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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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조금씩 길어지고 차츰 땅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낮이면 여우숲 비포장 길의 흙을 뒤덮었던 빙판과 눈이 속절없이 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온전히 흙의 맨바닥으로 드러날 날이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지바른 자리에 사는 생강나무에는 이미 두어 송이 꽃이 터졌고 ‘바다’가 낳은 여섯 마리 새끼 강아지들도 어미를 따라 나서는 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세 졌습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드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따금 돌풍이 켜켜이 쌓여 있던 낙엽을 기둥으로 세웠다가 흩어놓기도 하고, 높이 날던 매가 바람에 밀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저것은 우주가 빚어내는 이 시절의 리듬! 長短의 길이로 나타나는 태양의 리듬에 발맞추고 있는 모든 생명과 물질들의 춤사위임을 나는 압니다. 길어지는 해가 땅의 온도를 바꾸고 땅의 온도가 물을 움직이고 바람을 일으키고 꽃을 터지게 하는 중입니다. 눈과 얼음의 형상으로 갇혀있던 물이 다시 액체와 기체의 형상으로 그 氣를 터트리고, 차가움과 따뜻함이 뒤섞이며 바람의 氣를 발하는 중입니다. 이른 때에 피어나려는 기질을 가진 생강나무 꽃눈 역시 제 엔트로피를 높여 꽃으로 터져 나오는 중입니다. 머지않아 더 많은 생명과 물질들이 朝夕으로 저 우주가 빚어내는 약동의 리듬 위에 제 춤사위를 보탤 것입니다. 큰 흐름상 수렴했던 음의 기운이 양의 기운으로 점점 더 확산해 나갈 것입니다.
큰 리듬은 하늘의 시간이 이끌고 개별 생명체와 물질들은 그 위에서 제 기질과 기운, 그리고 관계와 접속한 우연 같은 필연의 그물 위에서 제 춤사위를 펼쳐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리듬 위에서 펼쳐가는 삶!’,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요 지혜로운 삶임을 알아채고 온 심신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나이가 코앞에 이르렀다는 孔子의 선언이 이제 내게도 사뭇 준엄하게 느껴지는데, 나의 어리석음은 벗기고 벗겨도 도무지 벗겨질 전망이 안보여 애석합니다.
냉이 한 포기 꽃 피우는 것도 땅이 빚는 리듬 위에서의 삶이고, 오리나무나 개암나무 조만간 꽃가루 터트려 날리는 것도 바람이 일으키는 리듬과 마주하여 펼쳐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정작 내 삶은 자꾸 무뎌져만 가는 게 아닐까 염려하게 됩니다. 莊子 선생은 이럴 때 저 리듬을 귀로 들으면 안 되고, 마음으로 듣는 게 낫다고 했고, 마음으로 듣느니 氣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감각적인 소리를 듣거나 마음을 통한 지각을 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齋戒(재계)’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내달리는 坐馳(좌치)’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람 거세게 부는 봄 입구에서 펼쳐지는 숲 생명과 물질들의 리듬을 보면서 나 역시 리듬 위에서 펼쳐가는 그 자연스러운 삶을 꿈꾸어 봅니다. 그리하여 리듬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齋戒(재계)를 그리워합니다. 매순간 坐馳(좌치) 아닌 坐忘(좌망)이 깃든 삶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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