬 탈무드는 제목이 많다. 각 장을 나누기 위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 장에서도 소제목으로 분류한데 이어 거기다가 단락단락마다 제목을 뽑아서 제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제목을 포함한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제목만으로도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제목의 형태가 전 장에 걸쳐 통일적이지 않다. 물론 특성에 따라 적절한 제목을 붙이겠지만 각 장의 제목만이라도 그 형태를 통일적으로 이어간다면 보다 더 체계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아래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장의 제목은 서술형, 의문형 종결어미 형태로 제시한다. 어떤 제목은 명사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서술형태이든 의문형태이은 명사형이든 통일적인 체계로 정리한다면 제목에서 느끼는 복잡함이나 산만함이 경감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불굴의 방패, 절대의 가치는 무엇인가’, ‘유대 부자철학은 무엇인가,’ ‘유대 역정의 발상을 찾아라’로 한다거나 간결하게 ‘유대인이해’, ‘유대정신’ 이런 형태로 말이다.

 

3. 책의 집필 의도 고려한 우화 삽입

 

저자는 유대인과 유대인의 철학에 매혹되어 여러 탈무드를 모아 재정리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의 매혹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논점이 점차 흐려진듯하다.

탈무드와 유대인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었는지, 탈무드의 우화를 얘기하는 것이 중심이었는지 말이다. 처음 시작에서 9장까지는 우화가 설명 속에 제시되어 있다가 9장 중반부터는 우화만 제시되고 있다. 우화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했다면 조금 더 설명 부분에 우화를 삽입하여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듯하다. 그리고 많은 우화들은 따로 탈무드 우화로 책을 낸다거나 아니면 솔로몬 탈무드에서 독립적인 장으로 제시하여 소제목으로 분류하여 엮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4. 탈무드 우화의 출처 제시

 

솔로몬 탈무드에는 많은 우화들이 몇 장에 걸쳐 삽입되어 있다. 저자가 많은 책들을 참고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던 만큼 책 전반에 대한 참고문헌이나 자료의 출처가 명시되었으면 한다. 특히 우화들도 그 출처들이 궁금해진다. 1,0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저술하면서 저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녹아들었겠지만 설명과 의견들을 분리하여 좀더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각주를 통해 설명을 첨가하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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