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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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3일 선생님께서 운명하시던 시점에 나는 죄송스럽게도 ‘싸이 콘서트’에 있었다. 수강생 한 명이 통 크게 티켓 두 장을 선물해서 모처럼 갔던 것인데, 그날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저녁 8시경, 너무 앉아만 있었나 싶어 나도 뛰며 놀려고 통로 쪽으로 옮겨 섰는데 여자 한 명이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무대에 열광하는 건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자는 온몸으로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보통 슬픔이 아니었다. 나는 조금 놀라서 가만히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문자로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다.
그런데 그 날 ‘싸이 콘서트’의 주인공은 싸이가 아니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 문화가 세계를 확실하게 장악했던 ‘강남스타일’의 후속작 ‘젠틀맨’이 발표된다는 것 외에는 싸이가 새롭게 보여줄 것이 없었다. 신명으로 하늘을 찌르며 공연을 즐기던 전에 비해 무언가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싸이의 형제들만 소리 질러~~” 하는 단골멘트도 식상했고, 자꾸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유도하려고 들어 피곤했다. 그 날 싸이가 수영복차림으로 외국 여가수 흉내를 내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로 그 넓은 월드컵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빈 것을 보면 이런 내 느낌은 아마 맞을 것이다. 노래가 아닌 그 무엇, 그것도 결코 ‘월드가수’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몸짓을 도모해야 할 정도로 그는 초조했던 것이다.
내 기분에 약간 시들하던 분위기는 2NE1과 지드래곤이 게스트로 나오자 백팔십도 달라졌다. 무대 위의 가수가 서운하지 않도록 의리로 박수를 쳐줄 필요가 없었다. 그들 또한 “소리 질러~~” 하며 함성을 유도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기꺼이 환호하며 열광했다. 대형 스크린에 2NE1의 ‘씨엘’이 비치는 순간 나는 섬칫 놀랐다. 그녀는 완벽하게 여왕의 카리스마를 두르고 있었다. 배고픔에 주린 백성에게 식량을 하사하듯, 알현을 청하는 신하들에게 자태를 선보이듯, 도도한 미소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부터 너희를 즐겁게 해 주리라’는 이 시대 최고의 약속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신민이 되어 버렸다.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을 정도로 그녀의 아우라는 대단한 것이었다.
지드래곤도 마찬가지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중성의 매력을 자랑하는 이 친구 또한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쏘아대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춤동작이 마냥 멋스러워 보고 또 봐도 자꾸만 보고 싶었다. 도대체 이 매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을 정도였다. 그 날의 느낌이 워낙 인상적이었는지, 이제 나는 연예인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매력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나 할까, 전에는 부와 명예를 향해 달려드는 불나비 떼를 연상했다면, 이제는 자기답게 살고자 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86쪽
사실 연예인만 매력으로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촐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나조차 그저그런 기능인으로 먹고 사는 데서 그치느냐, 아니면 나만의 영토를 조성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적인 혹은 저자로서나 강사로서의 매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맥 풀리는 일이다. 성격과 의지, 비주얼 모두가 평범 그 자체인 나에게 하품이 나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너무도 평범한 나에게 오기가 생긴다. 내세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바닥, 바로 그 곳이 다시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행히도 내겐 좋아하는 것에 막무가내로 빠져드는 열정이 있다. 확신만 있다면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뱃심도 있다. 내가 서기 위해서는 남을 먼저 세워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오늘의 꽃은 오늘 따야 한다는 절실함도 배웠다. 그러니 나의 주력사업인 강의와 승부사업인 저술에 좀 더 열심을 낼 일이다. 마음과 기량이 어우러지는 거기 어디쯤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의 귀재들이 젊어서 이룬 일도 본질은 이와 같지 않을까. 완벽한 자기다움이 탁월함과 만나 피운 불꽃.
“자기 스스로를 얻을 수 있다면 천하에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313쪽
<알 림>
1. 구본형 선생님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소개
<구본형 칼럼>의 정수를 모아 묶은 유고집『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구본형의 자기경영 1954-2013』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구본형선생님의 삶과 글을 그리워하는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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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영하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http://cafe.naver.com/writingsutra’ 카페에서 책쓰기과정이 10월 5일에 시작됩니다.
글쓰기와 책쓰기를 함께 다루며, 개인책은 물론 공저 기획도 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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