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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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남들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었다. 사랑을 받고 싶기에 남들의 시선에 민감하기도 했고, 여성스럽고 우아한 어머니를 보며 나도 그렇게 되고자 했다. 물론 나의 본성은 타고난 개그맨인 아버지에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더욱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 동창들과 함께 가족 동반 야유회를 갔을 때 모두가 막춤을 추며 흥겨워했다. 특히 내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무대로 나와 누가누가 망가지나를 자랑하듯 온 몸을 열정적으로 불태우며 춤을 췄다. 그러나 나는 망가지는 모습이 두려워 몸을 최대한 덜 움직이고 수줍은 척을 했었다. 모두가 박수로 응원해주었지만 나는 끝까지 그 자리를 즐기지 못했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무언가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집에 놀아와 남몰래 이렇게 춤을 출걸. 저렇게 춰볼걸..하면서 마음속으로 백만번 그 장면을 리플레이 했었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홍대 클럽을 갔을 때에도 나는 마음에 끌리는 대로 즐겁게 춤을 추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며 이쁘게 추려고 노력했었다. 잘 추지 못하기에 그저 남들이 추는 모양새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 편이 춤을 추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안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노래에 몸을 맡기고 나의 모든 것을 분출하지 못해서인지, 다들 신나게 놀러 간다는 클럽이 내게는 지금도 시끄럽고 사람이 많으며 오래있기엔 피곤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스페인 여행 사전 모임 시 갔던 콘서트 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춤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 문화에 평소 관심이 많던 나였지만, 콘서트를 보면서 컨디션 난조 때문인지 왠지 눈꺼풀이 무거워졌었다. 그러나 콘서트의 마지막 무대가 되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라틴 댄서들이 나와 몸이 절로 들썩이게 해주었다. 특히 ‘Volare’라는 음악에 맞추어 오버스러운 손동작과 조금은 느끼해 보이는 표정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댄서들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게 느껴졌다. 가끔 라틴댄스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신이 난 적은 처음이었다. 유독 피곤해하는 남편 때문에 집으로 바삐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나는 차 안에서 계속 댄서들이 맞춰 춤을 추던 노래를 들으며 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집에 도착하자 마자 라틴 댄서를 따라 한다며 노래를 틀어놓고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에어로빅 선수를 따라하기도 하고 발레리나를 따라하기도 하고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막춤을 추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었다. 신이 난 감정을 이대로 넘어가기엔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곁에서 쓰러져 있던 남편도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대폭소를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 재미있어 보였는지 나의 막춤 무도회에 동참했다. 평소 나보다 100배는 얌전한 남편이 그 날은 왠일 이었는지 모른다. 베란다 창문을 거울 삼아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마구 망가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박장대소 했다. 웃고 또 웃었다.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고 소파 위에서 어린이가 된 듯이 팡팡 뛰기도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연구원을 시작하며 나는 내가 참으로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이로구나..를 느끼고 있다. 이전의 나는 '자유'가 나와는 매우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의 나는 내가 원하는 자유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자유로워 지기 위해, 좀 더 날 것의 나를 만나기 위해 나를 더 관찰하고 또 더욱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마 얼마 전 늦은 밤 나만의 무도회를 열었던 것도 그런 마음의 발로였던 것도 같다. 아직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곤 하며 때로는 어떤 것이 본마음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욕망에 귀 기울이다보면, 그리고 그 욕망대로 행동하다보면 나는 나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목말라하는 해답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소비자의 욕망을 읽기에 앞서, 나는 나의 욕망을 먼저 읽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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