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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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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1일 11시 44분 등록
열 다섯째 날

드디어 넉다운이다. 아침 예배 소리에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기가 싫었다. 마냥 짜증만 일었다. 어제부터 현기증이 일었는데, 아침엔 만사가 다 귀찮았다. 열시반 포도밥도 걸렀다. 사모님이 닫힌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으신다. 괜찮냐신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정말 기분이 말이 아닌데, 기운이 없다고만 했다. 계속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정말로 아파왔다. 배도 쿡 쑤셔대고, 수술한 왼무릎도 시큰했다. 허리도 뻣뻣하고, 오금도 잘 펴지질 않는다. 기분이 별로라 꾀병을 부린 탓일까. 오늘, 낼이 고비라는 사모님 말씀에 그랬으면 하고 안심한다. 아이들 시끌한 소리도, 동기 할머니의 꽥꽥 소리도 못 견디게 화가 났다. 내 심정을 아는지, 효진씨와 할머니는 읍내 장엘 나가고 조용한 한 나절을 보냈다. 다소 진정이 됐다. 이 못된 심보도 좀 나아질 수 있으려나 하나님께 기도 좀 해봐야겠다.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연신 보내는 내 위장이 불쌍하다가도 아직도 덕지덕지 울룩불룩한 삼겹살을 보면 연민도 싹 가신다. 하루 만에 2키로가 빠지다니 놀랍다가도 비정상이니 낼 이면 다시 빽할거란 생각에 기쁘지도 않다. 대체 매사가 다 이리도 부정적이더란 말이냐. 나란 사람은 끈기도 성실도 긍정도 거리가 먼 사람이던가. 행복감에 기쁘던 날이 언제이던가 싶게 금새 힘들고 짜증난다 투덜대고 있다. 조울증인가? 정신과에선 별 이상 없다 하니 그러면 조울감이 센 성격장애 유형의 인간인가? 남들은 그런대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털어버리는 것을 나는 보태고 싸안아 어깨에 짊어지는 유형의 인간이던가? 남친에게 전화해 나 좀 데려가라고 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목소리 듣자고 전화해도 울컥 울음이 나올까 참았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아니어도 할 수 없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꼼짝 않고 이 지리산 구석에서 제 2의 도약을 해야 한다. 아니면 현실에서도 도루묵이 될 것이다. 아~ 사업계획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2, 편지들, 앞으로 1년간의 정리 등 해야 할 숙제들이 많기만 한데, 벌써 넉다운이면 안 된다. 도약의 땔감으로 쓰기에 아직도 삼겹살이 넘쳐난다. 낼은 냇가에 가서 빨래로 신경질을 다스려야겠다. 대방망이로 실컷 두들기면 신이 나기도 한다. 푸지게 두드려야지 나를.

엊그제 빌린 <쇼펜하우어 슬기로운 삶을 위하여>는 쇼펜하우어의 생애와 그의 책들에서 직접 발췌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때론 너무 어렵다가도 웃음이 난다. 지식의 유희 같은 말장난 같다가도 어느새 진지하게 곱씹을 명언들도 있다. ‘악의 세계’편에서는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한다. 엄청난 독설이다.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투덜댔을 쇼펜하우어의 독설과 뾰로통한 얼굴이 그려진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그의 철학은 인정을 받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덕분에 한결 여유로워진 쇼펜하우어는 아침을 먹다 그렇게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세기의 일이 어쩜 이리 다정히 다가오는지 새삼 놀랍다. 간간히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동화처럼 읽으며 그것도 지루해지면 이외수의 <날다 타조> 한 편을 읽고 감동을 곱씹는다. 이런 독서 행태로 내 주위에는 책들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다. 주위산만, 집중력 결핍, 급한 성질머리, 불친절 등이 요즘 내가 관찰한 나다. 이럴 수가……. 2007-10-24 10: 2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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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1.07 08:07:44 *.128.229.81
이 날 일기에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으니 외로운 날이었나 보다. 글도 혼자 있으니 쓸쓸해 보이는구나. 지나간 날이지만 그냥 지나간 것 만은 아닌 것이 지난 날이다. 이 일기에 열흘이나 지난 다음에 댓글을 다니 지금은 대략 겹살이 빠져 비키니를 입어도 될 것 같은데 어떠한가 ? 갈수록 '똥일' 은 잘 돼 하루에 2 키로씩 빠지기도 한다니 금새 갈비가 되겠구나.

종종 높이 달린 감껍질이 투명해지면, 그 때 그 홍시가 툭하고 입속으로 떨어지면 좋겠다고 느낄 때면, 중태리를 거쳐 덕산까지 걸어 나오너라. 덕산 우체국 옆에 목욕탕이 하나 있는데, 대원사 계곡물을 끌여들여 데운 물이라 색이 푸르다. 가 봐라. 하얀 비키니 사서 입고 들어가 봐라 . 옷 보관함에 자물쇠가 없으니 귀중품은 가지고 가지 마라. 하긴 자물쇠가 없으니 도둑도 없을 것이고 가져갈 것도 없겠구나.

남자친구에겐 뻑하면 전화만하지 말고, 편지도 몇장 보내 줘라. 전화는 자취가 없고 편지는 간혹 훗날 여기저기를 떠돌다 책갈피 속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러더구나. 그러면 지난 그 날이 잊고 있었다고 여겼는데 마술처럼 피어 오르더구나.

육신을 가진 어떤 날의 경험이 우연히 내면의 너와 공명하게 될때, 그 순간이 황홀하지 않더냐 ? 안과 밖이 만나고 통해 '그것이 바로 나'였구나 느끼게 된다. 이승은 육체의 맛이다. 육체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구나 . 그러니 몸을 다스린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잘 다스려 기쁜 마음으로 복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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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a
2007.11.08 11:45:52 *.152.178.119
yes, 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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