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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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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3일 14시 56분 등록

“Doctor! Doctor!  Nobody listens to me."

"Next!"


아주 오래 전에 주변에 굴러다니던 유머집에서 흘깃 본 것이 잊히지가 않는다. 무시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지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에도 민감한 탓이다.  많은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겠지만 나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가장 민감하다. 건성으로 듣고 있는 듯한 대화, 나를 제외하고  활발하게 진행되는 모임, 마땅히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만큼 배려받지 못했을 때 가장 분노하고 가장 슬프다. 그런 만큼 이 대목이 가슴에 콕  박힌 것은 당연하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그 처절한 소외감이 내 것인 양 가슴이 철렁한다.

뜬금없이 그 오래 되고 가혹한 유머를 떠올린 것은 엄마 때문이다. 아무도 그 사람 말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끊고 평가하며, “네, 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를 종용하고, 급기야 그 사람을 있으나마나 한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는 바로 노인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13년, 엄마의 유일한 낙은 언니와 내 집을 돌아보는 것이다. 아직까지 엄마에게 기대고 있는 남동생과 덤덤한 올케, 저 밖에 모르는 막내딸 말고 그래도 언니와 내가 엄마의 말상대가 되어드렸던 것인데 요즘 내 맘이 변한 것을 느낀다.

만사가 귀찮다! 끝없이 반복되는 엄마의 레퍼토리를 들어드리기 귀찮고, 노인특유의 암울함에 전염되기 싫어 너무 자주 뵙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이 식사할 때 국물을 후르르 소리내서 드시거나, 생선가시나 닭뼈 같은 것을 손으로 받아 앞접시에 놓으실 때 혐오감이 치민다. 나나 아이들도 분명히  소리내서 국물을 먹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내가  충격적이다. 아아!  이제 77세이신데,  앞으로 길면 20년쯤 더 생애가 진행될 텐데, 그동안 엄마의 모습은 얼마나 더 변할 것인가!


문제는 똑같은 상황이 내게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밖으로 도는 타입이 아니라 아직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지만 시간문제이다.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 가고 싶었는데 애들과 시간이 맞질 않았다. 마침 엄마가 친구분들과 제주도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잘 다녀오시라고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나도 제주도 한 번 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마음에 걸렸는데 먼저 다녀오시게 되어 다행이네요. 여비 해 드릴게 다녀 오세요.”


그러자  딸이 냉큼 받아서는 나를 보고  “엄마, 여비 해 드릴게 제주도 다녀오세요.” 이러는 것이 아닌가!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순식간에 상황을 알아 차렸다. 엄마의 삶을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내 삶을 챙겨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엄마에게서 받은 그 많은 은혜와 돌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시큰둥해 졌듯 아이들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유례없이 길어진 인생으로 하여 부모자식간의 인연도 너무 길어졌고, 요즘은 어느 상가엘 가든 우는 사람이 없다는 엄마 말씀이 이것을 대변한다.  엄마에게 그토록 애틋하던 내가 이리 변한 것 자체가 노화의 징조인 것이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시들하다.


엄마는 한 달이 다르게 변하신다. 건강하고 총기있는 분인데 갈수록 쭈삣거리고 허둥지둥하는 것이 느껴진다. 훤하고 편안하던 외모도 많이 위축되어 보인다. 신체적인 노화보다 심리적인 노화가 가파를 것이 분명하다. 무슨 말을 하든, “아니예요, 요즘은 안 그래요.” 소리를 듣거나, 건성인 티가 역력하거나, 아예 대꾸도 못 듣는 일이 거듭된다면 불편하고 불안할 것은 자명하다. 자식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걸리적거릴까봐 눈치가 보이니, 무슨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점점 모르게 된다. 스스로 바보처럼 느껴지고,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자괴감이 쌓여 뇌를 강타한다면? 이 모든 것을 직시하고 싶지 않고, 그나마 아직은 괜찮지만 앞으로 더 진행될 상황이 두려워 사고를 멈추고 싶어진다면?


엄마가 미리 보여주는 삶의 파노라마에 정신이 번쩍 난다. 삶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었다. 한 발 앞서 준비하고 한 장면 한 장면 만들어가는 것이다. 엄마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한 신명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내 주된 관심사인 것을! 고령사회가 가져올 충격에 비하면 공산권의 붕괴 따위는 일도 아니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엄청날 고령화 쓰나미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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