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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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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0일 22시 53분 등록
1592년 1월 5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에 정식으로 병력 동원령을 내렸다. 동원된 병력의 규모는 총 28만 6,000명에 이르렀다. 도요토미는 이를 제1군에서 제16군까지 편성했다. 그는 13만 7,200명에 달하는 제1군에서 제7군을 우선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제8군의 의 1만 명은 쓰시마에, 제9군 1만 1,500명은 쓰시마와 나고야 사이에 있는 이키시마에 대기하다가 뒤이어 상륙하도록 하였다. 제10군에서 제16군까지의 12만 7,300명은 나고야에서 대기하는 예비 병력이었다. 조선 침공에 동원된 총병력은 28만 명이 넘었고 그중에서 15만 명 정도가 직접 조선으로 쳐들어갈 병력이었다. 이것은 일본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병력 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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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침공 일본군>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만 8,700명

제2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政) 2만 2,800명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만 1,000명

제4군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1만 4,000명

제5군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2만 5,000명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 1만 5,700명

제7군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 3만 명

제8군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 1만 명

제9군 하시바 히데카쓰(羽柴秀勝) 1만 1,500명

전체 총 15만 8,7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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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이순신의 두 얼굴, 김태훈 지음, 창해, 2004년, 40page


4월 13일, 준비를 끝낸 일본은 준비를 안 한 조선을 침공했다. 선봉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의 제1군 1만 8,700여 명이었다. 그들은 4월 13일 부산에 상륙했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첫 전투가 벌어진 것은 부산성이었다. 부산성에는 첨절도사 정발(鄭撥)이 급히 소집한 1,000여 명의 조선군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 대군이 성을 포위하고 빗발치듯이 조총을 발사하자 조선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신무기를 처음으로 접한 조선군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부산성 전투에서 정발은 결사적으로 항전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정발은 조총에 최후를 맞이했고 전투가 시작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부산성은 적의 손에 떨어졌다. 뒤늦게 일본군의 침공 사실을 안 조정에서 ‘정발이 적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할 정도로 부산성은 어이없게 무너졌다.

일본군의 두 번째 표적은 동래성이었다. 일본군은 동래성 전투가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부산성은 기습을 당했기 때문에 쉽게 함락시킬 수 있었지만, 동래성의 조선군들은 이제 일본군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방어하는 쪽이 유리한 공성전(攻城戰)이었다. 동래성의 남문 밖에 도착한 일본군은 “싸우겠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다오(戰則戰矣 不戰則假道)”라는 팻말을 세우고 항복을 유도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싸우다 죽긴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는 글을 목패에 써서 부하들에게 남문 밖으로 던지라고 지시했다. 그것은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분명한 의지였다. 우리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동래부사 송상현은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목숨 바쳐 싸웠다. 그러나 동래성 역시 반나절도 채 버티지 못했다. 일본군은 동래성에서만 3천여 명의 목을 베고 5백여 명을 포로는 잡았다. 완승이었다.

부산성과 동래성은 작은 성이 아니다. 조선의 여러 성들 중에서 비교적 큰 성에 속한다. 그럼에도 두 성 모두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동래성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오던 지원군은 입성도 하지 못한 채 말머리를 돌려야 했다. 흔히 일본군의 선봉대 16만 명이 한 번에 몰려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부산에 상륙한 최초 선봉군은 고니시가 이끄는 1만 8,700명이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2만 2,800명은 4월 20일이 되어서야 부산에 상륙했다. 나머지 병력은 고니시와 가토군이 타고 온 수송선단이 되돌아가서 4월 말에서 5월말에 걸쳐 실어온 것이다. 때문에 부산성과 동래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단 며칠만이라도 버텼다면, 그리하여 일본군이 북진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없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정발과 송상현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그러나 하루의 결사적인 노력이 장기간의 준비를 이길 수는 없다. 하루도 버티지 못한 부산성과 동래성의 전투는 조선의 조정과 군대가 전쟁 준비를 얼마나 안이하게 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IP *.120.9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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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이
2005.07.08 19:26:10 *.229.121.147
반가왔던 책 [이순신의 두 얼굴] 이네요. 준비없는 전쟁이라는 변화속에서 유기적인 안목으로 조선수군과 지역백성을 이끌었던 장군의 충실한 하루가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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