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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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0■
라면을 먹다 울었네
늦은 저녁 라면을 먹다 울었다. 사나이 울리는 라면이었음에도 나는 울었다. 아니, 사나이 울리는 라면이었으니 내가 운 것이 당연한가. 뜨거운 라면 국물이 급하게 식도를 넘어간 듯 불타는 속 안의 울음으로 울었다. 나풀나풀 하얀 옷에 뻘겋게 덕지덕지 날아가 붙은 라면 국물 때문에 울었다. 라면을 다 먹기도 전에 매운 라면 국물을 희석시키는 것 마냥 눈물을 떨어뜨렸으나 본능은 라면국물을 사수하고자 그릇을 멀찌감치 두어 나를 배반했다. 때마침 천둥까지 우르르 쾅, 쾅, 쾅 폭죽마냥 터져 주시고 비는 이미 최고의 굵은 면발로 변한지 오래이니, 이런 코미디를 연출하는 날의 음향효과로 얼마나 탁월한가.
생각해보면 울 이유들은 많다. 또 생각해보면, 이유없이 눈물나는 날도 많다. 오늘도 어느 모서리에 박고 어느 문짝에 끼었는지 여기저기 생채기를 만들어 잠깐 솟구친 피를 보면서 어린애마냥 눈물 흘리고픈 마음이 들었다.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가. 아이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청춘을 돌려다오를 외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청춘을 맞닥뜨렸을 때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에 젖어 한껏 눈물이 남직도 하니까.
사랑, 그것이 이십대의 전유물인 것인 양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 청춘과 열정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체 유명한 ‘불혹’이란 수식어가 그 나이의 사랑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했었다. 역시나 사회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의 주인공들 나이 또한 사십대 이상이었기에, 그들이 외치는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다.
“사랑이란 날카로운 손톱으로 붙들어야 되는 것이온대 젊으셨을 시절에는 그러한 정열을 갖지 않으셨으면서 어찌하여 노경에 드신 지금에야 사랑에 빠지시옵니까? 마치 기적이 일어난 듯 신에게는 이상하다기보다도 기괴하지 짝이 없는 일인가 하옵니다.”
늙은 샤를르 왕에게 간언하는 백작마냥, 젊은 시절에야 날카로운 손톱으로 붙들다 생채기가 나는 건 수긍하면서 나이 들어서의 사랑에 대해 무슨 ‘그 나이에’를 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때의 사랑은 새로 시작된 사랑이 아니라 이미 청춘에서부터 함께 한 이와 있을 테니, 열정을 좀 많이 빼고 생각했더랬다.
그랬었다. 그랬었는데, 데카메론이 사랑 이야기인가. 어디에서도 사랑을 읽지 못하는 나, 사랑이란 글자를 지우고 에로틱과 욕망을 새기며 읽는다. 책을 덮을 때까지 지배하던 에로틱에 대고 튀어나오는 말들.
‘너 정말 에로티시즘이냐. 이 정도를 가지고 어디 가서 에로티시즘이라 말하지 마라.’
에로틱 데카메론도 한마디 한다. ‘금서, 14세기, 그 시대를 좀 보라고.’
‘성경도 마찬가지야. 이보다 더해.’
아, 이제 정말 청춘을 지나왔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고 그 반복된 지남을 무수히 겪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구나. 부끄러움과 놀라움으로 얼굴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읽었을 책들을 이제는 무덤덤하게 넘기게 되었구나. 적절한 표현은 아니더라도 익숙한 표현으로 순수의 시대를 넘어 금기를 모르는 나이가 되었구나.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비슷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이미 읽었기에 충격완화가 되었다고 애써 위로해 본다. 그러나, 어찌 해도 에로티시즘에 익숙해진 나의 눈과 마음과 정신에 서글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나간 시절과 그 시절의 내가 멀리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나,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양말을 걸고 소망하던 내가 산타클로스는 상술이라며 쌍심지 키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그 간극이 참 멀고도 아득하다.
이제는 내가 사랑보다 욕망이 먼저 뛰어나가는 나이가 되었는가. ‘욕망’이란 단어에 조금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고 있는 나는 여전히 남아 있어 욕망에 금기를 씌운다. 그러나, 금기가 가져오는 집착과 광기 또한 알고 있으니……. 욕망이 결여라고 라캉은 말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말했다. 타자의 욕망이 내 것인 듯, 데카메론 속 여인들의 욕망으로 이 저녁 라면을 먹는다면, 라면 국물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장 어울리는 말을 찾아야 할 테다. 바로 이와 같은 말.
“라면 먹고 갈래요?”
봄날은 이미 지나갔고 절정의 여름날, 태풍이 오는 시점. 삶이란 너덜대도록 싸워대야 하는 꼬라지이고, 지난 감정과 작별해야 하는 나는 아직 남은 라면을 먹을 것이다. 내 눈두덩이처럼 팅팅 불어터진 라면.
오래전 자취방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다가 슬픈노래라고 나와서 들어보니 정말 슬프더군요. 작사가는 대체 왜 제목을 '라면'이라고 붙였을까 생각했지요. 나중엔 혼자 라면먹는게 어떤 건지 이미 알아버려서 그 '라면'이라는 노래제목에 수긍이 갔습니다.
그 노래는 이 노래입니다.
http://youtu.be/zuGixXsPTFE
제가 본 드라마에서는 남자가 늦깨까지 저녁을 먹지 못해서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였어요. 라면을 먹으려는데 별거중인 아내가 전화를 했어요. 집에 일이 생겼다구요. 그래서 나가서 일을 봤지요. 그 일이란 게 처가의 식구들에게 실컷 욕을 먹고... 하여간 별거중인 집에 밤이 늦어서 돌아와요.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남자의 식탁엔 아까 먹으려던 라면이 있는데, 젓가락질을 하니 다 불어서 먹지도 못해요. 결국 남자는 라면을 버려요. 남자는 울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게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혼자 라면을 먹는 남자, 라면 조차 먹을 수 없었던 남자를 봤습니다.
노래 제목은 '암연'인데요. 얼마나 외로웠던지 혼자서 라면먹는 것 때문에 '암연'이 '라면'으로 들리더라구요. 그런데 한술 더해서 제가 이 노래를 잘 알았었더라구요. 남동생이 컴퓨터에 다운받아 둬서 몇달간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제목을 까먹고 라면이라고 알아들어버렸어요.
진짜 슬픈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사랑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것. 그래서 라면은 밥이 아니라서 배가 고프지만, ..... 라면은 먹어도 배가 고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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