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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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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9일 22시 49분 등록

한 모범생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가족에게 남긴 것이라고는 텅 빈 방과 깊은 한숨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녀오겠다는 짧은 메모조차 남기지 않은 채 청년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부모는 사립탐정을 고용하여 그를 찾아 나섰지만 아무 단서도 찾을 수 없었고 2년 뒤, 그는 알래스카 오지에서 침낭에 싸인 채 참혹하게 말라 죽은 사체로 발견되었다. 굶어 죽은 것이었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Christopher McCandless)는 명문대 출신의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톨스토이와 헨리 소로우, 잭 런던의 책을 탐닉했던 그는 자연주의자들의 삶을 그대로 실천해 보기를 갈망했다대학을 졸업하면 알래스카로 떠날 것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던 날, 졸업복만 벗은 채 집을 나와, 자신이 힘겹게 번 돈 2 4천 달러를 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인사도 없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속세로부터 훌쩍 떠났다.

 

그는 차를 숲 한 가운데 버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더 슈퍼트램프(supertramp, 슈퍼방랑자)'라고 새롭게 지었다. 차를 얻어 타고, 국경을 넘고, 걷고 또 걸었다. 농장에서 더러운 일을 하고, 맥도날드에서 패티를 굽고, 때로 노숙을 하고, 빌어먹고, 밑바닥에서 뒹굴며 2년간을 떠돌아 다닌다. 알래스카로 떠난 크리스의 수중엔 쌀 한 자루, 엽총 한 자루, 톨스토이와 소로우의 책 한 다발, 그리고 간식 몇 가지 밖에 없었다.

 

알래스카에 도착한 그는 버려진 버스를 발견하고 이 버스에 정착한다.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조달했으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렵에 대해선 책으로도 배운 적이 없는 이제 대학 갓 졸업한 젊은이로썬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 달 만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그는 야생 생활을 청산하려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갔지만, 자신이 그곳에 완전히 고립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름이 되자 산 위에 얼었던 눈이 한꺼번에 녹으면서 두 달 전 건너왔던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 버렸던 것이었다.

 

  • 그의 일기 막바지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극도로 약해짐... 씨앗. 서 있기조차 어려움... 위기 상황". 전문가들은 크리스가 독이 든 씨앗을 먹은 것으로 추론했다. 배고픔에 야생에 열린 아무 씨를 마구 따 먹다가 독에 걸렸다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배고픔과 고통, 눈에 아른거리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크리스는 결국 "난 그 동안 행복하게 살았고, 신께 감사드린다."는 유언을 일기에 남기고 사망한다. 그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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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투 더 와일드> 포스터                       카메라에 담겨 있던 실제 크리스의 사진:'매직 버스' 앞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의 짧은 여행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덧없으며, 그 속에서 행복이란 얼마나 추상적인 것인지 넌지시 보여준다. 이상을 향해 걷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과정인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이상이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인지 죽음을 통해 암시한다.

     

    현실이라는 족쇄를 사뿐히 즈려밟고 철저히 이상을 향해 달려간 이 '슈퍼방랑자'는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과 닮아 있다. 상류층 출신의 잘나가던 스트릭랜드는 중년의 나이에 자신을 휘감고 있는 예술혼에 사로잡혀, 직업, , 가족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 그는 세상을 떠돌다 결국 조용한 타히티 섬에 정착해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해 나간다.

     

    달과 6펜스 동전은 모두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달은 만져볼 수 없는 것, 인간의 영혼, 예술, 이상,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의미한다. 반면 가장 흔한 동전인 6펜스는 세속의 세계, 물질과 경제적 관념이 중요시되는 현실적 사회를 가리킨다.

     

    달과 6펜스2.jpg

     

    현실과 이상.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두 세계의 갈등을 두 사내는 젊었을 때 종결지어 버린다. 철저히 6펜스의 세계를 지워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남들의 의견과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어떤 경제적 어려움도, 고난도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아간다. 심지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스트릭랜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왜? 그게 왜 중요하단 말인가?"

     

    그들의 삶이 결코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누구도 그들을 찾지 않았으며, 결코 스스로 만족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자유로웠다. 그들의 떠남은 객기로 시작되었지만, 길 위에서 그들은 행복했다. 그 길은 자갈 투성이의 고통뿐이었지만 그 고통마저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었다. 그들은 결코 달에 이르지 못했지만, 하늘을 날았고, 바람을 느꼈으며, 별처럼 스스로 빛이 되었다.

     

    누구나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오직 '6펜스'를 향해 나 있는 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능성의 문들을 닫아버린다. 진정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닫힌 문을 스스로 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이전 세계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철저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크리스와 스트릭랜드의 행동은 모두 극단적이었지만, 극단적이었던 만큼 그 힘은 강력했다. 모든 것을 버렸기에 그들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용기 있는 단절이 진정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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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프러스나무
    2010.11.11 06:55:30 *.173.15.226
    최근 읽은 글 중에 가장 좋으네요 눈이 번쩍 뜨이고 감성이 살아나는 글.글마디에 숨결이 실려있어서인지 글이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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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니
    2010.11.24 07:14:18 *.97.72.67

    그러나 크리스가 정말 그렇게 죽고 싶었던 것일까? 일기와 유서라고 해서 진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죽음을 직감하고서 어쩔 도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진정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길을 떠나기 전 그들의 삶은 불행했던 것일까? 전환에 단절이 필요하고 전환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 길을 떠나지 못하는 대다수의 이유는 결코 불행을 더 많이 감수하려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손익계산서의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게다. 이상과 현실의 적절한 균형감에 대한 자신이 서야 할 일. 그렇게 하려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 질문과 철학이 있어야 선택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고 따라서 결과 역시 자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믿져도 해볼 만한 신념에 의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전부를 알고 진행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우트라인(근간)만이라도 제대로 선다면 전환해 가면서 발전과 진화를 이룰 수도 있겠지 싶다. 나는 언제가 될까 물으며... .  후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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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필
    2011.01.10 23:37:40 *.195.5.144
    글을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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