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세린
  • 조회 수 2118
  • 댓글 수 13
  • 추천 수 0
2013년 4월 30일 12시 29분 등록

발견

 

 

  눈물이 난다. 갑자기 복받쳐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웨버님(닉네임 학이시습)의 글을 다 읽으니 눈에서 왈칵 물이 쏟아진다.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슬픔을 슬퍼하지 않으려고 부단 애쓰고 있었나보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고, 태연한 척 하고 있었다. 삼우제가 끝나고 나는 정신 차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슬픔을 회피했다. 그렇다고 정신을 차렸느냐, 그것도 아니다. 시간 관리는 곧 자신이 경험하는 사건을 관리하는 뜻이라고 청소년들에게 강의하고 다니면서 정작 나는 내 하루를 흘러가게 내버려뒀다. 그 가운데 계속해서 하루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하셨던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그 말씀이 생각나면 마음이 무거워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폈지만 차마 글을 쓰지는 못했다.

  작년 9월 오프수업 때였다. 그날은 점심으로 남산에 있는 목멱산방에서 비빔밥을 먹고 다시 웨버님 사무실로 돌아와서 수업을 이어갔다. 나는 오후 발표자였다. 그날 발표 주제는 자신을 자유로부터 묶어 두는 것 세 가지였다. 나는 가족, 신념, 밥이라고 했다. 사부님은 내가 발표하는 시간에 잠깐 주무셨다. 발표를 마치고 동기들이 코멘트를 해주고 있는 사이 사부님은 일어나셔서 물 한 잔을 마시려고 움직이셨다. 동기들의 코멘트가 마무리 될 무렵 사부님은 물 마신 자리에 서서 내게 질문하셨다.

너를 묶는 게 뭐라고?”

가족, 즉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함. 그리고 용기 부족이나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는 신념의 부재, 마지막으로 밥이요.”

? 내가 너 돈 많이 벌거라고 하지 않았냐! 너는 수학이 뭐라고 생각 하냐?”

수학이요? …….”

그렇지, 어렵지. 수학자들이 철학자였다는 거 알지? 청소년들, 수학, something, …… 사기열전, 고전 뭔지는 모르지만, 세 가지를 붙이면 무엇이 될까? 나는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 몰랐다. 수학을 못하면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간다는 것 정도? 미분이나 적분을 할 때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왜 이 짓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 무슨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왜 수학이 학교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는지, 수학을 인문학적으로 풀면 어떻게 되는지……. 수학은 명료하잖아, 그 내용을 청소년 버전으로 써보면 어떨까? 중학교 2학년의 눈높이 써보면 어떨까?”

  사부님의 코멘트에 동기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잠깐 자면서 그분을 만나고 오셨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부님도 웃으시며 진지하게 이야기 마무리 하셨다.

졸면서 누군가를 만났어. 강연과 잘 연계될 것 같다. 세린신이 나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무의 삶은 9월 오프 수업이 있기 전 사부님 칼럼에 나온 이야기였다. 그 글에서 사부님은 앞으로의 삶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하셨다. 누군가를 먹어야 하는 삶 또는 먹히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광합성하며 하늘로 뻗어나가는 나무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하셨다. 9, 가을에 내게도 나무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렇게 내 첫 책 기획은 시작되었다.

  내 방 책상 앞 창문에 올해 1, 편집자 두 분과 사부님, 팔팔이 앞에서 발표했던 첫 책 기획안 중 목차가 붙어 있다.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고 있다. , 쓰지 않고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글 쓸 힘을 잃어버렸다. 사부님이 떠나신 후 더욱 키보드를 누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글을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리는 게 사부님께 누가 될 것 같아 두렵다. 현역 연구원일 때는 마감 시간을 맞추려고 부랴부랴 쓰면서도 당당했는데, 현재 나는 내 글에 자신감을 잃었다.

  웨버님 글을 읽으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슬픔을 깊게 슬퍼하지 않은 비겁함, 노력하지 않고, 두려움을 핑계 대는 게으름, 치열함을 잃어버리고 원래 그랬다는 듯이 살아버리려는 무심함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키보드를 눌러 나의 상태를 글로 표현할 힘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무처럼 살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렇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이유는 사부님이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전에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는 사랑하는 사부님의 돌아가심이 무척이나 슬프다.

IP *.142.242.20

프로필 이미지
2013.04.30 14:34:02 *.216.38.13

세린씨의 글을 읽으니, 

키보드를 만지작 거리지 못하는 것이 비단 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네요. 

<일상에 스민 문학> 칼럼을 이 주나 펑크 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 주위만 빙빙 돌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 사부님께서 보시면 옳지 않다, 고 하실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슬픔을 회피하는  모습조차 닮아있으니.

프로필 이미지
2013.04.30 16:54:23 *.142.242.20

그러셨군요.

재엽선배님~~

장례식 때부터 9기 연구원 첫 수업때까지 계속 만났는데도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음에 만나면 정식으로 인사를...

 

용기 있게 슬퍼하고, 또 치열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써야겠어요.

그러면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지겠지요?

요즘은 어제보다 덜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을 살았던거 같아요.

 

함께 힘내요! 그리고 향기로와져요.

 

프로필 이미지
2013.04.30 17:35:53 *.252.144.139

세린아, 나도 그렇다.

사부님 돌아가시고 지난 2주간은 정신이 없었어.

아니 병문안 갔다온 4월 둘째 주부터 부고 기사 마련하고 컨펌 받고 배포하고 FU하고

기획기사 마련하고 보내고 전화하고... 마치 업무를 하듯이 몰아쳐서 했지.

그거 하면서는 글도 열심히 썼어. 커리어토크도 쓰고 어바웃미데이도 잘 준비했지.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거부할 수 없는 무기력이 나를 누르고 있는거야.

커리어토크도 빼 먹고 그렇다고 뭘 한것도 아니고

난 가끔 뭔가를 기한내에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해서 그걸 무너뜨려버리려고 의도적으로 스케쥴을 어기곤 하는데 지금은 그러면서도 불안하고 허무하고 그냥 몰라 그냥 다 귀찮고 부질없고 눈물이 나와.

다 슬퍼하고 나면 다시 뭔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언제까지 슬퍼해야 하는거지?

프로필 이미지
2013.04.30 19:38:20 *.142.242.20

우리는 슬픔 중에도 기쁨을 찾아, 행복을 찾아 그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기한 없는 슬픔이 우리에게 생겼지만, 

그 안에 행복도 기쁨도 소생하겠죠? 

슬픔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추억이 되서 좋은 기억으로, 그렇게 웃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슬픔을 더 저 답게, 또 선배답게 승화시킬 수 있다면 사부님이 좋아하실 것 같기도 하고... 


선배 힘내요! 우리 같이 힘내요! 

좋은 일, 기쁜 일 생기면 사부님 찾아뵈러 가요. 

책 나오면 선물 드리러, 우리 절두산 추모공원에 가요. 



프로필 이미지
2013.04.30 17:38:27 *.41.190.165

세린아, 지난 1년간 많은 고생을 했지?

사부님 처럼 사랑스러운 분을 모시고 1년간을 함께 했으니.... 축복인 것 같다.

사부님의 떠남은 야속한 일이지만, 한가지 깨달아 지는것이 있다.

"집을 세우는자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려면....역시 하나님을 의뢰 하는 곳이 답인 것 같구나"

프로필 이미지
2013.04.30 19:39:45 *.142.242.20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려면....!!


웨버님 댓글 감사합니다. 

다시 키보드를 당당하게 눌러보려고요. 

공부도 많이 하고요. 

프로필 이미지
2013.05.01 06:05:27 *.39.134.221

그리움을 풀어 내는 방법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

그건 아마도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것 아닌가 싶다.

충분히 그리워하고 충분히 아파하면 언젠가 그곳에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알게 되지.

그리고 한뼘정도 성장이란걸 하는 것 같다.

그리워할 대상이 없는 것이 문제이지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사랑이 있다는 말이고

아픔이 없은 것이 문제이지 아픔을 느낄수 있다는 건 감정이 살아 있음을 말하는 거니까.

 

우리 팔팔이가 사부님과 정떼는 시기가 없어서 더 아플수도 있고

선배들한테는 갑작스러워서 황망할수도 있고 그런것 같아. 그럼에도 부산스럽게

겉으로 슬픔을 표현하면서 이겨내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자신안으로 침잠하는 사람들도 있지.

나는 생각한다. 그분이 지금 이 상황이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지를.

잘 가늠이 가진 않지만 그냥 내가 생각되어지는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확인불가능이니까....ㅋ

그리고 눈물이 나면 울고 또 깨달음이 오면 아...그 말이었네! 이렇게. 단단한 내 머리가 깨지면서.

 

아마 아주...아주 오래가겠지.

다른 이들에게는 아주 이상하게도 보일게야.

그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난 울지 못하는 사람. 아파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나은것 같은데.

 

프로필 이미지
2013.05.02 16:24:28 *.142.242.20

"사랑 한 번 못해본 사람 처럼 왜그래?"

어제 행님이 산에 오르기 전 물었던 저 질문에 

내가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지, 사무치는지, 미어지는지 알았어요. 


자연스럽게... 


다시 노적봉에 올라요. 우리 또  



프로필 이미지
2013.05.01 20:12:02 *.201.99.195

세린아, 이 글 읽고 갑자기 너랑 밥먹고 싶어졌어.

이미 힐링 산행을 하고 있더구나.

나도 선생님 생각이나면 나가서 여기저기 걸어다닌단다.

산책이...발바닥이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해주길 바라면서.

절두산 순교성지에는 매일 10시, 그리고 오후 3시에 미사가 있어.

눈물이 나게 그리우면 합정동으로 와, 그리고 번개 날려서 밥먹자.  힘내라. 어여쁜 세린!

프로필 이미지
2013.05.02 14:23:46 *.146.26.24

좌쌤, 미사 가셨다가 살롱9에도 오세요.

특히 월.수에는 꼭 들르셔요..

프로필 이미지
2013.05.02 16:29:39 *.142.242.20

좌선생님 감사해요. 

어제 사부님이 오르셨다던 북한산 노적봉에 갔어요.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행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 둘 만 그곳에 있을 수 있었어요. 

내려오려고 짐을 챙기는 데 이름 모를 새가 자취는 감춘 채 "떼떼뗴떼떼뗴"하고 울었어요. 

우리가 내려가니까 계속 울었어요. 


사부님이 더 놀다 가라고 하는 것 같이... 

그래서 새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두 팔을 들어 크게 흔들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다음엔 더 많이 함께 올게요." 

그러자 잠시 새가 울지 않았어요. 


그러다 마지막 인사를 해줬지요. 

"그래, 잘 가거라. 또 오거라." 


절두산 순교성지에도 가야겠어요. 오늘 명함이 나왔는데, 

제 인생에 첫 명한 보여드리러 가야겠어요. 

프로필 이미지
2013.05.05 15:51:42 *.108.81.231

최근에 EBS 다큐프라임에서 한 수학과 문명이라는 5부작 다큐가 있는데, 꽤 볼만하더라구요.책쓰는데 꽤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힘내시고, 구선생님이 기획해주신 책~ 잘 쓰시면 분명 그곳에서 좋아해주실거라 생각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3.05.07 07:08:46 *.142.242.20

^^ 감사합니다. 쭌영님~!

'문명과 수학'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잡아야겠어요.

다큐프라임 제작한 것 처럼 책을 쓰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파이팅 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