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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0일 23시 26분 등록

오전반 수업이 끝난 아이는 한바탕 운동장에서 뛰어 논 다음 문방구 앞으로 향한다.

“아저씨 아직 멀었는교.”

“좀 기다려봐라. 저기 줄서고 있으면 곧 차례올끼다.”

꽁지에서 연신 앞줄을 쳐다보지만 좀체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나 참, 경숙이 에게 보여주기로 했는데.’

아저씨는 화성에서 탈출해온 우주인마냥 신기한 쇼를 연출한다. 연탄불에 국자를 얹히고 설탕과 소다 등을 넣고 살살 저어 나가노라면, 그 녀석은 원판불변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색다른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아저씨, 아직 멀었는교.”

“거참, 기다려 보라카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친구들은 연신 침을 꼴딱 삼키며 마법이 펼쳐지기를 고대한다. 둥그런 깔때기 모양으로 원형의 조각을 만든 후, 아저씨는 크리스마스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마냥 드디어 마법의 도구들을 가방에서 하나둘 풀어낸다.

“그래, 어떤 모양을 만들어 줄까?”

“저는 별요. 아저씨 나는 자동차요.”

마법사로 변신한 그는 그 순간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되어 중생들이 만들어 달라는 형상의 물질을 뚝딱 잘도 만들어 낸다. 신이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하면 빛이 있듯이 각자의 특질대로 그려지는 물건들. 덕분에 별, 비행기, 자동차, 하트, 멍멍이, 한글, 네잎클로버, 십자가 등의 무궁무진한 상상의 모양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와, 아저씨 죽인다.”

으쓱해진 아저씨는 다시 라스베이거스의 일류 도박사로 일순간 변신의 나래를 편다.

“자, 어느 모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손님 분께서 모양 그대로 파내면 하나더 덤으로 나갑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 아이의 심사숙고는 이어진다. 어느 것을 선택할까요. 하느님께 물어봅시다. 아이가 결정한 모델은 하트 그림이 그려진 문양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트라. 우후후. 내가 이 멋들어진 하트 모양을 멋있게 장식해서 경숙이 에게 전해주면. 생각만 해도 구름위에 두둥실 떠있는 기분 이었다. 자, 이제부터는 아저씨의 역할은 조연으로 물러나고 드디어 주인공인 아이가 무대에 등장한다.

“어린왕자 별에 도착한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최고의 표징이 탄생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아이는 까르르 웃던 그 애가 아니다. 왼쪽엔 콧물을 닦는 하얀 손수건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지만 철없는 그 애는 온데간데없고, 그 순간만큼은 고3 수험생의 집중력을 뛰어넘는 초절정 절대 신공 모드로 돌입을 한다.

지휘자로써 혹은 예술가로서의 역할로 변신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 타원으로 이루어진 둥근 모양은 개인에게 부여된 각자의 세계이다. 그 주어진 세계를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자유이지만, 내부에 아로새겨진 본질적인 원형은 그대로 살려내야 한다.

 

아이는 심호흡을 하고 작업에 돌입한다. 도구는 딱 하나. 바늘 하나를 들고 본질을 향해 돌진한다.

‘부서지면 안 돼. 살살 천천히 하면 되는 거야.’

방법은 간단하다. 본질에 주어진 외부의 형상을 제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것도 쉽지 많은 않다.

“이까이꺼, 내하는 것 보래이. 어라 쉽게 부서지잖아. 에이씨.”

“좀 조용히 하거래이. 내가 완성해 볼끼다. 어라…….”

경기에 임하다 보면 친구들의 성격이 엿보인다. 자고로 달고나는 성격 급한 이는 해내기가 수월치 않다. 은근히 마라톤처럼 끈기와 인내심을 요구하는 종목인 것이다. 그렇기에 경쟁자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가운데 남다른 자신감이 있는 아이는 호흡을 끝낸 후 시작한다. 바늘에 혓바닥의 침을 묻혀 손가락을 가지런히 추스린후 촘촘히 타깃에 점을 한 땀 한 땀 찍어 나간다. 똑똑 똑똑. 그래. 그때도 그러했었지. 미술시간에 아이는 큰 칭찬을 선생님에게 받았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참 잘했어요의 커다란 빨간 도장을 수여받은 것이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후 색종이를 연필심 등을 이용, 잘게 찢어 모자이크 형상을 하듯이 하는 숙제였는데 밤을 홀딱 새웠었다. 그때의 성취경험을 되살려 작업을 하는 순간 세상 모든 것은 적막으로 휩싸였고 아이 혼자 스포트라이트의 무대에 홀로 서있다.

“너는 뭐하고 있니.”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어떤 작품?”

“세상 누구보다 곱디 곱은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어요.”

“그래, 그걸 만들어 누굴 줄려고.”

“짝꿍이요.”

그런데 이런, 파열음과 함께 원형이 반으로 쪼개졌다. 세상이 부서진 양 소년의 얼굴은 금세 창백해진다. 어쩐다. 얼마나 내가 공을 들였었는데. 당사자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는 싱글벙글 이다.

“어이쿠, 어쩌나. 끌 끌끌.”

씩씩대는 아이는 다시 도전에 나선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 할 거야. 큐피드의 화살을 목표물에 재조준 하는 아이.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땀방울 하나가 이마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두둥 두둥. 축포의 멜로디가 울려 나왔다.

“아저씨, 성공 이예요. 성공. 아싸~”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 다가진양 만세를 외치며 자리에서 펄쩍 거린다.

“허허, 고놈참. 다른 애들과는 다르네. 옜다. 약속한대로 하나더 주마.”

경기에서 승리한 아이는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양 의기 앙양한 모습으로 경숙이 에게로 다가간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리품인 그 하트 장식은 그녀에게 첫사랑의 프러포즈로 받아들여졌을까. 아니면 쓰레기통으로 직행 하였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 아이 외에는.

 

“어라, 요즘에도 저런 게 있네. 얘들아 이리와봐.”

주말을 맞아 인사동 나들이에 나섰던 가족은 아빠의 호들갑에 사람들을 비집고 나선다. 처음 보는 물건이다.

‘뭐야, 먹는 건가. 그런데 저런 것을 어떻게 먹지.’

물 만난 고기마냥 아빠의 일장훈시가 이어진다.

“나 참, 아직도 저런 게 있다니. 여보, 내말 잘 들어봐. 저게 자고로 뭐냐 하면 달고나 라고 하는 것으로써 거시기 뭐냐……. 하여튼 각설하고 이 아빠가 소싯적에 저걸 해서 얼마나 상품을 많이 탔는지 아니. 아저씨 하나 줘봐요. 내 솜씨를 보여줄 테니.”

왕년에 한 가닥 날린 솜씨의 옛맛을 잊지 못하는 아빠는 호기 있게 나선다. 그런데 이런. 얼마하지도 못해 부서지는 형상들.

“뭐야, 아저씨 이거 왜이래. 이거 불량품 아니야. 나 참, 이런 물건을 팔다니. 다시 새것으로 바꿔줘요. 양심이 있지.”

“이 사람이 자기가 실수해서 그런 것을 제품 탓을 왜하나. 나 참 오늘 개시도 못하고 있는데 다시 안할 거면 저리 가요.”

급기야 험악한 장면으로 전개되는 두 남자의 풍경.

 

시간이 흘렀다. 세상도 변했다. 그때 그 아이는 첫사랑이 아닌 번번한 외모에 이끌린 한 여인과 결혼을 하여 가족을 이끌고 있고, 마법의 장으로 초대를 하였던 인상 좋아 보이던 달고나 아저씨는 몇 번의 사업 실패 끝에 이제는 풍파에 젖은 속세의 중년으로 변하였다. 뽑기 혹은 달고나 라고 불리던 그것은 아직 원형 그대로의 모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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