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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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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2일 11시 07분 등록

서식이 깨지는 부분이 있어 링크 걸어 둡니다.
http://blog.naver.com/webpoet/221027161674
아래 원문 올립니다.


I. 저자에 대하여

1.공자(네이버 발췌)
 [생애해설]

공자의 조상은 송나라 미자(微子)의 후손이다. 아버지 숙량흘은 안씨의 딸 징재와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다. 숙량흘은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만 아홉을 두었고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다리 장애인이었다. 건강한 아들을 원했던 그가 안씨의 딸과 혼인하기를 구하자 그 딸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혼인을 했다. 야합(野合)이란 숙량흘은 70살이 넘었는데 안징재는 16세여서 예에 맞지 않음을 일컬은 것이라고도 하나, 아무튼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아니었다. 어머니 안씨가 이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었다.

나면서부터 머리 위가 오목하게 들어간 고로 인하여 구(丘)라고 이름지었다. 공자가 출생한 후 곧 숙량흘은 죽어서 방산(防山)에 묻혔다. 공자는 아버지의 무덤의 위치를 몰라, 어머니가 돌아가자 거리에 빈소를 차렸다. 지방의 나이든 여인이 아버지의 무덤을 알려주자 공자는 어머니를 방산에 합장했다. 공자는 가난하고 천하여 자라서는 계씨의 창고지기도 하고 축사지기 노릇도 하였다. 공자는 키가 9척 6촌이나 되어 사람들이 모두 ‘키다리(長人)'라고 부르며 이상하게 여겼다.

공자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대부 맹희자(孟釐子)가 병이 나서 곧 죽게 되었을 때, 그는 후계자인 의자(懿子)에게 훈계하며 말하였다. "공구(孔丘)는 성인의 후손인데, 그 조상은 송나라에 있을 때 멸망당하였다. 그 조상 불보하(弗父何)는 원래 송나라의 후계자였으나, 아우 여공(厲公)에게 양보하였다. 정고보(正考父)에 이르러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을 섬길 때, 세 번 명을 받았는데, 매번 명을 받을 때마다 더욱 공손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정(鼎)에 새겨놓은 명문(銘文)에 이르기를 '첫 번째 명에 몸을 숙이고, 두 번째 명에 허리를 굽혀 절하고, 세 번째 명에는 큰 절을 한 뒤 받았다. 길을 걸을 때는 중앙을 걷지 않고 담장가를 따라 다녀서 누구도 감히 나를 경멸하지 않았다. 이 솥에 풀과 죽을 쑤어서 청렴하게 살아왔다'라고 하였다. 그 공손함이 이와 같았다. 내가 듣기로 성인의 후손은 비록 국왕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해도 반드시 재덕(才德)에 통달한 자가 있다. 지금 공구는 나이는 어리나 예를 좋아하니 그가 바로 통달한 자가 아니겠느냐? 내가 죽거든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모시거라." 희자(釐子)가 죽자 의자는 노나라 사람 남궁경숙(南宮敬叔)과 더불어 공자를 찾아가 예를 배웠다. 이해에 계무자(季武子)가 죽고 계평자(季平子)가 대를 이어 경(卿)의 자리에 올랐다.

노 소공(魯昭公) 20년, 공자는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제 경공(齊景公)이 안영(晏嬰)과 함께 노나라에 갔는데,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 진 목공(秦穆公)은 나라도 작고 외진 지역에 위치하였지만 패자(覇者)가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진(秦)나라는 비록 나라는 작아도 그 뜻이 원대하였고, 비록 외진 곳에 처하였어도 정치를 베푸는 것이 매우 정당하였습니다. (목공은) 백리해(百里奚)를 몸소 등용하여 대부(大夫)의 벼슬자리를 내리고 감옥에서 석방시켜 더불어 3일간 대화를 나눈 뒤 그에게 정사를 맡겼습니다. 이로써 천하를 다스렸다면 (목공은) 왕(王)도 될 수 있었는데, 패자가 된 것은 오히려 대단치 않은 것입니다." 경공은 매우 기뻐하였다.

공자가 35세 되었을 때, 계평자(季平子)가 후소백(郈昭伯)과 닭싸움 끝에 노 소공에게 죄를 지었다. 소공이 군대를 이끌고 평자를 공격하자 평자는 맹씨(孟氏), 숙손씨(叔孫氏)와 연합하여 3가(家)가 함께 소공을 공격하였다. 소공의 군대는 패해서 제나라로 달아났고, 제나라는 소공을 간후(乾侯)에 거하도록 하였다. 그후 얼마 안 되어 노나라가 어지러워졌다. 공자는 제나라로 가서 고소자(高昭子)의 가신이 되어 경공(景公)과 통하려고 하였다. 공자는 제나라의 태사(太師)와 음악을 토론하였는데 "소(韶)" 음악을 듣고 그것을 배워,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였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고 말했다. 다른 날에 또 정치를 묻자 공자는 “정사는 비용을 절약하는 데 있다”고 하자, 경공이 기뻐서 장차 공자를 봉하려고 하자, 안영(晏嬰)이 반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유자(儒者)란 약디 약아서 법도를 좇으려 않으며, 오만하고 제멋대로여서 아래 사람으로 삼기 힘들고, 상례를 숭상하여 애도를 다한답시고 파산할지라도 장례는 후히 하니 풍속에 득이 없고, 유세나 하고 다니면서 재물만 빌어먹으니 나라에 득이 없습니다. 큰 현인이 없어진 뒤로, 주나라 왕실이 쇠약하여 예와 음악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 공자가 예복(禮服)을 성대하게 차려 입고, 임금에게 예절과 진퇴의 절도를 번잡하게 하고 있으니, 여러 대를 두고 하더라도 그 학문을 다 할 수 없고, 한 평생 하여도 그 예를 다 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그를 써서 제나라의 풍속을 고치고자 하시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는 첫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논어』를 보면 공자는 “안영은 타인과의 교우 관계가 몹시 좋았다.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더욱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5-17)라며 안영을 찬양하고 있다. 그 후 경공이 공자를 보더라도 예를 묻지 않았다. 다른 날 경공은 공자에게 “선생을 계씨처럼 받들지는 못하더라도, 계씨와 맹씨 사이로 대접하겠습니다”고 말하였다. 이에 제나라 대부들이 공자를 해치려고까지 하였다. 경공은 나중에 “내가 늙었는지라 등용하지 못하겠다"하니, 공자는 다시 노나라로 돌아갔다.

계씨는 공실(公室)을 업신여기고 배신(陪臣)이 국정을 잡으니, 이 때문으로 노나라에서는 대부 이하 모두가 바른 길(正道)을 무시하였다. 그리하여 공자는 벼슬을 포기하고 물러나 『시(詩)』, 『서(書)』, 『예(禮)』, 『악(樂)』을 닦으니, 제자가 더욱 많아졌다. 공산불요가 비(費) 땅을 근거로 계씨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사람을 보내 공자를 불렀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시험해 볼 곳이 없음을 답답해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풍(豐)과 호(鎬) 지방에서 일어나 왕이 되었다. 이제 비 땅이 비록 작지만,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고, 가려고 했다. 자로가 화를 내며 공자를 막자, 공자는 말하였다. “나를 부르는 자는 어찌 아무 생각이 없었겠는가? 만약 나를 써준다면, 나는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성사되지는 못 했다.

그 뒤에 정공(定公)이 공자를 중도(中都)의 읍재로 삼았다. 일년 만에 사방이 모두 그를 본받았다. 그로 말미암아 사공(司空)이 되었고, 사공에서 다시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공자는 나이 56세에 대사구(大司寇)로서 재상의 일을 맡게 되자 기뻐하였다. 또 정치를 어지럽힌 노나라의 대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다. 공자가 정치를 맡은 지 삼 개월 만에 염소나 돼지를 파는 자는 값을 속이지 않았고, 남녀는 걸을 때 길을 달리하였고,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주워 가지 않았으며, 읍으로 오는 사방의 손님들이 관리에게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었고, 모두 대접받고 돌아갔다.

제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전해듣고 두려워하며, “공자가 정치를 하면 반드시 노나라가 패자가 될 것이고, 패자가 되면 우리나라부터 먼저 합병할 것이다” 하면서, 계책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제나라 가운데서 예쁜 여자 80명을 뽑아, 춤을 가르치고 화려한 옷을 입혀 장식을 한 말이 끄는 수레 30 대에 태워 노나라 임금에게 보냈다. 이에 노나라 임금 이하 신하들이 종일 구경하면서 정치에 태만했다. 그러자 공자는 제사 고기를 보내주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벼슬을 그만두었다.

공자는 위나라에 가서 자로의 처형 안탁추(顔濁鄒)의 집에 머물렀다. 위나라 영공(衛靈公)이 묻기를 “노나라에서는 녹봉을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하자, “곡식 육 만(약 2000섬)을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위나라에서도 곡식 육 만을 주었다. 얼마 지난 뒤에 공자를 참소하는 일이 생기자 공자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열 달 후 위나라를 떠났다. 진나라로 가면서 광 땅을 지나는데, 광 사람들이 공자를 노나라의 양호로 착각하고 공자의 행차를 멈추게 했다. 공자의 모습이 양호와 비슷한 관계로 5일 동안을 구금했다.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위영공의 부인인 남자(南子)가 사람을 시켜 공자를 보기를 원한다고 했다. 공자는 사양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만났다.

부인은 갈포(葛布)로 만든 발(휘장) 안 쪽에 있었다. 공자가 문으로 들어와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을 했다. 부인은 발 안에서 재배를 했는데, 차고 있던 패옥이 쨍그렁 소리를 냈다. 공자가 말하기를 “우리 마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보지 않지만, 만나는 예로 답을 합니다” 하였다. 이 일로 자로가 화를 냈다. 공자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내가 만일 잘못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공자가 조(曹)나라에서 송(宋)나라로 가는 도중,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밑에서 예를 익혔다. 송나라 사마(司馬) 환퇴(桓魋)가 공자를 죽이려고 그 나무를 쓰러뜨렸다. 제자들이 떠나기를 재촉하자 공자는 말하기를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내리셨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공자가 진(陳)나라에 이르렀을 때,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진나라를 정벌해서 세 읍을 빼앗았고,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회계에서 쳐부수었다. 공자가 진나라에 머무는 3년 동안, 여러 나라들이 계속 전쟁을 벌였다. 진나라는 항상 침략을 당하고 있어서 그 나라를 떠나갔다.

또 포 지방을 지나면서 반란자들이 공자를 붙잡아두고 괴롭히며 말하기를, 만약 위나라로만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놓아주겠다 하였다. 그러자 일행은 곧 맹세를 하고 동문으로 나갔다. 그러나 공자는 곧장 위나라로 갔다. 자공이 묻기를 “어찌 맹세를 저버릴 수 있습니까?” 하자, 공자는 대답하기를 “강요된 맹세는 귀신도 듣지 않는다” 하였다.

위령공이 늙어 정사에 태만하고 공자를 쓰지 않자, 공자는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누가 나를 써주기만 한다면 1년만 되어도 좋고, 3년이면 성과를 낼텐데” 하고 위나라를 떠나갔다. 공자는 서쪽으로 조간자(趙簡子)를 만나려고 황하에 이르렀을 때, 두명독(竇鳴犢)과 순화(舜華)가 조간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공자는 황하 강물에 서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름답다, 물이여! 저렇게도 출렁거리는구나! 내가 이 물을 건너지 못함은 운명이로구나!”

자공이 감히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말하였다. “두명독과 순화는 진(晉)나라의 어진 대부였다. 조간자가 세력을 잡지 못했을 때는 그 두 사람 말을 들은 뒤에 정사를 했는데, 세력을 잡은 뒤에는 그들을 죽이고 정사를 하고 있다. 나는 들으니 ‘태를 쪼개 어린것을 죽이면 기린이 들판에 오지 않고,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으면 교룡이 음양을 합하지 못하고, 둥지를 뒤엎고 알을 깨뜨리면 봉황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 군자는 자기와 같은 부류를 해침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새나 짐승도 의롭지 못함을 오히려 피할 줄 알거든, 하물며 사람이랴!” 마을로 돌아와 거문고 가락을 연주하며 슬퍼하였다.

가을에 계환자가 병이 들어 수레를 타고 노나라의 성을 보며 “옛날 이 나라가 흥성할 수 있었는데, 내가 공자에게 죄를 얻어 흥하지 못하였구나” 하고 탄식하며, 아들 계강자에게 “내가 죽거든 너는 노나라의 정승으로서 반드시 공자를 모셔와라”하고 당부하였다.

아버지를 장사한 다음 계강자가 공자를 부르려 하자, 공지어(公之魚)가 말하였다. “옛날에 우리 선군께서 그를 등용하여 끝까지 쓰지 못하고, 끝내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등용하여 끝까지 쓰지 못 하면, 또 다시 제후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대신 제자인 염구(冉求)를 불러들였다. 자공(子貢)은 공자에게 노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있음을 알고 염구를 환송하면서 당부하기를 “자네가 등용되거든 곧 공자님을 부르게 하라” 하였다.

공자가 진·채의 국경에 있다는 말을 듣고 초나라에서 공자를 초빙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진·채의 대부들이 모의하면서 “공자가 초나라에서 등용되면 우리들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 일행을 들판에서 에워싸고 억류하자 공자는 초나라로 가지 못하고 식량마저 떨어졌다. 따르는 제자들은 굶고 병들어 잘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공자가 강송(講誦)과 현가(弦歌)를 그치지 않자, 자로가 성을 내며 “군자도 이처럼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하자, 공자는 “군자는 원래 곤궁한 것이다. 소인은 곤궁하면 혼란에 빠진다” 하였다.

공자는 제자들이 불만이 많음을 알고 자로를 불러 말하였다. “시에 이르기를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광야를 헤매고 있구나' 했는데, 우리의 도가 바로 그런 격인가? 내가 여기서 어찌 한단 말이냐?” 자로가 말하였다. “우리가 아직 어질지 못한 것입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니! 우리가 아직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억류하고 있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대답이 그것뿐이냐! 자로야, 만약에 어진 사람은 반드시 남의 신임을 얻는다면 어째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겠느냐? 또 만약에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억류되지 않는다면 어찌 왕자 비간(比干)이 있었겠는가?”

자로가 나오고 자공이 들어가니 공자가 말하였다. “자공아, 시에 이르기를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광야를 헤매고 있구나' 하였는데, 우리 도가 바로 그런 격인가? 내가 여기서 어찌 한단 말이냐?” 자공이 대답하였다. “선생님의 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천하에 어느 누구도 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낮추시면 어떨까요?”

공자가 말하였다. “자공아, 솜씨 좋은 농부가 씨를 잘 뿌린다고 잘 수확하는 것은 아니다. 솜씨 좋은 기술자가 기술을 잘 발휘한다고 꼭 사람들 뜻을 맞출 수는 없다. 군자는 도를 닦아서, 강기(綱紀)하고 통리(統理)할 수는 있어도, 반드시 사람들에게 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너는 네 도를 닦지 않고, 포용되기만을 기다리는구나. 자공아, 네 뜻은 원대하지 않구나!”

자공이 나가고 안연이 들어와 뵈니 공자가 말하였다. “안연아, 시에 이르기를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광야를 헤매고 있구나' 하였는데, 우리의 도가 그런 격인가? 내가 여기서 어찌 한단 말이냐?” 안회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의 도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천하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선생님께서는 밀고 나아가시면 되지, 남이 용납하지 않음을 어찌 걱정하십니까? 용납되지 않은 연후라야 그가 군자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도를 닦지 못함은 나의 부끄러움이나, 도를 크게 닦았는데도 써 주지 않음은 임금들의 부끄러움(잘못)입니다. 용납되지 않음을 어찌 근심하십니까? 용납되지 않은 연후라야 군자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흔연히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냐, 안씨의 아들이여! 만약 네가 재물이 많다면, 나는 너의 재무 관리인이 되리라.” 이에 자공을 시켜 초나라로 보냈다. 초나라 소왕(楚昭王)이 군사를 일으켜 공자를 맞이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마침내 계강자가 폐백을 갖추어 공자를 불러들이자,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왔다. 노나라를 떠난 지 14년만이었다. 그러나 노나라는 끝내 공자를 등용하지 않자, 공자도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그 후 육예를 편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데 몰두하였다. 공자가 72세 때 자로가 위나라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공자가 병이 깊은 후 자공이 찾아왔다. 공자는 마침 지팡이를 짚고 문 앞을 거닐다가 “자공아, 왜 이제야 오느냐?” 하였다.

공자는 탄식하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려나! 대들보가 부러지려나! 철인(哲人)이 시들려나!” 하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가 오래 된지라 아무도 나를 받드는 이가 없구나. 어제 저녁 나는 은나라 식으로 제사 받는 꿈을 꾸었으니, 나의 선조가 은나라 사람임이라”고 말하였다. 그 뒤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노나라 애공은 만사(挽詞)하기를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니, 나는 괴로운 아픔 속에 있네. 아아 슬프다! 이보(尼父: 仲尼 존칭)시여!” 하였다. 이에 자공이 말하기를 “애공 임금은 노나라에서 죽지 못할 것이다. 살아서는 써 주지 않고, 죽어서야 만사하여 시호를 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하였다.

공자는 노나라 성 북쪽 사수(泗水) 가에 묻혔다. 제자들이 모두 3년 동안 복을 입었다. 자공은 홀로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다시 3년이 지난 후에야 떠나갔다. 제자와 노나라 사람 중에 묘소 밑에서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100여 집이었다. 그래서 ‘공리(孔里: 공자 마을)'가 되었다. 공자 무덤에서 노나라에서는 대대로 세시(歲時:새 해를 맞을 때)에 제사를 드렸고, 선비들은 향음주와 대사의 예를 행하였다.

한나라 고조 황제는 노나라를 지나가다 태뢰(太牢: 천자에게 드리는 제사)로 제사지냈으며, 제후와 경상들이 오면 항상 먼저 공자 무덤에 참배하고 정사에 나아갔다. 사마천은 말하기를 “천하에 군왕에서 현인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건만, 생시에 아무리 영화로웠던들 죽으면 다 끝이었다. 오직 공자만은 포의(布衣)로 죽었으나 대대로 전해오면서 학자들의 종주(宗主)로 숭앙되고 있다” 하였다. ( 『사기』 「공자세가」의 내용에서 발췌)

[네이버 지식백과] 공자 [孔子, Confucius]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생애연보]

B.C.551 아버지의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顔徵在) 사이에서 탄생

B.C.549( 3세) 아버지 죽음

B.C.535(17세) 어머니 죽음

B.C.533(19세) 결혼

B.C.532(20세) 아들 리(鯉) 출생, 자는 백어(伯魚)

B.C.522(30세) 자로, 증점, 염백우, 염구, 중궁 등의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함

B.C.518(34세) 노나라 맹리자가 죽으면서 맹의자 등 두 아들에게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예를 배우라고 당부함

B.C.517(35세)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질문함

B.C.502(50세) 공산불요가 공자를 부름

B.C.501(51세) 처음 벼슬을 하여 노나라 중도재(中都宰)가 됨

B.C.500(52세) 다시 사공(司空)이 되고 다시 대사구(大司寇)가 됨

B.C.497(55세)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감

B.C.496(56세) 광 땅에서 액운을 만남. 필힐이 부름

B.C.495(57세) 위나라 영공을 만나 벼슬하고 남자(南子)를 만남

B.C.494(58세) 벼슬을 그만두고 위나라를 떠남

B.C.492(60세) 조나라를 거쳐 송나라로 가다가 환퇴의 액운을 당함

B.C.489(63세) 진나라 채나라 초나라를 거쳐 위나라로 돌아감

B.C.488(64세) 다시 위나라(출공 재위4년)에 벼슬함

B.C.484(68세) 노나라 계강자가 공자를 부르자 노나라로 돌아감, 고국을 떠난 지 14년만임. 이후 유약, 증삼, 자하, 자장 등의 제자를 가르침

B.C.483(69세) 아들 리가 죽음

B.C.481(71세) 제자 안회가 죽음, 제나라 진항이 임금을 시해하자 노나라 임금에게 토벌을 간했으나 실현되지 않음, 노나라 서쪽에서 기린이 사로잡히자 낙심하여 『춘추』 저작을 절필함

B.C.480(72세) 자로가 위나라 난리에 죽음

B.C.479(73세) 세상을 떠남(錢穆, 『공자전』, 삼련서점, 2002 참조)


2.김원중 작가

충북 보은에서 출생하여 조부로부터 한학을 익혔고,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중국고전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대만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 방문학자와 중국 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방문교수,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 사범대학 한문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 겸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인문특위 위원을 맡고 있다.

교수신문 선정 최고번역서 『사기열전』을 비롯해 『사기본기』와 『사기세가』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2011년 『사기 표』와 『사기 서』를 출간해 개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사기』를 완역했다. 그 외에도 2002년 『삼국유사』가 MBC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어 고전 읽기 붐을 일으켰으며 『정사 삼국지(전4권)』 『논어』 『노자』 『손자병법』 『한비자』 『정관정요』 『명심보감』 『당시』 『송시』 『염철론』 등 굵직한 고전 원전 번역을 통해 고전의 한국화, 현대화에 기여해왔다. 또한 고전을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한 『한비자의 관계술』 『경영사서』 『통찰력사전』 『사기 성공학』 등과 함께 『중국문화사』 『중국문학이론의 세계』 『중국문화의 이해』 『혼인의 문화사』 『일일일독』 『한문해석사전』(편저) 등의 단행본을 펴냈다. 그 외 전문학술지에 발표한 40여 편의 논문이 있다. 현재 삼성사장단 강의를 비롯 삼성경제연구소(SERI CEO 특강), 중앙공무원교육원, 사법연수원, 현대리더스포럼, 국가전략경영원 등에서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인문 고전 관련 강연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18
앞에 나왔던 말이 뒤에서 약간 다르게 인용되는 경우도 있다.(중략)
어록이란 틈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한 말을 엮어 놓은 것이다.

P.22
사마천은 왜 공자와 노자의 만남을 보여주었을까. 공자와의 만남이 노자에 대한 유일한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자의 방향 전환에 노자가 미친 결정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싶어서가 아닐었을까? 우리는 노자가 공자에게 말한 것 중에서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라고 말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틀리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맞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과연 그의 말을 따른 사람이 있었을까? 없었다. 그는 그냥 과시하고 싶었던 거지 같이가자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냥 '옳은 말, 틀리지 않는 말'이 전부였다. 공자님의 방향전환이 없었다면 어쩌면 '옳은말' 안에서만 끝이 나지는 않았었을까 생각해 본다.

P.25
공자는 만 13년간 긴 유랑생활을 보내고 와서 출판과 교육에 전념했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육경을 편찬했다.
  • 어쩌면 교육과 출판이 공자님의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실무 경험도 중요했겠지만...

P.30
「논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논어」가 대화록이라 계통도, 일관성도 없다.는 말은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도 된다는 말이 된다. 말하자면 그냥 읽는 것이 정답이라는 식이다.

P.40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워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심과 신의를 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P.42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는 (자식된 자로서) 그분의 뜻을 살피고
  • 부모의 걱정을 끼치지 않는게 효의 기본이다.

P.43
믿음이 의로움에 가까우면, (그)말은 실천할 수 있다. 공손함이 예의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하게 된다. 혼인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그 친함을 잃지 않는다면 역시 존경할 수 있다.
  • 사람관계는 義와 禮가 어디서나 중요하다.

P.45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가)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라.
  • 회사 후배들에게 해야 할일들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의 불편함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개선하면 좋을 지 묻고 대답하고 지원해주는 일

P.47
학문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치를 통해 뜻을 필치기 위함
  • 처해진 상황이나 나이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Fact더 라도 그 단면만을 잘라서 이해할 수 는 없다. 전체적인 맥락안에서 이해를 하고 해석을 해 낼 수 있어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P.49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다른) 모든 별이 함께 그를 떠받들어 도는 것과 같다

P.49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 할 줄도 알고 (잘못을) 바로 잡게 된다.
  • 옳은 말이기는 하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을 택하기 보다 큰 줄기는 덕으로 대하되, 규칙은 필요한 것이다.

P.52(+)
부모는 오로지 그 (자식의)질병을 근심한다
  • 이 구절을 보았을 때, 내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의 근심은 자식의 모든것에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건 생명자체와 직결되는 질병이 가장 먼저다. 그래서 마음에 닿았다.

P.54(+)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 옛것을 익힌다는 것은 '정신과 사상'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옛것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미래가 될 수 있으며 현재를 살펴 길을 제시한다면 스승 뿐아니라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전을 익히는 것에 대해서, 사상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P.55(+)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해설)군자란 종묘의 제사 그릇처럼 일정한 모양과 크기를 갖춘 자가 아니라 세상의 온갖 이치를 두루 알 수 있는 회통하고 유연성을 갖춘 그런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 정해진 틀이 아닌, 유연한 존재. 유연하기 위해서는 지난 것도 지금것과도 通해야 한다.

P.56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 배우며 생각하며 실천하는 삶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의 시대일 듯 하다.

P.58
정직한 사람을 천거하여 비뚤어진 사람들 위에 두면 백성들은 복종하겠지만, 비뚤어진 사람을 뽑아 정직ㅎ나 사람 위에 두면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 信이 우선시 되지 않을 경우 조직은 유지 될 수 없다. 그런데 자꾸만 得을 들이대니까 서로 그렇게 바라보는 거라 생각한다.

P.60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구나

P.73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심으로 섬깁니다"
  • 나는 예와 충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들어는 봤는데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고 내 몸가까이 붙여본적이 있던가? 들어봤다고 들어본것이라 할뿐, 내가 아는 것은 진정 없었다. 세상에 대해 내가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77
여러분은 (어찌 관직이) 없는 것을 걱정합니까?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 오래되었으므로 선생님을 (세상의)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주석 : 목탁이란 백성을 지도하거나 인도할 만한 사람을 비유하며, 어리석은 이들을 가르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 즉 공자를 비유한 말이다.
  • 공자님의 진면목을 제일 잘 알아보신 분 

P.83
정말로 인(仁)에 뜻을 두고 있으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P.83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道) 얻은 것이 아니면 누려서는 안된다.
  •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가 나의 실천적 의지이긴한데, 때론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중하자. 그건 내 마음에 넣을 것이지 함부로 꺼낼건 아닌거 같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말보다 행동이라고 하신거 같다. 
P.85
선비가 도에 뜻을 두면서, 허름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와는) 더불어 논의할 만한 가치가 없다
  • 본질에 충실하고 본질을 봐야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된다면 외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P.85
군자는 천하에 대하여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어서 의로움만을 함께할 뿐이다.

P.86(++)
이익에 의거하여 행동하면 원한이 많아지게 된다.
  • 사업을 하면서 가끔씩 되돌아 볼 말이다. 

P.87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자리에) 설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P.87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성심성의를 다하는 마음)과 서恕(남을 배려하는 마음)일 뿐이구나!"

P.88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P.89~90(++)
옛날 사람들이 (입밖에) 내지 않은 것은 몸이 (말을)따라 갈 수 없을까 부끄러워 했기 때문이다.

P.89(++)
군주를 섬기는 데 (간언을) 일삼으면 곧 모욕을 당하게 되고, 친구에게 (간언을) 일삼으면 곧 소원해 질 것이다.
  • 간언 :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621900
  • 데일리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비난, 비평, 불평을 하지말라던 말이 생각난다. 
  • 묻지 안으면 말하지 말라던 그말이 생각난다.

P.103
군자의 도 네가지를 갖추고 있었으니, 행동할 때는 공손하고 윗사람을 윗사람으로 섬김에 있어서는 공경하며, 백성을 봉양 함에 있어 은혜롭고, 백성을 부림에 있어서는 외로웠다.

P.110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들을 품어주고자 한다
  • 노인, 벗, 젊은이 = 사람

P.117
쟁기질하는 소의 새끼가 붉은색이고 뿔을 가지런하다면 비록 (제물)로 쓰지 않으려 해도 산천의 신이 어찌 그를 내버려 두겠느냐
  • 꽃의 향기가 짙으면 벌은 찾아온다. 

P.117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인을 지키는 것이)하루나 한달일 뿐이다.

P.120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미리)선을 긋고 (한계를 짓고) 있다.
- 주석 : 능력의 부족이 아니고 의욕과 집념의 문제라는 것이다.
  •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선을 긋기도 벅찬 일로 짜증이 날때도. 꾸짖기 보다는 이해의 차원에서 설득을 하는게 좋겠다 싶다. 그게 나이든, 남이든. 

P.123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P.128
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일으켜주고, 자신이 이루고자하면 남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운 데서 구체적인 예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仁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하는데 있다

P.131(+)
공자는 자신의 네가지 근심거리 중의 첫번째를 덕을 닦지 못한 것으로 둘 만큼 배움과 덕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

P.133
덕을 닦지 못한 것, 배운 것을 강습하지 못한 것, 의로운 것을 듣고서도 찾아가지 못한 것, 좋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한 것, 이것이 나의 걱정 거리이다.

P.138
음악을 지은 것이 이런 경지까지 이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P.139(+)
거친 밥을 먹고 (차가운)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그것을 베개로 삼으면 즐거움도 그 속에 있다. 의롭지 못하면서 잘살고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만 같은 것이다.
  • 의로움안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P.141
나는 태어나면서 부터 (세상의 이치)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을 추구한 사람이다.

P.141
입에 올리지 않은 것
공자께서는 괴이한 일, 위세부리는 일, 어지럽히는 일, 귀신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P.142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가려서 그 점을 따르고 그 가운데 좋지 않은 점을 (가려서) 그 점을 고친다

P.143
선생님께서는 네가지를 가르치셨으니 문학, 덕행, 충심, 신의였다.

P.144(++)
아마도 알지 못하면서도 창작하는 자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많이 듣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을 선택하여 따르고, 많이 보고 그것을 (마음에)새기면 (이것이) 아는 것에 버금가는 일이다.
  • 내가 해야 하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P.144
나아가는 자와는 함께하고 퇴보하려는 자와는함께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심한가! 사람이 자신을 깨끗이 하여 나아가면 (우리는)그의 깨끗함과 함께하면 되지, 그의 지난 일을 붙들 수는 없다

P.144(++)
인(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하고자 하기만 하면 인은 바로 (나에게) 다가온다

P.148
사치스러우면 불손해지고, 검소하게 되면 고루해진다. 불손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루하라

P.153
증자가 인정한 안회의 덕은 역시 남들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어디지 좀 모자라게 보이게 하는 매력을 지닌 데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 허허실실 인건가?

P.156
만일 주공과 같은 훌륭한 재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만약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필요도 없다.
  • 재주가 있음이 먼저가 아니라, 예의를 지키는 사람됨이 먼저다.

P.158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해당되는) 정무를 논의하지 않는다

P.158
아름다움이 넘쳐 귀에 가득 차는 구나
  •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P.172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 구나!"
  • 세월의 흐름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점점 빨라진다.
  • 세월의 속도는 나이의 속도

P.202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은 섬길 수 있겠는가?(중략)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
삶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P.204
유(자로)가 거문고를 어찌하여 내 집 문앞에서 타느냐?
- 주 : 거친 성격의 자로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을 공자는 듣기조차 싫어했는데 그 이유인즉 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 그런 어이없는 소리를 듣는 제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온갖 좋은소리를 다 해대면서 자신의 제자에게 이런 소리를 하다니. 이해가 안가는 소리.

P.205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P.206
(옛 성인의) 자취를 밟지 않으면, 역시 (성인의) 방 안(높은 경지를 비유)에 들어갈 수 없다.

P.207
미덥게 말하는 이를 칭찬할 때, (살펴라) 군자다운 사람인지, 표정만 장중한 사람인지

P.212
나를 다스리는 것은 예로써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혼하지 않아서 웃은 것이다.
  • '예'의 마음가짐이 어디 나라를 다스리는 말에만 있겠는가? 모든 일에 '예'를 다하는 것이 仁이라는 것이겠지. 

P.216(++)
안연이 인(仁)에 대해 여쭈었다.(중략)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갈 것이다. 인을 행하는 방법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겠는가?(중략)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거라.

P.218(++)
안으로 반성하여 꺼림칙하지 않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 이말이 참으로 맞다. 자신을 들여다 봐서 꺼림직한 것이 없다면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P.219
내가 듣건데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잘 살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군자가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소홀함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과 공손하게 지내고 예를 갖춘다면, 사해 안이 다 형제 입니다.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P.220(+)
백성이 믿어주지 않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 믿음과 신뢰를 지속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건,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그들을 도와 주는데 있다.

P.224(+)
승낙한 것을 (하룻밤) 묵혀두는 일이 없다.
  •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하루정도 묵혀두는 것이 좋다. 생각난대로 묵혀두고 결정하다보면 간혹가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P.225(+)
관직에 있을 때는 게으르지 않고, 정사를 행할 때는 진심으로써 한다

P.229(++)
번지가 인(仁)에 대해 여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번지가) 지혜로움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P.236(++)
윗사람이 예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로움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진정으로 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끈다는 것은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들을 위해서 해주는 것

P.237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지만, 그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P.240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
  • 우선은 나부터 변해야 한다. 남들이 어떻든 우선 나부터 변해야 변화를 이끌 수 있다.

P.266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것에 대해 어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속이려 하지 말고 (얼굴을) 대놓고 (간언하도록) 해라."
  • P.89 에서는 경계의 의미로, 지금은 진실성의 의미로 해석하는게 좋겠지.

P.267(+)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다
  • 나는 지금 내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수양을 쌓아가고 있는가?

P.282(+)
자장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할 수 있는지 여쭈었다.(중략)
말은 진실되고 미더우며, 행동은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야만의 나라에서도 통용될 것이다.

P.287
군자는 의로움을 바탕으로 삼고 예로써 그것을 실행하며, 겸손하게 그것을 드러내고, 믿음으로써 그것을 이룬. (이런 사람이) 군자로다.

P.288(++)
한마디 말로 평생동안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중략)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 서 : http://hanja.naver.com/hanja?q=%E6%81%95
  •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38935629&dir_id=0&page=0&query=%EC%84%9C&ndsCategoryId=10103&library=32
  •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도 하기 싫은 것이지.

P.290
잘못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바로) 잘못이라고 한다.

P.302
유익한 벗이 세가지이고, 손해가 되는 벗이 세가지이다.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미더운 사람을 사귀며,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다. 아첨 잘하는 사람을 벗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사귀면 손해다.
  • 말재주가 많은 사람과 벗하면 내가 그 말재주에 현혹되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P.316(++)
다섯 가지를 천하에 실행할 수 있으면 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영민함, 은혜다. 공손하면 모욕을 받지 않고, 너그러움을 베풀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며, 믿으면 사람들이 신임하고, 영민하면 공을 세우게 되며, 은혜로우면 사람을 충분히 부릴 수 있다.

P.324(+)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만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그러니) 3년상은 천하에서 통용되는 상례인것이다.

P.326(++)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중략)
미워하는 게 있다.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미워하고, 용감하기만 하고 예의가 없는 사람을 미워하며, 과감하면서 융통성 없는 사람을 미워한다.
사야,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다른 사람의 공적을 훔쳐 아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겸손하지 못한 것을 굥감한 것처럼 하는 사람을 미워하며, 다른 사람의 비밀을 까발리는 것을 솔직한 것처럼 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P.344
모든 장인은 공장에 머물면서 자신의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움을 통해 그 도를 이룬다.


III.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1)아쉬운 점

2. 보완이 필요한 점
1)아쉬웠던 부분
  • 한자의 음을 달아 두었으면 좋았겠다.
  •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에서 처럼 간단한 주석처리 보다는 내용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책을 만들었다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2)이해가 안된 부분
  • 공자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익히셨을까?
  • 공자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왜 공자님을 따른 것일까? 단지 좋아서만? 뭔가 얻어갈것이 있어서?.
  • P.204에서 자로의 거문고 소리를 듣기 싫다고 하면 되지, 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했을까?
  • P.302에서 말재주가 뛰어난 벗은 왜 해롭다는 것일까?
3. 이 책의 장점
  • 삶의 길을 짚어주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말씀이었다.
  • 용서는 평생을 해 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건 남에게 건.
  • 말로 만 듣던 인(仁)에 관해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P.316 :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영민함, 은혜
4 내가 책을 내는 출판사의 입장이라면 
  • 공자님의 일대기를 장 정리해 놓겠다.
  • 공자님의 제자들을 정리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겠다.
  • 한자의 음을 달아두어, 원문으로 배우려는 독자들을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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