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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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사부의 유고집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사부가 타계하기 전까지 진행한 EBS FM 라디오 ‘고전읽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고전에 대한 그의 생각을 풍부하게 담고 있습니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사랑’입니다. 돌아보면 사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책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사부의 제안으로 동료 연구원들과 사랑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던 적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에서 사랑에 대한 사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사부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젊은 시인 지망생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쓴 편지를 모은 <젊은 시인에게 보는 편지>를 소개하며 사랑이야말로 창조적인 삶의 관건임을 강조합니다. 릴케가 말하는 사랑과 고독에 대해 사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릴케의 사랑의 핵심은 각자에게 끔찍하게 따라붙는 고독을 서로 인정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이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가도록 그 다름을 서로 보호해주어야 우리는 창조적일 수 있다.”
나는 이제껏 사랑은 서로를 물들이는 것이라고,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고유한 색깔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색깔을 피워내는 것임을 이제는 알 듯합니다. 또 ‘고독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릴케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여전히 함께 할수록 하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을 수 있음도 알 것 같습니다. 릴케가 카푸스에게 한 말에 나는 미소 짓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 세상에 모든 조심성 중에서 사랑에 조심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을 포기하는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랑이기도 합니다. 릴케의 삶의 원칙 중 하나는 “어려운 것을 향해야 한다”입니다. 그는 어려운 것을 좇는 것이 탁월함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왜냐하면 사랑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부도 사랑의 어려움과 힘듦을 피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폭발한다. 이 굉장한 사건이 나와 다른 사람을 섞어버리면서 나와 그 사람의 경계가 없어지고 그의 눈 속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나를 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경험이 우리를 영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자기의 모습에 접근해간다.” -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86p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시도했다는 의미니까. 원하는 것, 가슴의 언어를 좇다 보면 고통이 따를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삶이다.” -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91p
“달콤함과 씁쓸함,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뇌, 사랑에는 인간이 성숙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101p
사부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적십니다. 사랑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을수록 내가 사랑에 대해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릴케는 사랑은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제’이자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과제이며 궁극적인 시험이자 시련’이라고 하면서 “사랑을 배워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부도 “사랑은 자기를 다 내준다는 적극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훈련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많은 상처와 실패와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배양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 사물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법, 내게는 지금이 사랑을 배워야 할 적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본형, 박미옥, 정재엽 저,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생각정원,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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