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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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주유기
주유(周遊),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다니며 놂.
시발점.
친구가 여행타입을 알아보는 거라며 사다리 게임을 건네줬다. 질문에 따라 YES/ NO 로 답하며 화살표를 따라가는 건데, 몇 번을 해도 똑같은 게 나왔다. <유유자적 한량타입>. 그랬다. 지난 16개월간 17개국을 다니며 말 그대로, 유유자적 한량으로 살았던 거 같다. 말 그대로 세상을 ‘주유‘했다고 할까? 사람들은 내가 세계여행 나왔다 하면,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고 떠난 것처럼 바라보았다. “뭔가 인생의 획기적 전환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쉽게 할순 없을거야. 대체 너, 어떻게 떠난거야?” 하지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요랬다.
“글쎄, 딱히... 계긴 없었는데. 그냥 언젠가 한번 세계여행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 원래 새로운 일을 해보려 했는데... 그전에 세계를 한번 보고 싶더라고. 수중에 그동안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고. 시간은 무한정 있었고. 뭐 그래서 떠난거지. 세계 한번 볼라꼬.”
해볼라꼬~
내 특기이자 장점이자 단점인, ‘생각없이 무작정 해보기’.. 가 이번에도 나왔을 뿐, 큰 용기는 필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어차피 죽을 팔자면 내가 우리집 안방에 있든, 팔레스타인 한복판에 있든 죽을 거고, 살 팔자면 살 테니. 언제나처럼 그런 심정이었다. 준비는 한 달 정도 했다.
나는 무협지를 참 좋아한다. 무협지를 보면,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 크면 자신을 실험하기 위해, 더 큰 ‘적’ 혹은 ‘친구’ 혹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세상의 중심-‘강호’로 나간다. 강호로 가는 동안 세상을 이리저리 다니며 주유(周遊)한다. 친구도 만나고 적도 만나고 죽을뻔도 하고, 사랑도 하고. 나도 그게 해보고 싶었다.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내 마음껏 세상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구인인데, 지구한번 봐야지 않겄나?
그렇다고 뭘 그렇게 열심히 보려 하지 않았다. 북경에선 만리장성 가기가 귀찮아 안 갔고, 대신 뒷골목만 쏘다녔다. 계획도 딱히 없었다. 내가 세운 계획을 말해주면 다들 웃었다. “실크로드 따라갈거야. 아시아 다음엔 유럽, 유럽 다음엔 남미, 남미에서 북미까지 올라갈거야....” 정도가 다였으니. 이해한다. 그래서 딱히 지켜야 할 것도, 안 지켰다고 서운할 일도 없었다. 심지어 가이드북도 안 가지고 다녔다. 그러니 여기 가서 여긴 꼭 봐야지, 하는 게 없었다. 모든 계획은 그 나라에 가서 만들었다. 칠레에 가면 칠레 지도를 보고, 여행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좀 들어보고, 추천 좀 받고 내가 갈 곳을 몇 군데 찍어본다. 한 나라에서 5군데 이상 가지 않았다. 왜냐, 한 곳에 가면 1주일은 머물러야 했으니까. 경험상, 3일 머물 때와 1주일 머물 때 보이는 것이 엄청 다르다는 걸 알았다. 같은 골목을 걸어다니는데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4일째 되니 보였다. 간판들도 더 보이고, 사람들도 더 보인다. 어차피 주민처럼 될 순 없지만, 있는 동안은 주민들처럼 지내려 애썼다. 조금이라도 그 지역에 스며들고 싶어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걷고 다녔다. 현지인들이 가는 카페에서 커피마시고, 현지인들이 먹는 식당에서 밥 먹었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을 위해, 항상 일주일 정도는 머물러 보려고 했다. 기록은 많이 하지 않았다. 가슴에 남지 않은 경험은 어차피 기억할 필요도 없는 거라고... 그래서 중간중간 떠오르는 단상들만 한 두 줄 적어갔다.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이건 좀 후회도 된다.
내가 본대로,
내 어렴풋한 기억과 몇 줄 안 되는 노트를 가지고 쓴.
아주 개인적이고 조악한 여행기.
여기다가 풀어보려 한다. 게으름 부리다 더 까먹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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