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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일 22시 05분 등록
시간과 삶 그리고 경영, 포스코. 3월 25일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시간은 멈춰 서 있다. 누구도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아주 느리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이때는 느긋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가만히 멈춰 서 있을 수 없다. 모두 달려야한다. 변화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본 가정은 ‘나는 바쁘다. 고로 존재 한다’이다.

시간은 시대에 따라서 다를 뿐 아니라 나라에 따라서도 달리 인식된다. 시간이 가장 빨리 지나는 나라는 아마 미국일 것이다. 미국은 바쁜 나라다. 미국인들에게 시간이란 빠른 속도로 우리를 태우고 달리는 ‘무엇’이다. ‘시간과 흐르는 물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라는 속담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주장하는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경구와 맥을 같이 한다. 시간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낭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과거에서 출발하여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처럼 직선적으로 파악하는 미국인들의 시간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미국식 경영관을 만들어 내었다. 스톱워치와 시간동작 연구를 노동에 도입한 사람들도 미국인들이다. 단기적 성과에 따라 경영자에게 보상하는 성과지향적 보상형태도 미국식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식사 시간마저 일에 털어 넣기 위해 패스트푸드를 만들어냈다. 햄버거를 물고 점심시간에도 일하는 야심찬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이 사회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동양 사회는 시간을 그렇게 흘러가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시간은 순환하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환갑은 60년 한 주기를 마치고 인생이 다시 순환된다는 시간개념에서 비롯된다. 동양인들에게 시간은 삶의 두께들이다. 시간이 쌓일수록 경험도 늘고 삶의 지혜가 늘어간다고 인식한다. 노인의 지혜를 믿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삶의 친구로 인식하는 문화 의식은 역시 이에 걸맞는 경영관을 만들어 내었다. 예를 들면 일본의 평생고용을 선호하는 정서는 시간과 함께 누적되는 경험이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는 것을 가정한 고용형태다. 또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훨씬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하고 투자한다. 따라서 보상의 방식도 다르다. 지금의 성과는 과거의 투자와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지금 어떤 경영자가 성과를 냈다고 해서 이것을 당대의 경영자의 성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의 경영자 뿐 아니라 과거의 경영자의 업적이라는 관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과거를 죽여 뒤집어 엎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고쳐 써야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일본인들에게 혁명과 인노베이션은 없다. 일본은 가이젠(개선)의 나라다. GDP 기준으로 세계 1위와 2위의 경제 성적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 서로 매우 다른 방식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한국에서의 시간 인식은 이중적이며 혼합적이다. 생활의 깊은 곳에서는 동양적이다. 날 때부터 10간 12지가 지배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12년 마다 같은 띠의 해가 돌아오고, 젊은이들도 인생 전체를 통해 어떤 운명을 살게 될지를 점쳐보는 것을 즐긴다. 우리는 시간을 길게 보고 그 누적 효과를 믿는다. 이것은 경영에서도 장기적 관점을 늘 고려하게 한다. 철강과 조선업에서의 성장은 과거 장기적 안목에서의 투자가 거둔 성과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역시 대단한 리스크를 지고 미래를 위해 오랜 동안의 투자를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빨리빨리’의 나라다.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는 조급함은 도처에 부실을 낳기도 했지만 눈부신 압축 성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압축 성장의 이면에는 장기적 안목의 정책 투자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나는 ‘아이러니’ 자체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이브리드가 가능한 유연하고 다중적인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비유컨대 떡 벌어진 전주식 한정식을 차려 놓고 마냥 즐기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섞어 양푼에 넣고 뒤섞은 즉석 비빔밥을 즐기기도 한다. 비빔밥은 한국식 웰빙 패스트후드다. ‘패스트’의 특성을 가진 ‘슬로우’ 푸드를 ‘웰빙 패스트푸드’ 라고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이 모순을 견디고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보편 문화를 만들어 낸 셈이다. 우리는 여전히 동양적이면서 또한 서구적 특성을 환영한다. 우리는 지극히 완강하고 극단적이지만 정에 넘치고 따뜻하다. 나는 이 모순과 갈등에 대한 왕성한 소화력을 한국 민족의 문화적 DNA 로 인식한다. 이것이 한국의 잠재력이며 가능성이다. 동서양의 허브, 과거와 미래의 교차지점, 빠름과 느림의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의 한국 경영의 청사진은 대륙과 바다의 사이에서 수많은 외부의 압력을 받고 살아오며 터득한 민족의 지혜 위에서 도출된 비전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가변성과 적응성이 한국인의 중요한 정체성 요소인 셈이다.

개인적인 삶 역시 빠름과 느림 모두를 필요로 한다. 삶은 오랜 긴장을 견디지 못한다. 삶은 노래하듯 리듬과 템포를 타야한다. 시간을 즐기는 것은 마치 바람에 날려 굴러가는 모자를 줍는 것과 같다. 늘 재빨라야 하기 보다는 적절한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당황하여 너무 성급하게 달려가다 보면 모자를 지나쳐 헛손질을 하고, 너무 늦으면 모자가 도랑에 빠져 둥둥 떠내려 가는 것을 지켜 봐야할지도 모른다. 모자를 따라 급히 추격해 가다가 한 순간 조용히 좋은 목을 지키고 서서 재빨리 손을 뻗쳐 모자를 움켜쥐어야 한다.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듯이, ‘그러면서 계속 웃는 것이 좋다. 모자를 잡기 위한 모든 일에, 구경하는 다른 사람과 똑 같은 재미를 느끼면서.’ 우리는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삶이라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이다.
IP *.229.1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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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4 14:55:56 *.212.217.154

동양과 서양

대륙과 대양

빠름과 느림

보수와 진보

그 모든것을 균형있게 다룰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좋은 삶, 건강한 조직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느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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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2:03:55 *.150.248.46

우리나라가 가진 이런 역설의 힘을

현명히 발휘하여

동 서양의 가치를 버무릴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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