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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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익숙한 캐릭터인 ‘스누피’를 창조한 만화가인가 보다. 찰스 슐츠, 2000년에 작고. 그가 어떤 종류의 만화를 더 그렸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서 소개된 만화는 전부 ‘작가가 창작하는 고통’에 대한 만화들이다. 어떻게 그는 4칸 혹은 길어야 8칸짜리 만화에 그처럼 심오한 주제를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게다가 어떻게 그런 재미없는 주제로 독자들을 엄청 웃길 수 있어서, 수영장 테니스장 야구장 하키장까지 딸린 저택에서 살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나만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평생
“슐츠씨,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라는 질문에 시달렸다니 말이다.
어제그제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소리 내어 웃었다. 덕분에 기분이 다 좋아졌다. 이 또한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이 그의 만화가 주는 효능에 대해 연구했다니 말이다. 한 사람의 재능과 시대가 맞아떨어져 커다란 성공을 이룬 데에는 당사자의 철저한 자기인식이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자신을 실패한 작가나 화가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니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만화가였어요. 그래서 지금 행복합니다. 만화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옵니다. 그러자면 어지간히 똑똑해야 합니다. 진짜 똑똑하다면 다른 일을 할 테니까요. 그림도 어지간히 그려야지, 진짜 그림을 잘 그린다면 화가가 되겠죠. 진짜 글을 잘 쓴다면 책을 펴낼 테니까 어지간히 글을 잘 쓸 필요가 있는 거죠. 저는 어지간한 사람이라서 만화가 딱 어울립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의 작업을 사랑했으므로 그는 50여 년간 수 천 편의 만화를 그렸고 크게 성공했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 사업의 수익은 연 수 백억에 달했고, ‘진짜’ 작가들이 그의 작품세계에 열광했다. 이 책은 그의 분신인 ‘스누피’에게 바치는 작가들의 헌사이다.
33명의 작가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스누피 만화와 연결하여 자신의 집필노하우를 밝힌다. 쉽고 간결하고 포복절도할 만화로 시작하는데다, 작가들의 글도 아주 짧고 쉽고 유용하다. 재미있는 것은 찰스 슐츠의 아들인 몬티 슐츠의 글만 딱딱하고 어렵다는 것. 시드니 셀던과 잭 캔필드가 포함된 다른 작가들은 모두 수많은 책을 쓴 쟁쟁한 작가들인데, 몬티 슐츠만 딱 소설 한 편을 썼다.
그들의 노하우는 조금씩은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몇 번이고 다시 들어도 역시 좋은 것들이다. 맞아! 역시 그거야! 라고나 할까.
모든 글쓰기는 독학이다
모든 사실은 당신이 사랑해야만 진실이 된다
자서전은 하나뿐인 인간을 담아내는 일
경험을 넓히며 충분히 준비하라
몸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오래 생각하고 마구 쏟아내라
이처럼 ‘총론’에 해당하는 조언이든,
제목, 다듬고 또 다듬어라
도입부로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아라
대화에 녹여내라
독자가 건너뛰고 읽을 부분은 아예 쓰지 마라
이처럼 ‘각론’에 해당하는 조언이든 모조리 금과옥조이다.
선수들의 빼어난 편집솜씨가 돋보이는 이 책은
‘새벽 세 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기다리지 마라’로 시작해서,
‘뭐가 됐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매일 써라’로 끝난다. 글쓰기에 왕도가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단순 명확한 수련을 누가 얼마나 하느냐의 문제이다.
나는 전에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요즘 글쓰기에 대한 책을 다시 훑다가 재발견한 것이다. 그 때는 찰스 슐츠를 발견하지 못했고, 슐츠와 스누피에 대한 러브레터 형식인 편집도 읽지 못했고, 작가들의 노하우에 깊은 공명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역자가 소설가 김연수라니! 그러니 ‘읽었다’는 것은 얼마나 가벼운 자기만족인가. 전에 스쳐 지난 책을 다시 발견하는 재미는 또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감히 무엇을 혹은 누군가를 ‘읽었다’고, ‘안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진정 만나야만 만난 것이다. 참, 이 책은 ‘스누피의 글쓰기완전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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