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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05시 07분 등록

연하우편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받아보는 사사로운 우편물이다.

첫 번째 우편물은 달력이었다. 일 년이 한 장에 담겨있다. 종이가 흔하지 않던 시기에 이런 달력을 본 기억이 있다. 엽서크기의 우편물을 뜯어보니 잘 접혀진 종이 한 장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달력. 노란색은 개나리나 병아리를 연상시키고 꽃의 모양은 버들강아지를 닮았다. 무릎을 당겨 가슴팍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그것을 감싸고 있는 빨간 옷의 아이와 오른손을 무릎 위에 고정시키고 그 손으로 오른쪽 얼굴을 궤어 같은 곳을 바라보는 노란 상의를 입은 아이의 모습이다. 펼쳐진 달력에 나의 일년이 소금쟁이가 수면을 달리듯 스친다. 한 눈에 들어오는 일년을 벽에 붙인다. 기분이 산뜻해진다.

오늘의 우편물은 연하장이다. 매년 이맘때면 잊지 않고 보내오는 정성만으로 족한 우편물. 인쇄된 300원짜리 우표에는 어린아이가 한복을 입고 팽이를 치고 있다. 연하장에는 다홍색바탕에 장미인지 모란인지 구별이 안 되는 팝업기법의 꽃이 대여섯 송이 있고, 중앙에는 주머니가 그려져 있다. ()자가 쓰여진 주머니이다. 설날에 세배를 하면 두둑이 채워주시던 복 주머니. 팝업기법은 평면 안에 감추어진 입체 속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벌거벗은 몸보다 살짝 가린 몸이 더 섹시하게 다가오듯 팝업기업은 들쳐보는 묘미가 있다.

복자를 들춰본다. “푸 하 하하하웃음이 절로 난다. 카드를 들고 동료의 방으로 갔다. “너는 이 걸보고 무슨 생각이 드니?” 그녀의 반응도 나와 같다. 웃음. 웃음의 표정은 다양하다. 좋아서 웃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도 있다. 어이없어도 웃고 비웃는 웃음도 있다. “요즘 불경기는 불경기인가 봐요. 돈 그림이 많은 걸 보니”. 복 주머니 안에는 신사임당이 그려진 오만 원권 지폐가 다발로 쌓여있다. 직업병이 발동하여 계산도 해보았다. ...무려 48천만 원이다.

사무실이 답답할 때면 쪼르르 달려 나와 꽃집으로 가곤 한다. 아무런 볼일 없는 그야말로 마실 이다. 어느 봄날 꽃 향기가 그리워 찾은 집에서 주인장은 꽃바구니를 만들고 있었다. 고객이 주문한 바구니라고 했다. 꽃바구니에는 꽃과 나뭇가지, 풀잎종류와 카드를 꽂거나 리본을 단다. 그날은 색다른 것을 꽂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 장미 사이사이에 플라스틱으로 된 길다란 꽂이 끝에 배춧잎이 꽂혀 있다. 말려서 꽂혀진 지폐는 붉은 장미와 제법 잘 어울린다. 100송이의 장미에 100장의 배춧잎을 꽂고 있는 중이라 했다. 이쯤 되면 꽃다발이 아니라 돈다발이다. 꽃바구니를 주문한 남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바구니의 주인공은 꽃보다 돈을 좋아하는 여인인가보다.

연하우편을 받고 보니 그 꽃바구니 생각이 난다. 마음을 표현하기에 꽃이 모자라 돈을 꽂는 사람,한 해의 고마움을 전달하는 연하장에 그려진 돈, 이제 돈은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장미만 꽂혀진 바구니보다 돈이 함께한 꽃바구니가 받는 이에게 더 큰 기쁨을 전달했을지 모른다.  

돈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적당한 돈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품이니.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돈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지만 돈이 가져다 주는 행복과 함께 다른 가치에 대한 생각도 늘 하고 살기를. 스스로에게 하는 바램이다. 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하지만 꽃바구니나 연하장에서는 돈을 보고 싶지 않다. 아직까지는. 그 정도의 감성은 가지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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