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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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아직도 아이들을 다 데려오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취약점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중 특히 직업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은 제일 먼저 구출되면서 승객들을 버렸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자신의 직책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책임을 지기 보다는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익혀 왔기 때문이다. 총리가 사퇴한다고 한다. 이 것이 책임을 지는 것인가? 책임이란 아이들을 구해 내는 것이었지 않은가. 배가 침몰한다고 알려 지고 144분,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구조선이 도착한 후에도 1시간. 아이들에게 나오라고만 했었어도. 선장이 구출되면서 아직 배에 아이들이 많이 있다 – 라고만 했었어도. 애들이 제 발로 걸어 나오게만 했었더라도 많이 구했을 것이다. 조금 늦은 때라 하더라도 소위 수뇌부에서 처음부터 촉각을 세우고 어떻게든 구해 내려고 별 짓을 다했더라면
모두를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하는 것과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심지어 남을 위해 죽는 것조차도 실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직업 윤리를 제대로 지키는 것보다는! 직업 윤리는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직업 윤리에 자신이 없다.
나는 인턴 시절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채혈을 하러 늦게 갔는데 환자가 aspiration에 걸려 있었다. 그 환자를 CPR 하고 임종을 보고 돌아와 인턴 침대에 누웠다. 전후 관계를 끊임없이 돌리고 돌려보았다. 몇 분만 빨리 갔어도 살았을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그 환자는 내가 죽였다고 - 이 사건을 고백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연구원 입학 시험 당시 사부님께 글로 써서 말씀 드린 것이 처음이었고 그 후론 잊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과의 인턴을 돌면서 원래 약속한 일자보다 이틀 먼저 의국을 나왔다. 왜 그랬었나. 시간이 오래 지나 그저 잘못했다는 생각만이 남아 있는 지금, 겨우 변명 거리가 기억이 났지만 어쨌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설사 상황이 억울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약속한 책무를 다해내야 했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고 그 이틀은 내 평생 후회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직업 윤리를 잘 지키고 있는가?
아닌 것 같다. 정말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직업 윤리에 진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말 잘 되지 않는다. 의사라면 – 의사라면... 의사라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텐데. 나는 그냥 할 일만 겨우 겨우 하고 있다. 아마도 의사 사회에서 나는 루저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의 직업 윤리를 비판할 때면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가? 과거의 나는 잘했던가? 사람 목숨이 오고 갈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직업 윤리를 비난 받으면 어느 때보다 상처가 크다. 그 것은 나를 쓰레기로 만든다.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고 그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러면 자괴감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끔 만든다.
최근에 나도 직업 윤리를 비난 받은 적이 있다.
나로서는 특별할 것이 없는 주장을 하였고 평소 나를 좋지 않게 보던 선배 출신의 임원으로부터 공격을 심하게 받았다. 적절치 않은 비난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억울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주 오래 전의 과오라 할지라도 나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캐낸다. 사실 관계만 확인된다면 상대는 유리한 대로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먼저 잘못은 한 것은 나이고 이런 상황을 만든 내가 결국 모든 불행의 책임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의 이만한 인격으로 세상을 살기가 무서워졌다.
나는 그 정도로 깨끗한 사람은 못될 것 같다. 전범 14범도 대통령을 하는 사회라지만 의사로서 직업 윤리를 깨끗하게 지켜낸다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만이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고 가장 적이 없는 사람이 요직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직업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그 자리가 여러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자리라면, 해당 직업 윤리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그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직업 윤리라는 것이 정말 생각보다 너무나도 어렵단 말이다.
직업 윤리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안에서 설명된다. 우리 나라의 장인 정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특히 사람을 구하는 일은 인간성과 지도자의 인덕에 의존하는 바가 크지 이를 직업과 연관 짓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나라에 만연했던 귀천 의식과 계급의식이 자본주의에서는 돈의 유무로 직결되어 해석된 바도 컸다. 직업에 소명을 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철학의 역사를 떠나, 21세기 한국의 철학을 재정립할 시기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 – 이것은 새로운 의미의 직업 윤리이다. 내가 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일 지라도. 선장이, 선원이, 해경이, 잠수부가, 선생이, 학교가, 공무원이, 그리고 대통령이.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 이 것이 나비 효과가 되어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킨다.
나는 직업이 곧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존은 증명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는 매일 매일 행동을 통해 증명된다. 그리고 매일 발전한다. 나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발전은 수시로 일어난다. 아주 변할 수 없다 하더라도 발전할 수는 있다. 그래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직업 윤리는 힘들다. 이 전제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직업 윤리를 쉽게 생각하고 당연히 지켜져야 했던 것이며 자신은 잘 지켜왔는데 악덕한 누군가만 지키지 않아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왜 사람들이 직업 윤리에서 자부심을 느낄까? 그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사회적 책무로 가치를 이전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직업을 직업 자체로 존중하지 못한다면 직업 윤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물론 가치있는 일에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도록 사회적 인식도 성장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야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어렵더라도 발전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독한 글이군요. 쓰기 쉽지 않은...
사부님이 주셔서... 컴 바탕화면에 깔아 놓은 조언입니다. 날마다 바라보지만 잘 안되기도 하고... 한 때 선장이었던 제게 생각이 너무 많은 요즘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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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돕는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명심해야한다.
* 전문가는 쉬지않고 배워야 한다. 배움이 부족하면 결국 확실히 모르는 것으로 사람을 오도하게되니 시시한 선동가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게으르지 마라. 배움에 배고파야한다.
* 모든 전문가는 Code of Ethics 가 있다. 전문가의 윤리규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전문성이 있어도 직업관과 가치관이 흐리면 또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늘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이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신뢰란 다른 사람이 줄 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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