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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2일 07시 28분 등록

No14-2.

2013.07.22

글쓴이: 오미경

 

<사기> 두번읽기

  

지난번 <사기> 에 이어 두번읽으면서 첨가한 부분 올립니다

  

1-10. 사마천 고향 방문하기

 

마을에 가면 바람에서도 사마천의 냄새가 난다. ‘풍추사마風追司馬’

한국에서 3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 서안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3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사마천의 고향인 섬서성 한성시에 도착한다. 사마천의 무덤과 사당에서 뒤돌아보면 황하가 내려다보인다. 서양에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사마천이 있다. 그리스 역사가 키케로에 의해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서술하면서부터 역사학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해석과 깨달음의 수준까지 끌어오렸다. 중국인들은 사마천을 ‘사성史聖’이라 한다. 즉 ‘역사학의 성인’이다.

 

사마천 고향 섬서성에 있는 한성이다.

 

사마천 사당1.jpg

 

사마천 광장, 저 앞의 산 등성이에 사마천의 사당과 묘소가 있다.

 

 

인간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세상은 도대체 어떤 인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은 그 인심에 왜 울고 웃고, 또 분노하는가....

<사기>를 통해 이런 인간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나 해답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

<사기>는 인간의 생로병사는 물론, 깊은 슬픔과 분노, 후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통찰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마천사당2.jpg

 

입구에서 사당쪽으로 가면서 사마천 일대기를 조각했다. 광장의 초입부터 끝 쪽까지 사마천의 일생을 중요 시기별로 나누어 글과 그림으로 간명하게 만들어놓은 조각상들이다

 

사마천사당3.jpg

 

사마천 일대기 조각상들이 쭉 늘어서있다.

 

 

사마천사당5.jpg

 

사당과 묘소 올라가는 길, 저 앞의 왼쪽길로 가면 묘소, 오른 쪽 길로 가면 사당이 나온다

 

 

사마천사당4.jpg

 

사마천 사당 매표소, 한태사사마천사묘(漢太史司馬遷祠墓)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사마천사당6.jpg

 

 

사당 올라가는 길의 패방 현판,

史筆昭世"(사필소세, 밝힐소)라 쓰여 있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

 

사마천사당7.jpg

 

 

태사당, 사마천 사당임을 알 수 있다.

 

 

사마천사당15.jpg

 

사마천 사당의 현판에 “사성천추, 史聖千秋”라 쓰여 있다.

'역사학의 성인 사마천, 그 이름 후세에 길이 남으리’ 뭐 그런 뜻이겠지. 천추란 뜻은 원래 오래고 긴 세월이라는 의미.

 

사마천사당9.jpg

 

 

 

사당안의 사마천 영정, 궁형 이후 수염이 없었겠지만, 수염을 그려넣었다.

사마천 가족에 대한 설은 2가지가 전해진다.

 

사마천의 부인인 양씨는 사마서원에서 사마천을 가르쳤던 양정의 손녀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며, 글도 잘 지었다. 그녀는 사마천에게 시집온 뒤 남편을 따라 장안으로 가서 평생 반려자 역할을 했다.

 

또 하나의 설은 사마천에게 유천랑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용모와 품행이 단정했을 뿐만 아니라, 글, 그림, 음악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마천이 세상을 뜨자 그녀는 남편의 유해를 가져와 고향 하양(한성)으로 가져와 언덕 위에 묻었다. 그녀 외에도 수청오라는 첩이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역사적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한다.

 

사마천의 자녀인 아들 둘과 딸 하나. 그중 아들의 이름은 사마인, 사마관이었다. 그리고 사마천의 딸은 대사농大司農 양창에게 시집 가 외손자 운愪을 낳았다. 바로 이 양운이 <사기>를 세상에서 빛나게 한 장본인이다. 양운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게 외할아버지인 사마천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 <태사공자서>에 이렇게 썼다.

정본(正本)한 부는 명산에 숨겨두고, 부본(副本)한 부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바로 이 <사기>한 부를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 사마천의 외손자인 양운이다. 최근에 한성시와 중국 방송국 cctv가 사마천 축제와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었는데, 사마천이 정본을 숨긴 명산을 찾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선 일본인 학자가 ‘스무 살 여행의 아름다운 공범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마담의 무덤이다. 사마천의 무덤에는 5그루의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무덤은 몽골의 고유 주거형태인 ‘파오모양의 팔괘묘’이다. 팔괘묘라 부르는 이유는 무덤 둘레에 벽돌로 팔괘 도안을 장식해놨기 때문이다.

 

사마천 고향의 풍습에 따르면, 한성시 사람들은 사마천 무덤에 갈 때 , 유천랑이 사마천이 유골을 안장한 후 심은 ‘영춘화(迎春化), 봄맞이꽃’를 들고 가 바친다. 그렇게 꽃을 바치면서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시험을 앞둔 사람이라면 사마천 무덤에 가서 영춘화를 바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서촌의 입구에는 ‘법왕행궁‘法王行宮’ 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진, 돌로 만든 패방이 있다.

패방(牌坊, 간판패, 동네방)이란 돌로 만든 문으로 신성한 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한다. ‘패루’라고 부르는 이문은 한국의 홍살문과 같다. ‘법왕행궁’은 중국어로 말하면 ‘파왕상궁’이다. 法王行宮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읽으면 의미가 다른다.

‘궁싱宮行은 사마천이 받은 형벌인 궁형(宮刑)과 발음이 같다. 왕법(王法)은 王+木 = 枉억울할왕 자가 된다. 뭔가를 잘못 적용시켰다고 할 때 바로 枉자를 쓴다. 즉 저 패방은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것은 법을 잘못 적용시켜 억울한 벌을 받았다는 뜻이다.‘

 

사실 사마천 사당은 이곳 말고도 또 한 군데 있다. 여기에서 3.5km 떨어진 서촌(徐村)이라는 마을에도‘한태사유사(汉太史遗祠)’로 불리는 사당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사마천의 후손은 후손인데 사마씨(司馬氏)가 아닌 풍(馮)씨와 동(同)씨가 살면서 함께 제사를 모시고 있다.

 

그 까닭은 이렇다. 사마천이 죽임을 당한 직후 부인과 두 아들이 사기(史記) 부본(副本)을 지니고 급히 고향 한성으로 도피하였고 이에 사마씨 집안에 행여 멸문의 재앙이 미칠 것을 두려워한 집안 어른들이 상의한 결과 사마라는 성씨를 감추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 큰 아들 쪽으로는 마(馬) 자 앞에 이수변(冫)을 붙여 풍(馮)씨로, 작은 아들 쪽은 사(司) 자에 획 하나를 그어 동(同)씨로 성을 바꾸고 거처도 서촌(徐村)으로 옮겨 사마씨 집안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사연이 숨어있다

 

 

사마천사당11.jpg

 

 

거세한 남자의 모습. 거세할때는 고환까지 함께 제거했다. 궁형을 당한 죄수들은 잠실(蠶室)로 보내졌다. 그 이유는 그곳이 땨뜻했기 때문이다. 궁형을 당한 후 차가운 데 있게 되면 몸에 비상이 걸릴수도 있다. 그래서 몸의 온도를 보존하기 위해 잠실로 보내진다. 사마천을 목숨을 건 모험을 했다.

 

궁형을 당한 이후 사마천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변했다. 글에 비판적인 시각, 권력층의 비리, 사회의 곪아 터진 부분들, 인심이란 무엇인가 등 세태를 다시 통찰하는 사관이 바뀌게 되었다.

 

사마천사당13.jpg

 

 

이곳 사마천의 묘이지만, 정작 시신은 안장되어 있지 않다. 사마천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사망설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시기는 49세이다. 


참고 : http://blog.naver.com/ycg51?Redirect=Log&logNo=30149212834

 

1-11. 저자에 대한 개인적 평가

 

사마천은 아모르파티Amor fati 자기운명애에 대한 사랑을 한 사람이다. 50세 이전에 편안한 삶을 보냈다. 그러나 이릉의 변으로 궁형을 당하고 나서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달라졌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이다. 평범한 한 사람에서 위대한 영웅이 되기 위한 궤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캠벨이 말한 영웅의 여정에 사마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난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딘 그가 살아야 했던 이유가 뚜렷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것은 운명이다. 구우일모의 죽음을 당하느니,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의 유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사기를 저술하는 것이 사마천의 운명, 살아야 할 이유, 존재 가치가 되었다.

 

요즘이야 컴퓨터 자판으로 책을 쓰면 되지만, 당시 사마천은 52만 6,500자의 <사기>를 대나무를 얇게 오린 죽간이나 나무를 얇게 오린 목간에 일일이 붓으로 써야만 했다. 그것을 끈으로 연결하면 책(冊)이 되고, 이 책을 둘둘말면 권(券)이 된다. 아버지 유언을 받든지 36세부터 56세까지 장장 20여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집필하는 기간이다. 한 사람의 집념이 피로 쓴 책이 역사에 길이 남고 세계인의 필독서가 될 만한 역사책을 남긴 점은 본받을 만하다. 사마천은 사기를 붓으로 쓴 것이 아니라 피로 썼다고 말할 수 있다.

史筆滴血 역사가의 붓 한방울한방울이 피였다 라고 말하고싶다.

史筆昭世"(사필소세, 밝힐소)라 쓰여 있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

 

사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렸던 결정과 선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가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기>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1===> 2독후에 내가 보는 사마천

 

죽음이 삶을 결정한다

 

사마천은 죽음이 삶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단, 죽음을 이용하는 방향과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뇌가 있어야 삶을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무겁게 제시하고 있다.

 

저는 비천한 처지에 빠진 불구자입니다. 무슨 행동을 하든 남의 비난을 받으며, 절하려고 하여도 더 나빠질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홀로 우울하고 절망적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사마천은 궁형으로 인해 목소리가 여성처럼 변하고 수염이 없어져 밖에 나갈수도 없었다. “하루에도 아홉 번이나 장이 뒤틀리고 장일일이구회, 腸一日而九回, 집에 있으면 망연자실 넋을 놓고 무엇을 잃은 듯” 했으며., 또는 회장구절回腸九折쩌다 집을 나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이 치욕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마천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딘 끝에 위대한 역사서<사기>를 남길 수 있었다. 죽음의 삶을 결정하고 ‘죽음은 인간의 정신을 집중하게 만든다’는 구우일모(九牛一毛)는 사마천에게 내려진 운명을 나타낸다. 진실의 잔혹함과 불국의 의지가 농축된 명언이다.

 

 

사마천은 고사성어, 사자성어의 대가다. 사기를 읽다보면, 인간에 대해 공부하고 사자성어에 압축된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한올을 뽑는거와 같이 지금 내가 죽는 것은 하잘 것 없고 별볼일 없다. 사마천의 삶에 대한 애착을 ‘ 아홉 마리 소의 털 한올’이라는 성어를 사용하여 극적으로 드러내혀 한 사마천의 마음 씀씀이가 눈물겹다. ‘죽음은 인간의 정신을 집중하게 만든다.’ 구우일모는 사마천의 궁형에 얽힌 그 진실의 잔혹함과 불굴의 의지가 농축된 명언 중의 명언이다. 한 위대한 역사가의 진솔한 인간미와 생사관을 읽어낼 수 있다.

사필적혈史筆滴血 역사가의 붓 한방울한방울이 피였다

사필소세史筆昭世"(밝힐소)라 쓰여 있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

 

 

<사기>는 위대한 역사서이자 풍부한 문학성이 있는 불후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 이유는 심금을 울리는 고사와 이를 절묘한 단어로 압축하여 함축적으로 나타낸 성어들 때문이다. 마치 압축 파일을 풀 듯 고사성어를 풀다 보면 그 의미와 표현을 깨우치는 즐거움 외에 언어의 매력과 마력 그리고 인류의 지혜까지 만끽 할 수 있다. <사기>의 많은 격언과 성어는 그야말로 ‘언어의 소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사람들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웰빙well being을 외치는 시대에 우리가 좀더 죽음을 직면하는 마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어떻게 잘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well dying-이 삶에 더 진지하면서도 낭비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느냐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는냐는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꿈과 과업을 위해 죽음보다 더한 고난과 번뇌를 이겨내고 역사 속에 위대하게 살아남은 사마천의 용기를 돼새겨본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은 어떻게 남겨져야 하느냐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1독 =====>2독, 녹색이 두 번읽기

 

 

1. 백이열전伯夷列傳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 백이와 숙제이야기다. 이는 공자의 칭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것임을 언급하면서 칠십 열전의 인물이 사마천 자신의 붓끝을 빌려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됨을 암시한다. 사마천이 단순히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행적을 적었다기 보다는 도도히 흐르는 여가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자신을 빗대어 쓴 것이다.

 

[60]

공자는 “인이란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로부터 보면 ‘인’은 인간의 본질을 가리키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인의 실천 방법으로 ‘효(孝), 제(悌공경할제), 충(忠), 서(恕용서하고 밝게 알아서 깨닫다), 예(禮), 악(樂음악)’을 제시했다.

 

=====>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이미 뼈속깊이 묻혀져있고 관성화되고 뿌리박혀 있는 습관을 고치기란 어렵다. 결심만 해서는 안된다. 결심하는 순간에 차라리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결심을 자주 한다는 것은 결심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공자가 말한 인의 실천 방법중에 나는 공경하고 용서하면서 밝게 알아서 깨닫는 것. 예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삶은 음악속에서 나를 흐르게 하는 삶일 것이다. 배우고 알았으면 실천하는 것이 삶이다. 책따로 나따로가 아닌 배우고 익힌 것을 내 삶속에 스며들게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 삶속에서 ‘인’을 녹여내고 사람다움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61]

순이 우에게 임금을 물려줄때, 시험 삼아 벼슬을 주고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적이 이루어진 다음에 정치를 맡겼다. 이러한 절차를 밟는 까닭은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 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 사람을 고용할 때는 그 사람의 그릇을 보고, 어떤 일이라도 맡겨진 일에 자신을 쏟아붓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본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만큼 인재등용으로 그 인재가 적재적소에 자리잡아서 일도 하고 자신의 재능을 키워나가도록 상생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다. 기업은 이윤에만 치우쳐서도 안되고, 개인은 월급에만 의존하는 타성을 버려야 한다. 기업윤리는 상생이다. 기업은 ‘고객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

 

 

춘추시대 위나라 문후는 이글에게 재상이 될 만한 인물을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극은 문후에게 자신을 조언을 기다릴 필요 없이 사람을 기용할 때는

1) 평소에는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2) 부귀할 때는 왕래하는 사람을 살피고

3) 관직에 있을 때는 그가 천거하는 사람을 살피고

4) 곤궁할 때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5) 어려울 때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라고 충고한다.

 

 

[62]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인데, 그들의 아버지는 숙제에게 뒤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왕위를 백이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그러자 백이는 ‘바버지의 명령’이라면서 나라 밖으로 달아나고 숙제도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 백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탐탁치 여기지 않고 왕재로 재목감이 아니어서 동생인 숙제가 왕위를 준다해도 거절한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숙제의 행동에서 잠시 생각한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면, 나라를 위해 정치를 하고 백성을 돌보는 책임이 있다. 형이 거절한다 하여 자신도 왕위를 버리고 남의 나라에 가서 몸을 맡기려고 한 행동에서 ‘숙제의 나약함과 책임의식 결여’를 엿볼 수 있다.

책임없는 사람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그 주위에 피해를 준다. 그 피해는 자신으로 인해 생긴 것 인데도 나 몰라라 한다. 특히 공직사회는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리를 보존하고 인사발령 나면 그 자리를 떠나면 다음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무 연락없이 잠수타는 인간들은 영원히 잠수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수타고 당장 자신은 편하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찌어찌 해나가겠지 하는 생각, 이 시간만 잘 지나가면 된다 라는 무사안일의 생각이 일을 망치면서 피해가 커진다.

 

 

[63]

백이와 숙제만은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배를 채우면서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우, 하나라 때는 홀연히 지나갔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뿐,

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이들은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은 먹을 수 없다. 불식주속不食周粟오곡속.

백이와 숙제에게 물어보고 싶다. 자신이 태어난 고죽국은 놔두고 왜 남의 나라에 가서 몸을 의탁하려 했는지. 서백창을 만나러 갔으나 그가 이미 죽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생각을다시 돌려야 하지 않았는가. 수양산은 어느 나라의 산이고, 그 고사리는 어느 땅에서 나온 것인가? 책임없고 의지가 결여된 두 형제인 백이와 숙제는 당연히 굶어죽어야 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추모시를 바치고 싶다.

 

 

 

왕이 하기 싫어

다른 나라에 몸을 맡기러 갔네

찾고자 하는 서백창이 없어

그만 멘붕이 되었네

현실에 살지 못하고 오로지 옛것만 그리워하고 찾으니

속세를 떠날 일만 남았네

그들 몸은 속세의 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아! 세상에 적응못한 두 형제들이여

그곳 저 세상은 그대들이 바란 세상인지 묻고 싶네.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는 당연히 굶어죽어야 했다. 그런데 왜 공자가 백이와 숙제를 칭찬했는가. 책임감 없고 의지가 허약한 두 형제들의 충의 정신, 충은 다른 나라 군주에게 한 것을. 부모님이 물려주신 나라도 제대로 해볼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65]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을 베푼다는 것이 어찌 이 모양인가?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생간을 회로 쳐서 먹었다. 포악하고 잔인하며 오만방자하게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휘저으며 돌아다녔으나 오래도록 잘 살다가 죽었다. 이 자는 무슨 덕을 추구했길래 그럴 수 있었나?

이는 그런 사례들 중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고 명백한 것을 든 것뿐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더라고 행동을 절제할 줄 모르고 오로지 남이 싫어하는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데도, 평생을 편하고 즐겁게 지내며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린 자가 있었다.

반면 땅을 가려서 디디고 적당한 때를 기다려 말을 하며, 큰 길이 아니면 다니지 않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았는데도 환란과 재앙을 만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이런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 대체 하늘의 도라는 것이 정말로 이런 것인지 어쩐지!

 

 

 

=====> 사마천은 착한 자와 어진 자가 곤경에 처하고 재앙을 만나 허덕이는 현상을 하늘의 도, 즉 천도(天道)라는 표현에 빗대 심각하게 토로한다. 나도 사회의 그런현상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었다. 어찌하여 세상은 늘 부조리로 가득차 있는가. 정의가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원래가 부조리한 것이다. 불공평한 것이 세상이다. 평등을 부르짖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자집 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인물이 잘 생기고 똑똑하게 태어난다. 그 부조리 속에서 자신을 찾게 하고 극복하게 하려는 것이 하늘의 뜻인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마천이 ‘이릉의 화’로 궁형을 당하고 난 후,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나 역사관이 바뀌었다. 인생의 고난이 한 사람을 성장하게 하기도 하고,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가 삶을 결정한다.

[65]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道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뜻을 좇아서 행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또한 말했다.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고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꾀하지 않는다“ 이 말은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한다는 뜻. 각종기지各傱基志. 자신의 의지대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설파했다.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는 양보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원칙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책임회피와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도망쳤다.

‘자유의지’ 그 무엇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고, 그 어떤 힘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늘 수많은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면, 나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적는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은 것을 적는다. 그 다음에 덜 중요한 것부터 지워나간다. 마지막 2~3개로 압축되었을 때도 지워나간다. 최종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한가지가 남는 경우, 그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선택은 덜 중요한 것들을 버리는 과정이다.즉 삶의 우선순위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자기 의지대로 고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나약한 객관이 아니라 확실한 주관이다. 객관이라는 실체 없는 그늘에 숨으로 하지 말고 투명한 주관에 의지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세속적 가치 판단- 명성, 지위, 부, 권력등-이나 기준이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본능에 자신을 맡겨보자.

 

 

[66]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찌하여 세상은 그토록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푸르름을 실감하고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세상이 어지럽고 더러워져야 깨끗한 선비가 드러나는 것인가. 거세혼탁, 청사내현‘

흔히 일이 잘못되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어찌 하늘은 이토록 무심 하신가”라는 말을 한다. 대부분 일과 관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극한의 상황까지 자신을 몰아간 탓이다. 바로 그 극단과 극한의 지점에서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을 찾는다.

사마천이 말하는 한늘과 하늘의 도는 약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 때문에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이 당치 않는 핍박을 받는 부조리한 현상을 꼬집어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사물과 인간의 실체 혹은 본질을 통찰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사람의 길과 하늘의 길의 접합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접합점에 도달하는 과정속에서 인간의 정당성이 얼마나 개입되었느냐에 따라 하늘의 도를 거론하는 빈도가 결정된다.

 

 

 

[66]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

 

 

 

=====> 사마천은 인생의 세 가지 귀중한 가치 개념으로

1) 덕행을 세우는 입덕入德,

2)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

3) 세속에서 공을 세우는 입공入攻 이란 삼립三立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재능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특히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사기>가 빛을 못 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사마천에게 그것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면서 <사기>를 썼던 것이다. <사기>는 자신의 목숨과 바꾼 책이며 붓한글자 한글자로 피로 쓰여진 글이었다. 결국 그는 <사기>를 2부 만들어 한 부를 명산에 숨겨놓고 훗날에 나타날 눈 밝은 사람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기록의 중요함을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 역사란 나 자신의 개인역사가 있기에 한 나라의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늘 자판을 달린다. 말은 허공속에 사라지고 증거를 잡을 수가 없다. 글은 기록이다. 글은 세밀하면서도 반복해서 읽을 수 있다. 읽은 장소나 때에 따라서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기록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실력을 키워서 책을 꼭 써내리라.

 

 

 

66.

가의(賈誼)-한나라 문제 때의 정치가이자 문인-는 이렇게 말했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66]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

=====> 끼리끼리 모인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사람을 만날때도 코드code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고, 영혼의 파장이 같은 사람끼리 대화가 통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사우(社友)이다. 스승이면서 사우인 사람이 주위에 많으면 나 자신도 성장하고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나 스스로 갈고 닦아 나를 비추고 상대방을 비춰줄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하찮고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알 때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존재감이다. 존재감이란 어느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이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는 자신의 인격에 따라 나뉘어진다. 스스로 갈고 닦고 반성하면서 매일 성장해가는 기쁨을 가지자. 그렇게 하다보면 나 자신이 등불이 되어 나를 비추고 남을 비추어 주는 밝고 환희의 빛이 되지 않겠는가.

 

 

[67]

안연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세상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더라고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다 한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면 쓰임이 부족하다. 그것이 바로 현대사회에서 하는 마케팅이다. 제 아무리 똑똑해도 그 사람을 알리고 연출해주는 것이 방송과 미디어의 힘이다. 입소문과 마케팅의 힘, 홍보를 해야 사람들이 알아준다.

 

 

 

=====> ‘덕행을 갈고 닦아 공명을 세운다’는 지행입명(砥行入名, 숫돌지, 곱게 갈아서 닦는다) 덕행을 갈고 닦아 공명을 드러내는 일이야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현자들의 덕행과 인재들의 업적이 온 세상에 환하게 드러나도록 사회적으로 든든한 후원이 뒷받침되어야 세상과 인간을 등지는 인재가 없어질 것이다.. 인재활용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 사회, 나 나아가 전 인류와 연관된다. 물론 공명에 앞서 덕행을 닦아 그 안에 공명이 절로 깃들도록 인재 스스로 노력하는 힘과 의지는 기본이다. 요컨대 ‘지행입명’은 인재가 개인 차원에서 전 인류라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가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세상이 인재에게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2. 관 · 안 열전管晏列傳

사마천은 모든 편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역사상 뛰어난 재상반열이다. 시대적 상황 차이다. 관중은 제나라가 욱일승천할 때 재상이고, 안영은 제나라가 쇠퇴할 때 재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모두 다 한나라를 발전시키거나 구하기 위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상자리를 역임했다.

 

 

3. 노자 · 한비 열전 老子韓非列傳

노자사상은 사마담에게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가 남긴 ‘논육가요지’라고 하는 중국춘추시대때 여섯 개 학파들에 관한 전문적인 논문을 사마천 자서전에 실었다. 실제로 사마천은 노자보다 공자를 더 존경했다. 노자는 열전에 들어가 있지만, 공자는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사마천은 유가보다는 도가에 더 우호적이었다.

 

 

82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공자

노자는 도와 덕을 닦고 스스로 학문을 숨겨 헛된 이름을 없애는데 힘썼다.

 

 

[83]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유가 학문을 내치고, 유가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역시 노자의 학문을 내쳤다. “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말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노자는 하지 않는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 길이 다르다 함은 생각하는 코드가 다른 것이다. 뜻이 같지 않기에 일을 함께 할 수 없음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저절로 교화되게 함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84]

장자는 빼어난 문장으로 세상일과 인간의 마음을 살피고 이에 어울리는 비유를 들어 유가와 묵가를 공격했다. 당대의 학문이 무르익은 위대한 학자들도 장주의 공격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으므로 왕공이나 대인들에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 중국 사상사의 내용과 질을 풍요롭게 만든 인물 중 장자는 노자의 주장을 기둥삼아 유가 사상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야유했다. 그이 사상과 삶은 현실도피 내지 허무주의 성향이 짙었으나 인간의 절대 자유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무한한 상상력이 넘쳐흐르는 <장자> 33편은 은유와 비유등 문학적 요소가 물씬 풍기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사마천은 노자를 소개한 뒤끝에다 장자를 짤막하게 소개하면서,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다 라는 광양자자洸洋自恣이다. 장자로 된 만화책을 대학교 1학년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대만 작가인 채지충의 장자편이었다. 힘든일이 있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나는 장자를 펴들었다. 그때마다 재미있고 삶에서 우러나오는 장자의 자유분방함오는 영혼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도 장자이다.

 

 

[84]

초나라 위왕은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많은 예물을 주고 재상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고대 제왕이 해마 동짓날에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 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는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 장자는 부귀와 명예에 초연하다 못해 그것을 천박하게 생각한 인물이었다.

일찍이 중국의 철학가 풍우란은 장자 철학의 매력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장주의 철학은 뜻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뜻을 얻게 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여의치 못한 사람에게 뜻대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결코 아니다. 장주의 철학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경지를 준다. 이런 정신적 경지를 얻은 사람에게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없앨 수는 있다. 사실 인생에서 이런 문제는 해결은 불가능하지만 없앨 수는 있는 것들이다.

 

 

장자의 말은 황당무계하고 제멋대로였지만 자유로웠고, 그 행동이 괴팍하여 누구도 훌륭한 인재라고 인정하지 않았어도 그는 자기 세계 안에서 무한정 자유를 누렸다. 장자의 삶은 그가 그토록 추구하고 갈구하던 절대 자유추구는 온갖 스트레스에 지든 우리네 삶에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매력이다.

 

 

86-89. 한비의 <세난(世難)>편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줄 아는 것이다.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지위가 낮은 인물에 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든 오해를 받게 된다.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요하려는 줄 안다.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긴다.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다.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새겨 두어야 한다.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약간 비슷하다. 상앙이 하는 말, “법이 안지켜지는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 법가의 통치사상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법가사상은 <상벌분명제>이다. 잘한 이에게는 상을 분명히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려야 한다. 이 사상은 제갈량에게 영향을 준다. 제갈량이 상을 내리면, 아무도 시기나 질투하지 않았으며, 벌을 내려도 누구하나 원망하는 사람 없었다. 엄정하고 공평하게 공정하게 공개적으로 한다. 삼공三公법칙이다.

 

 

 

한비자가 진나라에 건너온다. 진시황아래 이사라는 사람이 한비자와 동문수학한 친구였다. 한나라와 진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먼저 공격해 조건으로 한비자를 인질로 보내게 한다. 한비자를 만나기 위해 외교분쟁까지 일으켰다. 진시황이 한비자를 만나보니 실망하게 된다. 글과 사람이 약간 달랐다. 한비자가 말을 더듬었다. 한비자가 오고 보니까, 친구 이사가 시기하게 되고, 모함을 한다. 이에 한비자는 옥에 갇히게 되고 자살을 하게 만든다.

[89-90]

송나라에 어떤 부자가 있는데 집의 토담이 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그 이웃집 주인도 다들과 똑같이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정말 많은 재물을 잃었다. 부자는 자기 아들은 매우 똑똑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이웃집 주인을 의심했다.

예전에 정나라 무공은 호나라를 칠 계획으로 자기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내고 대신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어는 나라를 치면 좋겠소?”

관기사關基思가 대답했다.

“호나라를 쳐야 합니다. ”

그러자 무공은 이렇게 말했다.

“호나라는 형제 같은 나라인데 그대는 어찌 호나라를 치라고 하시오?”

그러고 나서 관기사를 죽였다. 호나라 군주는 이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친한 친구 나라로 여기고 공격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나라 군사들이 호나라를 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웃집 사람과 관기사가 한 말은 모두 옳으나 심한 경우는 목숨을 잃고 가벼운 경우는 의심을 받았다.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 한비자는 이 글을 통해 군신관계의 비정함을 보여주려 했으나 오히려 인간 관계를 묘사하는데 자주 인용된다.

애증의 변화는 무상하다. 이는 마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즐겨 먹던 음식을 기피하는 것과 흡사하다. 음식의 맛이 변한게 아니다. 다만 더 맛있는 음식에 익숙해진 자신의 입맛이 변한 것뿐이다. 또 한가지 집이 가난할 때는 시장에서 새옷을 사입어도 예뻐보이고 좋아보였다. 그러다가 사두었던 땅이 개발지로 되고나서 졸부가 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취향이 바뀌는 경우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궂이 시장에 가서 옷을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듯 애증이라는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언제든지 바뀔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무던하게 오래 지속하려면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91]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역린逆鱗을 건드린 다는 것은 자존심을 건드린 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이미 건드린 상태에서 어떤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이 귀와 마음에 들어가겠는가?

4. 사마 양저 열전 司馬穰菹列傳

 

=====> 역대 사마천이 남겨놓은 군사 전문가들이다. 군대의 꽃은 병사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대했느냐가 훌륭한 장수의 차이다.

장수들이 군사들의 사기를 어떻게 올려주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다. 나폴레옹은 “군사들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했다. 사마양저는 처음에 군법이 얼마나 지엄한가를 보여주었다. 전쟁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병사들을 돌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공사구분을 엄격히 하며, 상벌을 엄하게 하며 리더의 기본기를 보여주었다.

사마양저가 남겨놓은 <사마병법>모두 130편 중에 5편만 남아있다. 전쟁에 필요한 다섯가지 조건들만 남아있다. 시기를 잘 선택해라. 전쟁시기. 때와 장소, 지리적 문제, 물질적 준비를 충분히 넉넉히 대비하라. 무기, 후방 식량 등. 병기를 잘 다듬어라. 장수와 병사가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해라. 적진에 대한 정보수집이다.

 

5. 손자·오기 열전 孫子吳起列傳

 

유가, 도가, 묵가 삼가가 시대를 지배했다. 진시황제는 법가로 나라를 다스렸다. 한나라에 와서는 법가만으로는 통치가 어렵게 되자, 상하와 지배질서를 강조하는 충효정신을 담은 유가가 주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편은 세 명의 뛰어난 병법가 손무(孫武), 그보다 백여 년 뒤의 후손 손빈(孫臏), 오기의 이야기에 방연을 덧붙인 것이다. 조조가 주석을 달아 유명해진 손무의 병법은 <손자> 열세 편으로 7세기에 일본에 전해져 18세기 이후에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체코어 등으로 번역되었을 정도다.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인재유동’이다. 움직이는 인재유동이 중국역사상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무한경쟁에 돌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재들이 필요했다. 그 가운데서도 전문가들이 대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전쟁과 관계된 부분은 전쟁의 형태가 바뀌었다. 그전에는 신사게임으로 페어플레이로 싸웠다. 전차전에서 보병위주로 전투형태로 바뀌며, 전략과 전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숨어서 습격하고, 기마전과 함께 살상력과 피해가 커졌다. 왕은 장수에게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장수가 군중軍中에 있을때는 임금명이라도 받들지 않는다”고 했다. 군령이 지엄함을 보여준다.

 

 

손자병법이 뛰어난 이유들은, 전쟁경제학의 선구자다. 손자는 힘이 없으면, 능력이 없으면 싸우지 말라고 했다. 이익이 되면 싸우고, 이익되지 않는 전쟁은 하지 말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최상의 승리는 안 싸우고 이기는 것이다”. “모든 전쟁은 속임수다.” 심리전, 첩보전 등 군사사상이나 군사철학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병법서다. 18세기전후로 서양으로 이 책이 유입된다. 어떤 이는 싸움에 지고 난 후, “내가 진작 이책을 읽었으면...”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도 전무후무한 병법서 <손자병법>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121. 태사공은 말한다.

옛말에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락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는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구나!“

 

 

 

--> 오기에 관한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오기를 질투한 사람은 욕심많고 여자도 좋아했다. 반대로 청렴결백한 인물이라고 한다. 군사전문가이며 개혁정치가이고 목표를 향해서 불굴의 의지로 달려간 열정적인 장수 오기吳起다.

손빈은 동문수학했던 방연이라는 친구의 모함에 걸려 다리를 잘린다. 불굴의 의지로 탈출하여 살아서 앉은뱅이 군사전문가가 된다. 20년후 방연에게 복수한다. 손무와 손빈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손무는 실전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탁월한 <손자병법>이라는 병법서를 남겼다. 손빈은 실전경험에서 우러나온 <손빈병법>을 남겼다. 군사전문가 사마양저, 손무, 손빈, 오기가 있는데, 요즘 시대는 이 네 사람을 섞어서 하나로 엮으면 최고의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ㅎㅎㅎ

주어진 상황과 시대적 요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사심 없이 살다간 열정적 존재들이다.

 

 

 

6. 오자서 열전 伍子胥列傳

=====> 사마천이 오자서 인물 평가를 하면, 강직한 인물이며, 오자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처지를 투영시켜본 인물이다. 사기에는 주인공이 200여명이 되는데, 그 가운데 120여명이 비극적 인물이다.

오자서는 기원전 6c 인물이다. 2500여년전 사람으로 초나라 명문가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오거이며 대단한 인물이었으나 초나라 평왕때 아버지와 형님이 살해당한다. 평왕의 마수를 피해서 오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오자서 망명을 중심으로 해서 오나라로 건너와서 오나라를 어떻게 부국강병으로 키우고 월나라와 싸움, 초나라고 돌아가서 원수를 갚는 일, 이런 것들이 대하드라마로 펼쳐진다. 최고의 명편으로 꼽힌다. 피로 쓴 드라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 왕 부차는 따가운 섬나무 위에서 잠을 잤고, 월나라 왕 구천은 맹일 쓸개를 맛보았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도 여기에서 나온다.

 

 

134.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일묘도원

 

=====> 중국속담에 ‘대장부 복수 10년도 늦지 않았다‘가 있다. 초나라 평왕이 오자서를 붙잡기 위해 상금을 걸고 초상화를 소관이라고 하는 관문앞에 붙여놓았다. 이를 얼마나 고민하고 속을 태웠던가. 오자서는 밤새 고민한 끝에 머리가 하앟게 새어서 무사히 초나라를 탈출 있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만큼 오자서의 원한이 깊고 절박했다는 심경을 말해준다. 오나라 왕 합려가 임금이 되도록 돕고, 오나라 군대를 키워서 복수하기 위해 초나라로 돌아왔다. 초나라 수도가 영이었는데, 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평왕이 이미 죽고 없었다. 오자서는 평왕 무덤을 파헤쳐 평왕시체에 채찍질을 가한다. 여기에 굴묘편시라고 하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나온다. 무덤을 파서 시체에 채찍질을 가했다. 그것도 300대나. 친구였던 신포서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야. 해도 너무 한다”고 말했다. 신포서는 오자서가 망명할 때 도움을 주었던 친구다. 오자서가 망명할 당시. 오자서가 신포서에게 “반드시 살아나서 원한을 갚겠다”고 말하자, 그당시 신포서는 “나는 너의 원한을 막겠다”고 했다. 오자서는 ‘일묘도원’이라, 날은 저물고 갈길은 멀다. ‘도행역시’라는 때로는 일의 순서를 바꿔서 해야한다. 상식하고 어긋나지만 어쩔 수 없다.

 

 

 

7. 중니 제자 열전 仲尼弟子列傳 -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

B.C.500~250년에 이르는 기간은 제자백가의 전성 시대다. 당시 사상가들은 각국을 동라다니며 유세를 하였고, 봉건 제후의 고문이 되거나 외교관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위대한 지적(知的)전개와 성과는 문화적 진보를 가져왔다.

공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그이 사이 30을 전후로 제자를 모아 수업을 했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有敎無類-배움에는 종류, 부류가 없다, 누구든지 배우고자 한다면 차별없이 가르쳤다 -’에 두었다.

--> 공자 이름은 구이다. 자는 중니다. 니구산이라는 곳에서 아버지 숙량왕과 어머니와 야합해서 태어난 곳이다. 죽은 후 왕호로 추존되는데, 공자 무덤앞에 대성지성문성왕묘 라 씌여였다. 문文 즉 글을 널리널리 세상에 알렸다 해서 문성왕이라는 지었다.

공자 아버지는 ‘숭량휼’이란 무장이었고, 어머니는 ‘안징제’라는 분이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중니는 공자제자들고, 중니제자열전은 공자제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공자는 “배워서 여력이 되면, 나가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라”라고 가르쳤다. . 공자가 평생에 떠돌아다닌 이유중의 하나도 “내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자리”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공자는 사립대 총장이다. 3000여명의 제자가 따라다녔다 하니.

 

 

 

153. 자로가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다.

“군자는 의(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157. 자식은 태어난지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난다.

재여宰予가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이렇게 물었다.

“”부모의 상을 삼 년이나 치르는 것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삼 년간 예를 닦지 않는다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면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햇곡식이 익고, 나무를 비며 앋던 불씨도 한 해에 한 번식 바꿉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상도 일 년이면 됩니다.“

재여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난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이다.,”

 

 

-> 슬픔도 너무 오래간직하면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나를 낳아준 부모가 돌아가신 것은 슬픈일이나 그 슬픔을 3년씩이나 한다는 것은 지금같은 세상에 우울증 걸리고 자살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생즉필멸生卽必滅 태어나는 것은 죽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진리다. 살아생전에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고 찾아 뵙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이다. 부모가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살아생전 함께 한 시간을 갖고 웃으면서 따뜻하고 위로와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ㅎㅎㅎ 탈무드(484p)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옛날에 한 가지 점에서 아주 예외적인 랍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랍비이면서 아울러 굉장한 상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상황 판단을 잘못함으로써 어떤 사람에 모든 재산을 걸었다가 하루 아침에 몽땅 날리게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위로하이 위하여 달려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랍비가 의기소침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놀랍게도 랍비는 조용히 자기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제자들은 못 믿겠다는 듯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존경하는 랍비님. 저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도대체 아무 근심도 없으세요?”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걱정이 된다. 그러나 너희들도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나를 축복하셔서 두뇌 회전이 빠르게 하셨단다. 다른 사람들이 한달 동안 근심하는 일을 나는 1시간 만에 다 할 수가 있단다. “

148.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즐거워하는 안회

 

 

=====> “안회는 어리석지 않다. 마치 나와 같다” 고 공자는 말했다. 안회는 가난과 청빈의 대명사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단표누황’이다. 표주박에 물을 먹고 밥을 먹고 더러운 골목에서 살아도 그 삶을 즐겼던 인물이다. 가난하지만 깨끗한 사람. 공자 사당이 크게 있고 공자를 ‘지성’-지극한 성인-이라 한다. 맹자를 ‘아성’이라 부른다. 버금가는 성인이라는 뜻이다. 안회 사당에 가보면 안회를 복성이라 부르는데, 다시 성인이라는 뜻이다. 안회를 공자의 분신으로 보면 된다. ‘복성전’이란 한다. 중국가면 공자님 관련된 것을 3공이라 한다. 공자 집, 공자 사당, 공자 무덤이 있다.

 

 

 

155.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 자로는 공자와 아홉 살차이로 아래다. 자로는 공자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 공자가 체면상 나서지 못할 때, 자로가 나서줬다. 자로는 생각과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행동파였다.

158.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

160.

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공자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밥도 못먹고 고생을 많이 한적이 있었다. 한번은 제자들과 다니다가 헤어진적이 있었다. 길이 엇갈렸다. 제자들이 공자를 찾으려고 애를 쓰다가, 간신히 공자를 찾을 수 있었다. 제자 하나가 말한다. “선생님 찾아다니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지나가는 영감님께 이렇게 이렇게 생긴 사람 어디 봇봤냐고 물어보니까. 그 사람이 뭐라고 애기했나면요. ”꼭 상갓집 개처럼 생겼더라. 그 사람 찾느냐?“ 이렇게 물어봤다. 와서 그 애기를 제자가 전해준다. 공자가 다 듣고 웃으면서 ”앞의 부분 즉 위 상반신은 요임금처럼 생겼고 ~~, 행색은 영락없이 상갓집 개다“ ”앞의 부분은 모르겠지만, 뒷부분은 맞는 것 같다“. 고 말했다. 공자의 여유고 유머다.

160-169.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새로 짠다.

용맹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놓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은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사지는 일을 꾀하는 데 큰 걱정거리입니다. “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자공은 또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일을 좋아하여 때를 보아서 돈을 잘 굴렸다. 그는 남의 장점을 칭찬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일찍이 노나라와 위(衛, 지킬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 금을 쌓아두기도 하였다. 그는 제나라에서 삶을 마쳤다.

 

 

 

-->자공에 대한 기록은 압도할 만큼 많다. 오월동주는 적이지만 한배를 탄 적과의 동침이다. 오나라와 제나라가 국경이 접해있다. 오나라 북쪽에 제나라가 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북쪽의 야만족이라 하여 천시 당했으나 오나라가 국력이 강해지니 중원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서쪽의 초나라를 오자서가 크게 한번 혼을 내고, 북쪽의 제나라를 쳐야 하는데, 제나라를 치다 보니, 그 옆의 노나라가 문제를 발생한다. 노나라는 조그만 나라고, 공자의 고향이었다. 제나라는 노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니, 국제전으로 퍼지게 된다. 노나라는 힘으로 안되고, 말 잘하는 자공을 선발해서 오나라로 먼저 보낸다.

자공은 일단 말을 잘한다. 자공은 공자 제자 중에서도 큰 부자였고 사업가였다. 크나큰 수레를 끌고 다니고 천하를 주유하면서 왕공들과 교류했다. 대등한 예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했다. 심지어 어느 나라를 방문한다 하면, 그 나라 왕이 직접 맞이할 만큼 자공의 사업수완이나 인맥이 대단했다. 자연스레 자공이 발탁되었다.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정관계, 재계의 인물들과 인맥을 형성해 놓은 자공이다. 공자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고, 공자가 해내지 못하 일을 자공이 대신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공이 다닌 나라를 살펴보자.

노나라에서 동쪽인 제나라고 가고, 남쪽인 오나라에서 더 남쪽 월나라고 간다. 서북쪽인 진나라고 간다. 그리고 다시 동쪽인 노나라로 돌아온다. 노나라를 제외한 제·오·월·진 나라 4개국을 다녔다. 자공이 설파한 것 핵심을 보면, 정세를 분석한다. 즉 상황을 분석했다. 유세가들의 특징이다. 힘의 균형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이해관계로 완전히 설득한다. 월나라를 방문했을때는 월나라 왕이 자공이 오는 길을 직접 청소해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자공은 큰 수레에 공자를 모시고 다니면서 천하를 주유하면서 천하왕공제후들과 대등한 예를 나누면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사마천은 말한다. “공자의 명성이 천하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자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제자들이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전파하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공자는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사마천이 존경한 인물중에 하나가 ‘공자’다. 사마천은 일일이 공자마을을 탐방한후, “높은 산은 우러러 보고 큰 길은 따라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공자에 대한 존경심을 대신했다.

170.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할 수 있다.

자하는 공자보다 44세 아래인데, 이렇게 물었다.

“아름다운 눈의 맑게 갠 움직임이여, 아름다운 눈이 가진 흑백의 선명함이여, 흰 바타응로써 아름다움을 이루었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서 다듬는다는 뜻이다.”

 

171. 많이 듣고 삼가면 실수가 적다.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적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

훗날 자장이 공자를 따라다니다가 진(陳, 늘어놓을진)나라와 채(蔡, 거북채)나라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이때 세상에서 행세할 수 있는 도리를 물으니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장은 이 말을 잊지 않기 위하여 자기 허리띠에 적어 두었다.

 

 

 

--> 송나라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공자에게 성인의 옷을 입힌다. 공자와 제자가 주고 받은 논어를 보편화 시키지 않고, 국가지배이데올로기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여성차별문제, 칠거지악, 등. 공자의 언행이 모두 성인으로 둔갑시킨다. 즉 할레루야식이다. 그래서 대화가 어렵게 바뀌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원래 논어의 의미는 간결하고 쉬웠다. 바로 맞춤형 교육을 한 눈높이 교육을 한 사람이 공자이다.

 

 

 

172. 명망과 통달의 차이

자장이 공자에게 ‘통달’에 대해 묻자. 공자가 네가 말하는 ‘통달’이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다. 이에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고 집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그것은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라고 한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 명망과 통달의 차이를 내말로 풀이해보자.

 

 

174. 사람은 말과 생김새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

담대멸명澹臺滅明으로 공자보다 39세 아래다. 그는 못 생겨서 공자는 그가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르침을 받은 뒤 물어나면 덕행을 닦는 일에 힘씅고, 기를 갈때는 절대로 사잇길로 가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경대부卿大夫(벼슬경, 즉 벼슬아치들)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가 남쪽으로 내려가 장강(長江)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를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나 되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물건을 주고 받는 것과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도리를 이치에 맞게 가르쳤기 때문에 제후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공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184. 예와 의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번지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智, 슬기롭고 지혜로울지)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8. 상군열전商君列傳

상군은 중국 선진 시기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 상앙商鞅을 말한다. <상군열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상앙의 변법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 법가 사상 자체가 지식인을 탄압하는 전제주의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상앙의 사상은 지식인과 관료를 중심을 하는 유교사회에서는 거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마천도 그이 인물됨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200. 옛것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의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206-212.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진나라의 숨어 사는 선비 조량趙良이 상군을(진나라 재상이 된지 10년이 흘렀을 때) 찾아와 말했다.

‘어진 이를 추천하여 받드는 자는 번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불러 모아 왕 노릇을 하는 자는 몰락한다. -공자

제가 듣건대 ‘자격이 없는 자가 그 지위에 잇는 것을 지위를 탐한다고 하고, 자기가 누릴 명성이 아닌데 그 명성을 누리는 것을 이름을 탐한다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상군은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쥐한테도 예의가 있는데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구나,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을까?’- 시경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은 자는 망한다’-시경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 시경

 

 

9. 소진열전 蘇秦列傳

=====> B.C.770~B.C.221년까지, 장장 550년에 걸친 중국 역사상 최대 혼란기이자 황금기였던 춘추전국시대의 산물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이 ‘책략가(策略家)’의 등장이다. 책략가는 다은 말로 모사(謀士, 정사를 도모하고 꾀할모), 책사(策士, 지팡이책)라 불리며 ‘유세객(遊說客)’이란 특수한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의 용어를 빌리자면 국제 전문 로비스트lobbist라 할 수 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당시의 국제 정세를 분석하고 평가한 이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군주에게 발탁되어 작게는 한 나라 많게는 5,6개국의 외교 전권을 장악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전국시대 후기 ‘합종合縱’이라는 6국 연합정책을 제시한 걸출한 유세가 소진蘇秦이다. 젊어서 귀곡자에게 유세술을 배운 소진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실력을 발휘하려 했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는 주나라, 진나라, 조나라, 연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기용되지 못해 실의와 좌절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소진은 실의에 빠져 소홀하지 않았고, 공부에 전념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소진은 기원전 334~320년까지, 장의는 기원전 328년부터 309년까지 활동했다.

=====> 사마천이 “말이 적합하면 분쟁도 해결할 수 있다. “말이 언격이다” 말함에 있어서도 격이 있어야 한다.

 

 

[217]

“주나라 사람들의 풍속에 따르면 농사를 주로 하고 물건을 만들고 장사에 힘써서 10분의 2의 이익을 올리는 것이 사람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본업을 버리고 입과 혀끝만을 놀리고 있으니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소진이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슬퍼졌다. 그는 그길로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틀어박혀 책을 꺼내 두루 훓어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 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 소진의 공부법이 유명하다. ‘추자고錐刺股(송곳추, 찌를자, 허벅지고) 두현량頭懸樑(매달현, 대들보량)’. 공부하다 졸리면 송곳으로 자기 허벅지를 찌르고,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매단다. 졸리면 머리카락을 잡아댕긴다. 최마술이라고 상대방의 심리를 읽는 공부를 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지 못하면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 각국의 정확한 정세를 분석했다. 정보력이 유세가의 차이를 결정했다.

소진은 6개국의 합종을 하기 위해, 각 나라가 소진을 객경으로 임명한다. 소진은 6개국(연,초,제, 위, 한, 초)의 재상이 된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유엔 사무총장쯤 된다고 할까. 소진의 권한은 유엔사무총장보다 권한이 막강하다. 소진의 도장도 육각이었고, 죽고 난 후의 비석도 육각이었다고 전해진다. 유세가들은 말만 잘하는게 아니라 책략가였다. 이 책략가들이 후에는 왕의 참모가 되었다.

 

 

 

[217]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 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고는 주서, 음부를 찾아내어 머리를 파묻고 읽었다. 일 년쯤 되어서야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

 

 

 

=====> 공부를 하는 데는 꼭 목적을 둘 필요는 없지만, 이왕지사 하는 공부 나를 드높이고 천하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공부를 함은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여기서 명성과 지위를 얻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 쓸모가 있다함은 나의 공부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일조(一助)함을 뜻한다.

구본형 사부님은 연구원을 2년 과정으로 무료로 모집하셨다. 이는 기본을 튼튼히 갖추어 자신만의 재능으로 책을 써서 무료로 배웠던 빚을 세상으로 돌려주라는 뜻이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가끔은 회의도 들기도 하지만, 이왕 응시했고 시작한 일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면서 기초를 단단히 닦아나가자는데 뜻을 두었다. 기초가 튼튼하면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은 습득될 수 있으니까. 모래위에 성(城)을 쌓는일은 하지 말자. 뭐든지 하고자 하는 일의 기본기가 가장 중요할 테니까.

 

 

[224]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병사의 자질이 뛰어난지 모자란지를 헤아려, 두 군대가 서로 싸울 때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기고 지는 것과 죽고 사는 관건이 이미 가슴속에 있게 됩니다.

 

 

[224]

대체로 다른 사람을 깨뜨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깨지는 것, 다른 사람에게 신하라고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신하로 거느리는 것을 어떻게 한날에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 남의 지배를 받는 일과 내가 직접 지배하는 일은 다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받는 것은 마음자세부터 다른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24시간내내 그 일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설사 일은 하지 않더라고 모든 것을 회사업무와 연관시켜보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운영자와 월급받는 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는 주인된 인생을 사는 것과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노예적인 인생으로 말할 수 있겠다. 자기 인생의 주인된 사람은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필요하면 공부하고 글을 쓰고 책을 쓰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가기도 한다. 주인된 삶을 사는 사람은 일의 결과를 책임질 줄 안다. 반면에 노예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주위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모든 게 부모탓, 형제탓, 회사와 상사탓, 탓탓탓 하다가 인생을 낭비한다. 남이 뭔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노예적인 습관이 아주 뼈속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자신이 운전해서 나아가야지 남에게 운전대를 맡기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이 아닌 늘 주변인으로 남는다. 자기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자기 인생을 자기 답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225]

현명한 군주는 의심을 끊고 비방을 버리고 떠도는 말의 흔적을 사라지게 하며 파벌의 문을 막는 데 뛰어나다고 합니다.

=====> 의심과 질문은 다르다. ‘의심’은 믿지 못하는데서 출발함이요, ‘질문’은 의문점이 있음에 출발이다. 의심이 들면 질문을 하면 된다. 질문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대답하는 바를 충분히 듣는다. 의심이나 의문점이 풀릴때까지 질문하다보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은 물론이다. 지혜는 그냥 생겨나기 않는다. 마른행주를 짜봤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지혜는 많은 책을 읽고 읽은 바를 알았으면 실천하면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똑같은 일은 계속 하더라도 방법이 다르면 똑같은 일은 같을 수가 없다. 진실로 아는 자는 많이 떠벌리지 않는다. 다만 핵심을 적확하게 짚어준다. 경험이 10년 20년 있다고 해서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시간과 때와 장소에 따라서 같은 것을 다르게 할 수 있는 현장인의 지식이 침다운 지혜이다.

 

 

 

[228]

항간의 속담에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 서쪽으로 투항하여 팔을 모아 복종해 신하로서 진나라를 섬긴다면 쇠꼬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현명하고 군대는 강대한데 오히려 쇠꼬리라는 더러운 이름을 얻게 된다면 왕을 위하는 신으로서는 부끄러울 것입니다.“

 

 

 

=====> 소진은 연나라 문후를 만나 합종이라는 정책 구상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연나라 문후를 설득한 소진은 조, 한(韓), 위(魏), 제(劑), 초를 방문해 6국의 동맹을 성사시키기에 이른다 이 중에서 한나라 혜왕을 자극하여 진(秦)나라를 섬기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이다.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 는 영위계구儜爲溪口, 물위우후勿爲牛後다.

상대방 자존심을 긁는 모욕적이고 자극적인 언사이다. 요컨대 소의 뒷구멍처럼 빌붙어 살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어 주체적으로 자신으 삶을 이끌라는 다분히 선동적인 말이다.

혜왕은 결국 소지의 선동에 넘어가 “결코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혜왕은 자국의 힘은 고려치 않고 욱하는 감정을 앞세워 소진의 유세에 넘어간 꼴이었다.

이런 닭부리는 아무도 부리로 봐주지 않는다. 한순간 닭 부리가 되겠다고 우쭐거리다 망신을 당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참고 엉덩이로 자처하며 훗날을 위해 힘을 기르는 것이 낫다.

 

 

나설 것이냐, 물러날 것이냐는 자신에게 주어진 형세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무턱대로 닭의 주둥이가 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는 자신의 빛을 감춘 채 보이지 않게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 韜光養晦(감출도, 어두울회)의 시기도 꼭 필요하다.

 

 

 

[231]

<주서周書>에서는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모든 것은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행동하나하나가 어떤 생각을 품었느냐에 따라 행동의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을 ‘나비효과’로 부른다. 지난 2112년 12월 9일 조선일보에 난 기사를 인용하겠다.

나비 효과'란 나비가 날갯짓한 것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세한 변화가 나중 어떤 단계에선 큰 차이를 야기한다는 얘기다.

중국 웨이보에 소개된 한 초등학생 글이 나비 효과를 연상케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시간이 화살처럼 어느덧 지나간다.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 그렇지 않으면 점수가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점수가 오르지 않으면 부모님께 꾸중을 듣게 된다. 꾸중을 들으면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러면 성적이 더 떨어져 대학에 못 갈 것이다. 대학을 못 가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고, 돈을 벌수 없게 된다.

돈을 못 벌면 세금을 못 낸다. 그러면 나라에서 선생님들 월급 주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들은 교육에 전념하지 못 하게 되고 나라 발전이 영향을 받게 된다.

나라가 발전하지 못 하면 야만인종으로 퇴화되고 그리되면 미국은 야만적인 중국이 대규모 살인무기를 보유할 것이라며 전쟁을 일으켜 제3차 세계대전이 촉발될 것이다.

세계대전이 벌어져 힘에 부치게 되면 양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핵무기 사용은 지구환경을 파괴해 대기층에 큰 구멍이 생기고 지구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될 것이다. 그리되면 남 북극 빙하가 녹을 것이고, 빙하가 녹으면 지구의 수위가 높아지고, 그러면 전 인류가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전 인류의 생존 안전과 관련돼 있다.

따라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남아 있는 며칠을 시험공부에 쏟아부어야 한다. 내가 점수를 잘 받아야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초등학생 과제물 말미에 담당교사는 "큰소리로 웃었단다"라고 적었다. 외신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린이는 좀처럼 비꼬아 말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불쑥 하는 말은

잠재의식 차원에서 사회에 배어들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다. 자신의 행위가 인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 어린이의 생각은 중국인 의식 속에 움트기 시작한 변화를 방증하는 것이다.

한 어린이의 공부에 대한 작은 생각이 인류의 생존과 관련짓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품은 생각에서부터 우주는 그 생각을 이루어지기 위해 움직인다는 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내 머리와 입술과 혀로 생각하고 말한다하지만, 함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 나를 살리고 상대방을 살리는 말을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238]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240-241]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새부리)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는 것과 똑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연나라는 비록 힘이 약하고 작지만 진나라의 사위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왕께서는 연나라의 성 열 개를 얻었으나 강대한 진나라와는 길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힘이 약한 연나라가 기러기 행렬처럼 앞장서고 강대한 진나라가 연나라의 뒤를 봐주며 쳐들어온다면 천하의 정예 병사를 불러들이는 격이니 그것은 오훼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 어려울수록 간절해지는 성어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전국시대 말기 불세출의 유세가 소진이 제나라 왕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세력을 넓혀오던 진나라를 막기 위해 6국이 소진의 합종책을 받아들임으로써 15년 동안 진은 함곡관 동쪽을 넘보지 못했다. 그러나 진은 장의의 연횡책에 이어 범수가 주창한 원교근공의 외교 전략을 이용해 합종을 깨뜨리기 시작했고, 이는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먼저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고 나섰다. 합종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고 자국이 공격받는 상황에 놓이자 조나라 왕은 소진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진나라의 부마국이 된 연나라가 국상을 당하자 제나라는 이 틈을 타 연나라까지 공격했다. 합종은 와해되었고 소진은 마지막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연이 잃은 땅을 찾아주기 위해 제나라를 방문했다. 소진은 제나라 선왕에게 두 번 절하고 축하를 표한 다음, 곧바로 조문하였다. 축하와 조문을 동시에 받은 제나라 왕은 어리둥절해하며 그 까닭을 묻자, 위와 같이 소진이 대답하고 있다.

 

 

 

[241]

제나라 왕은 걱정스러워 얼굴빛이 바뀌어 말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소진이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옛날에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들으려 한다면 즉시 연나라의 성을 돌려주십시오. 연나라는 이유 없이 성 열 개를 얻었다 기뻐할 것이고, 진황은 자기 때문에 열 개의 성을 돌려주었다 생각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원수를 없애고 돌처럼 단단한 친구를 얻는 길입니다.

 

 

=====> 원수를 없애고 돌처럼 단단한 친구를 얻는 길 석교지의石交之義 이다.

소진의 논리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곳곳에서 상당한 허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가 인용한 성어만큼은 마음에 새길 만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인생에서 성공은 실패라는 쓰라린 경험을 보약 삼아 얻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는 인생에서 실패는 없다고 본다. 다만 경험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 도전했을때, 안된 경우를 일컬어 실패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방법으로 해보니 안되는구나’ 라고 경험을 쌓은 일로 본다. 어떤 기자가 에디슨에게 전기 발명에 대해 물었을때, 에디슨을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안된는 방법을 7백 몇 번 발견했다”라고.

삶에는 수많은 갖가지 일이 일어난다. 삶의 태도가 그 사람의 방향을 결정한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이 일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서 내가 무엇을 얻기 바라는가. 이 일의 너머에 신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등 일어난 일에 대한 그 너머를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문제는 실패를 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실패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갖추었느냐에 있다. 실패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재기하여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다.

 

 

 

[242]

신이 신실하지 않은 것은 왕의 복입니다. 신이 듣건대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행동하고, 나아가 이루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합니다.

=====> 신이 불신을 사는 것이 왕께는 복입니다는 신지불신臣之不信, 왕지복야王之福也

전국시대 말 유세가 소진은 각국을 돌며 자신이 제안한 6국동맹의 외교책략인 합종을 설파하고 다녔다. 다른 한편으로 귀곡자 밑에서 소진과 동문수학한 장의는 6국 동맹을 각개격파하는 연횡을 들고 나왔다. 6국은 강대국 진의 동진을 막기 위해서 합종에 가담했지만, 복잡하게 얽힌 6국이 이해 관계를 교묘하게 파고든 장의의 연횡이 먹히면서 합종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제 소진은 동맹의 와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 소진은 연왕을 위해 제나라를 설득했고 덕분에 두 나라의 갈등은 해소되었지만, 연왕은 소진을 헐뜯는 주위의 말만 듣고 그의 재기용을 주저했다. 이에 소진은 ‘지신은 충성과 믿음 때문에 왕에게 죄를 받았다’며 , 하비만 “신이 불신을 사는 것이 왕께는 복입니다. ”라고 했다. 연왕은 충성과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죄를 받은단 말이냐며 발끈했다. 소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의 이야기[244]를 들려주었다.

 

 

 

[244]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멀리 떠나갔는데, 그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사로이 정을 통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돌아올 때가 되어 정무情夫가 걱정을 하자, 아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독약 탄 술을 만들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흘을 지나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첩에게 독이 든 술을 가져다가 그에게 권하도록 하였습니다. 첩은 술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주모主母가 내쫒길까 두렵고 말을 안하자니 주인을 죽이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질렀습니다. 주인은 몹시 화를 내며 그녀에게 채찍을 쉰 대나 쳤습니다. 첩은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어서 위로는 주인을 사리고 아래로는 주모를 쫒겨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매질은 면치 못했으니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그녀에게 어찌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대체로 신의 불행이 이 일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

 

 

 

=====> 연왕은 화를 풀고 소진의 직위를 회복시키는 한편, 전보다 더 우대했다고 한다.

주위의 숙덕공론에 마음이 흔들려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적절한 비유를 동원한 소진의 방법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처지를 역설적인 방법으로 실감나게 전달함과 동시에 비유법을 사용해 논지를 강조 내지 강화하는 말솜씨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강조의 효과는 역설적 표현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구사 하는가로 결정 난다고 하겠다.

 

 

 

[249]

“하늘의 시운이 그 나라를 돕지 않으면 청제와 탁하가 있은들 어찌 그것으로 튼튼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힘이 없어지면 장성과 거방이 있은들 어찌 그것을 요새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시운, 사람은 자신의 때가 있다. “내 꽃도 언젠가는 활짝 필 날이 있으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개인 각자에게는 시운이 따로 있다는 뜻일 게다. 그 시운이 언제 오는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요량으로 시기만 기다리면, 노력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기에 시운이 와도 그 때를 잡을 수가 없다.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기르고 땀을 흘리다 보면 그 시기는 언젠가는 오리라.

자신의 빛을 감춘 채 보이지 않게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 韜光養晦(감출도, 어두울회)의 정신도 필요하리라.

 

 

 

[252]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 배나 비싸고, 월나라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쫒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입니다.

 

 

 

=====> 고대에는 색을 내는게 어려웠다. 지금처럼 염료가 발달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춘추전국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색에 따라서 흰색에 비해 값을 열배나 받는다 하지 않았는가. 색은 권력이고 부의 상징이었다.

그리스어에서 자주색은 ‘변화’와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다.

 

 

 

<자주는 영혼의 색>

보라색은 무지개 스펙트럼에서 맨 마지막에 속해 있는 색이기 때문에 알려진 세계의 끝과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시작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라색 혹은 자주색도 죽음의 색으로 손색이 없었다.

 

 

 

<자주색의 어원에 얽힌 이야기>

17세기에 에스파냐 세비야의 대주교이자 카톨릭 성인인 이시도루스isidore는 저서<어원>에서 ‘퍼플purple'의 어원인 ’푸르푸라prupura' 라는 말이 ‘순수한 빛’을 의미하는 라틴어 ‘punitae lucis'에서 유래했다고 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고 그 글은 자주색의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덕분에 예술가들 사이에서 자주색이 영혼과 관계된 색으로 인식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하여 해안지애에 모여 살았던 페니키아인들은 바로 내가 찾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항해술이 뛰어났고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으며 예술에 조예가 깊었는가 하면 타고난 목수들이었다.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유리 공예술을 개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그들이 사용한 페니키아 문자는 알파벳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염료를 수출했던 이들의 이름인 페니키아가 자주색을 뜻하는 phoinis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사자 가죽을 입은 그 전설적 영웅인 헤라클레스 앞일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 백사장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손에 잡힌 것을 멀리 던졌다. 그와 동시에 개가 힘차게 뒤어오르며 그것을 잡으로 뒤좇았다. 이윽고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달여온 개의 이빨은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인은 이 범상치 않은 색을 보고 개가 입에 문 무렉스 브란다리스(뿔소라) 의 깊게 살폈다. 이 전설적인 발견은 곧 페니키아에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자주색은 환락과 권력을 상징>

바쿠스와 주피터는 각각 환락과 권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자주색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상징한다. 황실의 색이며 최고 성직자가 입는 제의의 색인가 하면, 쾌락의 색이며 바쿠스 신이 포도주을 마신 입술에 묻은 타닌, 존 키츠의 ‘자주색으로 물든 입술“, 호머의 위태로운 와인 빛 바다의 색이었다.

기원전 49년, 이집트 궁에서 호화로운 파티가 열렸다. 클레오파트라가 폼페이우스 군대를 격파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위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궁에서 사치와 쾌락과 방탕이 난무하는 파티를 벌였다.

 

 

 

자주색은 이집트 여왕의 비뿐만 아니라 궁 안을 장식하기도 했다. 자주색 반암은 몇 세기 후 비잔틴 황제들의 궁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born in the purple'이라는 문장은 ’왕가에서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궁에는 큰 홀에 자주색 소파가 있었는데, 소파를 물들이기 위해 대형 염색통이 필요했을 정도로 매우 길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 이러한 쇼파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쇼파 중에서 자주색이 아닌 것도 있단 말인가?” 로마의 역사가 코넬리우스 네포스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반면, 그 당시 율리우스 카아르에게 그렇게 화려한 색은 처음이었고, 관능적인 분위기에 도취된 이 늙은 영웅은 몸을 흐느적거리며 여왕의 팔에 안겼다.

아마 그 장면은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를 손에 넣기 위해 카이사르를 유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장군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장군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고, 얼마후 로마로 돌아간 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도입했는데, 바다달팽이로 물들인 긴 자주색 옷이었다. 그러기 오직 카이사르만이 입을 수 있었다.

 

 

 

<자주색에 얽힌 시>

클레오파트라가 탄 배는 바다 위에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화려한 옥좌와도 같았다.

갑판은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

이 자주색 배가 유혹적인 향기를 풍기자, 바람은 사랑에 애태웠다.

-월리엄 세익스피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2막 2장-

자주색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클레오파트라를 태웠던 매혹적인 배와 솔로몬 성전의 색으로 고귀하고 귀중한 색이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원의 커텐과 사제의 의복 색을 정해주었다. 파랑띤 퍼플과 빨강띤 퍼플 그리고 진홍색을 쓰되 금빛이 돌도록 하라! 고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색이 곧 지배자의 색이었다. 자주빛옷을 입는다는 것은 황금장신구를 다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이었다.

 

 

 

<자주빛옷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자주빛옷을 지으려면 몇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산 비단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보내어 세계최고의 비단 직조공들의 작업을 거친 다음 페니키아의 티루스로 보낸다. 티루스에서 자주빛 염색이 다 끝나면 다시 이집트의 알랙산드리아로 보내서 금실로 수를 놓는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와 여황제 그리고 황제 계승자만이 자주빛옷을 입었다. 장관들과 고위공직자들은 다만 자주색 장식만을 달 수 있었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으므로 자신의 배에 달린 돛을 퍼플로 염색하게 했다. 황제가 서명할 때 잉크도 자주색이었다. 여황제가 자녀를 분만하는 방은 자주색으로 발라졌다. 여황제 데오도라는 532년 폭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자주색의 옷을 절대로 벗지 않겠다. 또 단 하루도 나를 만난 사람이 여황제가 아닌 다른 말로 나를 부르게 하지 않겠다. 자주색은 수의로도 훌륭하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터키에게 점령당했고 황제직영의 자주염색 공장은 파괴되었으며 염색공들은 죽음을 당했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자주 염색도 종말을 맞았다. 그 뒤에는 빨간 케르메스 염료가 가장 비싼 값으로 부상했고 자주색은 붉은 기를 띠게 되었다.

경건함을 나타내는 색조에서 흰색은 신의색이며 검정은 정치의색이며 보라는 신학의색이다. 가톨릭교회는 보라색제복을 가진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가톨릭 성직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검은 수단에도 색으로 서열이 표시되는데 주교의 수단에는 보라색단추, 추기경의 수단에는 빨간 단추가 달려있다.

 

 

 

[259-260]

태사공은 말한다.

“소진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날렸으며, 그들의 술수 종횡책은 권모와 변화에 뛰어난 것이었다. 소진이 제나라에서 반간(첩자를 이용하여 적의 내부를 이간시켜 자기 독이 승리하게 하는 것)의 혐의를 받고 죽으니 천하 사람은 모두 그를 비웃고 그 술수 배우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세상에 퍼진 소진의 사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많은데, 그것은 시대를 달리하는 사적을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덧붙였기 때문일 것이다. 민간에서 몸을 일으켜 6국을 연결시키는 합종의 맹약을 맺게 한 그의 활약을 보면 소진은 그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시대 순서에 따라 그의 경력과 사적을 서술하여 유독 그만이 나쁜 평가를 듣지 않도록 하였다.”

 

 

 

=====>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두 명의 유세가라렴 역시 소진과 장의이다. 그들은 천하를 제 안방처럼 드나들 듯 넘나들며 세 치 혀를 놀려 도삼촌설掉三寸舌 각국 군주들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다. 소진은 ‘합종’이라는 거시적인 ‘6국 연합책’을 들고 나와 신흥강국 진나라에 대응했고, 장의는 이 연합책을 각개격파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는 ‘연횡’을 외쳤다. 이들은 각각 천하통일이라는 대세를 자신의 탁월한 진단법과 그것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언변, 즉 유세술로 유감없이 표현했던 것이다.

이 두사람에 대한 <사기>의 기록은 분량 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그만큼 이들의 논리와 역할이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마천은 <소진열전>에서 소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논의가 악평 일변도라고 지적한 다음, 자신은 행적의 선후만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며 자못 중립적인 입장을 보인다.

 

 

10. 장의열전(張儀列傳)

장의가 그 아내와 이야기할 때 혀가 붙어 있는지 물어본 것은 혀가 없는 장의는 생각할 수 없으며, 세 치밖에 안 되는 혀를 무기 삼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내며 부귀를 쫓던 당시 유세가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소진은 합종을 했다. 진나라에는 장이가 있는데, 장이가 바로 합종(세로정책)을 깬다. 장이는 연횡정책(가로정책)을 실시한다. 종횡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유세를 펼치기에 유세가를 종횡가로 한다. 장의가 그 아내와 이야기할 때 혀가 붙어 있는지 물어본 것은 혀가 없는 장의는 생각할 수 없다. 이를 설상제라 한다. 즉 혀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장이가 요즘에 살았다면 장이는 혓바닥에 보험을 들었을 게다. 소진의 합종이 없었으면 장이의 연횡도 없었을거다. 합종의 취약점은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나머지도 다 무너진다.

유세가들은 국제전문로비스트다. 천하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그 판단에 따른 분석함으로써 전문가 반열에 올려놓는다. 외교전문가들이 바로 그 당시 유세가였다.

265.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

 

 

 

[275]

신이 듣건대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도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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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돈도 자주 많이 쓰면, 통장에 돈이 쌓이지 않는다. 하찮고 사소한 거라도 지출할일이 있으면, ‘지금 이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세 번은 하고 결정하자.

세 치 혀가 여럿이 모이면 나라도 팔아먹는다는데, 말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한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증자 어머니한데 와서 말한다.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자,

“내 아들이 그럴리 없다”고 하면서 꼼짝도 안하면서 베를 짰다. 또 한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자, 꼼짝도 안하고 베를 짰다. 다음 세 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자. 그때 증자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담장을 넘어 도망갔다는 말이 전해온다.

말이란 이처럼 얼마나 무서운다. 세치혀가 모이면 뼈도 녹인다 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말에도 언격言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가벼운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힌다는 적우침주積羽沈舟,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진다는 군경절축(群輕折軸)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고 중구삭금(衆口鑠金),

여러 사람의 헐뜯음은 뼈도 깎는다 적훼소골積毁銷骨(헐뜯을 훼, 녹일 소)

모두 고사성어의 유래이며, 기가막힌 표현들이다. <사기>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의 원천이며 무한한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정말이지 반복해서 읽어보고 생활속에서 사용할 표현들이다.

여러 사람의 헐뜯음은 뼈도 깎는다는 말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또 하면 사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든다는 점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한 사람을 죽이자고 맘먹으면 여러 사람이 합세해서 말을 퍼뜨리면 된다는 표현이다. 그러니 사람의 혀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이것이 유언비어의 힘이고, 여론을 몰아가는 고전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장의의 이 말은 <국어(國語)>에 인용된 “여라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성(城)을 만들고 중구연금(衆口鍊金)” 와 여러 사람의 입은 쇠를 녹인다“는 속담이 있다. 또한 ‘적훼소골’은 중구연금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거의 같은 뜻으로 적훼소금(積毁銷金, 헐뜯음이 쌓이면 쇠도 까끈다) 이나 척참마골(積讒磨骨, 헐뜯음이 쌓이면 뼈도 깎인다) 같은 성어를 파생시켰다.

 

 

유언비어는 출처가 분명치 않고 반복되면서 의미가 변하고 시대를 비꼬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작년 2012년 최고의 유행어는 ‘멘탈붕괴’ 즉 멘붕이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부터 직장인들의 상사와 동료들의 관계 나아가 사회의 온갖 부조리로 인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멘붕사태를 맞이했다.

인간은 대개 칭찬하는 말을 듣길 좋아하지만 인간의 약점인 비방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재미난 구경이 ‘남 싸움하는 것과 불구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게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감정 즉 인성이며 인간의 약점이다. 장의는 이런 인간의 약점을 ‘적훼소골, 중구삭금’이란 말로 명쾌하게 지적했다.

 

 

[281-282]

진나라에는 호랑이처럼 용맹한 군사가 100만여 명 있고, 전차가 1000승이나 되며, 기마가 만 필이고, 식량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법령이 엄격하여 병사들은 어려운 것도 편안하게 여기고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임금은 현명하고도 준엄하며, 장수는 지혜롭고도 용감하여 병력을 내지 않고도 상산의 요새를 석권하여 천하의 척추를 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제후 가운데 남보다 늦게 복종하는 자는 먼저 망할 것입니다. 또 합종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꼴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편에 섰습니다. 신은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장의는 작은 나라들을 부추켜 강대국 진에 맞서려는 초왕의 무모함을 구양공호驅洋攻虎 라는 성어로 표현하고 있다. 즉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뜻이다.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 무모하게 달려들거나 억지로 일을 밀어붙이려 할 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통치의 관점에서 구양공호의 양은 과연 무엇을 상징할까? 희생물이 되는 양은 결국 국민이다. 다시 말해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무리한 정책 추진 - 예를 들면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추진, 지방자치제의 유용성없는 축제로 외자도입 등-, 공약남잘,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유언비어 들의 뒤치다꺼리는 오롯이 국민들 몫이다. 국민은 이 모든 것들이 몰고 오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그러니 먼저 ‘양’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개’들이 짖는 소리에 이리 몰리고 저리 휩쓸리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나라의 흥망은 양들의 책임이다!

왜 가만 있다가 전두환 은닉 재산 찾기에 몰두한 걸까? 저들의 의도는 양들의 눈을 어디로 돌리고 음모를 꾸미는 것일까.

리더들도 양이 몰기 쉽다는 기존의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수많은 양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호랑이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온순하다고 얕보고 함부로 다루면 양들의 뿔로 한꺼번에 들이받는 수가 있다.

 

 

 

[287] 달콤한 말은 나라를 망친다.

신하들과 제후들은 땅이 작은 것은 생각지 않고 합종을 주장하는 유세객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말에 빠져 한패가 되어 서로 말을 꾸며 대면서 ‘우리 계책을 따르면 강성해져서 천하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라고 큰 소리를 칩니다. 나라의 오랜 이익을 돌보지 않고 한 순간의 달콤한 말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 남의 임금을 망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재미있는 우화 이야기를 들어보자.

옛날에 입과 코와 눈이 서로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입이 말했다.

“이 세상에 맛있는 것들은 내가 없으면 절대 맛볼수 없어. 그러니 내가 얼마나 훌륭해? 안그래? ”

그러자 코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해도 이 코로 냄새를 맡아주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 안 그래? 그래서 내가 네 위에 있는 거야.”

입은 아무 말 못했고, 코는 킁킁 소리를 내며 으스댔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눈이 살며시 눈웃음을 치며 코와 입을 향해 쏘아붙였다.

“그럼 말이야, 만약 그 맛있는 것들을 이 눈으로 보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 내가 보지 못하면 코가 냄새를 맡을 수 있어? 또 입이 먹을 수 있어? 그래서 내가 너희들보다 위에 있는 거야!”

코도 입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입과 코아 눈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제히 눈썹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면서 갸우뚱 고개를 흔들다 동시에 볼멘소리로 말했다.

“야, 쟤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 어째서 우리 위에 있는 거지?”

코도 입도 눈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눈썹이 뒤통수를 긁으며 미안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내가 너희들 밑에 가 있다고 생각해봐. 얼굴 꼴이 뭐가 되겠니?”

 

 

 

이 세상은 각자 제 역할을 잘해낼 때 살맛 나는 법이다. 하는 일 없어 보이는 눈썹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얼굴이 얼굴다워진다. 다시 말해 나만 내세우지 말고 상대의 존재와 역할, 능력을 기꺼이 인정할 때 세상이 세상다워지고 인간이 인간다워진다.

사마천은 배운 자들이 자기들만의 좁은 세계에 빠져 사물의 본질이나 대세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공허한 말만 떠벌리거나, 아예 무시하며 비겁하게 침묵하는 현상을 귀로 음식을 먹으려 한다는 뜻의 이식지담耳食之談이 나왔다.

이식지언耳食之言은 천박한 식견으로 하잘것 없는 일은 물론 천하 정세까지 아무렇지 않게 진단하고 단정하는 허울뿐인 지식인을 비꼬는 말로도 사용된다.

 

 

 

[305]

태사공은 말한다.

“한, 위, 조 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켠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 사마천은 <장의열전>에서 노골적으로 이 두사람 소진과 장의를 진짜 ‘위험한 인물들’ 이라고 평가했다. 즉 나라를 기울게 하고 위험에 빠뜨릴 인물 경위지사傾危之士(울경, 위태로울위)이라고 칭했다. 이처럼 두 사람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간단명료하다.

다만 소진과 장의의 파란만장한 생애 이면에 꿈틀거리고 있는 격렬한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진단하고 주도하려 했던 풍운아들의 삶만큼은 대단히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인물치고 위험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영향력이 크면 그만큼 위험이 큰 법이다. 우리는 이런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시대의 변화상과 파란만장한 삶을 보면서 역사와 지혜를 배우며, 삶을 배우고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에는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을 잘 살펴보면 이들이 펼치는 화려한 언변에 맥없이 무너지는 권력자들의 얇은 귀도 함께 드러난다. 정말이지 잘 꾸민 말은 귀를 종잇장처럼 얇게 만든다.

 

 

 

14. 맹자, 순경 열전

맹자는 공자 학설의 단순한 계승자라기 보다는 유가 사상에 특정하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가 사상을 더욱 드러내고 발진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 춘추 전국시대를 잠깐 살펴볼까나>

사기에 나온 인물숫자만도 4,000여명, 주인공들만도 200여명, 한시간에 한명씩만 읽어도 200여시간이 필요하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혼란기였으며, 인재들이 대활약한 시기였다. 끊임없이 전쟁하고 경쟁하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전하는 시대로 약진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약 550년간이다. 전쟁이 약 500회이다. 기록만으로. 1년에 한번씩 전쟁을 했다는 통계다. 그에 따라서 국제 회담. 전쟁이 끝나면 회담을 해야 하고, 기록에 의하면 전후회담戰後會談이 약 480여차례이다. 여기에 외교전문가, 유세가, 로비스트들이 활약한다.

통일로 가는 대세이다 보니 각국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강하게 만들게 하려는 부국강병책을 쓰게 된다. 각종 정책들, 수많은 발명들, 수많은 인재들 등 이런 다양성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중국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황금시기’라고 부른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철기문화가 보편화되고, 무기 때문에, 또 하나가 농기구 농업생산이 중요한 생산방식이었다. 철제농기구는 땅을 깊이 팔 수 있었다. 땅을 깊이 파면 씨앗을 심어도 수확량이 많아지고. 우경牛耕이 발명된다. 철제쟁기로 땅을 깊이 파는 우경이 보편화 된다. 생산량이 늘어나니 인구가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도시가 발달한다. 이 도시 발달이 이 시기에 굉장히 중요한 현상인데, 인구가 많았던 곳은 50만정도가 되었단다. 2,300~400년전에요. 그 당시로 말하면 인구 천만정도 되었다고 해야 할까.

사마천이 이 모습을 보고 묘사했는데,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흘리는 땀 때문에 비가 내릴 정도였다.”비유했다. 사마천이 글심이 좋지요.

 

 

 

노자, 장자, 공자는 다 춘추전국시대 사람이다.

인의예지신 사상은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한 한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법가사상, 억지로 일할려고 하지 말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원래 인간이 태어났던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했던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사상. 평화사상을 실천한 사람으로 묵자가 있다. 보편적 인류애, 박애정신, 비전非戰, 반전사상인 묵가사상이 있다.

유가는 중국국가 통치이념으로 정책이 되었다. 종교적으로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유교로 확립되었다. 도가는 중국인에게 민중종교로 확산되면서 도교로 성립되었다.

사마천은 공자를 존경해서 공자를 <세가>에 넣었고, 순자 한비자, 노자, 장자, 맹자는 열전에 넣었다.

순자 아래에 법가 사상이 나온다. 맹자는 유가 우파, 순자는 유가 좌파이다. 법가의 주요한 인물들이 순자밑에서 많이 나온다. 추연은 음양오행설을 주장한 인물이다. 변종유세가정도?, 권력보다는 자기 생각을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야기하지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 들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쿨cool한 사람들이다. 다만 논리자체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적호기심이나 만족감 때문에 허영심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다.

 

 

 

370.

제나라 왕은 그들의 학설에 흡족하여 순우곤 이하 모든 학자에게 열대부라는 작위를 주고, 번화한 길가에 높은 문이 달린 커다란 집을 지어 주어 살게 하면서 존경하고 총애했다. 제나라 왕은 천하의 제후들과 빈객들에게 제나라에서 천하의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순우곤’이 있다. 임금한테 말할때도 수수께기로 말했다. 제나라 사람으로 위왕이 술과 여자에 빠져 정치를 하지 않았다. 순우곤이 위왕을 찾아가서 충고를 했다. 순우곤이 위왕에게 말했다.

“수수께끼 하나 낼터이니 들어보시겠어요? 우리 궁궐 앞마당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둥지를 틀었는데, 이 놈의 새가 어찌 된 일인지3년 동안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네요. 어떤 새일까요?” 이렇게 물었다. 거기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멋진 새가 한 마리 날아들었는데,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으니 일을 안한다는 말이었다. 왕을 비꼬았던 것이다. 이에 왕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 새가 한번도 울지 않았다면, 한 번 울었다 하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고,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까지 솟구쳐 올라갈 것이다. ” 라고 했다.

 

 

1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전군 4공자戰國四公子-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은 선비를 기르기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각기 식객 3000여 명을 거느렸다.

--> 일단 이력서 들고 오면 다 받아주었다. 경제력이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식객이 많다는 것은 자기 위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도 계파처럼 비슷하다.

381.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리로 위기를 벗어난다.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을 불러, 맹상군이 가려 하자, 소대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저는 밖으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거야.’라고 말하자 흙 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흙 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려던 생각을 그만두었다.

397.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맹상군이 제나라 재상에서 물러났을 때 빈객이 모두 떠나고, 다시 제나라 재상으로 등용되자, 풍환이 빈객들을 맞이하려고 할 때, 이를 이상히 여겨 맹상군이 풍환에게 물어본다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알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설 땅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 풍속은 마을에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아주 많아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나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의 풍속과는 사뭇 달랐다. 그 까닭을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으로 들어온 자가 6만여 가(家)나 되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맹상군은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했는데, 그 소문이 헛된 것만은 아니구나!

 

--> ‘집안의 물건은 그 집주인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빈객들은 오죽하겠는가? 물건도 집주인의 성품을 닮아가는데, 그 집안의 밥을 먹고 주인의 말을 들으며 잠을 자는데 자연히 닮아가겠지. 빈객에게 밥을 주는 맹상군의 성품대로 빈객도 그렇게 되어간다. ’끼리낄 모인다‘고 했다. 맹상군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겠는가? 그가 명성과 이익을 좇았다면 당연히 그를 따르는 빈객들도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리라.

태사공이 맹상군이 살았던 지역을 답사하고 느꼈던 것을 썼다. 그곳 주민들이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많다는 것을 예와 인을 따르기보다는 이익에 좇아 행동하는 선조들을 두었기 때문에 후손도 그렇다는 것을.

 

 

 

=====>맹상군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했다. 자기가 먹는 밥하고 식객이 먹는 밥을 똑같이 두게 했다. 재주나 능력있는 사람은 모두 받아주었다. 누가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면, 뒤에 이것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다 선물을 미리 보냈다. 자기 곁에 스카웃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전국시대에 들어오면, 이런 인재들을 망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임금하나로 부족했다. 그래서 그 밑에 있는 제후나 공자나 유력가들이 인재풀을 가동하여 조정에 추천했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대로 권력기반을 확실하게 다졌다.

3000명의 식객을 거느리기 위해서 맹상군 돈놀이도 했다.

맹상군이 풍환을 비롯하여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흉내내던 빈객들을 불러 들였을 때, 그들이 맹상군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이런 점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빈객으로 대접한 맹상군의 인물평가 능력은 본받을 만하다.

 

 

16. 평원군· 우경 열전

405. 세 치 혀가 백만명의 군사보다 강하다

문하에 모수(毛遂성취할수)라는 이가 있었는데,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며 평원군에게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라고 평원군이 대답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

->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은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

18. 춘신군열전

춘신군황헐은 제 공자 중 한 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활헐은 이 십여 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합종책을 추진하여 진나라에 맞서는가 하면 노나라를 멸망시켜 초나라를 다시 한 번 일으키는데 이바지했다. 그렇지만 말년에는 권세와 부귀를 지키려다 이원의 간사한 음모에 걸려 비참하게 살해된다.

445.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시경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역경

“이리저리 날뛰는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내 마음으로 그걸 헤아릴 수 있다-시경

456. 정확한 결단만이 몸을 보존할 수 있다

이원은 이미 자기 누이동생이 궁궐로 들어가 왕후가 되고 그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오거나 그 일로 점점 오만해질까 염려하여 남몰래 죽음을 각오한 용감한 병사들을 길러서 춘신군을 죽여 그의 입을 막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 중 많은 이가 이 일을 알고 있었다.

 

459. 북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주영이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수 있고, 또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 살고 있고, 기대를 걸 수 없는 군주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찌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 두지 않으십니까?

춘신군과 주영이 묻고 대답한다.

“무엇이 생각지도 않는 복이라고 하오?”

“당신께서 초나라 재상이 된 지 이십여 년이 됩니다. 이름은 재상이지만 사실은 초나라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초나라 왕이 병에 걸려 머지않아 돌아가시려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린 군주를 도와 나랏일을 하게 될 텐데, 이는 옛날 이윤이나 주공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왕이 자라면 정권을 돌려주거나, 아니면 왕노릇을 하여 고(孤)라고 일컬으며 초나라를 차지할 것ㅇ딥니다. 이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재앙은 무엇이오?”

“이원은 당신이 있으면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원수로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죽음을 각오한 병사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궁궐로 들어가 권력을 잡고 당신을 죽여서 입을 막을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지도 않은 재앙입니다.”

“뜻밖의 인사란 누구요?”

“당신께서는 저를 낭중(郎中)에 임명하십시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틀립없이 먼저 궁궐로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하여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재안을 막아 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입니다.

태사공은 말한다.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

 

 

20. 악의 열전

513. 군주와 신하의 의는 무엇인가

악의가 연나라 혜왕에게 답장한 글이다.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을 받는다”

“일을 잘 꾸민다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시작을 잘 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무리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라

 

 

21. 염파· 인상여 열전

545.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은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24. 굴원 · 가생 열전

587. 그 문장은 사소한 것을 적었지만 담은 뜻은 매우 크며, 눈앞에 흔히 보이는 사물을 인용했지만 그 뜻은 높고 깊다.

590.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역경

591.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쫒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여기서는 그 시대의 일을 아는 자를 가리킬 뿐 도덕적, 인격적 경지에 오른 이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쫒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뜩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고?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

굴원은 돌을 안은 채 마침내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597. 모자를 신발 삼아 신어서야 되겠는가.

가생은 한나라가 일어나서 효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 천하가 태평하니 마땅히 역법을 고치고 관복 색깔을 바꾸며 제도를 재정비하고 관직 이름을 새로 정하며, 예의와 음악을 창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의 의례와 법률제도의 초안을 작성하였는데 색깔은 황색을 숭상하고, 숫자는 5를 기준으로 삼으로, 관직이름을 만들어 진나라 때의 법을 완전히 바꾸려고 했다.

26. 자객열전

626.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약속을 어기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의 신뢰를 읽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되돌려주는 편이 낫습니다. ”

651. 자객은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바람 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27. 이사열전

661.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막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려을 뿐이구나.”

662.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669.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시경> <서경> ,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법률과 제도를 밝히고 율령을 만드는 일은 모두 시황제 때에 처음 생겼다. 문자를 통일하고 천하의 이곳저곳에 이궁(황제가 각 지역을 순시할 때 머무는 것)과 별장을 두루 지었다. 그 이듬해에는 세상을 돌아보고 사방의 오랑캐족을 나라 밖으로 쫒아냈는데, 이 모든 일은 승상 이사의 힘으로 가능했다.

670. 이사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 이사는 말단 공무원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궁창 속의 쥐와 곡식창고의 쥐를 보면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세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다름 아닌 순자를 찾아가서 공부한다. 그러나 다 마치지 못하고 곤궁하고 비참하게 사는건 나는 견딜수 없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다 고 진나라로 가게 되고, 여불위 밑에서 식객 노릇을 하다가 여불위 추천으로 진시황의 측근이 되었다. 출세지향주의자들의 대표격인 이사는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한다. 부귀영화가 가져다 주는 그림자 부분들을 떨치지 못하고 거기에 매달리다 결국은 아들과 함께 허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는다.

====> 유방은 중국 한(漢)나라 첫황제이다. 항우와 치열하게 천하를 다투다가 승리해서 한나라를 건립했다. 항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장수였다.

즉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큼 세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큼 웅대하다는 뜻.

IP *.185.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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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6 22:16:56 *.108.69.102

사마천의 고향에 대한 자세한 사진으로 눈길을 확 끌고( 저 충격적인 사진까지!)

꼼꼼하게 예화와 상념을 곁들인 리뷰가 참으로 묵직하여

그대가 인(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지(사람을 아는 것)에 다가 서기 위해 애쓰는 자세에 감탄하게 만드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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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19:26:52 *.215.246.82

저또한 충격적인 사진을 보면서

사마천의 심정을 조끔이나마 느껴봤습니다.

아마도

붓을 들어서 한자 한자 적어가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라는 ...

 

어떤 글을 쓰더라고

글은 삶속에서 우러나온다는 말씀이 생생합니다.

감사합니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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