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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째 남편의 생일
2014.10.20
10기 찰나 연구원
이 지구상에서 오로지 한 번 살게 되어 있다. 그 삶은 당신의 것이며 이렇게 살지
저렇게 살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부모나 친구 등은 사랑으로 충고하지만
결국은 당신이 결정을 내린다. 바로 당신이.
- 리처드 볼스, 『파라슈트』 中 -
남편과 결혼을 하여 지낸지도 어느덧 16년. 남편의 생일을 함께 한지도 19년이 되었다.
간만에 시아버지, 친정 부모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아이들이 아빠의 생일 축가를 불러주고, 나이만큼이나 풍성하게 꽂힌 생일 케이크 초를 힘껏 불어 껐다.
돌이켜 보면, 결혼 하여 둘만 살다 첫째 아이가 생기고, 연년생으로 둘째아이가 생겼다. 마치 우리 부부가 한 살 차이로 연년생이듯 아이들도 연년생으로 태어나면서 남편의 역할에서 아빠의 역할이 많아졌다. 나 또한 아내에서 엄마의 역할이 커지면서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이었다.
첫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아이를 낳고 나서 당연히(?) 출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출산 예정일 전날까지도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아이를 누가 봐줄지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무작정 시댁 근처로 이사를 갔다. 시부모님이 봐주셨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갔지만 그건 우리만의 생각이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 조리원에 있는 동안 시부모님은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시다가 간만에 본 손자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던지 시어머니는 마침내 아이를 봐주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산후 조리원을 나와서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더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자신이 없다고 못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나마 시어머니가 봐주신다고 하셔셔 믿고 맡기고 출근할 수 있겠다고 했는데, 아이를 남한테 맡길 생각을 하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2001년도 만해도 너무나 열악한 육아 시설에 아이를 낳으면 여자들이 왜 회사를 그만두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가 남편과 얘기를 했다. 남편의 대답은 오히려 심플 했다. “네가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이 좋으면 그렇게 해. 나는 여자들이 아이 낳고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네가 잘 생각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라고 얘기를 하였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남편이 선택을 하면 그 선택에 따르려고 했는데 결국엔 선택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며칠을 더 고민을 했다. 집에 있는 동안 나를 관찰해보니, 산후 우울증과 느리게 변화하는 일상과 아이의 계속되는 울음소리로 인해서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이대로 집에 더 있다가는 아이나 나에게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출근을 결정했다. 그래서 그 당시 최대 정보지인 ‘벼룩시장’에서 사람을 알아보고, 남편은 시부모님 설득 작업을 하였다. 출산 휴가가 끝나기 1~2주 전이 돼서야 시어머님이 다시 아이를 봐주시는 것으로 해서 그 때부터 워킹맘의 삶이 시작되었다.
워킹맘으로서 올해로 14년차.
아이가 둘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아빠로서의 역할은 어느 덧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다 하고 계셨다. 우는 아이를 남편이 달래보지만 좀처럼 아이들의 울음은 멈추지 않아서 이내 포기하고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을 청하는 남편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다. 아이들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아빠는 기분 좋을 때만 아빠였다. 아이들이 조금씩 말을 하고, 초등학교 가서부터는 아빠와의 대화 시간이 많아졌다. 본격적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대화를 많이 하게 된 것은 10년 만에 시댁과의 분가이후에 아빠의 빈자리를 발견하게 된 후였다. 아들들이다 보니 점점 더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일부러라도 더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들들이 커가면서 아들들을 더 속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큰 아들에게 변성기가 찾아오고 키가 엄마의 키를 넘어서면서 이제는 내가 옆에서 챙기기보다는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해나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들에 대한 집착이 많았지만 이제는 서서히 내려놓는 연습도 해야겠다.
워킹맘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일까?
남편은 나 보다 나를 더 믿고 지지해주었다. 내가 힘들고 지쳐서 포기해야겠다고 할 때 마지막까지 응원을 해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내가 되기나 하겠어 하면 “너는 된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의 가능성에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를 둘 낳고 나서 힘들어서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남편은 나에게 위로를 해주었고, 아이들한테 더 신경써주면서 응원을 해주었다. 기술사 시험을 준비할 때도 남편이 해보라고 얘기해주었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주말이나 연휴를 공부로 희생해야하는데도 괜찮다고 했다. 처음 시험 봐서 떨어지고, 둘째 낳고 다시 준비를 하려고 했을 때도 해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남편이 그렇게 믿고 응원을 해주니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부모님과의 갈등도 중간에서 잘 해결해주었다. 물론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들어주는 것이 다 여서 그것이 불만일 때도 있었지만 시부모님한테도 들은 이야기도 침묵으로 일관했기에 나에게 전달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때로는 무심해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속 깊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생긴 문제점도 얘기를 하다보면 내가 보지 못하거나 고려하지 못한 남자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얘기해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면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하면서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를 한다. 반대로 남편은 회사에서 여사원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내가 조언을 해준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남자와 여자의 다른 시선과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워킹맘에게 남편은 힘들 때는 위로 해주고,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버팀목의 역할도 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같이 협의해 볼 수 있는 멘토 역할도 하면서, 같이 여행을 가는 동반자 역할도 해준다. 물론 아이의 일에 관해서는 서로 협의해서 부모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서로 노력한다. 물론 늘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남편은 진정한 동반자이고, 그러한 관계가 돼야지만 워킹맘들이 더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나보다 나를 더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마음 든든하고 행복한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19번째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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