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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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란 무엇인가?
유행어를 보면 그 시대가 보인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시대는 ‘소통’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다. 그에 따라 ‘통하였느냐?’라는
유행어도 생겼다. 각종 스마트폰에 태블릿PC 등의 유행을 선도하는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
불린다. 그렇기에 속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고, 원하는 정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왜 ‘통하였느냐?’를 물어보게 되었을까?
삶은 점점 빨라지고 편리해지는데 마음은 왜 불편해지는 것일까?
통한다는 것은 속도와 양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아들과 나는 아들이 14살 되던 해에 만나 가족이 되었다. 누구나 다 꺼려하는 그 나이의 만남이
나로서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를 키워본 친구들은 나보다 걱정이 더 태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솔직해 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좋은 엄마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음식도 잘해야 하고,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그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프고 어려운 문제야. 특히 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거든. 하지만 나는 너한테 좋은 친구는 되어줄 수 있어.”
“친구요? 좋은 친구가 뭔데요?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너의 고민을 같이 나누는 거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친구에요?”
“진심으로 들어주는 거지.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은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너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거야. 난 할머니한테도 좋은 며느리보다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들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하기야 같은 나이에 뛰어 놀 수 있는 아이들을
우리는 흔히 친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 말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철저하게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은 즐거웠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면, 14살이 되어 듣고, 질문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전에 지나와 버린 14살의 시야는 아들에 의해 재구성이 되었고, 현대에 맞게
재창조 되었다. 그 나이의 관심사, 그 아이가 보는 어른들 세상의 불합리,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고민들을
같이 듣고 이야기하고 나누었다. 때로는 나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바람에 난감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솔직하게 ‘그건 나도 모르는 문제야, 같이 고민해 보자’라고 이야기 했다. 피곤할 때도 있어
집중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한결같이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들은 나에게 유일하게
10대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타임머쉰 같은 존재다. 그 시간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미가 있었다.
아들은 운동을 좋아하고 그 중에 킥복싱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그 후 대화의
30%가 킥복싱에 관한 것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폭력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볼 때도
그런 장면이 나올 때는 눈을 가린다. 하지만 아들은 UFC경기를 즐겨본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경기 중에
하나였지만, 주말에 아들과 같이 보다 보니 ‘이것이 진정한 생(生) 스포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제 2의 해설위원이 되어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어 준다. 그래서 지금은 웬만한 선수들의 이름과
기술을 남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런 나의 노력 덕분인지 얼마 전에 아들한테 이런 이야기들 들었다.
“엄마한테는 무엇이든지 말하고 싶어져. 엄마는 재미없어 하는 부분도 잘 들어주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재주가 있어. 그래서 엄마 옆에 있으면 말하고 싶어져.”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나는 그렇게 대화를 할 때면 상대방이 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치열하게 살고 있는 조직 구성원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70대의 노인이 되기도 하고, 시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며느리가
되기도 하고, 혼자라는 것의 편안함과 자유로움, 외로움을 느끼는 노처녀가 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10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에커만이 괴테를 이야기 할 때 ‘그는 언제나 동일한 사람이면서 언제나 다른 사람이었다.’
라고 말하듯이 나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만나는 인물에 따라 다양한 인물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만의 소통법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 되는 것.
"아들은 나에게 유일하게 10대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타임머쉰 같은 존재다. 그 시간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미가 있었다."
“엄마한테는 무엇이든지 말하고 싶어져. 엄마는 재미없어 하는 부분도 잘 들어주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재주가 있어. 그래서 엄마 옆에 있으면 말하고 싶어져.”
아주 감동적인 장절입니다^^ 괴물이라 불리는 중딩 아들과 소통의 쾌거를 이루어 내셨으니, 님은 왕참치를 대박 낚으셨네요 ㅎㅎ
저도 이제 막 고딩 된 아들이 하나있는데 얘는 유럽축구 메니아 입니다. 이야기의 80%가 축구임다.
녀석과 친구된 비결은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메시와 호나우두의 경기를 보아주는 겁니다.
님의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결말의 문장으로 화룡점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