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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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말이야, 내가 그림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 일꺼야. 어른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중에 커서 가난하게 산다고 하셨어. 그리고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사람들도 가난하게 산다고 하셨어. 그건 말이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그 동안에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턱을 손으로 괴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생각보다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을 권장하려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
하지만, 난 꽤 좋은 시절을 보냈지. 내게 이야기를 들여주시는 분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TV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세계의 고전들에서 따온 이야기를 시리즈로 많이 볼 수 있었어. 다른 나라 사람사는 이야기나 괴물을 물리친 이야기, 우주로 여행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잖아. 그래서 그런가 난 이야기책을 좋아했지. 소설을 읽었고, 대학때는 우리나라 전설집을 몽땅 읽었었어.
내 그림이야기도 그당시에 본 이야기와 깊이 연관있어. 난 중고등학생 때, 친구와 만나면 용돈이없어서 서점에서 만나곤 했어. 내 친구들은 모두 책을 열심히 읽었지. 그애들은 읽는 속도도 매우 빨랐어. 난 한 시간에 겨우 40페이지정도 읽어. 내 말하는 속도로 책을 읽어가거든. 우리는 문학전집 코너에서 소설을 하나씩 꺼내서 읽기 시작했지. 당시에 작가별로 한권씩 엮어진 한국문학 단편집과 중편소설들을 거의 모두 읽었지. 현대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어. 나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재미난 것인지 몰랐거든.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언급하는 것들로 읽어나갔지.
그러다가 대학 입학시험을 마치고 그림에 대해 질문하는 책을 만나게 된거야. 같은 반 친구가 이외수의 소설 <들개>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했어. 난 궁금했지. 그래서 그걸 보았어. 재미있더라구. 거기엔 화가인가, 작가인가가 나왔던 것 같아. 들개 속 주인공은 가난한 예술가였어. 그게 재미있어서 <꿈꾸는 식물>과 <벽오금학도>를 읽었지.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는 그림에 대한 질문은 아마 그 소설들 속에서 나오는 것일거야. 난 <벽오금학도>로 기억하지만, <꿈꾸는 식물>일 수도 있지.
하여간 그 중에 한 소설에 일엽난을 그리는 스님이 나오시거든. 그 스님이 그린 난초는 향기가 좋고, 그 그림을 방에 걸어두면 마음이 맑아지고, 아픈 사람은 병이 나아. 그 소설 속에서는 아픈 어머니 방 벽에 그림을 붙여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의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아버려. 난 그런 그림이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어렴풋이 믿었던 모양이야. 그림이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그 일엽스님이 자신의 산방에 같이 거처하는 고아 아이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는데, 아주 엄격하게 가르쳐주시더라구. 아이는 단정히 앉아서 먹을 갈아야 했어. 마음을 다해서 갈지. 산에 아침해가 뜨기전에 약수터에 가서 물을 받아다가 그 물로 정성을 다해서 갈라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다가 물을 늦게 길어왔는지, 먹을 정성스럽게 갈았는지를 귀신같이 아셔. 그리고는 아이는 야단을 맞기도 하고 차분이 먹을 갈기도 했어. 아이에겐 풀어할 문제가 하나 주어졌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달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거야. 아이는 처음에 단박에 ‘보름달’이라고 답을 해버려. 그런데 스님은 아니라고 나무라시며 먹을 가는 동안에 계속 그것을 생각하라고 하시지. 나도 그게 궁금했어. 당시의 내게도 아이의 대답은 맞는 거니까. 스님이 뭐라고 하실지, 정말 궁금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먹을 갈다가 까만 먹물 속에 뜬 달을 보았어. 그리고는 스님께 말씀드리지. 그믐달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달이이라고. 칠흑같이 어두운 그 먹물 속에 달이 떠올랐던거야.
그래서 스님은 아이가 먹을 가는 것에서 다음으로 넘어갈 단계가 된 것을 아시고 다른 문제를 하나 주셨지. 이제는 종이를 만질 때가 되었다면서 종이를 한 장 주시고는 산방을 나가서 종이에 무언가를 하나 싸오라고 하셨어. 고운 그림을 그리려면 무엇이 아름다운지, 추한지, 정갈한 것인지, 더러운 것인지 알아야 하니까 그것을 구분하여 종이에 더럽고 추한 것을 싸오라고 하셨어. 아이는 종이를 들고 문을 나섰지. 너 혹시 이 이야기 아니? 결말이 어떨꺼 같아? 넌 무엇을 싸가지고 올래? 난 그 당시에 그 아이를 따라 문을 나선 사람이 되었어. 아이는 단숨에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지. 똥이 제일 더러운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싸가지고 가려고 했어. 그런데 산을 돌아다니가다 진짜 똥을 봤다. 그 똥에 구더기, 벌레들이 우굴거리고 다른 생물도 우글거리고 식물도 나고 그런거야. 처음에 더러워서 우웩우웩하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똥에서 생명들이 살고 또 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것을 본거야. 아이는 그것을 이제 더 이상 더럽다 여기지 않았어. 그래서 그건 싸갈 수 없었지. 하루종일 온 산을 돌아다니며 싸갈만한 것을 찾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더 이상 더럽거나 추한 것이 없었어. 아이는 해가 저물어서야 빈 종이를 들고 울면서 산방으로 돌아왔지. 스님은 그런 아이를 폭 안아주셨어.
나는 이 이야기를 20대 초반에 보았어. 한동안 잊고 있었지.
그러다가 기상청에 근무하면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시각을 기록하고,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시간을 기록하면서, 야근을 하면서 달을 보았지. 그리고 그름달이 무엇인지를 알게되었어. 군산 기상대에 근무할 때,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를 보았다.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이란 만화인데, 거기에도 그믐달이 나와. 스승님은 제자에게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키시지. ‘저기 달을 보아. 구르믈 버서난 달을.’ 그런데 스승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달은 보이지 않았어. 그날 밤은 그믐이었고, 달이 뜨지 않았거든. 스승님은 왜 달이 없는 하늘을 가리켜서 달을 보라 했을까, 그것이 그 이야기 속의 제자가 풀어야할 문제였지.
난 군산기상대에 근무하면서 달뜨는 시간을 기록했다고 했잖아. 그걸 하면서 알게된 과학적인 지식이 내게 말하길, 그믐달은 낮에 떠. 그러니까 그름밤에는 달이 없다구. 낮에 뜬 달은 해와 같은 곳에 있기에 그 빛이 보이지 않아. 밤에는 달이 없구. 그믐밤에 뜬 달은 보았다는 사람은 마음에 뜬 달은 보는 것일거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주인공 견자는 스승님이 일러주신 자신의 한계를 보았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달이 뜨는 것을 알아.
일엽난의 그 꼬맹이가 본 달도 마음에 뜬 달이 아니었을까 하고 최근 3년전에야 알았어. 세상을 밝히려고 하는 달이 마음에 떴는데 그 빛이 얼마나 밝을까를 가늠해 보았지. 그건 그 어떤 달보다 밝더라. 아이가 종이에 아무것도 싸갈 수 없었던 것처럼, 미추에 대한 것도 말이야, 최근에 화실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알게되었어. 예전에는 예쁜 것을 그리고 싶었지. 예쁘게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그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어. 그런 마음이 있을 때는 내가 그린 그림이 초라해보일 때가 많아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았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무 생각없이 하나의 선을 쫒고, 공간을 쫒아서 눈이 가게되고, 그리고 눈길이 가는 그 선을 따라서 손도 움직이게 돼. 그렇게 그리게 되면 그림 속 인물이 예쁘건 예쁘지 않건 아무렇지도 않고, 잘 그리건 못 그리건 아무렇지도 않았어. 나중에 옆에서 누군가가 보고, 혹은 모델이 되어 준 사람이 보고 예쁘네 어쩌네 하지만 난 그런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 그리는 그 순간에는 그 대상이 너무 예뻤고, 어느 순간에는 그 예쁘다라는 것도 없어지더라구. 그리고는 마음이 편안했어. 예쁜 것 미운 것, 정갈한 것, 더러운 것 그런 것들 것 다 뭐니. 그런 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좋은 데 어떻게 그런 것들을 구분할 수 있겠어. 그림을 그리다보면 모두 다 예쁜데 말이야.
그렇게 그림을 그리다가 알았지. 어려서 본 소설 속 아이가 종이에 아무 것도 싸가지고 올 수 없었다고 울며 돌아올 때 스님이 아이를 감싸 안아주었던 것을. 원래 그림이란 미추를 구분하지 않은 것인가봐. 달을 보는 마음과 세상을 모두 예쁘게 보는 그 마음이 그림속에 들어가는 건가봐. 그래서 스님의 일엽란은 묵향과 함께 맑은 향기가 그 속에 베어들어가지 않았나 싶어.
난 이 이야기를 20년 넘게 품어왔어. 현재 내가 아는 답은 이런데, 나중에는 다른 답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때도 나는 이 질문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도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알게된 것을 그림 속에 넣고 싶어하겠지.
난 이야기를 넣고 싶어. 그리고, 일엽란 같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벽오금학도>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소설 속에 푸른 오동나무가 있고, 금학이 날아다니는 선경은 다시 꼭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런 걸 이렇게 말하지 '꿈속라도 꼭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그런 게 꿈이 아닐까 싶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어. 난 이야기 좋아하잖아. 그리고 꿈이란 것도 좋아하잖아. 그리니까 그걸 그림으로 그려야겠어.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그 순간을, 그 세계를 미리서 보게 해야겠어. 마음에 뜨는 달처럼, 이미 마음 속에 그 세계를 만들게 도와야겠어.
나중에 또 그림이야기 생각나면 또 이야기께. 안녕, 언제나 꿈을 응원해 주는 내 친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님 그림이예요~^^
그림 속에 뜨개질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꼭 저의 아내 같아서요.
저도 선배님의 꿈을 언제나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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