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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지음, 휴머니스트 2008>
“아빠, 우리가 사는 곳이 어디야?”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는 가끔 이렇게 물었습니다. 행정구역의 개념을 알려주고 우리 동네가 한국의 어느 쪽 어디쯤이라고 설명을 해주지만 아이는 쉽게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럴 때 좋은 방법은 지도를 가져다 보여주는 겁니다. 전국 지도를 펼쳐놓고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을 손가락으로 짚어주면 단번에 이해를 합니다. “아하, 여기로구나. 이쪽으로 가면 서울이고 저쪽으로 가면 산이 있고.” 지도는 그렇게 한 눈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줍니다.
아이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알려주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느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과거에 걸어온 길이, 그 길이 만든 지도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더군요. 어떤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모르고, 지금은 어느 길 위에 서 있으며, 앞으로는 어디로 가려 하는지를 모릅니다.
운전을 할 때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시겠지요? 참 편한 기계입니다. 알려주는 대로만 가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만일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때는 누구에게 묻거나 지도를 봐야겠지요. 그런데 지도는 볼 줄 아시는지요. 내비게이션에 너무 익숙해져서 지도 보는 법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네요. 지도를 볼 줄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데로나 가지는 않습니다. 길을 찾아보고, 주변에 물어보고, 고민을 해보고, 책도 봅니다. 아무 곳으로나 가면 안 되니까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삶의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별로 묻지 않습니다. 관성의 법칙에 충실한 사람들처럼 어제 걷던 길을 오늘 또 걷고 내일도 역시 그 길을 걷습니다.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든 길은 많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든지 어느 곳엔가 도착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어딘가의 길 끝에서 우리의 운전은 끝이 나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도착한 곳이 당신이 바라던 곳일까요?
여행책 중에서 최고의 책을 꼽으라고 하면 어떤 걸 택하시겠습니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책이 있지만 그 중의 으뜸은 지도책 입니다. 가고 싶은 모든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기만 해도 설렙니다. 떠남에 대한 기대가 솟아오르고, 두근거리는 떨림이 가슴을 울려옵니다. 당신의 삶에는 그런 지도가 있는지요. 들여다보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울리는 그런 지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저 길이 있으니 따라 가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 그 길을 가는 사람인가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세요.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 나는 삶의 지도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답은 무엇입니까.
작년 석가탄신일 연휴에 아빠랑 남도여행을 갔었습니다.
번갈아 운전을 했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휴게소에서 산 4000원 짜리 지도 담당을 맞으면서 남도로 갔었죠.
눈 앞을 보면 내가 지금 가는 길 밖에 안보이지만,
지도는 어느 도로가 정처없는 우리의 발길을 가장 아름다운 풍광과 우연히 만나게 해줄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여행한다는 것이 이렇게 멋진 일이라는 걸 처음 알게된 여행이었어요.
인창님 마음편지와 그 때 생각이 맞물려집니다.
내 삶에도 지도가 있겠구나. 그 지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야겠다.
아름다운 인생길이었다고, 한참이 지나도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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