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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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년 24살의 한 청년이 유대교회당의 장로들에게 호출되었다. 그들은 그 청년에게 물었다.
"그대는 친구에게 '신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는가 ? 또 '천사는 환상일지 모른다' 라고 말했는가 ? 그리고 '영혼은 죽으면 사라지는 단순한 생명일지 모른다' 라고 말했는가 ? 대답하라"
우리는 이 청년이 무어라고 말했는 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겉으로라도 교회와 신앙에 충실할 것을 맹세한다면 5백 달러의 연금을 주겠다고 한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해 7월 27일 헤브라이 종교의식에 따라 이 청년은 파문을 당했다. 파문의 의식은 다음과 같이 행해졌다.
"저주의 말이 읽혀지는 동안 이따금 커다란 뿔피리가 길게 꼬리를 끄는 처량한 소리를 냈다. 식이 시작할 때 환하게 타던 등불은 식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씩 꺼져 마침내 모든 등불이 꺼졌다. 파멸된 자의 영적 생명도 이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마침내 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 남겨졌다"
도대체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저주가 끊임없이 파문자에게 내려졌을까 ? 반 블로텐이라는 학자가 이 날의 파문서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 일부를 보도록 하자.
"고하노라. 교법회의는 일찍이 이 자의 나쁜 견해와 소행을 충분히 확인하고 모든 방법을 다 해 나쁜 길에서 그를 계도하려 애썼지만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노라. 이제 많은 증인들 앞에서 장로들은 이 자의 유죄를 인정하노라...이자를 이스라엘 백성에서 제적하여 영원한 벌에 처하노라...파문하고 저주하여 추방하노라... 그는 낮에도 저주받고 밤에도 저주받으며 잘 때도 저주받고 일어날 때도 저주받을 지어다...주의 노여움이 지금부터 그 위에 임하여 모든 저주가 그를 압박하여 그 이름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다.... 이로써 각자를 훈계하노라. 누구나 그와 입으로 말을 주고받지 말고, 글로써 그와 의사를 주고 받지 말라. 아무도 그를 돌보지 마라. 아무도 그와 한지붕 밑에 살지 마라.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말고, 누구도 그가 입으로 전했거나 글로 쓴 문서를 읽지 마라"
아들이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누이동생은 그를 업신여기고 얼마되지 않는 유산을 빼앗으려했다.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한 흉한은 이 젊은이에게 단도를 들고 덮쳤다. 몸을 피해 다행이 목에 작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모면할 수 있었지만 위험은 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족 전체의 버림을 받고 가족과 떨어져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아야했다. 고독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러나 그는 평온한 용기로 이 고독을 받아들였다. 테러사건이후 그는 암스테르담 교외의 아우델게르크의 조용한 다락방으로 옮겨 살았다. 이 청년의 이름은 바르흐 데 스피노자였다. 파문이라는 시련은 스피노자로 하여금 그저 촉망받는 유대의 신학자로 살아갈 인생을 '근대의 가장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로 살아가게 도약시켰다. 고독이 그를 위대하게 했다.
고독과 시련을 겪으면 사람들은 매우 표독해지거나 반대로 매우 온순해 진다. 스피노자는 다행히 매우 다정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하숙집 주인부부도 그의 온화함을 좋아했다. 그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렌즈를 연마하였다. 이것은 그가 유별나게 가난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학자들은 면학을 통해서만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학자라면 생계를 유지할 기능직을 익히게 했던 유대율법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대인들에게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을 가지지 않은 학자는 결국 부랑인이 되어 사회에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 푼도 남길 수 없이 조촐하게 살았지만 그는 행복했다. 한 번은 이성보다 신의 계시를 믿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내가 자연적 오성으로 수집한 결과가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불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 자체가 유쾌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나날은 탄식과 슬픔 속에서가 아니라 평화와 밝음과 환희 속에서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
그가 죽은 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죽은 개만큼' 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모든 철학에 스며들었다. 어떤 학파도 만들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쇼펜하우어의 '살려는 의지',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으로 이어졌다. 그가 죽은 다음 200년이 지난 다음 헤이그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의 고독은 그의 생을 넘어서야 풀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당시대의 모독은 모든 위대함의 필연적 보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또 한 사람의 고독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고독에 치여 정신의 위기에 처한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려고 했던 20세기 최고의 정신 의학자의 고독에 대하여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서 외로이 신경증을 연구하고 있네. 사람들은 나를 편집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내가 자연의 위대한 비밀 하나를 풀었다는 느낌이 확실한데도 말이야"
1895년 프로이트는 친구 프레데릭 플리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플리스는 외로운 프로이트에게는 세상으로 가는 문이었다. 학문적 연구의 과정을 거치며 어떤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기쁨에 휩싸였지만 문제가 풀리지 않거나 주위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할 때는 한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주위의 반응과 외로움은 심한 감정적 동요를 거치게 했다.
1900년 11월 25일 그는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 훔볼트의 앵무새'처럼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라고 토로했다. 외로움은 길었다. 1913년 신경쇠약 직전 까지 간 프로이트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긍지와 행복을 느낀다"
그에게 그 당시의 외로움은 '찬란한 고립'이었고, 일종의 '영웅시대'였다.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의 저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혁신가들에게 있어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상태를 회고할 때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비슷한 심리적 현상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살아생전에 모든 영광을 다 받고 간 피카소조차도 이런 고독에 시달렸다. 피카소의 창조성을 들어내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아비뇽의 처녀들'은 다섯명의 창부를 그린 1907년 작품이다. 이 작품을 그린 스케치 노트만 8권에 이른다. 이것은 머리 속에 맴돌고 있는 이미지를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자연 속에서 지각된 대상들은 모두 원통, 구, 원뿔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세잔느의 말처럼 그 역시 인간과 사물 속에 내재한 기하학적인 형태를 찾아내어 변형시킴으로써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아비뇽의 처녀'는 갈등과 불균형으로 가득하다. 부드러운 육체의 곡선과 조악하고 모난 형태가 부딪히고, 부드러운 색조와 거친 색조가 충돌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피카소의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다중시선(multiple view)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 가는 길목에 있던 갈림길이었다. 화상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 이렇게 회고 했다. "그가 느낀 정신적 고독이란 참으로 공포스러웠을 겁니다. 다들 괴상하고 기형적인 작품이라고 말했으니까요" 피카소 역시 인정받지 못한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다보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질 위험을 피하려면 도약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미지를 창조해야한다"
당시 젊은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은 이미 인정받고 있었으니 새로운 실험과 파격은 평판을 얻기 시작한 그의 입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는 늘 도약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에게 익숙한 소재인 소와 말, 가족, 가정용품 그리고 하나는 여신이고 또 하나는 가련한 여인으로 대변되는 두 유형의 여인은 수십년 동안 반복되는 소재였지만 그는 언제나 이런 것들을 다채롭게 변형시킴으로써 늘 새롭게 활용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정신적 변천사였다. 스스로도 '내 작품의 나의 일기'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의 작품 세계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대화 상대는 그의 일기장인 스케치북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늘 대중과 게임을 벌렸지만 준비되지 않은 대중과 맞서야했다.
그것은 당시에는 이해받지 못하는 찬란한 고립이었다. 스피노자, 프로이트, 피카소에게만 고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비난과 투옥에 시달렸다. 심지어 그의 과학적 스승이었던 조르다노 브루노는 말뚝에 묶여 화형에 처해졌다. 다윈은 격렬하게 비난 받았고, 빈센트 반 고흐, 요한 세바스찬 바흐 모두 생전에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케인즈 역시 무시당했다. 모두 위대했지만 종종 그 시대는 그들을 이해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멸시되고 조롱받고 심지어 살해 되었다. 그들의 위대함은 후대가 되어서야 빛나게 되었다.
외로움과 절망의 과정으로 단련되지 않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함은 없는 지 모른다. 고독은 마치 영혼의 고통을 담은 용광로 같아서 위대함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제련 과정이다.
*주; 훔볼트의 앵무새 : 독일의 박물학자인 안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t)는 남미 탐험중 한 원주민 부족에게서 앵무새 한 마리를 얻었다. 이 앵무새는 그 원주민들이 이웃 부족을 몰살 시킨 다음 얻은 전리품이기 때문에 몰살된 부족의 언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프로이트는 당시 이 새처럼 고립무원언의 상황에 있었다.
(동아Biz, 2010 년 )
사부님~
요즘 문득.. 그때의 나로 돌아가도.. 왠지.. 그대로 살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어여..
아마.. 무쟈게.. 지난한 시간이 되겠져.. ㅎ
그런데.. 아주..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던 시간임은.. 그거 하나만은.. 분명한 거이 같아여..
이글..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선물.. 맞져.. ^^
이제는 그리운 외로움이 되어버린 소중한 시간..
또다시 마주치게 될 선물같은 그 시간들에게.. 마음을 열겠습니다..
선물.. 감동이에여.. 넘.. 찡해여..
사부님~, 찡-----하게 존경해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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