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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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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0일 10시 35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1.노자(네이버 발췌)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며 도가(道家)의 시조이다.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

『노자도덕경』이라고도 불리우는 『노자』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상당히 발전한 무렵부터 한(漢)대까지의 도가 사상의 소산(所産)이다. 『노자』의 중심 사상은 인의(仁義) 등 도덕이나 지혜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인민을 지배하려고 하는 유가(주로 맹자)에 대하여, 도덕ㆍ지혜를 버리고 지배의욕을 버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의하여 지배하려고 하는 정치사상과, 동일하게 무위무욕(無爲無欲)으로 남에게 겸양하는 것에 의하여 성공ㆍ보신(保身)하려고 하는 처세술이다.

이들에 대한 근거로서, 현상의 배후에 불가지(不可知)의 실재(實在)인 도(道)를 설정하여, 우주생성설과 음양의 자연학을 도입하여, 세계는 도(道)로부터 나오고 '도'에 의하여 생성ㆍ사멸의 운동을 한다고 하는 객관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2.오강남작가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19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없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 욕심이 없으면 존재가 보이고, 욕심이 생기면 내가 보여 시야를 가로 막는다

P.20
감지할 수 있고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한 도는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이고 우주적인 의미의 무엇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해주지는 않는다. '도'란 체험의 영역이지 사변과 분석과 정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다른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궁극 실재 혹은 절대적 실제는 우리의 제한된 표현을 초월한다는 주장이다. '도'라든가 뭐라고 이름이나 속성을 붙이면 그것은 이미 그 이름이나 속성의 제한을 받는 무엇으로서 절대적인 '도'일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무명 혹은 무 일뿐이라는 것이다.
  • 공기처럼 떠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 있어서 존재한다는 직관과 체험, 영역인 것이지 '이것이다'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것.

P.23
도덕경은 이렇게 존재계의 신비, 그리고 그 존재의 영역을 포함하고 통괄하면서 그 근본 바탕이 되는 비존재계의 신비, 이런 '신비의 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내가 알고 있는 존재에 대해 그 존재 너머에 있는 것에 깨닫고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P.26
'도'의 입장에서 보면 반대나 모순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서로 다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빙글빙글 돌아 고정된 성질로 파악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좀더 어려운 말로 하면 이원론적 세계관을 벗고 양쪽을 동시에 생각하는 변증법적 사고방식, 양쪽으로 대립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하나라고 보는 '양극의 조화' '반대의 일치'를 터득하라는 것이다.
  •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다.

P.27
우리말로 성인이라고 하면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성인의 본래 뜻은 이런 윤리적 차원을 넘어, 말하자면 ‘특이한 감지 능력의 활성화’를 통해 만물의 근원, 만물의 ‘참됨’, 만물의 ‘그러함’을 꿰뚫어보고 거기에 따라 자유롭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 도덕경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이런 성인은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무위’라는 것은 도덕경에서, 그리고 장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행동 원리다. 무위란 물론 ‘행위가 없음’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무위 도식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무위란 보통 인간사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 보라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 자발적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P.30
노자님은 이런 상식적 관례를 깨어 버리라고 한다. 훌륭한 사람들을 떠받들거나 그들에게 상을 주면 그것 때문에 서로 다투고 질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하기 어려운 귀중한 것을 귀히 여기면 사람들은 그런 것을 얻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을 저지를 것이요, 탐날 만한 것을 보이면 그런 것을 못 가져 안달하거나 ‘상대적 빈곤’에 시달릴 것이니 아예 그런 것을 귀히 여기지도 말고 보이지도 말라고 한다.

P.31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그 훌륭하다는 것, 귀중하다는 것, 탐날 만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궁극 가치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가져 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P.32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간다고 하는 것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버리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지구가 판판하다는 ‘지식’을 버리는 것이다. 계속 버려서 결국 우리의 제한된 ‘무지’의 경지에 이르면 그때 새로운 의미의 완전한 앎, 궁극 지식의 경지가 트이는 셈이다. 이를 ‘박학한 무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37
도가 육신이 되어 세상과 하나되고, 그래서 세상에 거한다... 사실 세상의 세상됨이란 도가 세상과 하나됨에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세상의 됨됨이가 도의 모습 그대로이다. 도는 전적으로 초월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내재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겸하고 있는 ‘변증법적 실재’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세상의 온갖 것, 심지어는 중국에서 최고의 인격신으로 모시는 하늘님보다도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도는 구체적인 인격신과 차원을 달리하는 무엇이다

P.41
“말이 많으면 좋지 않다” ... 일상 생활 중에 말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하기 쉽고 쓸데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말 많은 것이 좋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도같이 궁극적인 것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못 된다는 뜻이리라.

p.46
요컨대 지금까지 공격성, 진취성, 지배성, 경쟁성 등 주로 남성적 특성을 찬양하고 이런 특성을 신과 결부시켜 신을 우리의 대장, 임금, 승리자, 정복자, 주님 등으로 생각했는데 종래까지의 이런 의식구조나 고정 관념을 청산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몇몇 미래학자의 예견이나 어느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P..50
“나를 비우는 것이 나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이처럼 건전한 종교들의 기본 지침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죽기 전에 죽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If you die before you die, you will not die when you die.)”란 말이 참으로 명언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명언임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큰 거리가 있는가?

P.51~52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 받을 일도 없습니다.

P.52
「도덕경」에서 가르치는 삶의 자세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물같이 되라”는 것이다. ‘도’처럼 된다든가 ‘도’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도의 최고 상징이다.

P.54
만물은 물 없이 못 살지만 물은 그들을 이롭게만 할 뿐 그 공로를 인정받자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 밑에서 묵묵히 섬기는 일을 할 뿐이다. ... 엄격히 말하면 물은 자기가 만물을 이롭게 하고 있다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고 있다. 구태여 부산하게 무엇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방식 그대로가 남에게 이익을 주도록 되어 있다.

P.56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날카롭게 벼리고 갈면 쉬 무디어집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재산과 명예로 자고해짐은 재앙을 자초함입니다.
일이 이루어졌으면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입니다

P.58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 길에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잇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삶을 그만큼 여유 있는 자세로 대할 수 있게 한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바닥에 내려왔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할 따름이다.

P.61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합니다

P.64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그릇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P.75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방되면 얼마나 홀가분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여론이다. 인기 관리다, PR이다 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요즘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P.80~81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미묘 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어려워하고,
녹으려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계곡처럼 트이고, 흙탕물처럼 탁합니다.

탁한 것을 고요히 하여 점점 맑아지게 할 수 있는 이
누구겠습니까?
가만히 있던 것을 움직여 점점 생동하게 할 수 있는 이
누구겠습니까?

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새로워집니다

P.85
영원한 것을 알면 너그러워 집니다.

P.86
너그러워지면 공평해 집니다.

P.89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삼가고 아낍니다.
[지도자가]할 일을 다하여 모든 일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라”고

P.101
배우는 일을 그만두면 근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예’라는 대답과 ‘응’ 이라는 대답의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선하다는 것과 악하다는 것의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나도 두려워해야 합니까?
얼마나 허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입니까?

P.102
딴 사람 모두 뚜렷한 목적이 있는데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나 홀로 뭇사람과 다른 것은 결국
나 홀로 어머니[젖을] 먹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P.104
역사적으로 이렇게 일반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경지에서 고독했던 사람이 얼마일까? 인간 역사는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그들의 고독 속에서 밝힌 진리의 등불로 이 정도라도 밝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P.110~111
휘면 온존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잇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고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를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휘면 온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습니까?
진실로 온존함을 보존하여 돌아가십시오.

P.119
다리를 너무 벌리는 사람은 걸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게 빛날 수 없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돋보일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은 밥찌꺼기 군더더기 같은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P.121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야 밝게 드러나고 스스로 의롭다 하지 않아야 돋보이게 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야 한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아도 오래갈 수 있다는 역설의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P.140~141
세상의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것을 망치고,
그것을 휘어잡으려는 사람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사는 [다양해서]
앞서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도 잇고,
숨을 천천히 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빨리 쉬는 것도 있고,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것도 있고,
꺾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너무함, 지나침, 극단 등을 피합니다

P.144
동서양 할 것 없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 크게 요구되는 것은 나라나 자연을 대할 때 함부로 설치는 대신 차분한 마음으로 거기에 내재한 흐름과 리듬을 알고 거기에 순응하겠다는 더욱 겸허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P.170
오므리려면 일단 펴야 합니다.
약하게 하려면 일단 강하게 해야 합니다.
폐하게 하려면 일단 흥하게 해야 합니다.
빼앗으려면 일단 줘야 합니다.
이것을 일러’미묘한 밝음’ 이라 합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국세고 강한 것을 이깁니다.
물고기가 연못에서 나와서는 안 굄 같이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도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

P.173
국가의 흥망 성쇠뿐 아니라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다는 사시를 변화에 그때마다 안달복달하면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라는 것. 그런 데서 초연하여 세상을 멀리 보는 법을 터득하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라 볼 수 있다.

P.175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무위도식’이 아니다. 의식적이고 이기적이고 부자연스럽고 과장되고 지나치고 쓸데없고 허세를 부리고 계산적이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든 행위를 ‘하지 않음’이다. 이렇게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고 속 깊은 데서 저절로 우러나는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행동, 이것이 바로 ‘무위의 위’, ‘함이 없는 함’이다

P.194
한 가지 사물이 정반대되는 두 특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상식적인 이분법의 단선적 사고방식에 지배 받고 사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야말로 가소롭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그런 이상스런 것이 어디 있는지 좀 보여 달라고 한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증거를 대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서는 그야말로 웃기지 말라고 한다. 어리석은 자는 심중에 하느님이 없다고 한다는 성서의 말(시편53:1)을 연상시킨다

P.197~198
도가’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습니다.

만물은 ‘음;을 등에 업고,
‘양’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기’가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룹니다.

사람들은’고아 같은 사람’, ‘짝잃은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 되기를 싫어하지만
이것은 임금이나 공작이 자기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잃음으로 얻기도 하고,
얻음으로 잃은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 나도 가르칩니다.
강포한 자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도 이것을 나의 가르침의 으뜸으로 삼으려 합니다

P.199
음기와 양기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고 했는데, 가만히 따져보면 서로’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각자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거나 상대방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화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마음, 자기 혼자서는 아무 일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의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조화는 자시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겸손함을 전제로 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이다

P.203
힘없는 민초의 힘이 결국은 철권을 휘두르는 강권 정치의 힘을 이기고 만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그러나 계속적인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신념이 있다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이 반드시 어리석은 일만은 아니다

P.204
‘없음’만이 틈이 업는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없음이란 자기 고유의 형체가 없는 것이다. 칼이 얇으면 얇을수록 베는 물건 속으로 잘 들어가듯이 자기 고유의 형체를 줄이면 줄일수록 좁은 틈 사이로 그만큼 더 잘 들어갈 수 있다. ...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자기 주장, 자기 줏대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섞일 수가 없다. 자기를 진정으로 비운 사람만이 거침이 없는 ‘무애’의 경지에서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P.207
밤낮으로 자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자기의 체면을 세워 주는가 손상을 끼치는가 혹은 자기의 인간 관계 하나하나가 자기의 경제적 목적에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만 따지다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삶을 살아가느라 고달프기 그지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P.218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다 알고,
창으로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볼 수 있습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그만큼 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돌아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훤하고,
억지로 하는 일 없이도 모든 것을 이룹니다

P.222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십시오.
한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억지 일 꾸미지 않을 때만 가능합니다.
아직도 억지 일을 꾸미면
세상을 다스리기엔 족하지 못합니다

P224
그러니 도를 추구하는 길이란 이런 식으로 우리 머리에 들어 있는 궁극 실재에 대한 개념이나 생각을 하나하나 없애 나가 완전히 제거하게 되었을 때 이런 매개 개념을 통하지 않고 ‘직접’ 그에 접하는 일이다. 이렇게 궁극 실재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버리는 방법을 채택함으로 궁극 실재를 체득하라는 가르침은 세계 여러 종교가 공통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P.237
도와 덕이 하는 일, 더욱 정확히 말하면 도가 ‘덕을 베풀어서’ 하는 일은 “낳고 기르고 자라게 하고 덮어 주는”일이다. ‘덮어 준다’는 것을 '묻어 준다‘고 해석하여 도는 만물이 나서 땅에 묻히기까지 생성 괴멸의 모든 과정을 돌봐 주는 일을 한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P.255
이렇게 억지를 쓰는 일은 갓난 아이의 생활 태도와는 반대로 완전히 도에 어긋나기 때문에 곧 끝장이 나고 마는 법이라는 것이다. 도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역효과만 초래하므로 달력의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자연과 합일되어 구름 떠가듯, 물흐르듯 살아가는 삶에서 궁극적인 삶의 스타일을 찾도록 권고하고 있다.

P.256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 합니다.

입을 다물고, 문을 꽉 닫습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은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신비로운 하나 됨’ 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습니다.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이를 귀하게 여깁니다.

P.258
6세기경에 씌여진 것으로 생각되는 위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의 신비신학(Mystical Theology)이라는 문헌에도 “사랑하는 디모데야, 나의 간절한 기도는 네가 감각과 지각의 작용을 그리고 감각적이고 지각적인 모든 것을, 그리고 존재나 비존재의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오로지 알지 않음(unknowing)을 통해 가능한 한 모든 존재와 지식을 초월하는 그분과의 합일을 향해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P.259
“신비스런 하나됨”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지만 결국 도와 하나 되고, 그리하여 도 안에서 만물과 하나되는 천지인 합일의 경지를 이야기한다고 보면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신비스런 하나됨”은 도가 사상을 비롯하여 세계 신비주의 종교 전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261~262
나라를 다스릴 때는 올바름이 필요합니다.
전쟁에 임할 때는 임기 응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함이 없음 無事’을 실천하십시오.
이렇게 해야 할 까닭을 내가 어떻게 알리까?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입니다.

세상에 금하고 가리는 것이 많을수록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고,
사람 사이에 날카로운 무기가 많을수록
나라가 더욱 혼미해지고,
사람 사이에 잔꾀가 많을수록
괴상한 물건이 더욱 많아지고,
법이나 명령이 요란할수록
도둑이 더욱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으므로 백성이 저절로 바뀌고,
내가 고요를 좋아하므로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꾸미지 않으므로 백성이 저절로 부하게 되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므로 백성이 저절로 통나무가 되도다.

P.274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써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귀신이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힘이 있어도 사람을 해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힘이 사람을 해칠 수 없다기보다는
성인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 해치지 않으니
그 덕이 서로에게 돌아갑니다.

P.278
큰 나라는 강의 하류,
온 세상이 모여드는 곳.
그것은 세상의 여인.
여성은 언제나 그 고요함으로 남성을 이깁니다.
고요히 스스로를 낮춥니다

P.293~294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 유지하기 쉽고,
아직 기미가 나타나기 전에 도모하기가 쉽고,
취약할 대 부서뜨리기가 쉽고,
미세할 때 흩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아직 일이 생기기 전에 처리하고,
혼란하기 전에 다스려야 합니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나오고,
구층 누대도 한 줌 흙이 쌓여 올라가고,
천릿길도 발 밑에서 시작됩니다.

억지로 하는 자 실패하게 마련이고
집착하는 자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하지 않음으로 실패하는 일이 없고,

집착하지 않음으로 잃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언제나 거의 성공할 즈음에 실패하고 맙니다.
시작할 때처럼 마지막에도 신중했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을 없애려는 욕심만이 있고,
귀하다고 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많은 사람이 지나쳐 버리는 것으로 돌아갑니다.
온갖 것의 본래적인 자연스러움을 도와 줄 뿐,
억지로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P.303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낮추기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 위에 있고자 하면
말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하면
스스로 몸을 뒤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이 그 무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앞에 있어도 백성이 그를 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즐거이 받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합니다

P.322
내 말은 알기에 그지없이 쉽고
실행하기도 그지없이 쉬운데
세상 사람들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합니다.

말에는 종지가 있고
사물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사람들 이를 알지 못하기에
나를 알지 못합니다.
나를 아는 사람 드물고,
나를 따르는 사람 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인은 굵은 칡베옷을 입지만
가슴에는 구슬을 품고 있습니다.

P.323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불경에 의하면 성불한 후 사람들에게 가서 가르치기를 주저하였다고 한다. 첫째 대부분 사람의 경우 우선 먹고 살고 지지고 볶는 데 바빠 상식 세계를 넘어서는 이런 진리 같은 데 관심이 없을 것이고, 둘째 그 진리 자체가 너무 심오하고 원대해서 보통 사람이 이해할 성질의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P.331
사람들이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욱 큰 두려움에 이를 것입니다.

그들의 거처를 좁게 하지 말고,
그들의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억누르지 않기에
그들도 싫증 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인은 스스로를 알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되
스스로를 치켜 올리지 않습니다.
성인의 앞의 것을 버리고 뒤의 것을 택합니다.

P.337
비폭력주의 같은 소극적 대처 방안에 따라 처신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할 것처럼 보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하늘이 그렇게 엉성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의 잘잘못을 가지고 당장 너무 조급하게 반응하지 말라. 결국은 하늘의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이라는 하늘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어릴 때 듣던 “물은 물대로 간다.”는 말이 생각난다

P.367~368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못하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성인은 쌓아 놓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뭐든지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이 가지게 되고,
사람들을 위해 모두를 희사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만 할 뿐
해로운 일이 없습니다.
성이늬 도는 하는 일이 있더라도
겨루지를 않습니다.


III.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1)아쉬운 점

2. 보완이 필요한 점
1)아쉬웠던 부분

2)이해가 안된 부분

3. 이 책의 장점
  • 노자님의 가르침을 생활과 연관지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아 이해가 쉬웠다.
  • 번역가가 비교종교학자 분이라 다방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4 내가 책을 내는 출판사의 입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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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1:23:13 *.124.22.184

중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느라 과제에 집중하기 힘들었다는 걸 알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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