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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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움칫 놀라서 뒤를 돌아다본다. ‘아무도 없었는데…’ 큰 아이와 함께 빨래방에 왔다.
아이는 맞은편 마트에 심부름을 보낸 터이다. 두툼한 겨울 이불을 집에 있는 세탁기는 힘들어 한다. 10kg의 공기방울 세탁기로는 개운하게 세탁이 되지 않는다. 건조도 여의치가 않다. 지난해부터 이불 빨래는 이곳 빨래방을 이용하고 있다. 세탁기는 500원 동전 7개를 원한다. 빨래를 밀어 넣고 문을 닫은 후 세탁기 위 세제 통을 열면 첫 번째 칸에서 물이 나온다. 그 곳에 가루비누를 넣고 고무덮개를 덮으면 윙...하는 소리와 함께 전면에 있는 동그란 유리너머로 빨래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른 봄 마른 나무에 물 오르듯 빨래 사이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서서히 이불이 숨을 죽인다. 넉넉하게 물이 차 오르면 거품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적당한 물과 비누가 어우러져 이불과 때를 분리시킬 게다. 가만히 바라보다 자리로 와서 앉는다. 몇평이나 될까.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가늠을 잘 못한다. 미닫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왼편에 일자형소파에 여섯 개의 네모난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신상은 아니었을 게다. 어디선가 쓰다가 이곳으로 이주해온 것이지 싶다. 옅은 회색의 레자로 만들어진 의자는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깨끗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더러워서 엉덩이를 붙이기가 꺼림칙한 정도는 아니다. 혹시 모르겠다. 백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면 앉지 않았을지도. 소파에 앉으면 120도 방향 선반 위에 텔레비젼 한대가 있다. 몸둥이가 통통하다. TV는 저 혼자 떠들고 있다. 그 곁에 세탁기가 3대. 15kg, 10kg, 7kg 그리고 자판기가 한대 보인다. 미쳐 준비하지 못한 세재를 팔고 있다. 두 봉지에 500원이다. 이곳에서 필요한 소품들을 보관하는 곳인가? 안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입구에서 보는 정면에는 건조대 네 대가 이층으로 설치되어 있다. 소파와 건조대 사이에 서서 빨래를 손질하기 편하게 거치대가 만들어져 있다. 거치대는 나무선반에 노란 장판으로 마무리되어있다. 아이를 심부름을 보내고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이다. 죽음에 이르는 부분에 가까워졌다. 종이책이 몇 장 남아있지 않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의 삶. 그 단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 긴장감을 더해간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주인공의 편지도 달라지고 있다. 아니다. 읽고 있는 독자의 마음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언제쯤 목숨 줄을 놓을지를...세탁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시작할 때 넣었던 동전에 따라 시간이 셋팅 되었던 것이 이제 끝나감을 알려주듯이 반짝거리고 있다. 준비를 하란 말이겠지. 나는 나의 임무를 다해가니 다음 스케줄점검을 하라는 말로 들린다. 빨간 숫자의 깜박거림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규칙적을 돌아가던 세탁기의 동그란 통이 속도를 늦추더니 이내 멈추었다. 버튼을 눌러 몸체에 꼭 붙어있던 문을 열어 져쳤다. 이불 하나와 침대덮개하나이다. 일차 탈수가 된 상태라 물이 흐르지는 않는다. 왼편에 위치한 건조대 중에 제일 큰놈의 문을 열었다. 왠지 공간이 넉넉해야 잘 마를 것 같다. 빨래를 넣고 문을 닫은 후 동전을 투입하면 된다. 안내문을 읽어본다. 500원에 3분간의 건조가 가능하다고 알리고 있다. 최소 6개의 동전이 필요함도 함께 적혀있다. 500원 동전 6개면 3,000원이고 그러면 3분간 6개 18분이 걸린다. 지금부터 18분 후면 오늘의 임무는 끝이구나 생각을 하던 차에 들린 목소리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남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저쪽에서 “안녕하세요?” 했으니 나도 "안녕하세요"했다. 인사를 하고 상대를 바라보는데 남자가 건조기 앞으로 걸어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눈에 쓱 훑어보았다. 좀 이상하다. 검정구두를 신었고 양말색깔은 생각나지 않는다. 맨발이었던가? 복숭아뼈와 바지의 밑단 사이 발목이 훤하다. 8부에서 8.5부정도의 검정바지를 입었다. 통바지이다. 어딘가 어색한 일자바지. 분명 양복바지인 듯 한데....셔츠에 저고리를 입은 모양새가 분명 남성용 수트를 입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이다. 남자에게서 냄새가 나지는 않았는데 왠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옷차림이다.
점점 가까이 온다. 솜털이 솟는다. 그만 다가오기를 바라면서 서 있었다. 어라...왜 자꾸 내 앞으로 오는 거지. 약간의 두려움도 생긴다. "사람들이 나를 인간취급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상해 보입니까?"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조금 더 무서워지고 있다. "조금 전에 의릉[동대문구 이문동 소재]에 갔었는데 모두 자기를 보고 피한다"고 했다. "아..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굳이 내가 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아들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지만 아직 올 시간이 되지 않았다. "커피 한잔 드실래요?" 빨래방 안에 자판기 한 대가 보인다. ‘저기 커피 자판기가 있었네…’ 세심하지 않은 나는 그곳에 자판기가 있는 줄 몰랐다. 그다지 큰 체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다. 순간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우리의 상황이 보였다. 이 공간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싶은 마음에 입구 쪽으로 빠르게 걸어 나왔다. “휴...” 살았다. 토요일 오전 거리는 한산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한두 명 지나다니고 있었다. 빨래방 옆에는 약국이 있다. 약국주인은 젊은 남자이다. 남편의 병원 때문에 몇 번 들렀던 곳이라 익숙하다. 여차하면 저곳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빨래방 문이 열리며 남자가 나온다. 손에 커피한잔이 들려있다. 이 남자 다시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조금 덜 무섭다.
"왜 나를 피합니까? 내가 그렇게 이상합니까?"하면서 화를 낸다. "나한테 왜 이래요! 말 시키지 마세요!" 목소리는 떨리고
말하고 있는 내가 애처롭다. "참하게 생겨서요" 어처구니가 없다. 이 때 "엄마!" 하고 아이가 나타났다. “왜 그래요?” “어..어…”순간 주위를 살펴보니 남자가 사라졌다. 동작 한번 잽싸다. "엄마! 왜 그래?" 아이가 묻는다. 네가 없는 동안 어떤 남자가...상황설명을 하니 아들은 빨래방 문을 열고 나가서 그 남자를 찾는다. 거리 어디에도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었다. 심심챦게 벌어지고 있는 도시의 범죄들이 생각났다. 원인 모를 두려움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야' 내게 말을 걸어오던 그 남자가 무슨 해꼬지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대화상대를 찾았을 뿐일 수도 있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자신을 사람들이 인간취급을 안 하는 이유를 알 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참하게 생긴 여자라서 커피한잔을 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 남자의 의도가 어떻든 나는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유리문으로 거리가 보이는 곳이다. 입구까지 열 발자욱이 채 안 되는 공간이다. 남자의 체격도 크지 않아서 힘으로 제압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겁먹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낯선이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왜 생기는 걸까.
“나는 개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본능적(의식적으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 안에 지저분한 발로 드나들 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 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걸리 적 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 그래, 좋다. 그러나 그 짐승은 사람의 내력이 있고 사람의 영혼이 있다. 게다가 다른 개와는 달리 아주 예민해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내가 개라는 사실을 인정 하기로 했다. 가족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려 한다. 이 집은 나에게는 너무 과분하고, 가족들도(그리 예민하지 않지만)굉장히 세련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목사들이 있다. 중략....
개는 이곳에 돌아온 걸 후회한다. 그들이 친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평야를 떠돌 때도 이 집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불쌍한 짐승이 돌아온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1883년 고흐나이 30세에 사랑하는 여인 시엔과 그의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다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 온지 며칠 되지 않은 12월15일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이다.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 생전에 자신의 그림를 단 한 점만 팔았던 것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한 점만 팔았던 것은 그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극심한 경제난과 더불어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는, 다시 말하면 자신의 그림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로 부터의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화가.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형을 알아보는 동생 테오가 있어서 지금 우리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붉은 포도밭>, 고갱이 탐을 내던 <해바라기 연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천재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먹고 마시는 것에 돈을 아꼈다. 모델 비와 캔버스 물감 연필 등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을 한다고 이야기하던 그는 우선순위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를 사는 것이었고 굶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고흐가 천재화가임에는 분명해 보이는데 그를 평생 곁에서 지켜주고 바라봐준 동생 테오가 더 위대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테오는 화상이었다. 화상에게 화가는 고객이다. 그런데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고객일까. 물론 테오에게 고흐는 형이다. 가족이다. 가족도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 내지 않는 경우는 고흐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개가 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사람이니까.
"엄마는 왜 살아?" 24살 아이의 질문이다. "할머니는 살아있으니까 그냥 산다"고 하던데. "그 말도 맞네...살아 있으니까 살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이런 답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먹기도 한다. 노벨상을 받았다는 어느 학자는 말한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 중에 돈은 필요조건이다. 원시시대에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먹고 살수 있었지만 지금은 돈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행복하기 위한 돈은 얼마 정도이면 좋을까. 많은 이들을
빨래방에서 만난 그 남자. 커피한잔과 한마디의 대화가 필요했을 수도 있는 사람.
빈곤함에 시달렸지만 그림으로 세상에 많은 이야기를 남겨 준 천재 화가.
연봉 4000만원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내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 외로운 인간이다. 고독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야지 않겠니?" 하시던 스승의 말이 생각난다.
봄비 오는 새벽바람에….
20대 중반에 우리 회사 직원이 어떤 남자가 따라오길래 빨리 걷다가 뛰어서 달아났데요. 그런데 그 남자가 뒤에서 소리지르더래요.
"왜 도망가~!!"
저는 그보다 어려서 동네 미친 할머니-지금 생각하면 노숙자인듯 한 할머니-가 하교길에 맞은편에서 오길래 길을 저만치 피해가다가 더이상 피할 수 없어 코너에 몰렸는데, 그 할머니가 우산으로 제 배를 꾹 찌르고 가셨어요. 배가 엄청 아팠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할머닌 아무 이유없이 피한 제가 미워서 그랬을지도 몰라요.
저도 '왜 도망가!' 남자나 할머니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할찌도 몰라요. 거부당한다는 거,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이니까요. 가끔은 악을 쓰고, 복수하고 싶어질지도... 아, 이제는 그렇게 도망가는 사람 있으면 쫒아가서 뭐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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