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 조회 수 5348
- 댓글 수 1
- 추천 수 0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한 단상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힘센 나라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대한민국.
- 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느 날 -
책 속에 설명된 인간발달과정에 따라 내가 성장하고 사고하여 왔구나를 깨달은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self-serving bias)’에 대한 개념에서였다. 스위스 심리학자 피아제(J. Piaget)가 명명한 이 개념은 유아기의 대표적인 사고방식이다. 유아는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놓고 사고한다. 아이들의 이러한 인지적 사고는 쉽게 볼 수 있으며 또래의 잦은 다툼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반복된 학습을 통해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의해 ‘타인’에 대해 인지한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까지를 이해하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더 높은 강도의 훈육과 더 많은 관계맺음이 필요하다.
그러기 전까지 아이들은 자기중심적 사고의 정점을 달린다. 피아제는 5세 미만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이 개념을 확장한다. 아이들에게 여러 ‘산’의 모형을 보여주고 보이는 모형을 선택하게 한다. 다시 자리를 바꾸게 해서 산의 모형을 선택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맞은편에 앉은 아이가 보는 산의 모형을 선택하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보는’ 산의 모형을 선택한다. 맞은편의 아이도 자신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볼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배가 고프면 다른 아이도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기쁘면 다른 이도 기쁠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사회 속 동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내야 할 부모들, 교사,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지적받고 수정된다.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인의 입장에 선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발달의 과정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아이들의 ‘인지적 사고’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수정해 주고 자리를 잡게 하느냐일 것이다. 태어나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여기는 오리의 각인처럼 인지에 관한 특정한 각인은 길고 깊게 박혀 인간발달의 과정 내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피아제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유아기의 사고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성인이라고 ‘자기중심적 사고’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한 오류를 수정받아 왔지만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성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남발하고 있다. 이런 이들이 아이들에게 전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수정은 믿을 수 있을까,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끔 한다. 어쨌든 누구에게나 ‘자기중심적 사고’의 경향이 가득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불어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기를 사회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성장하는 동안 나 역시도 무수히 많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해왔다. 그 일련의 에피소드가 기억나지 않음이 아쉽다. 남다른 유아기를 보냈을 리 없는데 많은 이들이 경험한 비슷한 ‘수정’된 그 어떤 꼬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가지, 자연스런 발달과정의 나로 사고했음을 인식하게 된 그 생각하나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첫줄에 쓴 것과 같이 대한민국이 크고 힘센 나라라는 생각말이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고 학교도 입학하기 전의 어린, 나는 어디서부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왜?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났으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중요한’ ‘큰’ ‘강한’ ‘아름다운’ 나라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나라 중에 내가 이 땅에 태어났을 것이다. 비록 분단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 내가 태어난 나라이니까. 또한 오히려 오묘한 의미가 담긴 듯 그래서 더 특별한 나라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것이 문제가 될 리 있었을까. 이 나라가 어떤 상황이든 ‘내가’ 문제를 해결하면 되니까. 마냥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발을 동동 구르던 어린, 나였다.
세월이 흘렀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났으니까’는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 나라는 ‘중요한’ ‘큰’ ‘강한’ ‘아름다운’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구본에 그려진 수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고 땅덩어리는 좁았고 힘도 미약했다. 내가 태어났기에 달라야 했던 나라는 유아기의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이 소멸되어 가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젠 ‘객관’적으로 인식하며 ‘주관’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 안타까움의 근원은 유아기적 사고의 이면에 대한민국의 칭송에 대한 ‘강박’적인 분위기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유아로서 살아가던 1980년대,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삐라를 주우러 다니던 그 시절에도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국가’라는 이름의 강박. ‘국가를 위한‘ 국민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강박. 이 모든 인지적 사고를 공고화하는 강박. 그 모든 클리셰. 그것이 지금 카멜레온의 클리셰를 더욱 확산하고 있는 것 아닐까.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532 | 2월 오프수업 후기 [4] | 녕이~ | 2015.02.17 | 1910 |
4531 | 여는 글_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8] | 앨리스 | 2015.02.17 | 2062 |
4530 | 2월 오프수업 후기 [10] | 왕참치 | 2015.02.17 | 1993 |
4529 | 변화, 행복의 맥거핀 [2] | 에움길~ | 2015.02.17 | 2012 |
4528 |
자전거여행의황홀_출간기획안_구달칼럼#46 ![]()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2.16 | 2074 |
4527 | 2월오프수업후기_구달칼럼#45 [12]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2.16 | 1894 |
4526 | #43 천 지 인 工 | 희동이 | 2015.02.15 | 1911 |
4525 | 작은 관심 | 어니언 | 2015.02.09 | 1892 |
4524 | 전략적 경쟁이 필요해 | 녕이~ | 2015.02.09 | 2003 |
4523 | 클리셰, 무엇을 말하는가 | 에움길~ | 2015.02.09 | 2053 |
4522 | #42 엔지니어 - ing [2] | 희동이 | 2015.02.09 | 1858 |
4521 | 알고 보니 '새엄마' | 왕참치 | 2015.02.09 | 1959 |
4520 | 발리에서 피로사회를 반성함 [2] | 종종 | 2015.02.09 | 2336 |
4519 | 가족은 책이 고프다 [1] | 앨리스 | 2015.02.09 | 1929 |
4518 | 워킹맘과 컨셉_찰나칼럼#42 [2] | 찰나 | 2015.02.09 | 1965 |
4517 | #42 오늘_정수일 [1] | 정수일 | 2015.02.08 | 2002 |
4516 |
상상여행_구달칼럼#44 ![]() | 구름에달가듯이 | 2015.02.08 | 2330 |
4515 | 3-40.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 콩두 | 2015.02.07 | 2778 |
4514 | 경쟁에 대한 생각 [4] | 녕이~ | 2015.02.02 | 2305 |
» |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한 단상 [1] | 에움길~ | 2015.02.02 | 53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