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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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아침이다.
새벽 5시 45분. 글을 쓰고 있다. 마지막에 가장 부지런하였는가? 그러하진 않았다. 다만 추세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만을 하였다. 과거의 열정을 고맙게 생각한다. 1년이 참으로 소중했다.
사부님이 아프다. 곧 괜찮아지시리라 믿지만 투병이란 중요한 싸움이다. 혹시 내 불찰이 사부님의 병을 키웠을까 걱정해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순간 순간에 영원을 담아야 한다. 그것만이 영원히 사는 방법이다.
아직 써야 할 글이 많다. <시칠리아 미칠리아>의 초고를 넘겨야 하는데 많은 시일이 지났다. 계속 수정하게 된다. 언제쯤 만족하게 될까? 나는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80%는 넘기고 싶다. 기다림을 요구하는 입장이라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알려지지 않은 신>을 써야 한다. 쓰고도 있다. 인물들이 내 안에서 들끓는다. 지금까지는 시간에 쫓겨가며 공장처럼 자판을 두들겼는데 이제는 시간을 여울에 가두고 하나 하나 음미하듯 인물을 빚어내고 싶다. 나는 가벼운 작가다. 가벼움은 미덕이다.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기 위해 적절한 중력의 요정을 활용할 예정이다.
그 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특히 파우스트는 3번을 읽었다. 참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깨닫는 바가 달라진다. 3독 째에 나는 좋아하던 파우스트를 비판하였다.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4독째에는 다시 파우스트로 수렴하게 될런지도 모른다(가능성은 떨어진다). 책을 읽은 후에는 책을 버리게 된다. 애벌레가 속살을 키우고 허물을 벗듯이. 결국 가장 적합한 사상은 최초로 읽었던 조셉 캠벨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금 책을 읽어보고, 스스로도 책을 찾아낼 수 있어야겠다.
지난 1년 간, 나는 변화를 경영하게 되었나? 나는 자유를 배웠나?
일단 나는 깨달았다. 자유를. 그 후, 나는 또 깨달았다. 깨닫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도 다시 또 깨달았는데 나라는 사람의 속성에 대해서. 나는 우드스톡에서 영원히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다음에 깨달은 것은 “결과와 과정”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결에 관하여. 우리의 수업의 과정은 아폴로니우스적인 세상에 길들여진 삶에 디오니소스적 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 둘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1) 일단 깨닫는다. 자유를.
(2) 그리고 행동한다. 자유를.
(3) 자라고 싶은 자유의 지향을 발견한다.
(4) 아폴로니우스적인 방법으로 줄기를 올리고 디오니소스적인 꽃을 피운다.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아폴로니우스적 결과주의에 매몰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디오니소스를 탐하면서도 그 실용이 아폴로니우스적인 것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가령, “노는 자가 성공한다.” 따위… 사실은 노는 데 성공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목표다. 이쯤 되자, 자유의 옷이 제법 몸에 적응하였다. 나는 나의 뇌를 해방하였다. 스스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고 방향감의 나침반을 이리저리 더듬이 삼아 굴려보기도 하지만 결코 회의하지는 않는다. 회의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방황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감사를 다 표할 수 있을까? 내 나이 서른에 나는 내 영혼을 낚았다. 다른 길로 갔어도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였을까? 자신할 수 없다. 그저 내 기막힌 행운에 대해 심각한 다행감을 느낀다.
아직 나는 게으르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나 자신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원만하게 경지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각자의 루트를 따라 산 정상에서 만날 때까지. 디오니소스 축제를 위한 와인 한 병을 배낭에 짊어지고 가겠다.
정상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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