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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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면 가장 해보고 싶은게 화장실 청소였다. 지저분한 세면대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시험을 핑계로 계속 미뤄뒀던 것이다. 청소 하는데 한시간도 안걸릴텐데
그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핑계면 핑계고, 하소연이면
하소연이다.
시험은 요번이 3번째다. 4번의
기회중 3번째 기회.. 어려보이는 것도 문제였고, 경력이 적은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카드에 적을
것도 별로 없었다. 왜 다른 사람들은 이리도 많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건지도 의문이였다. 모든게 불리한 입장이였다. 슬렁슬렁 쳤던 2번의 시험을 모두 낙방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러다가 망하겠다.
그래서 3번째인 요번에 끝장을 보기로 했다. 결혼도 해야하고, 회사 생활도 해야겠고, 기타 여러가지 내 계획들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시험을 마무리 지어야했다. 존경하는 이장군님의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마음에 새기며 전쟁하는 마음으로 다짐을 했다. 한달만, 딱 한달만 내 모든 것을 걸어보리라.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서 힘이 하나도 없었고, 시험 자체가 비밀이었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마음따로
행동따로의 불협화음은 더욱 날 힘들게 했다. 해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시험 보기 일주일전부터는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거북했다. 먹는게
이렇게 지겨운 일이라니. 고기 반찬의 고기를 걸러내면서 먹는둥 마는둥 일주일을 버텼다. 가장 큰 고비는 시험보기 전날이였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은 것이다. 낼 시험은 컨디션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속은
좋지 않고 잠은 오지 않으니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침대에 누워 아무리 양을 세봐도 소용이 없었다.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내 스스로를 보면서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건지 화도 조금 났다.
걱정과 달리 시험은 그럭저럭 보았다. 막상 면접장에서는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고, 질문 역시 대부분 공부했던 것들에서 나왔다. 시험장을
나오면서 잘하면 요번에 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했는데 떨어진다면 그건 아마 신의 뜻일꺼다. 넌 다른 일하라는 신의 뜻. 머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어쨌든 시험은 끝났다. 이것저것 고생은 했지만 후련하다. 가슴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도 내려간 것 같고, 잠도 잘 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를 해서 좋았다. 깨끗해진 세면대를 보니
마음이 후련했다. 정말이지 시험이 끝난 것보다 화장실을 청소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더 기분 좋은
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