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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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입구에서 몸살을 앓았습니다. 처음엔 큰 재채기에서 시작했습니다. 곧 물처럼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잠결에도 목이 따갑고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뼈마디가 쑤셔오고 근육통마저 찾아왔습니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껴안고 밤을 보냈습니다. 눈부시게 밝은 새날이 열렸지만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워 종일 끙끙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습니다. 지난 주 후반부터 찾아온 몸살감기가 여태 곁에 머무는 중입니다.
떠돌며 강연하는 처지는 이럴 때 서럽습니다. 짧게는 몇 주 전, 길게는 몇 개월 전에 이미 약속된 강연을 아프다고 안할 수 없으니까요. 월요일부터 나흘이 흘렀는데 강연은 여섯 번을 했습니다. 용인과 여수, 용인과 광주를 반복적으로 오갔습니다. 거리나 상황에 따라 KTX나 비행기, 택시나 승용차로 내달려 겨우 일정을 소화하는 중입니다. 몸은 진정이 되다가도 다시 버겁다며 신호를 보냅니다.
오늘은 용인에서 오전, 광주에서 오후를 거쳐 여기 청주에서 밤을 맞고 있습니다. 쉼 없이 말을 한 목이 붓고 따끔거립니다. 욕실 거울 뒤에서 벌건 눈을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겁니다. “아직도 명사를 향하고 있는가? 끝없이 움직이는 그 동사적인 삶이 결국 명사를 향하고 있는 게야? 그리고 있는 어떤 세상이나 삶의 지향, 그 궁극은 결국 명사인 게지? 네가 강연 때 사람들에게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볼 때 청중들 대부분이 대답하는 명사들, 예를 들면 돈이거나 건강이거나 가족 따위로 대답하는 그 명사들. 네가 지향하는 궁극은 그것과는 다른 명사라고 너를 위로하고 있나?”
거울 속의 그가 던진 질문은 최근 며칠 내 삶에 죽비를 내리치는 소리, 한 마디로 명사를 줄이고 형용사를 늘리라는 명령입니다. 선명한 명사로 하루하루를 정리하는 삶보다 더 많은 형용사로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지시입니다. ‘용인 강연, 광주 강연’ 이 명사가 내 하루의 전부를 채우게 하는 삶을 경계하라는 요구입니다. 바람 불어와 초록 이파리 물결처럼 출렁이는 이즈음의 숲에서 이팝이며 아카시며 층층나무, 그 순백으로 일렁이는 꽃들의 몸짓은 보기나 했냐는 질책입니다. 검은등뻐꾸기며 소쩍새며 맑고 고운 철새들의 노래 소리는 얼마나 들었느냐는 야단입니다.
나는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명사를 줄이고 형용사와 부사를 더 많이 늘리는 일상을 가진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을. 오늘은 개구리 소리가 참 좋은 밤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일상을 온통 따뜻하고 청량한 형용사로 채우며 몸을 돌볼 작정입니다. 그대 주말에도 명사보다는 형용사가 더 많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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