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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2일 11시 2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공자(기원전 551~479)

공자(孔子) 또는 공부자(孔夫子)는 유교의 시조(始祖)인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 · 사상가 · 교육자이고, 노나라의 문신이자 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흔히 유교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나,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유가의 성격이나 철학이 일반적인 종교들과 유사히 취급될 수 없다는 점에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처럼 호칭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유가 사상과 법가 사상의 공동 선조였다.

 

정치적으로는 요순우 삼황 오제의 이상적 정치와 조카를 왕으로서 성실하게 보필한 주공 단의 정치 철학을 지향했다. 뜻을 펴려고 전국을 주유를 하였으나, 그의 논설에 귀를 기울이는 왕이 없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다 생을 마쳤다. 춘추시대 에 서주의 제후국인 노나라()의 무관인 숙량흘(叔梁紇)의 둘째 아들이자,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구(),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孔子)" 또는 "공부자(孔夫子)"로 불린다. "공자(孔子)"의 호칭에서 "()"는 성인(聖人)인 공자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 그 뒤 여러 번 추증되어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에 추봉되었다.

 

공자의 제자 중의 한사람인 자궁(子弓)의 제자로 이어지는 학파에서 순자가 나왔다. 유교의 한 학파를 형성하였으나 자궁과 순자 등으로 이어지는 학맥에서는 전국시대에 이사, 상앙 등의 법가로 발전했다.

곡부 공씨는 공자 이전에도 선조가 있었으나, 가문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공자를 시조로 간주한다.

한국의 공씨는 원나라 때 고려로 건너온 공자의 후손 공소(孔紹)를 시조로 한다. 원나라 순제의 조정에서 한림원학사를 지낸 공소는 원나라의 멸망의 조짐이 보이자 고려로 건너왔고 한국 공씨들의 선조가 되었다.

 

정치활동

공자의 인망은 해를 더할수록 거듭 높아져 기원전 499년에는 대사구(현재의 법무부 장관) 벼슬에 기용되었고 최고 재판관 및 외교관직도 겸하게 되었다.

 

당시 공자는 순장될 뻔한 아이를 구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때까지 이어져 오던 순장의 악습을 왕에게 간하여 끝내 폐하였다. 또 제나라 경공과의 회동에서 뛰어난 지략과 용기로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단지 협상만으로 노나라가 잃었던 옛 땅을 되찾는가 하면, 당시 권세가였던 삼환씨의 횡포를 꺽기 위해 그들의 요새인 삼성(三城)을 허무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계손사의 저항으로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다. 계손사는 노나라 삼환 계손, 맹손, 숙손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이 무렵, 공산불뉴는 삼환과 계손사의 전횡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공자 역시 삼환 등의 무리를 몰아내 어지럽혀진 노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이미 일을 꾀했던 데다 도덕 정치 구현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반역자 공산불뉴가 하극상을 벌인 처지임에도 그가 초빙했을 때 이에 응하는 문제를 놓고 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노나라 출신 제자였던 맹의자, 남궁도등의 만류와 때마침 벌어진 상황 여건의 괴이한 변화로 인해 결국 단념하였다.

 

공자는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방자하게 권세를 휘두르는 계손사를 타도하려고 여러 모로 계책을 꾸몄으나 일이 성사 단계에 가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계손사의 미움을 받은 공자는 기원전 496년에 노나라를 떠나 수십 명의 수행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시켜 줄 어질고 현명한 군주를 찾아 기약 없는 여정에 나섰다.

 

무려 10여년이 넘게 걸린 이 주유열국(周遊列國)의 기간은 성인(聖人)인 공자로서도 참기 어려운 고달픈 세월이었다. 이 무렵 공자는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그 같은 봉변으로 인해 여행 도중 만난 은자(隱者)들에게 수모와 조롱을 당하기도 하였다.

 

공자의 도덕정치는 어느 나라에서도 외면 당했다. 당시의 왕들은 더디더라도 올바른 길을 택하기보다 손쉽게 국력을 팽창시켜 천하를 제패할 부국강병의 방법만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마침내 자신의 학문적 이상이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제후와 군주들을 설득하는 일을 단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귀국 후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미래 세대에 남은 희망을 모두 걸게 되었다. 이로써 공자의 정치적 삶은 마감되었고 이후에는 교육자로서의 본격적인 삶이 시작되었다

 

제자들

 

공자의 문하(門下)에서는 걸출한 대학자가 무수히 배출되었는데, 육경(六經)에 통달한 이만 해도 무려 7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을 가리켜 '칠십자(七十子)'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식이나 덕망, 재능이 출중하여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열 사람의 제자를 가리켜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한다. 이들은 안회(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재아(宰我), 자공(子貢), 염유(冉有), 자로(子路), 자유(子有), 자하(子夏) 등이었다.

 

공문의 많은 제자들 중 안회(顔回)의 학문과 덕이 가장 뛰어났다. 이는 스승인 공자와 동문 선후배 등이 모두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안회는 스승인 공자보다도 먼저 세상을 떠나 그를 크게 상심시켰다. 그의 학통을 후대에 전한 인물은 증자와 자궁(子弓)이었다.

 

덕행(德行)으로는 안회(顔回), 민손(閔損), 재백우(再伯牛), 중궁(仲弓)이며, 언행은 재예(宰豫), 자공(子貢)이며, 정사(政事)에는 재구(再求, 자유(子有)의 본명), 중전(仲田, 자로(子路)의 본명)이고, 문학(文學)에는 자유(子游자하(子夏)이다. 그 외에도 증자(曾子), 자장(子張), 자궁(子弓), 유자(有子)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증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를 가르쳤고, 훗날 맹자(孟子)가 자사에게서 배웠으니, 맹자학파는 증자가 배출한 셈이다. 자궁의 손제자들 중에 한 분파는 순자와 한비자로 이어졌고 이는 법가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말년

 

아들과 아끼던 제자들을 잇따라 잃고 상심에 빠진 공자는 고향인 곡부로 돌아와 후학 양성으로 만년을 보냈다.

 

공자는 만년 들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말하기를, "나이 열다섯에 학문의 길로 가기를 마음 먹었고, 서른에 이르러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렸으며, 마흔에는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었고, 쉰에 이르러서는 하늘의 뜻을 모두 알았으며, 예순에는 모든 일에 대해 순리를 알 수 있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하였다.

 

공자는 73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하하였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말씀들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리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에도 수 천 년 동안이나 이어지며 중국을 비롯하여 이른바 '중화(中華)'의 국제 질서에 속한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종범(宗範)이 되었다. 또 공자는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한 세계 각국에서 인류의 영원한 스승으로 추앙되고 있다.

 

 

김원중

 

충북 보은에서 출생했다. 충남대 중문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중국 고전문학 이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이완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의 방문 학자와 타이완 사범대학 국문연구소의 방문 교수를 역임한 뒤 건양대에서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단국대 중어중문과 교수로 재임중이다.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 편집위원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천년의 강의-사마천의 생각경영법’(공저) ‘중국문화사’ ‘중국문학이론의 세계’ ‘통찰력 사전’ ‘중국 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편저서로는 고사성어 백과사전’ ‘허사대사전’ ‘허사소사전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사기 본기’ ‘사기 열전’ ‘사기 서’ ‘사기 세가’ ‘정사 삼국지’ ‘당시’ ‘송시’ ‘손자병법’ ‘정관정요등이 있다. ‘위진현학가의 자연관의 사유체계와 문론가에 끼친 영향30여편의 학술 논문도 발표했다.

 

'논어'는 이미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계속 논어에 대한 번역이 출간되는 것은 그만큼 번역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옮겨질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김원중 교수가 이번에 번역해 내놓은 논어는 지금까지 한국의 논어 번역 성과를 수용함과 동시에 기존의 역서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고려했다.

몇 가지 새로운 원칙을 세워 독자들에게 더 잘 읽히고 의미도 있는 역본을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모두 20편이며 이는 다시 수백 개의 장으로 나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공자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저술'이 아니라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사후에 갈무리하고 편집해서 이뤄진 어록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논어를 잡는 독자들은 책을 한 흐름에 읽어나가기에 불편함이 있었고, 주제가 계속 바뀌어 장과 장 사이의 단절감이 크다. 그래서 김 교수는 장마다 간단하게 소제목을 달아 독자들이 주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전편해제, 각편해제, 풍부한 각주 등을 달고 원문도 수록해 읽는 재미를 충분히 느끼도록 했다.

지금까지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한 김 교수는 이번 논어 완역의 의미를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논어 속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의미하면서 공자의 말씀 하나하나를 원전에 충실하게 옮기고 원전 특유의 깊이와 결을 느끼도록 노력했다앞으로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중국과 우리나라의 핵심 고전들을 하나 하나 번역 작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5. 13년 이상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니며 벼슬을 구했던 공자는 68세에 노나라로 돌아와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 한 권의 영원한 고전을 남겼다.

후대에 이렇게 인정받는 그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그렇게 없었을까?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는 진부한 말로는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공자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그토록 원하는 벼슬을 하다가 죽는 것이 더 나았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논어>에 대해 칭송하고 위대한 사상가로 인정해주는 것이 나을까? 나는 당연히 전자다. 내가 죽으면 그만인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내 죽음으로 끝인데. 물론 둘 다 하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5. 주나라로 대표되는 상고 시대를 숭앙했고, 봉국의 신민으로서의 자세를 늘 견지했지만,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현실에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공자의 입지는 결국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만든 패권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의의 휴머니즘으로 이어졌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도덕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그런 사람들은 먹고 살만해져도 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힘든 시기에도 도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바뀌지 않는다. 공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6. 그의 예제는 지나치게 삶을 속박한다고 비판받았고, 그의 실천은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인 줄 알면서도 추구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 확실히 공자의 사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우리에게 이상향과 같은 것이 아닐까. 가고 싶지만 갈수 없는 곳.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

 

6.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공자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그는 지식인이었기에 진정한 호학의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70여명의 제자를 유교무교라는 원칙에 따라 한 명 한 명 대하며 어떤 때는 날카롭게 꾸짖고, 어떤 때는 격려해주고, 어떤 때는 한없이 소탈하게 제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던 스승이다.

스승으로서는 최고인 것 같다. 많은 제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당연히 스승의 언행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제자들이 따르는 걸 보면 그는 참 스승이다.

 

7. 필자가 번역을 하면서 가장 큰 원칙으로 삼는 가독성의 문제, 즉 읽히는 번역을 완전히 추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괴롭혔다. ....대화체이고 어록체이다 보니, 한 마디 한 마디 툭툭 던진 것들의 역사적 맥락과 철학적 함의를 풀어가면서 어떤 일관된 번역 원칙을 고수하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감사드린다. 당신덕분에 이렇게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9. 지난 20여 연간 나는 늘 새벽 3시에 일어나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해왔다. 주말과 휴일도 예외없이 홀로 고전과 씨름해 온 일은 옛 정신을 대면하는 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역시 꾸준함의 힘이 있었다. 새벽 3시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20년을.

이런 말을 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열심히 읽는데 일이 잘 안되네요.” 이런 사람은 정말 있을수 없다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뭐라도 안된다는 것은 거짓이다. 열심히 안했으니 안되는거지 열심히 하는데 안되는 일은 없다. 노력의 배신이 가장 큰 배신이지만 배신당한 사람은 조용히 생각해봐야 한다. 진짜 열심히 했냐고?

 

해제

 

1, <논어>는 어떤 책인가

 

18. 어떻게 보면 <논어>는 단편적으로 문장을 모아놓았고 실제로 읽어보면 일관된 배열의 원칙도 살펴지지 않는 책이다. 문장 상호간의 연관성도 부족하다.

그만큼 인위적이지 않다는 것 아닌가. 꼭 기---결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잖아.

 

18. 어록집으로서 <논어>가 갖는 비체계성은 오히려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드높여준 것으로 판단된다. 공자의 술이부작원칙 덕분에 오히려 책에서 공자의 언행과 생활 습관 등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데 그 말이 그말 아닌가. 그런데 난 좀 이상하다. 이 논어라는 책도 공자가 죽은 뒤에 제자들이 쓴 책이라는데 왜 공자는 주역을 읽으면서 위편삼절을 했을만큼 책의 중요성을 알면서 본인이 좋아하고 가르치던 것을 책으로 낼 생각을 못했을까?

 

 

18. 우리는 <논어>에서 철저히 비주류로 살다 간 실패한 정치인이 어떻게 위대한 사상가의 자세를 견지하는 지를 생생하게 살펴 볼 수 있다.

사람이 비주류로 사는 건 쉽지 않다. 누구나 주류를 꿈꾼다. 오히려 철저하게 비주류로 살아가는게 더 힘들 것이다.

 

18. 제자들이 엮었기 때문에 스승의 언행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엮었을 가능성이 크다....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책, 풋풋하고 싱그러운 멋도 있는 그런 말씀, 때로는 인간 공자의 편견과 아집, 쓸데없는 자존심도 그대로 실려 있는 그런 인간다운 어록집이란 말이다.

정말 그럴까? 스승에 대해 정말 사실대로 적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좀 부정적이다.

 

19. 아무래도 스승이 다소 거슬리는 말을 하면 그것을 재편집해서 수록하고 싶기도 했을 터인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마 제자들은 공자의 허례허식 비판이나 내용과 실질이 다른 위선에 대한 성찰을 깊이 받아들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반대로 제자들은 그렇게 못하지. 자기를 낮추어 스승을 높여야 하는 것이므로

 

20. 사마천은 무관의 제왕 공자의 여러 정치적 활동과 그의 사상을 두고 주공 다음가는 위대한 성인으로 평가했으며, 그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서도 결코 인색하지 않은 평가를 내렸다. 또한 굴곡진 삶에 대한 안타까움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굴곡진 삶을 산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21. 공자가 어린아이로서 장난 칠 때, 늘 조두(俎豆, 나무로 만든 제사 그릇)를 늘어놓고 예의와 자태를 갖추었다.

이런게 난 안 믿어진다. 어린아이가 제사가 많은 집안도 아닌 홀어머니 밑에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성인반열에 오른 공자지만 그럴수 있을까 의구심은 든다. 하긴 예수님도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했다고 하니....

 

21. 이런 가정환경으로 볼 때 공자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된다. 젊은 홀어머니 슬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공자는 자립하여 학문을 이루고 가정도 꾸렸다.

공자 어머님의 교육관이라는게 있었을까? 보통 아낙네는 아닌 것 같다. 숙량흘이 안씨 집안에 청혼을 넣었을 때 첫째, 둘째 딸은 안가겠다고 했을 때 셋째 딸인 안징재가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낳은 자식이다. 그리고 야합이라는 오명하에 숙량흘과의 관계도 끊어버리고 아버지의 무덤도 안 가르쳐준걸로 나오는걸로 보면 보통여자는 아닌 듯하다. 그러니 공자가 나왔을 것이다.

 

 

22. 공자는 노자에게 예()에 관하여 물었다. 그러자 노자는 부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과 야심을 버리시오라며 공자의 위선적인 태도를 나무라고 있다. 노자와 만나서 충고를 들었던 공자는 고향 곡부로 돌아가 제자들을 기르기 전의 공자이다. 사마천은 왜 공자와 노자의 만남을 보여주었을까.....공자의 방향전환에 노자가 미친 결정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노자가 공자에게 말한 것 중에서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라고 말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은 공자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사마천이 생각하고자 하는 점은 무엇이었을까? 노자와 공자는 각기 다른 길을 가면서도 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사상가들이다. 물론 사마천이 바라본 회통의 세계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국 인간이 지향하는 삶은 그 방법이 달라도 크게는 통한다는 의미이다. 세세한 차이에 집착하지 않고 융합과 소통, 회통이라는 길을 모색하다보면 고뇌에 찬 삶도 새로운 지평으로 열릴 것이라는 논지가 아닐까?

아무튼 공자는 노자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다. 공자가 정말 노자의 말을 듣고 벼슬을 구하러 다니는 것에서 때가 안 맞음을 느끼고 방향을 바꾸어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육성에 힘썼을 수도 있다.

 

24. 주나라 천자의 권위를 회복하여 그 시대의 예제를 본받음으로써 새로운 천하를 구축하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24. 공자는 서른 살 남짓 되었을 때, 주 왕실로 들어가 책을 보았으며, 삶의 대부분을 정, , , 제 등과 같은 이웃 나라들에서 벼슬을 얻고자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본격적인 유세를 나선 것은 지천명의 나이도 넘은 55세였다. 그로부터 68세까지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에게 일자리를 구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13년 동안 직업을 구하려 다녔는데 결국은 실패했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13년이 공자를 더 단단하게 했고 자기를 몰라주는 세상이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25. <논어> 곳곳에서 확인하듯 공자는 기존 귀족들이 누리던 세습적 특권을 과감하게 무시했다. 심지어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공자가 탄압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은 그 가르침의 내용이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26. 공자는 세상을 떠난 뒤 300년이 채 못 되어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나. 물론 장단점이 있지만... 지금도 논어를 읽고 있다.

 

29. 공자가 추구한 인의예악은 오늘날에도 현실성이 부족해 보인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것에 급급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공자가 추구한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다만 누구도 시급한 것으로 추구하지 않을 뿐이다.

다시 이 말을 요약하면 공자의 사상은 세상이 어지럽지 않고 태평성대한 주나라처럼 그런 상황에 적합한 것이 아닐까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지만 그런 태평성대의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논어를 아직 읽어보지 않고 이렇게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읽어보고 판단하자.

 

33.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성공한 사람들은 좀 더 겸허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발분하여 통찰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공자가 제시한 인()은 결국 그의 말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愛人)’것이고 이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대단히 원활하게 하는 인간관계론의 기본 축이다.

 

1편 학이(學而)

 

35. 이 편에서 가장 논란이 된 말은 자기만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논란이 될 만하네. 사람을 높고 낮음을 판단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 친구로 두라는 말이잖아.

 

36. 삶의 즐거움 1.1

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말은 쉬운데...과연 남이 알아주지 않는데 그 길을 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군자일 것이다.

 

38. 세 번 반성할 일

나는 날마다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도모하는데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사귀면서 믿음이 없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나는 오늘 어제보다 나아졌는가, 시간을 잘 보냈는가, 내일은 더 잘 보내야 겠다로 다짐하곤 하는데 군자가 되지는 못할 듯. 오로지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니

 

40. 잘못된 것은 고쳐야지

충심과 신의를 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無友不如己者)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

첫 번째는 반대다. 친구를 골라가면서 사귀라는 말인데 나보다 못하다 낫다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보다 나은 면도 있고 못한 면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울만한 무엇은 있다.

두 번째는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음이 제일 나쁜 것이다.

 

42. 효의 의미

3년동안 아버지의 도리에서 고침이 없다면 효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년상을 하라는 말이 없는데 3년상을 해왔네.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43. ,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이 있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원망이 없을 수 없으며 원망하는데도 절제가 없으며 다투게 되는데 다투게 되면 혼란스럽게 된다. 선왕은 그처럼 어지러워지는 것을 싫어했으므로 예의를 제정하여 사람들의 욕망을 길러주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욕구로 하여금 사물에 대하여 고갈됨이 없게 하고, 사물은 욕망에서 굴복됨이 없도록 하여, 두 가지가 서로 기대어 성장하는 것, 이것이 예가 일어난 바이다.

욕망이 나쁜건 아니다. 욕망은 사람의 성장동력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예는 이를 통제하는 의미일 것이다. 둘 사이의 균형과 조화

 

44. 절제의 미학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함에 신속하고 신중하며,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스스로를 바로잡으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것 해당하는데 없다. 한번 먹으면 배부름을 추구하고 최대한 편안함을 누움을 좋아하고 일은 신중하면서 마감에 임박해서 쓰고 안 좋은것만 다하네. 배부르면 눕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항상 다 채우지 않고 남겨두는 것. 신영복 선생님이 얘기한 70% 자리잡기.

그래도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나도 그렇다고 하면서 위안을

 

44. 가난과 부유함에 대하여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셨다.“괜찮겠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으로 삼고,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옳은 말인데 실천은 정말 어렵다. 더군다나 이제 편안함과 돈에 대해 적응될 때로 되었는데 가난함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일 것이다. 그 좋아하는 커피를 못먹는 건 더 참을수 없는 일일텐데. 그래서 부유하면서 예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45. 자공이 물었다. “<시경>에서 ‘[칼로] 끊듯이, [줄로] 갈듯이, [정으로] 쪼듯이 [숫돌로] 윤을 내듯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지나간 것을 알려주었더니 다가올 것을 아는구나.“

切磋琢磨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스승의 칭찬은 백마다 말보다 낫다고 하는데 자공은 진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45. 허명을 경계하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남을 알아주지 않은 것을 근심하라.”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남이 알아봐 줄수밖에 없다. 공자도 당시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성인반열에 올라가 계신다. 남이 알아봐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자기 능력을 키워라. 그러면 자연히 알아봐준다.

 

2爲政

 

47. 형병이 주장한 것처럼 학문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통해 뜻을 펼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대부분은 그게 정치이든 기업이든 성공하기 위해 하고 일부분은 그저 좋아서 하고.

 

47. 공자는 덕이 있는 자의 정치와 능력이 출중한 자의 정치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결국 덕정을 선택했다. 공자는 정치를 인품의 문제로 다루려 했고 효치라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효를 강조했다. 효란 어긋남이 없다고 한 말이나,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라는 말, 봉양이란 공경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그이 효론은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 하나도 신경을 써야 할 만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효제의 실천이 곧장 정치적 덕목으로 확장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패권주의가 난무한 와중에 이런 말에 귀 기울여주는 제후나 군주는 거의 없었다. 그가 13년여를 주유하게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이상론을 현실에 곧바로 적응하려 한 순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반문해 본다.

이론은 덕이다. 그러나 정치가 이론으로 된 적이 있었나. 정치는 현실이고 투쟁이고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야당이 있듯이.

 

49.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덕은 백성이 아니라 지식층, 상류층이 더 문제인 것이다.

 

50. 마흔이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이 되어서는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여기서 나온 것이구나. 요즘은 60살이 되어야 미혹되지 않지 않나.

 

50. 말하자면, 자기의 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도록 운명지어졌는지 등을 아는 것이며 공자가 51세에 관직에 나간 것과 관련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공자는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50. 그는 길에서 만나 초나라 광인 접여, 장저, 걸익 등이 빈정대고 풍자하는 말을 모두 귀담아 들었다. 심지어 정나라에 이르렀을 때 성의 문지기가 공자의 외관을 보고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하는 말마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말 이순(耳順) 되었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아기가 되어 참기가 더 힘들어지는데. 이 같은 모욕도 아무렇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공자가 대단하다.

 

51.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스로의 변화된 상태를 단계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말한 것이지, 타인에게 이러한 삶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강요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공자가 얘기한다. 그러면 왠지 그런 삶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 개선하고 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54. 사람을 아는 방법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는지 관찰하고, 그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세밀히 살펴보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커피와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더욱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커피가 첫 맛에서 결정되듯이 사람도 지금 하고 있는 행동, 말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다. 말에서 행동에서 일에서 그 사람의 특성은 나오는 것이니까

 

55.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공자가 얘기한 것처럼 모양, 형태가 정해진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어떤 그릇에도 담을 낼 수 없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55. 군자란 종묘의 제사 그릇처럼 일정한 모양과 크기를 갖춘 자가 아니라 세상의 온갖 이치를 두루 알수 있는 화통하고 유연성을 갖춘 그런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인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55. 군자는 원만하지만 붕당을 이루지 않고, 소인은 붕당을 이루지만 원만하지는 않다.

소인은 혼자서는 감당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끼리끼리 모여서 패거리 정치를 하는 것이다.

 

56. 이단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물론 해로운 것은 안다. 그러나 묵가나 제자백가들을 이단으로 생각한다면 이를 피하지 않고 인과 덕으로서 그 이론과 논쟁을 해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제자백가 사상을 받아들이는 백성들을 구해줘야 되지 않다. 마치 똥이 더러우니까 피하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러나 나는 소인인가보다. 공자는 그러한 논쟁에 휩싸임으로써 갈등만을 조장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중용의 도를 추구한 것이다. 진정한 최고는 가만히 있어도 최고가 되는 것처럼

 

57. 녹봉을 구하는 자세

많이 들으면서도 의심나는 것은 남겨두고, 그 나머지 부분을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을 적게 할 것이다. 많이 보면서도 미혹된 것을 남겨두고 그 나머지 부분을 신중하게 실행하면 후회를 적게 할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봉은 그 안에 들어 있다.”

녹봉을 구한다는 것은 관리가 되는 것.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중한 언행으로 허물과 후회가 적어지면 관직에 나아가기 쉽다는 뜻일 것이다.

 

61. 의로운 것을 보고서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見義不爲 無勇也

무언가를 안다는 것, 지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의롭지 않은 것에 당당해져야 하는데 무언가를 알면 알수록 회피하게 되는 것은 지금의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게 내가 되어볼 용기가 있는가! 이제는 해볼 만하다. 해보자.

 

3八佾(팔일)

 

63. 예악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공자는 예악을 과 결부시키고 있는데, 예의 근본을 검소한 것에 둔 것, 상례의 기본은 슬픔이라고 한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공자는 지나친 형식 중심의 예약제도도 비판했다.

 

64. 참을 수 없는 의식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했으니,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참아 낼 수 없을까?”

공자의 울분이 느껴진다. 갑자기 여기서 만약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면 노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든다. 중국을 통일했을까? 아니면 그래도 운명은 바꿀 수 없었을까?

 

65.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예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음악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65. 예는 사치스럽다기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일사천리로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

예를 지내기 위한 그 모든 절차 보다는 그 예의 본질이 중요하다. 아무리 喪事의 예가 중요하다지만 슬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겠나.

 

66. 華夷之辨

오랑캐에게는 임금이 있으나, [이는] 중원에 [군주가]없는 것보다 못하다.

저자는 군주가 있어 그가 오랑캐의 도를 따르는 것보다는, 군주가 없어도 중원의 도를 지키는 것이 낫다.”라고 얘기하고 있으나 원문 그대로 일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공자는 분별을 중시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67. 군자는 다툴 일이 없으나, 꼭 해야 한다면 활쏘기일 것이다. 절하고 겸양하며 [활 쏘는 자리에]오르고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시니 그런 다툼이야말로 군자의 모습이다.

활쏘기 역시 상대가 있으나, 그 본질은 자기자신과의 다툼이다. 과녁에 적중하지 못하면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는 것이다. 군자다운 것이다. 오늘날의 마라톤과 같이. 자기 레이스를 펼치지 못한다는 것 역시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다.

 

68. 비로소 [너와] 더불어 <>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제자를 칭찬할 때 많이 쓰는 말이구나. 이제야 나와 진정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70.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제사에 불참한다든가, 참여하여도 경건한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냈다고 볼 수가 없다.

 

71.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獲罪於天(획죄어천) 無所禱也(무소도야)

아첨하는 것은 바로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다. 용서받기 힘든 일이다.

 

72. 이렇게 하는 것(매사를 묻는 것)이 예다.

항상 물어본 뒤에 처신하는 근신삼감이 바로 군자의 미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72. 활을 쏠 때 과녁 맞추기를 위주로 하지 않는 것은 힘을 쓰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인데, 옛날의 법도였다.

활쏘기는 육예[()-예의범절,()-음악,()-활쏘기,()-말타기,()-서예,()-산학]의 하나이다. 이것의 핵심은 자기 수양을 위한 정신의 집중이다. 과녁을 뚫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마다 완력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힘으로 과녁을 맞추는 것에 집중을 하는 시대적 흐름을 안타까워 하면서 하는 말이다.

 

73. 예란 절제다.

<관저>는 즐겁지만 음란하게 하지 않고, 슬프지만 상심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관저><시경>의 첫 편으로 남녀가 좋은 짝을 이루는 즐거움과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는 슬픔을 얘기한다. 남녀의 만남에 대한 즐거움과 슬픔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남녀 사랑이 어떻게 절제가 가능한가. 이 절제가 가능한 사람은 인간이 아닐 것이다. 공자가 좋아할 사람일지는 몰라도 인간미가 너무 없다.

 

75. 관씨(관중)는 세 명의 여자를 두었고, 관청의 일들을 [가신들로 하여금] 겸직하지 않게 하였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관중을 소인이라면서 폄하한 것은 관중이 왕과 비슷한 호사를 누려 분수를 어겼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공자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제나라 사람들은 관중을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77. 여러분은 [어찌 관직이] 없는 것을 걱정합니까?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므로 하늘은 선생님을 [세상의]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공자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배움을 얻고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껴라. 그래도 현실은...

 

4편 이인(異人)

 

83. 군자는 인으로 드러난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면 누려서는 안된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벗어나려 해서는 안된다. 군자는 한 끼의 밥을 먹는 시간조차도 인을 어기지 않고, 황망하고 다급할 때도 반드시 여기에 근거하고, 넘어질 때도 반드시 여기에 근거한다.

 

84. 인의 실천

나는 아직 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인하지 못하는 것을 미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을 좋아하는 마음과 불인(不仁)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84.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 말이 여기서 나왔구나

 

85. 허름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와는] 더불어 논의할 만한 가치가 없다.

남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옷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옷을 갖춰입는 것이 좋지 않을까

 

85. 공자는 절대 긍정을 취하거나 꼭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일 없이 시대의 추이를 봐가면서 임기응변하며 살아간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원칙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정해진 기준 안에서 임기응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반대로 정해진 기준안에서는 임기응변할 일도 없다.

 

87. 먼저 노력해라.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먼저 자기의 능력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 과연 그 자리에 있을 만한 깜냥이 되는지. 두 번째는 공자답지 않은 것 같다. 자기의 길을 가야지 남들이 나를 알아봐주길 위해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라는 말로 들린다.

 

88. 힘들더라도 [부모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최근들어 더 힘들다. 그 어떤 이유를 갖다대더라도 날 낳고 키워주신 분인다. 진심으로 다가간 적이 있나. 마음은 준비되는데 항상 실천이 안된다. 너무 늦지 않기를

 

90. “군자는 말에서는 어눌하고 행동에서는 민첩하려고 한다.”

이론 못지 않게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배움의 길은 이론과 행동이 병행될 때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91. 친구에게 [간언을] 일삼으면 곧 소원해질 것이다.

인간적인 조언이네. 잘못된 것이면 옳은 길을 가도록 조언하는 것이 친구인데.. 그것보다는 친구를 잃어버림을 경계하는 뜻일 것이다. 관계론의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관계속의 존재이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할 경우 당연히 이 관계는 깨지기 쉽다.

 

5편 공야장

 

95. [딸을] 시집 보낼 만하다. 비록 포승줄로 묶인 채 [감옥]안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딸을 감고에 있는 남자에게 보냈다. 그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으면..나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역시 공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공자의 아내가 떠오른다. 어떤 반응이었을까.

 

96. 노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그가 어디에서 이런 것()을 갖게 되었는가?

대단한 자부심이다. 본인 입으로 본인을 자랑하기는 힘들다. 자기를 잘 안다면이야 이런말을 해도 무엇이 문제이겠느냐.

 

96. “저는 어떻습니까?”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입니까?” “호련이다.”

자공의 기분은 어땠을까? 더러웠겠지. 그래도 스승의 칭찬을 기대했것만. 그래도 자공은 떠나지 않았다.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고 할 때, 공자의 허락을 받고 오나라와 월나라를 설득하여 노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공자가 죽은 뒤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였다고 한다. 그의 생애로 볼때는 공자의 말처럼 호련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인가.

 

97. 그가 인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주변을 어디에 쓰겠는가.

지나친 언변에 대한 경계. 말로 흥한자 말로 망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인한사람의 특징인 어눌함이 필요

 

99. “(자로)는 천 대의 수레를 낼 수 있는 나라(제후국)에서 세금을 관리하는 일을 시킬 수 있을 정도이나,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구는 천 가구의 읍이나 백 대의 수레를 낼 수 있는 경대부 집안에서 우두머리 직책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은 허리띠를 묶어 의관을 갖추고 조정에 세워 빈객을 접대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할 수 있을 정도이나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적나라하다. 제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무서운 사람이다. 감히 내 사람을 소개할 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하는 나인데. 그런데 이 평가를 들은 제자들의 기분은 과연?

수긍했을까?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이다.

 

100. 나와 너는 [그만] 못하구나.

그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스승이 이런 칭찬을. 그가 일찍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101. 지금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말을 듣고도 그 행동을 살피게 되었다. [재여에 대해서도] 이처럼 바뀌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자 할때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보면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말.

 

102. 자로는 어떤 내용을 들으면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는데 [또다른 것을]들을까 오로지 두려워했다.

실천이 중요한데. 나를 보는 것 같다.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새로운 것에 항상 솔깃해진다.

 

106. 두 번이면 괜찮다.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너무 생각하다보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불필요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쳐 오히려 일을 그르칠수 있다. 두 번인지 세 번인지를 아는 능력도 필요

 

109. 원망의 감정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던 것이고, 나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못한 관계는 결국에는 항상 안 좋은 결말을 가져온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여기서 나왔다.

 

110.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 1인 추가. 나도 능력은 안되지만 항상 배우는 걸 좋아한다. 인한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은 갖추었다. 호학을 지극히 하면 도를 얻어 성인이 될수 있다고 한다. 성인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찾고 세우자

 

6편 옹야

 

115. 안회라는 자가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목숨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자가] 없으니,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을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냉정하다. 제자들에게. 무엇이 옳은지는 모른다. 제자를 칭찬하고 북돋아서 끌고 오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적나라하게 솔직하게 얘기해서 끌고 가는 것이 맞는지. 아무튼 공자는 항상 솔직하게 대담하게

 

117. 쟁기질 하는 소의 새끼가 붉은색이고 뿔이 가지런하다면 비록 [제물로] 쓰지 않으려 해도 산천의 신이 어찌 그를 내버려두겠느냐?

출신을 떠나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면 사람들이 어찌 그를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118. “유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사는 사리에 밝습니다.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구는 재능이 많으니, 정사에 종사하는 데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깔 때는 언제고 이렇게 챙겨줄 때는 챙겨주네. 인간적인 공자를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119. 백우가 병이 나자 공자께서 문병하여 창을 통해 그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전염병에 걸린 제자를 위해 친히 문병을 간 공자. 정말 이런 스승이라면..이래서 제자들이 한결같구나

 

120.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미리] 선을 긋고 (한계를 짓고) 있다.

진짜 멋있는 스승이다. 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염구는 감동했을 것이다.

 

120. 능력의 부족이 아니고 의욕과 집념의 문제라는 것이다. 100리의 절반은 90리라는 말이 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오기가 있어야 함을 공자는 강조하고 있다.

 

123.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정확하게 인간을 들여다 본 결과일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함

 

125.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인한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기고, 인한 사람은 오래 산다.

물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난 이런 기준이면 지혜로우면서 인한 사람이다.

 

127. 내가 [예에 어긋나는] 부당한 짓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 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제자와 여자에 대해 논하다니. 제자는 감히 의심한다기 보다 스승이 괜히 구설수에 오를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리 한 것이리다.

 

128. 가까운 데서 구체적인 예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를 구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주위에서 찾아야지. 인과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7편 술이

 

132. 묵묵히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배우는 데 싫증 내지 않고, 남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 세가지가) 나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133. 덕을 닦지 못한 것, 배운 것을 강습하지 못한 것, 의로운 것을 듣고서도 찾아가지 못한 것, 좋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한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다.

그에 비해 나의 걱정거리는 너무 많다. 당장 이 연구원을 무사히 끝낼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134. 스스로 말린 고기 열 묶음 이상을 [예물로] 가져오면, 나는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

참된 스승은 배우는 자의 신분이나 재산을 따지지 않는 법.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되니까.

 

135. 등용되면 나아가고 버려지면 숨는 것.

사내 대장부 쓰임을 받으면 나아가면 되는 것이고 쓰임 받지 못하면 농사를 지으면 되는 것이다.

 

137. 만일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따르겠다.

()는 나쁜 것이 아니다. 있으면 좋은 것이다.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139. 나에게 몇 년을 더 보태주어 쉰 살이 될 때까지 <>을 배우게 된다면 [천명을 알아] 큰 허물을 없게 할 것이다.

주역 공부를 통해 천명을 안다는 것은 주역이 얼마나 심오한 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반대로 역을 통해 천명을 알고 싶어하는 공자의 지적 호기심을 엿볼 수 있다.

 

140. 너는 어찌하여 그 분은 사람됨이 분을 일으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도를]즐거워하며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 것마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호학(好學)이 돈독한 사람에게는 삼망(三忘)이 있다. 먹는 것과 근심, 나이를 말한다. 그런데 왜 자로는 스승에 대해 이런 얘기를 못했을까.

 

142.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가려서 그 점을 따르고 그 가운데 좋지 않은 점을 [가려서] 그 점을 고친다.

우린 8명이다. 두렵지 않다. 끝까지 완주할수 있으리라. 우리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142. 나는 행하면서 너희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구().

스승은 숨기는게 없어야 한다. 더군다나 공자인데.

 

143. 성인은, 내가 만나보지 못하는구나. 군자라도 만나볼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겠다.

나도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143.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자인 척하니, 어렵구나, 한결같음을 지닌다는 것이.

하는 건 진짜 없애야 하는데 괜히 이 있는 하기 때문에 손해보는 일이 많다.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153. 공손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신중하면서 예가 없으면 [담력이 작아] 두려워하며, 용감하면서 예가 없으면 문란해지고, 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박절하게 된다.

공손, 신중, 용기, 정직은 미덕이다. 이러한 덕이 미덕다워지려면 예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155. 시에서 [감흥을] 일으키고, 예에서 [행동의 근간을] 세우고, 악에서 [성장을]을 완성한다.

, , 음악은 연결되어 있다. 완성은 음악이라니. 멋있다. 공자

 

156. 백성은 [도리를]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할 수는 없다.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참여정치라고 하지만 실제 그것은 지도자가 뛰어나지 못하고 태평성대가 못되어서 참여하는 것이다. 원래 백성들이 지도자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157. 3년 동안 배우고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공부를 하는 목적이 관리가 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듯이 공부를 하면서 3년 정도의 배움으로는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배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 몇 년을 해야 하는거지?

 

158. 뜻만 높을 뿐 솔직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면서 삼가지 못하며, 무능한데도 신의가 없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자같은 사람도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는구나. 이런 사람들은 사실 대책이 없다.

 

161. 형편없는 식사를 하면서도 귀신에게 정성을 다했고, 나쁜 옷을 입의면서 예복과 예관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을 다했으며, 허름한 집에 살면서도 물길을 트는 데는 힘을 다 쏟았다. 우임금에 대해 난 트집잡을 것이 없다.

이런 임금이라면 자연히 나라가 태평성대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9편 자한

 

164. “위대하도다, 공자여! 널리 배웠으나 명성을 이룬 곳은 없구나.” “내가 무엇을 잡아야 하나? 수레고삐를 잡아야 할까. [아니면] 활을 잡을까, 나는 수레고삐를 잡을 것이다.

평민의 조롱에도 이를 승화시킬수 있는 공자.

 

165.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근거없는]억측을 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하겠다는 게 없으셨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고, 나만이 옳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4가지는 지금도 통용된다.

 

167. 나는 젊어서 비천하였으므로 다방면의 비루한 일에 능한 것이다. 군자는 [재능이] 많을 필요가 있겠는가. 많을 필요가 없다.

누가 볼 사람도 없었고 닥치는 대로 배웠을 것이다.

 

167.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어떤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물어보면 [나는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비록 그럴지라도]나는 내 지식의 처음과 끝을 두드려 다 끄집어내고자 한다.

어떤 문제의 처음과 끝 양쪽으로부터 캐물어 들어가서 의미의 본질을 알아내어 모든 것을 다 알려준다는 말이다.

 

168. 봉황새는 오지 않고, 황하에서도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

오늘날에는 그런 징조가 없다는 뜻으로,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한탄한 말이다.

 

172. 밖에 나가면 공경을 섬기고, 들어오면 부형을 섬기며, 장례에 임해서는 감히 힘쓰지 않으면 안되고, 술에 휘둘림이 없어야 한다.

마음속에 간직할 말들이다.

173. 나는 덕을 좋아하는 것을 마치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볼때 보이는 시선과 행동이 덕을 좋아할때와 똑같을 것이다. 다만 대상만 다를뿐이다.

 

174. 마흔이나 쉰이 되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

내나이 이제 쉰이 얼마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내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남을 두렵게 함이 목적으 아니다. 이름을 알리는 것 보다 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10편 향당

 

182. 공자께서는 향당에 계실 때는 공손한 듯하여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 같으셨다. 종묘나 조정에 계실 때는 물 흐르듯 유창히게 말하셨으나 오로지 삼가실 뿐이다. 조정에서 하대부들과 말씀하실 때는 강직한 듯 하셨다. 임금님이 계실 때는 긴장하면서 떠는 듯 하면서도 절도를 갖추시고 있는 듯 하셨다.

어떤 자리,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거기에 예에 맞게 하신 공자. 철저하다.

 

187. 식사하실 때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고, 주무실 때에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요즘은 식사할 때 밥만 먹지말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라고 한다. 나도 밥만 먹지말고 얘기하는데 한표

 

188.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각지거나 모난 자리에는 절대 앉지 않았다. 즉 명분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명분이란 정도이고 떳떳함이다.

 

189. 마구간에 불이 났다. “사람이 다쳤느냐?” [그러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말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했으리라

 

 

190. 임금이 명령하여 부르시면 수레에 멍에를 얹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가셨다.

관리된 자로서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11편 선진(先進)

 

197. 먼저 예악을 나아가는 이는 시골사람 같고, 나중에 예악에 나아가는 자들은 군자답다. 만약 [나에게] 나아간 자들을 쓰겠다.

예악은 개인의 인격을 수양하고, 정사를 담당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예악에 접근하는 경우 크게 두 가지이다. 예악을 배우고 벼슬길에 나서는 것[선진]과 벼슬길에 나간 뒤에 예악을 배우는 것[후진]이 있다. 선진은 대개 빈천한 출신으로 예약을 학습하다다 여유가 있으면 벼슬길에 나선다. 반면에 후진은 사대부 출신으로 세습적 녹봉에 의해 벼슬길에 든 후에 예악을 학습한다. 옮긴이는 공자의 경우 경대부의 자제들이 부모의 비호를 받으며 벼슬하는 것 자체를 좋지 않게 보아 이렇게 말한 것이다.

 

200. 나도 대부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어서 걸어서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사사로움을 위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좀 걸어다니면 안되었을려나. 자기자 제일 아끼는 제자를 위한 일인데.

 

202. 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지만, 나는 아들처럼 대하지 못했다. [이는] 내 탓이 아니라, 저 몇몇 제자 탓이다.“

안연의 집 사정등을 고려하면 당연히 머리와 발과 몸을 씻어 즉시 장사지내면 되는데 제자들이 이런 기본적인 지침을 무시하고 후하고 성대하게 장사지낸 것이다. 즉 가난한 집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장례를 치른 제자들을 공자가 비판한 것이다.


202.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수 있겠는가? 삶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사람과 삶이 우선이다. 그것을 먼저 알고 난후 귀신과 죽음을 생각하라.

 

205. 우리의 무리(제자란 뜻)가 아니다. 북을 울려 그를 성토해도 괜찮다.

세금을 늘리기 위한 염구가 취한 행동을 보고 비난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나보다.

 

208. 구는 물러나므로(소극적이라는 뜻)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유는 다른사람을 이기려 하므로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

제자들의 특성까지 파악하고 난 뒤 그에게 맞춤형 조언을 해준다.

 

12편 안연

 

216.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갈 것이다. 인을 행하는 방법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예가 아니면 보지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거라.

 

217.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배풀지 말아야 한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으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218. 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느다. 안으로 반성하여 꺼림칙하지 않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타협하지 않는 그리고 자기 할말을 할주 아는 사람이기에 근심하거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219.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잘살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220. 정치는 식량을 충족시키는 것, 병기를 충분하게 하는 것, 백성들이 [군주를] 믿게 하는 것이다. 부득이 반드시 먼저 버려야 한다면 병기를 버려야 한다. 두 번째는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옛날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지만, 백성이 믿어주지 않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다른 나라가 침입했을 때 병기가 없으면 어떻게 할건가? 백성들의 생명을 생각한다면이야 당연이 병기가 먼저 되어야겠지만 셋중에 포기할 것은 쉽지 않다. 말하기는 쉽다.

 

223.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답다야 말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지켜줘야 하는 법도이다. 이것이 무너지니까 삶이 힘든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나 사물이 명분대로 움직이고 명분에 맞게 존재하면 모든 일이 제대로 된다고 하였다.

 

13편 자로

 

235.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겠다.” 자로가 여쭈었다. “그런 일이 [언제] 있었습니까? 선생님은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바로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거칠구나 유(자로),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문으로 남겨두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 말이 순조롭니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날 수 없다. 예약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명을 할 때는 반드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대충하는 것이 없도록 할 뿐이다.”

자로의 직설적이 질문. 어쩌면 제자들도 공자의 사상이 현실과든 동떨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같다. 정치에서 명분은 생명이다. 명분이 최우선적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237. <시경> 삼백 편을 외우고 있다고 해도 정치를 맡겼을 때 통달하지 못하고, 외국에 사신으로 보냈을 때 독자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외운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모든 것이 똑같다. 대학에서 배운 것이 직장생활에서 많이 쓰이더냐.

 

237.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지만, 그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도 명분이다. 움직일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 자신의 올바름과 인이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이다.

 

239. “백성들이 많아졌는데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잘살게 해줘야 한다.” “이미 잘 살게 되었는데 또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가르쳐야 한다.“

먹고 살만하면 사람들은 다른 것에 비로소 관심을 가지니까.

 

240. 만약 나를 등용해주는 자가 있다면 1년이면 웬만큼 괜찮아질 것이고 3년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이 자신감에 찬 어조. 공자의 한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가 정랄 관리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44.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지만 정직은 그 가운에 있습니다.

주석에도 있지만 공자는 분명 가족중심의 정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기 때문에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여겨질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잘못을 은폐해주고 스승과 제자가 그렇게 해주면 같은 조직 내에서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위험한 생각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47.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249. 서로 진심으로 독려하고 노력하며 화합하고 즐겁게 지내면 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벗 사이에는 진심으로 독려하고 노력하며, 형제 사이에는 화합하며 즐겁게 지낸다.

 

14편 헌문

 

254.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물러나지 않고] 녹봉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나도 나라의 녹을 먹고 살고 있는 사람인다. 공자가 이렇게 말하니 부끄럽다. 앞으로의 인생은 인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보자

 

255. 선비가 [편안하게] 사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선비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는 다들 선비가 아닌가. 편안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뭔가를 마음속에 품고 거칠게 이 세상 살아보자. 그래도 가끔은 편안한 휴식과 함께. 너무 몰아붙이진 말자.

 

259.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는 것은 어렵지만,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는 것은 쉽다.

부자가 되면 일단 여유가 있으니까. 가난은 정말 힘든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누구를, 세상을 원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260. 오늘날의 완성된 사람은 어찌하여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제약이 있더라도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66. 임금 섬기는 요령

속이려 하지 말고, [얼굴을] 대놓고 [간언하도록] 해라.”

간언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조직에 있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말을 꺼내기가 왜그리 어려운건지. 이제야 왜 그런지 알겠다. 나는 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인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군자가 아닌 소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군자답게 살고 싶으나 소인으로 살아 온 것이다.

 

267.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나도 공부를 하는 이유가 순수하게 뭘 배우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지적 호승심이라고 해야하나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니들이 니체를 알아!”. 뭐 꼭 나쁜건 아니잖아.

 

268. 군자는 자신의 말이 그의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말을 하더라도 검증이 된 것. 내가 경험해본 것을 가지고 말해야 함을 경계하자.

 

268. 군자의 도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268. 자공이 [자신보다 나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공)는 현명하구나. 나는 그럴 틈이 없다.”

남과 비교할 시간이 있거든 자신을 다스리는데 더 신경을 쓰는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 군자가 아닌 소인으로서는. 어차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비교에서 장점만 취하고 단점은 버리든지 오래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269.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능력없음을 걱정하라.

낭중지추라 했다. 어차피 뛰어난 놈은 어떻게 해서든지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그때까지 능력을 기르고 길러라.

 

271.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소소한 것들을] 배우고 위로는 [심오한 위치에] 통달했는데, 나를 알아주는 자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

아래로 사람의 일로부터 배워서 위로는 천명에 이르는 下學上達에 힘써왔는데 그럼에도 하늘과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는 듯하다. 이렇게 철저하게 등용되지 않음은 공자의 학문이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을텐데 계속해서 본인의 학문을 고집하고 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273. [문지기가] 말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그 사람(공자) 말입니까?”

세상에 문지기도 공자에 대해 알고 있으며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 제자들은 알고 있을까? 자기가 하는 학문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크게 쓰임이 없다는 걸 알게되면 어떨까? 요즘도 시대별로 인기학과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15편 위영공

 

280.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군대의] 진법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제사에 관한 일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으나, 군대에 관한 일은 아직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공자는 병법을 몰랐기 때문에 등용되지 않았지 않았을까. 춘추전국시대에 병법은 기본인데. 그 어려운 <주역>도 해석했는데 병법도 순식간에 배웠을텐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 그랬나. 안타깝네. 문과 무를 겸비한 공자였으면 아마 서로 데려가지 않았을까

 

284. 장인이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의 연장을 날카롭게 해놓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에 살게 되면 그 나라의 대부들 중에 어진사람을 섬기고, 그 나라 선비들 중에서 인한자를 벗해야 한다.

 

285.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

세상의 큰 흐름에 올라타서 몸을 맡겨야 한다. 발아래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그냥 넘어갈수 있다. 큰 흐름을 파악하려면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286. 자신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가볍게 책망하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286.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구나.

무엇이든지 먼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온 힘을 쏟는 진정성과 간절함이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기 때문이다. 일일이 남의 도움만 바라든가, 억지로 행하게 되면 자기 성장은 기대할수 없다.

 

290. 모두가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고, 모두가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여론몰이에 의해 떠밀려 가지 말고 자신만의 사람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291. 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먹을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 속에 있지만, 배우면 녹봉은 그 속에 있다.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군자는 눈앞의 의식衣食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근본적인 것을 고민해야 한다. 군자가 해야 할 일과 소인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292. 백성들이 인에 대해서는 [피하려고 하는 것이] 물이나 불보다 더 심하다. 물이나 불이라면, 나는 뛰어들어 죽은 사람은 보았지만, 인에 뛰어들어 죽은 자는 보지 못했다.

 

293. 가르칠 때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294.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정치는 길이 다르더라도 필요할 때는 서로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가 같은 길을 걸어갈수는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16편 계씨

 

303.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젊어서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여색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막 왕성해지므로 싸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사그라졌으므로 탐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군자는 아니지만 항상 경계하자. 여자, 다툼, 탐욕.

 

304.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 등급이며, 곤란을 겪고 나서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며,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백성들이 그러하니 이들은 하급이다.

 

305. 군자에게는 아홉가지 생각할 것이 있으니, 볼 때는 분명한가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었는가를 생각하고, 안색은 온화한가를 생각하며, 공손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말은 진실되는지를 생각하고, 일 처리할 때는 경건한가를 생각하고, 의문이 들 때는 물어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고, 화가 치밀면 어떤 후환이 생길까를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17편 양화

 

314. 오직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 변화시킬수 없다.

 

315. “닭을 잡는데 어찌하여 소 잡는 칼을 쓰느냐?“”예전에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닭잡는 칼과 소잡는 칼은 그 용도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닭을 잡든지, 소를 잡든지 칼을 쓰는 목적은 같다. 공자가 자유의 능력을 높이 봄을 알수 있으나 자유는 역시 군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317. 필힐이 부르자 공자께서 가시려고 했다. “그래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지. 그런데 견고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갈아도 닳지 않는다고 말이다. 희다고 하지 않았더냐? 검게 물들어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내가 무슨 썩은 조롱박이더냐? 어찌 매달아놓기만 하고 먹을 수도 없단 말이냐?”

정치를 하고자 하는 자는 지조가 굳고, 의지가 결백해야 한다. 지조가 견고하면 아무리 갈아도 닳지 않는다. 또한 의지가 결백하면 아무리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

 

318. 너희는 어찌하여 아무도 <>를 배우지 않느냐. <>는 이끌어낼 수 있고, [사회를] 관찰할 수 있고, [사람들을] 모을수 있고, [사회의 병폐를]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로는 부모을 섬길수 있고, 멀리로는 임금을 모실 수 있으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기억하게 된다.“

시의 중요성을 공자가 설명해주네. 시도 예나 지금이나 필요한 것이다.

 

324. “ 3년상은 기간이 너무 깁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닦지 않는다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겁니다....묵은 곡식이 없어지면 새 곡식이 올라오며, 불씨 얻을 나무도 다시 바꾸는데 1년이면 충분합니다.”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거라. 군자는 상을 치르는 기간에 기름진 것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거움을 모르며, 집에 있어도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너는 편안하다고 하니 그렇게 하거라.”

여는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만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상은 천하에서 통용되는 상례인 것이다. 여도 그의 부모로부터 3년 동안 사랑을 받았을까?”

3년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그러나 재여도 대단하다.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스승에게 얘기할수 있다니

 

326. 오직 여자와 소인은 돌보기 어렵다. 그들은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여자도 여자나름이다. 오늘날 같으면 공자도....

 

327.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끝이다.

너무 무서운 말이다. 이리도 가슴이 찔리는 건 왜 그런거지?

 

18편 미자

 

334. “도도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천하는 모두 이렇게 흘러가는 법인데, 누가 그것을 바꾸겠소? 그대 또한,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찌 세상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같겠소?”

새나 짐승들과 함께 무리를 이룰 수는 없다.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산단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바꾸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19편 자장

 

344.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한 것을 묻고 가까운 데서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

 

347. 상례에서는 슬픔에 이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슬픔이 목적이고 떠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슬픔이다.

 

351. 군자는 한마디 말로 지혜롭게 여겨지기도 하고, 한마디 말로 지혜롭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는 것은 마치 하늘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수 없는 것과 같다. 선생님께서 다스릴 수 있다면 다스렸을 것이고, 백성들을 이끌어주면 [백성들이] 그 길로 갔을 것이며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면 그들이 다가왔을 것이고, 백성들을 동원하려고 했다면 그들이 화합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분은 살아서는 영광스럽고, 그 분이 죽어서는 슬픔을 입을 것이니, [내가] 어떻게 그 분에게 미칠 수 있겠습니까?

 

20편 요왈

 

357. 다섯 미덕과 네가지 악

다섯 미덕은 군자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욕망은 있어도 탐욕은 없고, 느긋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네가지 악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죽이는 것을 잔인하다 하고, 경계하지도 않고 성공을 보려는 것을 포악하다 하며, 명령은 태만히 하고 기한 안에 이루려는 것을 해치는 것이라 하고, 오히려 남에게 주어야 하는데도 출납을 인색하게 하는 것을 [째째한] 벼슬아치라고 한다.”

 

359.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예를 알지 못하면 자립할 수 없다. 말을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알수 없다.

군자가 해야 할 것은 명()과 예(), ()을 아는 것이다. 천명을 알게 되면 하늘의 뜻을 경외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예를 알게되면 사회적으로 독립된 존재로서 자립할수 있고, 말을 알게되면 사람의 됨됨이와 거짓과 진실을 알수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

목차의 제목과 전체 내용이 전혀 상관이 없다. 주로 첫 번째 글과 관계되는 이름이다. 공자의 어록집을 제자들이 편집하다 보니 이렇게 나온 것 같다. 그렇다고 옮긴이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자는 학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위편삼절이 될 만큼 책을 읽었는데 그리고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왜 책을 출판할 생각을 못했을까. 그 부분이 아쉽다. 반면에 특별한 의미나 연결관계가 없다보니 마음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보완해야 될 점

아래에 있는 주석이 책 읽기를 너무 방해한다. 몰입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안 보고 넘어갈 수도 없다.

 

이 책의 장점

공자의 사상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이상국가의 실현을 목표로 했던 공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군자가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 그리고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의 난세의 상황이 오늘날에 비추어 결코 다르지 않음으로 다가왔다. 오늘의 냉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길을 찾기 위해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되는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저자라면

 

옮긴이(김원중)를 기준으로 해서 내가 그였다면 독자층을 확실히 구분해서 집필했을 것이다. 논어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과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다가오는 것이 분명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중상급 이상의 논어실력을 가진 사람에게 적절한 책인 것 같다. 각 편의 글을 해석해 놓은 것만으로는 그것이 내포하고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라 다른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논어 초보자에게는 각 편에 대한 해석을 실었으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음의 글과 같다.

먼저 예악을 나아가는 이는 시골사람 같고, 나중에 예악에 나아가는 자들은 군자답다. 만약 [나에게] 이들을 등용하라고 하면 나는 먼저 [예약에] 나아간 자들을 쓰겠다.(p. 197)” 이 글만으로는 나같은 경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예악은 개인의 인격을 수양하고, 정사를 담당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예악에 접근하는 경우 크게 두 가지이다. 예악을 배우고 벼슬길에 나서는 것[선진]과 벼슬길에 나간 뒤에 예악을 배우는 것[후진]이 있다. 선진은 대개 빈천한 출신으로 예약을 학습하다가 여유가 있으면 벼슬길에 나선다. 반면에 후진은 사대부 출신으로 세습적 녹봉에 의해 벼슬길에 든 후에 예악을 학습한다. 옮긴이는 공자의 경우 경대부의 자제들이 부모의 비호를 받으며 벼슬하는 것 자체를 좋지 않게 보아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런 식의 해설이 있었으면 읽기도 이해도 더 쉬웠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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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5:11:09 *.12.109.231

역시 꼼꼼한 북리뷰^^  자로 등장할 때마다 나도 너무 웃겼음 ㅎㅎ


공자가 어릴 때 조두(俎豆)를 갖고 놀았다는 대목은 저도 주목했었는데..엄마가 무녀였다는 것이 아무래도 신빙성 있는 거 같아요. 아빠한테는 외모만 물려받고 남다른 성격, 성품 등은 엄마와 외가의 영향을 받았겠다 싶더라구요. 엄마가 무녀였다면 어릴 때부터 제사 지내는(또는 어떤 의식의 주관) 환경 속에서 자랐을 거고, 의식, 춤, 노래 등에도 그래서 익숙해졌을 수 있고요.


아래 기사 참고하기 좋아요.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2551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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