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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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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3일 00시 10분 등록

 

목요일이 하필 추석이어서 지난 한 주 편지를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또 길 위를 떠돌고 있습니다. 담양 방문을 마치고 차를 몰아 속초 대포항, 지진의 진앙지 경주에 들렀다가 여우숲, 다시 경주를 돌고 있는 중입니다. 내일은 다시 천안. 한 주의 피로가 뒷목까지 쌓여 올라오는 이런 목요일에는 편지고 무엇이고 모른 척 잠을 청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꾸준함을 능가하는 수련은 없으므로 목요 편지를 써봅니다.

 

설악산 흔들바위가 멀리 보이는 그곳 동해 북단 근처 어느 호텔에서 열린 강원도 어느 직장인들의 워크숍에 강연을 마치고 나는 청중 두어 명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5년 전 쯤 나를 다른 강연장에서 만났었다며 반갑게 인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머뭇거리며 혹시 청소년들을 위한 강연도 하고 있느냐?’ 물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와 나를 강연이나 대담으로 만나게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자연스레 그의 고민을 듣게 되었습니다. 딸은 중학교 2학년인데 자신은 과묵한 아빠이고 그의 아내는 약간 쟁쟁대는엄마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는 엄마와 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로 토닥대며 다투고 노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했습니다. ‘친구 같은 사이라는 말이 내게는 참 좋은 의미로 들렸는데 더 들어보니 그의 뜻은 엄마의 말이 더는 아이에게 위엄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쪽에 비중을 둔 표현임을 알아챘습니다. 자신은 가끔 저렇게 크면 저 아이가 장차 어떻게 세상을 헤쳐갈 수 있을까 너무도 걱정이 될 만큼 아이가 철없이 굴고 때로 대드는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자신이 나서서 훈계도 하고 엄하게 대하며 바로잡아 주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 별 효과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게 아이들을 위한 강연을 하는가 물었던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짧게 정리하면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엔 2! 너 누구냐?’는 말이 세상에 생겨났을 만큼 그 또래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하고 이해하는 데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합니다. 강연 자리에서 대중을 만나보면 성인들이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서만 그런 혼란을 겪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젊은 부부는 부부관계에서 심각한 갈등과 회의를 겪고, 또 어떤 직장인들은 일과 가정의 부조화에서 고통을 겪고, 또 누군가는 직장 내 관계 때문에 너무도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내 강의를 듣고 자신의 고통을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내게 무언가 뾰족한 대안과 처방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나도 내 게 닥친 고()를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어서 시원한 훈수를 두기가 꺼려지고 난감합니다.

 

사실 나는 어쩌다 중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쩌다 연애를 했고, 그래서 어쩌다 남편이 되었고, 어쩌다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농경의 가정문화와 질서가 무너지고 산업화 시대에 맞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모 곁을 떠나 공부하고 홀로 열망하고 고민하고 결정해오는 방식의 시대를 살아온 나는 남편이 된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을 누군가로부터 제대로 배우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마 많은 연인이, 부부가, 부모가 그렇게 어쩌다 어른의 경로를 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주하는 국면마다에서 기껏 책이나 은연중에 부모님이 보여주어 부지불식간에 내 몸에 새겨진 어떤 모습이나 선배나 친구 등의 어설픈 조언 등을 참고하여 판단하고 행동해 왔을 것입니다. 3대가 함께 살며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었던 일상의 지혜와 과제 해결 방식 등을 익혀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요. 또 시대가 달라져 가치관과 행동양식 전반이 변했지만 우리가 살아내는 대다수의 경로에 대한 지혜는 새롭게 정리되지 못하고 단절됐지요. 해서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어쩌다 부부가 된 우리는 머지않아 찾아오는 부부 갈등을 어떻게 다룰지 난감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대하며 쩔쩔매고, 삶의 중요 선택 지점을 마주하면 그 역시 쩔쩔매게 되는 것이지요.

 

나 역시 그런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중 2 딸 녀석을 두고 고민하는 아빠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귀띔할 무엇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가 흔쾌해 했던 이야기를 다음 주에 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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