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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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다를 보고 왔습니다. 아버님 생신을 기념하여 부모님 모시고 여동생 내외와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세 가족이 움직이면 어른이 여섯 명에 어린이가 세 명입니다. 그래도 아버님 생신 덕에 가을 바다로 온 가족 다함께 여행을 즐겼습니다.
무창포는 석대도까지 약 1.5km의 바다길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무창포의 바다길은 보령팔경 중 2경으로 일컬어지며 바다길이 열리는 때는 그야말로 차도가 주차장으로 변할 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찾은 시기는 바다길 열리는 때가 아닌지라 고즈넉한 가을 바다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 많은 해수욕장을 찾아 온 것이 아니기에 저 멀리 석대도를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수 년만에 바다를 찾았습니다. 바다를 찾아 가슴이 뚫리는 체험을 맛 본지 몇년 만인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한 오 년 전이었나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단 둘이 금요일 밤을 달려 속초 겨울 바다를 보았던 적에 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바다의 맛을 알았습니다. 바람 몰아치는 겨울 밤에 방조제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를 보면서 ‘이런 풍광 맛에 바다를 찾는 구나!’ 느꼈습니다. 가슴 속 참 많은 것들이 바람을 타고 파도를 타고 빠져 나가는 체험이었습니다.
수 년 전 보았던 속초의 바다는 거칠고 매서운 겨울 바다였다면, 이번 무창포 가을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서해로 지는 노을은 바다에 붉은 기운을 한껏 뿌렸습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광이었습니다.매일 보는 태양의 장엄함을 이렇게 잊고 살았구나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떠오를 태양빛이었지만, ‘이 순간’만을 위해 뿌려지는 저 햇살은 내일의 빛깔과는 분명 또 다를 것입니다.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조개를 줍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무창포 해변을 걸었습니다. 무창포 해변의 파도를 보며 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파도는 이 해변을 쓸고 또 쓸어 왔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원한 파도에 영원한 시간이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짦기에 그래서 더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자연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여행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원이 곧 순간이며, 순간이 곧 영원이라고 무창포의 노을과 파도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고 또 손주를 보며 한 없이 웃고 또 웃으시는 두 분의 모습이 마치 무창포의 가을 바다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을 바다가 좋았습니다. 바다에서 도시로 돌아오면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다음 여행을 언제라고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번에도 저희 가족은 분명 바다를 보러 갈 것입니다.
2013-10-21
파주 운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