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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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서 열흘 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포도만 먹습니다. 단식을 하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조금만 먹어도 살 수 있는데, 짐승도 아프면 먹지 않는데 그 동안 너무 많이 먹고 지냈다는 것에 대한 반성입니다. 맛있고 분위기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는 매니아적 기질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먹는 것을 끊는 것은 대단히 혁명적인 일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면 이상하게 다른 욕망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먹는 것은 강력한 본능입니다. 단식기간에 산책을 하러 대원사 절에 갔습니다. 절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서 불어오는 산채 비빔밥의 들기름 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합니다. 먹고 싶은 온갖 음식들로 머리 속은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주먹을 불끈 쥡니다. ‘자발적 빈곤’은 삶에 대한 전의를 불타오르게 합니다.
단식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이미 탈고하기로 한 원고가 지지부진하여 골방에 틀어박혀 마무리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두 가지 진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단식을 통해 그 동안 술과 담배, 온갖 음식에 찌들었던 몸에 휴식과 정화 작용을 통해 자연적인 자생력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년부터 할 일에 대한 구상과 함께 현재의 일상을 재편하고 싶었습니다. 몸과 정신의 수련이 진짜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두 가지 목적은 달성한 거 같습니다. 단식의 결과가 흡족하여 앞으로는 매년 한 두 번은 단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단식을 다녀온 후 주위의 사람들이 단식을 한 이유, 단식하는 방법 등을 물어봤습니다. 저는 흥분하여 단식 무용담을 쏟아내며 단식을 권유했습니다. 제가 단식을 권한 이유는 건강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싶다면 일상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일상을 바꾸지 않고 변화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단식은 일상을 재편할 수 있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다소 과격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먹고 마시고 잠자는 습관을 바꿔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혁명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습관들의 결탁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습관의 한 부분을 공격하여 점령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복구할 수 없게 완전히 궤멸시키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싸움은 전면전이다.
-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P214)
자기와의 전면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식이 필요하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쳐야 한다. 인간은 상징적인 동물이다. 정신은 살아 있기 위해 활력을 필요로 한다. 하루를 구성하고 있는 먹고 자는 일상에 강력한 충격을 줌으로써 첫 번째 서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하루를 구성하는 인프라스트럭춰를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식이다. 단식을 통해 하루를 개편하여 자신의 일상 속으로 새로운 변화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다.
-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P214-215)
살면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한 모멘텀도 필요합니다. 아마도 이런 필요에 의해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몸만 떠나 보내서는 다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몸은 떠나도 ‘과거의 나’는 여전히 나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과 습관을 떠나 보내야 가능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단절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은 때때로 분기점을 요구합니다. 대전 분기점에서 경부선을 탈 수도 있고 호남선을 탈 수도 있고 통영으로 갈 수도 있는 것처럼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전혀 달라집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단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단식은 좋은 행동입니다. 그 동안 밥벌이가 그대를 힘들게 했다면 한번 밥을 끊어보십시오. 지친 나의 몸을 튜닝하고 이제는 내 인생을 내 스스로 프로그래밍하며 살겠다는 전의를 불태우는 의식을 거행해보십시오. 부디 올해가 가기 전에 나의 날을 정하고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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