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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0일 11시 40분 등록

저자 연구

노자(老子)

노자는 정확한 출생과 사망이 미정이며 다만 초나라 출신이었다는 것만이 알려져 있다. 중국 고대 사상가이자 도가의 시조로 유가의 시조인 공자(孔子)와 여러 면에서 2,000년이 넘게 비교되고 있다.

노자는 유가에서 내세운 명분주의와 인위적인 인, 예 등에 반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 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유가의 인위적인 도덕이 끼치는 폐단과 인간의 위선을 고발해서 좀 더 근원적인 진리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 방법으로 도()와 덕()을 강조했는데 이 책은 그가 도와 덕에 대해 남긴 글이라고 알려져 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과 명예교수.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비교종교학을 보자 마자 조셉 캠벨이 생각나며 <신화의 힘>, <신화와 인생> 등을 읽을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가뜩이나 도교 사상을 다룬 어려운 책인데 비교 종교학자가 풀이한 책이라니 얼마나 어렵고 재미없을까?

그런데 나의 걱정은 머리말을 읽으면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에 <논어>를 읽으면서 목차 제목이나 구성, 형식 등이 아쉬웠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족집게로 집어 내듯이 제목에 대한 언급을 했고, 구성은 딱 내가 원하던 내러티브 형식이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책 내용은 더 좋았다. 그는 <도덕경>을 그냥 해석만 한 것이 아니라 유교는 물론 불교나 기독교 등 다른 종교와 심지어 철학까지 비교를 하면서 해설과 설명을 했다. 게다가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반영해야 하는지까지 조셉 캠벨의 ‘easier & better version’ 같은 느낌이었다.

 

저서를 찾아 보니 역시나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을 담은 종교 관련 서적을 도교, 불교, 기독교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출간했다. 그 중에서도 <또 다른 예수>, <예수는 없다> 등은 제목만 봐도 우리나라 개신교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을 것 같은데아니나 다를까 일부 열성 신자들의 거센 비난과 위협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한국에 거주하는 게 아니라서 크게 위험한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긴 하지만 카톨릭 신자인 나도 저자의 책에 호기심이 가고 꼭 읽어보고 싶다. <도덕경>에서 맛보기를 했다면  <또 다른 예수>,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등 본격적인 비교 종교 책을 읽으며 조셉 캠벨과 오강남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1판 머리말

7 <도덕경> ~ ‘도와 덕에 대한 경전이라는 뜻이다. ~ ‘는 우주의 궁극실재(窮極實在, ultimate reality)’ 혹은 근본 원리(Principle)’, ‘이란 인간이나 사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될 때 얻어지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덕경> 전체를 통해서 주어지는 기본 메시지는 우주의 기본 원리인 의 흐름을 체득하고,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감으로 참다운 자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을 보라는 것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영어 단어를 알려주니까 이해가 더 잘되기도 한다. 그래도 도교는 어렵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를 알게 될까?

 

1장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_도란 무엇인가?

19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20 감지할 수 있고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한 도는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이고 우주적이니 의미의 무엇이다. ~

라든가 뭐라고 이름이나 속성을 붙이면 그것은 이미 그 이름이나 속성의 제한을 받는 무엇으로서 절대적인 일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무명(無名) 혹은 무()일 뿐이라는 것이다. ~ ‘The Way the whole universe is or is working’.

우주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도록 하는 무엇, 그리고 그것이 움직이도록 하는 기본 원리, 그것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우주의 기본 원칙 같은 것, 그런 의미로서의 ‘The Way’, 그런 의미로서의 궁극 실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너무 어렵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The Way’라고 하니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름이 속성의 제한을 받는 것. 지난 번에 구본형 선생님의 <떠남과 만남>에서 읽었던 이름 모를 새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22 만일 우리가 욕심을 비우고깊은 형안을 갖게 되면 전자인 실상계의 신비를 직관하게 되지만, ‘욕심을 가지고사는 한 눈 앞에 나타나는 현상계만을 감지하고 살 뿐이라고 한다.

 

22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것보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스럽다.”고 했다.

존재의 신비, 존재의 추격이 이러하거늘 존재(being)를 가능하게 하는 비존재(non-being)의 신비, 그 비존재의 충격이야 어떠하겠는가?

세상의 존재를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저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는데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의 존재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모두 신비스럽고 소중할 것 같다.

 

2장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_상호 관계성의 확인

25 모든 일 생겨나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나 가지려 하지 않고, 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공을 쌓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26 이른바 분별의 세계, 일상적 상식의 세계를 초탈하라는 것이다. ‘의 입장에서 보면 반대나 모순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서로 다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빙글빙글 돌아 고정된 성질로 파악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어려운 말로 하면 이원론적 세계관을 벗고 양쪽을 동시에 생각하는 변증법적 사고방식, 양쪽으로 대립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하나라고 보는 양극의 조화’,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를 터득하라는 것이다.

요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내 안의 모순된 성향들의 존재와 그 것들의 갈등인데그것들이 의 입장에서는 반대나 다를 것이 없다니… ‘를 공부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까?

 

27 우리말로 성인(聖人)이라고 하면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본래 뜻은 이런 윤리적 차원을 넘어, 말하자면 특이한 감지 능력의 활성화를 통해 만물의 근원, 만물의 참됨’, 만물의 그러함을 꿰뚫어보고 거기에 따라 자유롭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27 무위란 보통 인간사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 보라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natural) 자발적(spontaneous)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의의 위(無爲之爲)’,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도의 핵심 무위가 등장했다. 설명을 보니 부자연스런 행위의 반대말로서 무위가 매우 맘에 든다. ‘무의의 위(無爲之爲)’, ‘함이 없는 함’. 처음에는 함이 chest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doing이다.

 

28 자기의 의식적, 인위적 행위가 아니라 도에 따라서 저절로 우러나온 자연적 행동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행동인지도 모르고 그것 때문에 생긴 공이 자기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 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세를 가진 자유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이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만큼 자유인인가?

 

3장 마음은 비우고 배는 든든하게_안민(安民)의 길

29 탐날 만한 것 보이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 산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마치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가 유혹했잖아라며 책임을 전가하는것 같다. 자연과 무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도가에서마저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조금 실망스러워졌다.

 

30 훌륭한 사람들을 떠받들거나 그들에게 상을 주면 그것 대문에 서로 다투고 질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하기 어려운 귀중한 것을 귀히 여기면 사람들은 그런 것을 얻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을 저지를 것이요, 탐날 만한 것을 보이면 그런 것을 못 가져 안달하거나 상대적 빈곤에 시달릴 것이니 아예 그런 것을 귀히 여기지도 말고 보이지도 말라고 한다.

이 부분 역시 나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매우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경쟁과 1등에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받는 건 좋은 동기 부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잘 해도 칭찬과 상이 없다면 사람들을 무엇으로 동기화해야 할까?

 

31 노자님이 말하는 근본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잊어버리고, 생래적 무지 속에서 희희 낙락하면서 천진스럽게 살아가게 하여 독재자가 마음 놓고 억압하고 착취하기 쉬운 사회로 만들라는 것일까? 그보다 여기서 노자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그 훌륭하다는 것, 귀중하다는 것, 탐날만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궁극 가치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가져 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32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간다고 하는 것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버리는(unlearning하는) 것이다. ~ 계속 버려서 결국 우리의 제한된 안목에서 얻어졌던 일상적 지식이 완전히 없어지는 완전한 무지의 경지에 이르면 그 때 새로운 의미의 완전한 앎, 궁극 지식의 경지가 트이는 셈이다. 이를 박학한 무지(docta ignorantia)’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좀 아깝긴 하다. 지금 이만큼의 지식이라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였는데도가는 매력적이긴 한데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33 중요한 것은 이런 일상적 지식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지식을 넘어서는 참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일상적 지식이 주는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깨닫는 것이다. 하상공의 말처럼 우민이 아니라 안민(安民)의 장이다.

 

4장 도는 그릇처럼 비어_도의 쓰임새

36 도는 빈 그릇같기도 하고 심연처럼 깊어 알 수도 없고, ‘깊은 물처럼 아물아물하나 신비스러운 무엇이지만 그것은 모든 것의 존재 근원으로서 상존하면서 모든 것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엇임을 재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36 인간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삶이란 도에 맞추어, 도처럼,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 도와 함께 흐르고, 도와 함께 춤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가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엉킨 것을 풀어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된다고 했을 때 우리도 그처럼 너무 날카롭거나, 너무 얽히고 설킨 관계를 유지하거나, 너무 광내려 하거나, 너무 혼자 맑은 체 도도하게 굴거나 하지 말고 양쪽을 함께 포용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라는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시 너무 이상적이다. 우리의 삶은 현실이다. 이상을 꿈꿀 수는 있지만 그래도 발은 현실에 둬야지 안 그러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38 도는 우주의 궁극 근거(Ungrund)’로서 무시적(無始的)이고 무시간적(無時間的)이고 초시간적(超時間的)이라는 뜻이다.

 

5장 짚으로 만든 개처럼_도의 무편 무당성

39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 중심()을 지키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매우 공감.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당시에는 내가 뭐라도 되는 기분인데 결국에는 꼭 쓸데없는 말까지 하게 돼서, 후회하게 될 때가 많더라.

 

40 하늘과 땅 그리고 성인, 따라서 이들로 대표되는 도는 인간적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의 상관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라는 것이다. ~

도는 우리의 변덕스런 이기적 요구 사항에 좌우되지 않으므로 오직 한결 같은 도의 근본 원리에 우리 자신을 탁 맡기고 쓸데 없이 안달하지 않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41 ‘이란 도가 제대로 받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강조되는 법이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인위적, 의식적으로 조화스럽게 유지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은 결코 인간의 최고 덕목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도와 하나되고, 자연과 인간이 모두 도에서 하나되어 도덕적 요구 같은 것은 저절로 충족되므로 인()이니 의()니 하는 윤리적 차원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고 신경쓰지 않는 상태가 최고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자연과 도에서 하나가 될 수 있거나 그러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도 이라는 제도가 필요할 수박에 없었을 거다.

 

41 일상 생활 중에 말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하기 쉽고 쓸데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말 많은 것이 좋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도같이 궁극적인 것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못 된다는 뜻이리라. ~ 궁극적 실재는 체험의 영역이지, 사변적으로 다지거나 논리적으로 캐내려는 지적(知的) 노력의 대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 노력은 오히려 궁극 실재에 대한 체험을 불가능하게 한다. 구태여 말을 한다면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장 도는 신비의 여인_도의 여성적 특성

44 ‘는 골짜기처럼 자기를 낮은 곳에 두고, 허허하고, 고요하고, 탁 트이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품에서 모든 것을 길러내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44 여기에서는 자식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로서의 여인, 생산적 기능의 상징으로서의 여인이 강조되어 있다. 그래서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약한 것 같지만 끊어지는 일이 없고, 쓰면 줄거나 없어질 것 같지만 언제나 이어지고, 텅 빈 것 같지만 그 속에서 계속 뭔가를 생산해 내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 이런 신비의 여인보다 의 항존성, 수납성, 창조성, 생산성, 개방성을 더 잘 상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도가에서 어머니, 여인을 이렇게 본다니 매우 의외다. 유가에서는 여자에 관한 내용이 아이와 함께 다소 비하적으로 딱 한번 있었던 것 같았는데

 

45 지금처럼 핵전쟁의 위협이나 공해 문제로 시달리는 시대에는 하느님 아버지대신 하느님 어머니로 쓰는 편이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

지금까지 공격성, 진취성, 지배성, 경쟁성 등 주로 남성적 특성을 찬양하고 이런 특성을 신과 결부시켜 신을 우리의 대장, 임금, 승리자, 정복자, 주님 등으로 생각했는데 종래까지의 이런 의식 구조나 고정 관념을 청산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봤는데 신선한 주장이다. 맞다 어차피 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데 그동안 남성의 이미지로 사용됐는데 이제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필요한 때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이런 부분에서 비교종교학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46 ‘는 신비의 여인, 우리를 낳고 기르고 먹이고 감싸 주는 어머니. 이런 표현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보다 훨씬 부드럽고 안온하고 포근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 아닐까?

 

7장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_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는 삶

47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 삶을 사는 것입니다. ~

나를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48 진정한 의미의 삶이란 시간적으로 무한히 연장되는 생물학적 삶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롭게 된 참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참 삶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을 그만둘 때 가능해진다고 한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자기 부정의 길이 곧 자기 긍정의 길이라는 것이다. 자기 부정을 통해 참 자기가 새롭게 탄생된다는 것이다.

왠지 기독교의 영생, 부활과도 통하는 것 같다.

 

48 이 때 부정하고, 버리고, 비울 대상으로서의 자기란 작은 자기(small self)’, ‘자의식으로 도사리고 있는 자기(self-conscious self), ‘이기적인 자기라 보고 이런 자기를 부정하고, 버리고 비울 때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자기란 큰 자기(large self), ‘자기라는 의식마저도 없는 활달한 자기’, ‘남을 위한 존재로서의 자기라고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작은 자기를 진정한 자기라 착각하고 거기에 집착해서 그 꿈을 키워 보려 하다가는 큰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고, 반대로 이런 작은 자기를 부정하고 비우면 큰 자기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비본래적인 작은 자기에 대해 죽으면, 본래적인 큰 자기가 되살아난다는 죽음과 부화의 종교적 역설(逆說)의 논리다.

 

49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복 많이 받아 남보란 듯이 잘 살고, 내세에서도 죽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한 것, 말하자면 제 목숨’, 지금의 작은 자기가 잘 되고 영속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런 작은 자기를 구원코자 하면 참 자기를 잃을 수 밖에 없고, 작은 자기를 버릴 때 큰 자기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삽자가에 못박는 것이요,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음으로 진정한 제 목숨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역설의 공식이다.

맞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부귀 영화를 이루는 삶이 아닌데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목사들부터가 부귀 영화를 추구하고 기복신앙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

 

50 “죽기 전에 죽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8장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_물에서 배우다

51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마시는 것도 좋고, 물에 들어가는 것도 좋다.

언젠가 누가 고정된 모습이 없는 물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듣고 멋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도교에서 영향을 받았었나 보다. <도덕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고 도가에 관심도 없던 나에게까지 이렇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52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 받을 일도 없습니다.

 

52 물은 도의 최고 상징이다. ~

우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이 없이 삶을 지탱할 수 잇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 없이는 아예 처음부터 삶이 있을 수도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물은 실로 생명의 근원(fons et origo)’이다.

 

54 만물은 물 없이 못 살지만 물은 그들을 이롭게만 할 뿐 그 공로를 인정받자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 밑에서 묵묵히 섬기는 일을 할 뿐이다. 사실 장미 자체도 대부분 물로 된 것이 아닌가!

 

54 물의 존재 방식은 무엇인가? 모두가 싫어하는 곳, 낮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자기를 낮추면서 흐르는 것이다. 모두가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안달하지만 물은 그런 일과 상관없이 우주적 원리에 자기를 턱 맡기고 유유자적(悠悠自適) 낮은 데로 임할 뿐이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꾸준하고 조용하게, 성실하고 정의롭게, 오직 섬기는 자세로 시의 적절하게 움직이는 물, 어느 누구와도 겨루는 일 없이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물, 과연 누가 이런 물을 나무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자기 겸비(self-humiliation)가 자기 승귀(self-exaltation)의 길이라는 종교적 역설이 통하고 있다. 물처럼, 물처럼 되라.

지난주 오프모임에서 오드리 선배에게 나는 바다같다는 말을 들었다. 물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물, 가장 큰 물, 모든 걸 포용하고 모든 걸 바다드려서 바다라고 했다. 도대체 나의 어디에서 그런 모습을 보셨을까? 궁금해진다.

 

9장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_집착에서의 해방

57 아무리 바람직한 것이라도 지나치면 역효과를 가져온다. 칼을 벼려서 계속 갈고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계속 날카로워지다가 정도가 지나치면 날이 넘어 도리어 무디어진다. ~

그러니 적당한 정도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맞다. 중용과 과유불급.

적당하다는 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58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 길에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삶을 그만큼 여유 잇는 자세로 대할 수 있게 한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바닥에 내려왔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할 따름이다.

 

58 부귀가 생기는데 일부러 피할 것 까지는 없고 다만 그것으로 교만해지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돈에 집착하고 모든 것의 앞에 돈을 두는 것이 문제지, 나의 재능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데 피할 필요는 없다. 돈 앞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59 부유하든 가난하든 재산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인생의 더 깊은 면에 눈을 돌려보지 못하고 평생을 그저 돈 생각만 하다가 마쳐 버릴 위험이 있다.

 

59 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라. 그래서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물러남이 있을 때 새로 들어옴이 있다. 이것이 하늘의 길이라는 것이다.

 

10장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않고_순수한 자기 희생

61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 이루나 거기 기대려 하지 마십시오.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합니다.

이건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무시한 말 같다. 이상적인 도가에서도 너무도 이상적이다.

 

63 도에 입각해서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도와 마찬가지로 여인처럼, 어머니처럼 만물을 낳고 만물을 그 품 안에서 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소유하려 하거나 거기에 기대려 하거나 군림하거나 좌지 우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능력 내지 영향력이 바로 현덕(玄德), 신비롭고 그윽한 힘이라는 것이다.

 

11장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_없음의 쓸모

64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그릇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정말 뛰어난 사고의 전환이다. 그러고 보면 넓은 방이라는 것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이 넓어야 한다. 나의 없음과 쓸모는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다.

 

66 어디 수레바퀴나 그릇이나 집뿐인가? 음악에서도 우리는 보통 음만 생각하지 음과 음 사이에 공간(공간)이 있어야 음악이 음악으로 성립한다는 사실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

우리는 이처럼 보이고 감지할 수 있는 것들의 유익성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유익성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의 유용성도 함께 알아보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66 동양화에는 여백이 많다. ~ 여기 매화 가지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한 폭의 그림이 있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매화 가지와 참새를 그림의 주제로 생각하고 거기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동양화의 경우 궁극적인 의미에서 매화 가지와 참새는 이 그림에서 주제가 아니고, 그 뒤에 공간으로 대표되는 무()나 공()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수단 내지 상징이다. 결국 인식의 초점이 매화와 참새에서 그 위 공간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이렇게 인식의 초점이 뒤바뀌는 것을 인식의 천이(noetic reversal)’라 한다.

예전에는 꽉 찬 것이 좋아 보였고, 그림을 그릴 때도 바탕색을 빈 틈 없이 칠했었는데나이가 들어서인지 여백의 미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사람에게도 여백의 미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꽉 채우려고 해서 인간미가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67 있음의 세계, 존재의 세계를 보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없음의 세계, 비존재의 세계를 인지하고 체득하라. 이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체험이다.

 

12장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고_감각적 욕망의 극복

70 신나는 삶이란 이런 감각적인 것들에 전적으로 무감각하거나 무신경하거나 무관심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색깔, 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맛을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알아보고, 놀랍고 고마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영어로 표현해서 ‘appreciate’할 줄 아는 삶이다.

처음에 해외 여행을 했을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호주의 지평선, 카리브해의 바다, 칠레의 사막. 모든 것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는데어느 순간부터인가 모든 것이 시큰둥 해졌다. 카리브해 바다를 보고 났더니 지중해의 바다조차 들어가고 싶지 않아졌고, 아타카마 사막을 보고 난 후에는 이집트 사막도 사하라 사막도 그냥 그랬다. 영어로 표현해서 ‘appreciate’할 줄 모르는 삶이었다. 다시 ‘appreciate’할 줄 아는 감각을 찾을 때까지 여행을 쉬고 있다.

 

71 참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감각적, 의식적 현상 세계의 일을 최고 가치로 떠받드는 대신, ‘로 상징되는 내면적이고 원초적인 내실(內實)을 우선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13장 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_지도자의 요건, 자기 비움

73 내 몸 바쳐 세상을 귀히 여기는 사람 가히 세상을 맡을 수 있고, 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가히 세상을 떠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73 수모를 당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칭찬을 받는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신나하거나 우쭐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감정이 없다, 메말랐다, 독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74 첫째, 남의 비난이 객관적으로 반드시 타당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때 신이 아닌 이상 남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그저 겉보기나 한 부분만 보고 죽일 사람 살릴 사람으로 판단하기 일쑤다. 이런 판단은 어차피 불완전한 것이므로 이런 판단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죽느니 사느니 억울하다느니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남의 비난을 들었을 때 내가 남에게 오해를 살 만한 어떤 일을 했기에 그런 말을 듣게 되었는가 신기하게생각하고, 그것으로 나 스스로를 살피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75 부처님은 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움직이지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법구경法句經> 6:6)고 했다. 공자님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않는 일이 있나 염려하라.”(<논어> 1:16) 고 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approval-seeking mentality)’에서 해방되면 얼마나 홀가분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좋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도 공자님도 아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방되면 홀가분한 삶이 될 수 있겠지만 왠지 재미는 없을 것 같다.

 

14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_도의 신비적 초월성

78 아무튼 도의 근본적인 차원은 일상적인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양도, 소리도, 형체도 없는 것.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도의 본질을 완전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세 특성을 한꺼번에 다 포함한 것 또는 그 이상이다. 도는 결국 말로 표현할 수 잇는 무엇이 아니라는 뜻이다.

 

79 그러기에 궁극 실재는 보통의 논리로 따지면 모순이요, 역설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초합리적이고 초이성적인 것으로서 독일 종교학의 거성 루돌프 오토가 말한 엄청난 신비(mysterium tremendum)’라는 것보다도 더 엄청나고 신비스러운 무엇이다.

 

15장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_도인의 외적 특색

81 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새로워집니다.

 

82 참으로 도를 체득하고 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이런 예의 바른 교양인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이다. 따라서 딴사람이 보기에는 뭔가 어색하고 모자란 듯 보인다. 사물을 도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만을 딱 부러지게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열린 마음 때문에 글쎄요.” 하는 정도로만 대답하니 끊고 맺는 데가 없어 보인다. 요즘 말로 해서 나사가 좀 풀린 사람같이 보인다. 그러나 도인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도와 하나가 되므로 틀에 박힌 규범이나 주의 주장 등 인위적인 모든 속박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사가 좀 풀린 사람, 좋게 말하면 도인이나 자연인?

 

83 도인은 또 채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간이란 모두 생래적으로 채움의 길을 가고 있다. 뭐든지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더 채우고 더 가지려 한다.

 

16장 완전한 비움_뿌리로 돌아감

86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집니다. 공평해지면 왕같이 됩니다. 왕같이 되면 하늘같이 됩니다. 하늘같이 되면 도같이 됩니다. 도같이 되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몸이 다하는 날까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87 영원한 진리를 알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우선 너그러워진다고 한다. 옹고집이나 독단은 무지나 단견이나 편견에서 나온다. 사물의 영원한 실체를 꿰뚫어보게 된다면 자연히 옹고집이나 독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쓸데 없이 다투거나 조그만 일로 안달복달할 일이 없어진다. 통이 큰 사람, 여유 있는 사람,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된다

영원한 진리를 깨달았는데 너그러워지기만 할까? 득도한 건데

통이 큰 사람, 여유 있는 사람, 융통성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신의 경지 아닌가?

 

17장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_네 종류의 지도자

89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삼가고 아낍니다. (지도자가) 할 일을 다하여 모든 일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라.

그런데 요즘의 지도자는 말을 너무 삼가고 아끼기만 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적절한 소통,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할 일을 다하기 전에, 미리 소통하고 해야 한다.

 

92 사람을 다스리는 일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본래적 능력이나 가능성을 자기들 스스로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다스림은 지배(支配)나 강압(强壓)이 아니다. 뒤에서, 밑에서 북돋워 줌이다.

이건 요즘 서양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단점이 아니라 본래적 능력이나 가능성을 스스로 개발,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좋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92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삼간다.” 묵묵히 사람들의 안녕만을 생각할 뿐 홍보니 공보 영화니 하는 것들과 무관하다. 그러니 일이 잘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자기 자신의 덕인 줄로 생각한다. 그래도 훌륭한 지도자는 그것을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나 그들과 겨루어 누구의 공이 더 큰가 따지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지도자 밑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나 훌륭한 업적을 자신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나 사회나 집안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바르게 되어간다는 뜻이다.

 

18장 대도가 폐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_윤리적 차원의 한계

95 우리가 보통 귀히 여기는 이런 윤리적 가치가 강조된다는 사실은 결국 그런 윤리적 이상이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 준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이다면 구태여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랑이 강조되면 될수록 그만큼 사랑이 부족함을 반증하는 셈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일수록 도덕이 더욱 거론되고, 정신적으로 병든 사회일수록 종교가 더욱 성행하게 된다. 마치 강력한 약이 많고 용한 의원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에 아직 질병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증거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9장 성스런 체함을 그만두고_소박성 회복

100 어느 면에서 종교란 우리의 자기 중심적 욕심 때문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욕심을 줄여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상태로 옮겨 가려는 노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영혼이 자신을 생각하는 일을 그만둠으로써만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했고, 마이스터 에카르트 (Meister Eckhart)만일 영혼이 하느님을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먼저 자기 스스로를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킴은 물론 성을 쳐서 이김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말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결국 종교의 역할이 자기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거 아닌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20장 세상 사람 모두 기뻐하는데_위대한 인물의 실존적 고독

101 세상 사람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습니다.

그러게, 딱 지금 내 심정.

 

102 내 마음 바보의 마음인가 흐리멍텅하기만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합니다. 바다처럼 잠잠하고, 쉬지않는 바람 같습니다.

딴 사람 모두 뚜렷한 목적이 있는데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나 홀로 뭇사람과 다른 것은 결국 나 홀로 어머니 ()먹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딱 지금 내 심정이다. 그런걸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거겠지? 다들 자기만 그렇다고 생각하면서아니 정말 나만 그런건가?

 

103 일상적 의식의 합리적 차원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이런 차원을 넘어선 사람을 보면 아주 흐리멍텅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뭇사람의 이해를 얻지 못해 외로운 법이다. 이를 일러 위대한 인물의 실존적 고독이라 할까?

 

21장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_도의 존재론적 측면

107 덕이란 도를 따르므로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 여유 같은 것이다. 물론 이런 덕을 가진 사람은 윤리적으로도 훌륭하겠지만 판에 박은 듯한 윤리 규범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윤리적 차원을 완성하고 이를 넘어서서 훌훌 자유로이 살아가는 능력 때문에 의 사람, ‘의 사람이 된 것이다.

 

108 도에는 또 정()이 있다고 한다. ~ 아무튼 이것은 지극히 진실되고 참된 무엇으로서, 그 안에 신()이 있다고 한다. 미쁨, 믿음직스러움이라는 듯인데 여기서는 우주에 편만한 법칙성, 규칙성, 주기성을 뜻한다고 여겨진다.

 

22장 휘면 온전할 수 있고_겸손의 위력

110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움푹 파여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헐어야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지금 나는 빈 공간도 없는 상태에서 채워지기만을 바라는 건 아닐지

 

111 바람이 불 때 휘어지지 않는다면 뿌리째 뽑혀 버리고 말 것이다. 대나무를 보라. 휘어지지 않으면 꺾여 버리고 말 것이다. ~ 살아가는 데 융통성,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112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한 세상 지내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으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 기회 있을 때마다,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자기가 뭔가 되는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자기를 자랑하고, 뽐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짓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세상을 양면으로 다 보는 사람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이 없어 구태여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빛이 나고, 돋보이고, 인정을 받고, 오래 기억된다는 것이다.

 

23장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

116 하늘과 땅이 합하여 온갖 일을 이루어 내지만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하지 않는다. 별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게 하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하는 등 대자연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런 것을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말로 선전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18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결국 제 2단계의 의식을 활용하면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 필요한 단계이기는 하지만 최상의 상태가 될 수 없는 것으로서 인간은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속에서만 계속 살아갈 수가 없다. ~ 말로 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는 것, 이성적 추구만으로는 뚫을 수 없는 경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경지를 궁극 목표로 삼아야 한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말이 많아지고, 말이 하고 싶어질까? 이성적 추구만으로 뚫을 수 없는 경지는 어디?  

 

24장 발끝으로는 단단히 설 수 없고_부자연스러운 행동의 역효과

119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게 빛날 수 없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돋보일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121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하는 삶,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삶, 스스로 자랑하고 뽐내는 삶은 주위에서 이를 보아야 하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 이런 사람 주위에는 밝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있을 수 없다.

122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드러내려고 거들먹거리거나 교만하고 자긍하는 태도는 이렇게 우리 스스로도 괴롭고, 남도 못살게 하는 고달픈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스스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같다. 남들에게 불쾌감을주지 않으면서 주위에는 밝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잘 드러내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가능할까?

 

122 도의 사람은 이런 일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남이 칭찬을 하거나 오해하여 비난을 하는 데 신경쓰지 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소박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삶이 가져다 주는 자유(自由)와 청복(淸福)을 누리며 살아가는 해방의 삶이다.

나는 도의 사람이 되기에는 아주 먼 것 같다.

 

25장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_근원으로서의 도

124 사람은 땅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

 

126 ‘는 크다. 도를 본받는 하늘도 크다. 도를 본받으므로 위대해진 하늘, 그 하늘을 본받는 땅도 크다. 도를 본받으므로 위대해진 하늘, 그 하늘을 본받으므로 위대해진 땅, 그 땅을 본받는 사람도 크다. 결국 모든 위대함의 근원은 . 사람의 위대함도 땅과 하늘을 거슬러 올라가 도를 본받는 데서 비롯한다. ~ 따라서 자연을 본받는다함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한다는 뜻이라 볼 수 있다.

 

26장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_무거움의 힘

128 사람, 특히 지도자는 땅의 이런 묵직함을 본받아 중후하고 침착해야 한다. 경박하거나 조급하거나 초조해서는 안 된다. 안달하거나 덤벙거리거나 촐랑거리거나 부산을 떨지 말고 땅처럼 의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경박하거나 너무 조급하거나 초조해하는 사람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괜히 나도 덩달아 부산해지고 마음이 급해진다.

 

130 지도자뿐 아니라 우리 자신은 어떤가? 우리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사랑하는가, 혹은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화려한 결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가?

 

130 그때그때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약삭빠르게 온갖 편법(便法)을 써 가면서 수선을 떨고 사는 삶이 우선은 성공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같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도덕경>에서는 우리에게 그런 삶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묵직하고 조용하게 사는 삶, 어느 면에서 우직하기까지 한 삶이 결국 긴 안목으로 볼 때 그런 경박한 삶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다.

세속적으로 빨리 성공하는 게 다는 아니다. 그렇게 못하는 나만 바보 같아 보여도 당장이 아니라 길게 보면서 살자.

 

27장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_도에 따른 행동의 완벽성

133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단계를 넘어 도와 하나된 경지에 이르면 라고 하는 것은 없어지고 만 있는 상태이므로 결국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도가 하는 일이 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흔적이나 흠은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 아닐까?

 

134 선함은 선하지 못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익충(益蟲)과 해충(害蟲)의 관계이다. 익충은 해충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 선한 사람을 귀히 여김과 동시에 선하지 못한 사람을 아낄 줄 아는 트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 선하지 못한 사람 때문에 선한 사람이 돋보이게 된다는 말은 아니겠지. 맞는 말이지만 <도덕경>에서까지 그런식의 비교는 싫다. 선함은 선함 그 자체로 선한 것.

 

28장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_양극의 조화

136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십시오.

나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둘다 강하게 갖고 있다. 예전에는 한번에 한가지씩만 보이려고 했지만 이제는 둘다 동시에 갖고 보이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 <도덕경>에서도 그런다.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라고. 그렇게 하자.  

 

137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그의 유명한 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모든 영웅담(hero myths)에 나오는 정신적 영웅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그들의 정신적 모험이란 결국 최종적으로 이 반대의 일치의 자각에 도달하려는 정신적 추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칼 융(Carl G. Jung)중국인들은 모든 생명 있는 것 속에 생래적으로 내재하는 모순성과 양극성을 인지하는 데 실패한 적이 없다. 반대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나 다른 편에 대한 균형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는 고급 문화의 징표이다. 일면성(one-sidedness)은 비록 그것이 모멘텀으로 유도하기는 하지만 야만성의 표지이다.”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모순성과 양극성을 잘 인지했다고? 음양을 말하는 건가?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성과 양극성이 싸우지 말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잘 살기를 바라는데, 좋은 소식이다.

 

139 분석적, 이분법적 대립의 세계관에서 해방되어 근원으로 돌아감으로 양면을 동시에 보는 통전적, 비이분법적 의식 구조를 가지도록 하라는 이야기다.

 

29장 세상은 신령한 기물_외경(畏敬)의 자세

141 “앞서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이 있고그 뿐 아니라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도 앞서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때도 있고……

 

144 동서양 할 것 없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 크게 요구되는 것은 나라나 자연을 대할 때 함부로 설치는 대신 차분한 마음으로 거기에 내재한 흐름과 리듬을 알고 거기에 순응하겠다는 더욱 겸허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30장 군사가 주둔하던 곳엔 가시엉겅퀴가_전쟁의 비극

145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됩니다. 훌륭한 사람은 목적만 이룬 다음 그만둘 줄 알고, 감히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좋은 전쟁은 없다.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과정과 결과가 선하고 좋은 전쟁은 없다.

 

147 방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더라도, 나라를 방어하고 국민을 보위한다는 본래의 목적이 성취되었으면 거기서 끝나야 한다. 무슨 큰일을 이룬 것처럼 승전고를 울리면서 사열식을 하고, 전승 기념탑이니 영웅 추대식이니 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거나 뽐내거나 그것으로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 군사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나아가 주위 국가나 천하를 제패(制覇)해 보겠다는 등의 허황한 야망을 품는다든가 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

 

31장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것_무기여 안녕

152 방어전에서 무기를 써서 승리하더라도, 결코 이 승리를 미화하거나 찬양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승리를 미화하는 것은 살인을 즐긴다는 뜻이요, 살인을 즐기는 자가 어떻게 세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한다.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롭게 살기를 재삼 권고하는 것이다.

 

153 “적군이긴 하지만 몇 십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살상당했는데 이런 축제 행사가 격에 맞느냐?”

미국 전쟁영화나 영웅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물론 자기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가족을 위협하는 적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수십명을 죽이는 장면을 보면물로 영화라서 과장하는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안 좋다. 그 적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었을텐데

 

32장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_도의 소박성은 지도자의 귀감

155 세상이 도()로 돌아감은 마치 개천과 계곡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듦과 같습니다.

 

157 강이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개천이나 계곡의 물처럼 도도 세상에 흘러들어 만물을 이롭게 한다. 이처럼 도의 사람도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돕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33장 자기를 아는 것이 밝음_참 자아의 발견

158 남을 아는 것이 지혜()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입니다. 남을 이김이 힘있음(有力)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입니다.

159 남을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자기를 이기려면 정말로 강함이 있어야 한다. ~ ‘()’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는 덮어놓고 힘을 쓰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면적 강함이다. ~ 그러나 화가 나더라도 참고(사실 엄격히 말하면, 도에 따라 사물을 보는 사람은 화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팔팔한 기백을 죽인 채, 차분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함으로 상대방이 꼼짝 못하도록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강함이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일로 보인다.

부드러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면적 강함. 외유내강을 말하는 것 같다.

 

34장 큰 도가 이쪽 저쪽 어디에나_도의 작음

162 언제나 욕심이 없으니 이름하여 작음이라 하겠습니다. 온갖 것 다 모여드나 주인 노릇 하려 하지 않으니 이름하여 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일을 이룰수 있는 것입니다.

 

163 참된 어머니는 자식을 소유하려 하거나 잘 길러 그 덕에 자기 위신을 높이거나 가문의 이름을 빛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예전에도 어머니들이 자식 잘 가르쳐서 (본인의 위신을 아니라고 해도) 가문의 이름을 빛내려 하지 않았나? ‘너는 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우리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사극에서 많이 들었던 대사 같은데그들은 참된 어머니가 아니었던 건가?  

 

164 도의 또 다른 상징인 물을 보라. 온갖 물고기가 그 속에서 노닐지만 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향해 물에서 사니 물값을 내라거나 임대료를 내라고 큰소리치지도 않는다.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야속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것을 이롭게만 할 뿐 자기의 영광이니 이름이니 공로니 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욕의 상태이기에 이를 일러 작음이라 한다. 그러나 모든 물고기가 그 안에서 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감싸고 있으므로 이를 일러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65 무슨 일을 할 때 남이 알아줄 것을 바라지도 말고, 처음부터 그런 것을 의식마저 하지 않고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렇게 할 때 진정으로 큰 것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남에게 보상을 받기는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남이 알아줄 것은 바라게 되더라. 나는 도인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이다. 이런 것 까지 따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35장 도에 대한 말은 담박하여 별 맛이_진리의 단순성

169 일단 상식적인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서 도의 참뜻을 들여다보게 되면 지금껏 단순하고 평범하여 무미건조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만 보이던 도, 거기에 대한 말이 어쩐 일인지 갑자기 더할 수 없이 맛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져 히브리 성서의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편 109:103) 하는 찬탄의 부르짖음을 발하지 않을 수 업게 된다는 것이다

 

36장 오므리려면 일단 펴야_변증법적 변화 과정

173 국가의 흥망 성쇠뿐 아니라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며 또 오르막이 이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173 ‘날카로운 무기는 깊은 데 감추어 두었다가 꼭 필요한 방어전에서나 내어 쓸 뿐, 그것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는 것은 패망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발톱 숨기기. 내가 잘 못하는 거다. 아직 단수가 좀 낮은 것 같다. 좀 올려보자.

 

37장 하지 않으나 안 된 것이 없다_무위(無爲)의 역동성

174 무슨 일을 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이름없는 통나무는 욕심을 없애줍니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온누리에 저절로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175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고 속 깊은 데서 저절로 우러나는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행동, 이것이 바로 무위(無爲)의 위(), ‘함이 없는 함이다.

 

38장 훌륭한 덕의 사람은_덕을 논함

178 훌륭한 덕()의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훌륭하지 못한 덕의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합니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

훌륭한 덕의 사람이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가 하는 훌륭한 일이 덕인 줄도 모르고, 덕이 쌓이는지 없어지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고 구김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정말로 덕이 없는 사람에 속하는 것 같다.

 

181 훌륭하지 못한 덕의 사람은 억지로 일을 꾸미고 잔뜩 벌여 놓는다. 자기의 행동을 이식하고 뭔가 해놓아야 될 것처럼 조바심이다. 언제나 할 일이 많다. 그러나 멀리 보면 하나도 되는 일이 없다. 한마디로 상덕(上德)의 사람은 무위(無爲)의 사람이요, 하덕(下德)의 사람은 유위(有爲)의 사람이다.

여기서 보면 또 그렇게 덕이 없는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억지로 일을 꾸미고 잔뜩 벌여 놓는 건 싫어한다. 이제 그런 것들이 피곤하다.

 

39장 예부터 하나를 얻은 것들이_하나의 힘

186 ‘하나를 근본으로 하는 삶은 무엇인가? ‘하나는 모든 것을 꼴지어 주지만 스스로 어떤 꼴을 취해서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 ‘하나는 자기 낮춤의 최고 상징이다. 인간도 특히 지도자도 이처럼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고 한다.

 

40장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_순환 원리의 보편성

191 어느 누구도 벼이삭을 빨리 자라게 목을 비틀 수도 없고, 가는 봄 오는 겨울을 붙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이와 같이 약한 듯 은은하고 은근하게 돌아가는 도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돌며 의연하고 늠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이리라.

 

41장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가_진리의 역설성

196 도는 숨어 있고’, 이름도 없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상식적인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러나 그것만이 모든 것의 존재 근원이요, 모든 것의 생존 원리로서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눈 있는 자는 보라.

숨어 있고 또 이름도 없는 데 어떻게 찾아야 하나.

 

42장 도가 하나를 낳고_도가적 코스몰로지(cosmology)

199 서로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각자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거나 상대방에게 자기의 듯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화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마음, 자기 혼자서는 아무 일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의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조화는 자기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겸손함을 전제로 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이다.

 

200 대부분의 경우 자기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려던 사람은 오히려 자기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만다. 따라서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든가, 얻으려면 잃게 되고 잃으면 얻게 된다는 역설의 진리가 실증되는 셈이다.

이런게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진리의 역설인가 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비슷한 표현이 있는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43장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_부드러움이 머금고 있는 힘

202 “세상에서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란 물론 물이다. 물은 도무지 뻣뻣하게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지고, 동그란 그릇에 들어가면 동그래지고…… 그뿐인가. 추우면 굳고, 더우면 풀어지고, 뜨거우면 날아가고…… 이렇게 도무지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 것을 일러 물이 가진 고유의 고집이라면 고집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물보다 더 순해빠지고 더 물러빠진 것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순해빠지고 물러빠진 물, 부드럽기 그지없는 물이 세상에서 가장 딱딱한 것, 바위나 쇠붙이 같은 것을 이긴다는 것이다.

202 물은 일부러 설치거나 억지로 일을 꾸미거나 폭력 같은 것을 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 방식대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뿐인데도 그것은 바위나 쇠붙이처럼 단단한 것이라도 녹이고 썩히고 닳게 하고 부수고 침투하고 분해시킨다.

물이 바위나 쇠붙이를 이기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닐까? 조급해하지 말자.

 

203 부드럽고 순해빠지고 물러빠진 백성이 무지막지하고 포악한 정권 밑에서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것만 같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백성을 이긴 정권이 어디에 있는가? 힘없는 민초(民草)의 힘(people’s power)이 결국은 철권을 휘두르는 강권 정치의 힘을 이기고 만다.

맞다. 우리도 몇 번 경험했다.

 

204 인간사도 마찬가지. 자기 주장, 자기 줏대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섞일 수가 없다. 자기를 진정으로 비운 사람만이 거침이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서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44장 명성과 내 몸, 어느 것이 더 귀한가?_우선 순위의 확인

205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한가지. 만족할 줄 알고 그칠 때를 아는 것. 이제 저주는 깼으니 삶 속에서 녹여서 잘 살자.

 

207 우리 몸이 명성이나 재산보다 더욱 귀하고 중하니 몸을 해치면서까지 명성이나 재산을 위해 애태우고 감투와 돈을 찾아 신기루 좇듯 하며 달려가는 그런 부질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

명예를 좋아하며 명예를 얻는 데 전전긍긍하면 그런 가식적인 행동 때문에 오히려 명예와는 상관이 없이 치사한 사람으로 전락되기 십상이다.

 

45장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_고졸(古拙)의 멋

211 도자기만이 아니라 조각도, 그림도 마찬가지로 어딘가 좀 모자란 듯하고 수줍은 듯한 데가 있어야 내면에서 번져 나오는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맞다. 너무 공장에서 찍어낸 티가 나는 똑 같은 것들은 오히려 멋이 없다.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얼굴보다는 코나 눈 밑에 점 하나 있는 얼굴이 어 예뻐 보인다.

 

211 함석헌 선생님께 무슨 질문이든 던지면 첫마디가 글쎄요하는 것이었다. ~ 그분은 미리 짜여진 각본 같은 대답이나 일차 방정식처럼 직선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다니지 않으셨다. 진정으로 속에서 우러나는 소견을 그때그때 듣는 사람의 사정에 알맞게 말씀하시려니 청산유수처럼 될 수가 없고 자연히 주저하는 듯, 더듬는 듯한 감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미리 꾸미고 다듬은 말이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 지극히 자연적인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말, 도에 입각한 말은 이렇게 눌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웅변적으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움직이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46장 족할 줄 모르는 것_부지족(不知足)의 위험

213 족할 줄 아는 데서 얻는 만족감만이 영원한 만족감입니다.

 

47장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_내면적 성찰

220 그러니 진리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생각하면서 표면적 현상 세계를 찾아 쏘다니는 부질없는 일을 하지 말고 조용히 앉아서 우리 내면에서 발견되는 진리의 뿌리를 붙잡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다.

영웅의 여정, 여행은 필요 없는 건가?

 

48장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_일손(日損)의 길, 부정의 길(via negative)

222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

도의 길을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 지경에 이르십시오.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쌓아가라며 또 하루하루 없애가라니이래서 도는 어렵다.

 

49장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다_이분법적 경직성 극복

227 성인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한결같이 선하게 대한다. 선하지 않은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성인은 이런 쉽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229 이렇게 선악이나 신, 불신을 대립으로 보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갈 때 참으로 선을 참으로 신의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50장 그에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에_생사에 초연한 삶

233 노자님이나 장자님에게 죽음이란 근본적으로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장자님은 죽음이란 한 가지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 옮겨 감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난 것이 즐거운 일이지만 세상에는 이와 못지 않게 다른 수많은 존재 양식이 있을터인데, 이런 수많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도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는 식의 말을 했다.

234 죽음이든 삶이든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사에 관계되는 모든 욕심이나 집착의 줄을 끊고 초연해진 사람만이 육지에 다니든 전쟁터에 나가든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노자와 장자다. 나와는 다른 도인들이시다. 나는 지금 나의 삶에 충실하면 된다.

 

234 어느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을 소비하면서 죽어 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연습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주어진 삶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의연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51장 덕은 모든 것을 기르고_현덕(玄德)의 작용

237 도는 만물의 존재 근원이지만 덕은 그 만물 속에 내재해서 움직이는 역동적 힘이다. 만물이 도에 의해 생겨났지만 만물은 도의 으로 자라난다. 우리의 존재 근원으로서의 도가 우리 속에서 막힘이 없이 움직일 때 우리는 그 으로 삶을 건강하고 자유스럽고 풍요하게 살아갈 을 얻게 되는 것이다.

 

52장 어머니를 알면 자식을 알 수 있다_근원을 아는 것이 영원을 배우는 것

241 현상계의 모든 것을 통해 그 근원이 되는 도를 다시 받들고 그 원리에 입각해 살면 일생 동안 위태로운 것, 두려운 것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241 시작을 아는 것, 근원을 아는 것, 도를 터득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용히 욕망으로 가득한 입을 다물고”, 감각(感覺)과 지각(知覺) 같은 이원론적 의식(意識)문을 닫고”, “작은 것”, 내면적인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

 

53장 이것이 도둑 아니고 무엇?_곁길 감의 폐해

245 가만히 따져보면 내가 번 돈이니 내 마음대로 쓴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말인가? 오늘처럼 얽히고 설킨 세상에서 정말 나 혼자의 능력만으로 부하게 된 것인가? 대대로 내려오던 선산의 땅값이 치솟는 바람에 벼락부자가 된 것이 내가 남보다 더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가? ~ 엄격하게 따지면 한쪽의 부란 다른 쪽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내가 번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잇다고 주장하면서 남보란 듯흥청거리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그래서 사실 나는 주식투자도 싫어한다. 제로섬 게임까지는 아닐지라도 엄격히 따지면 내가 주식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벌어도 기분이 상쾌하지 않고, 잃으면 불쾌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도 있다.

주식을 못하는 나의 자기합리화이기도 하다.

 

246 도둑이 따로 없다. 노자님에 의하면 한쪽에서는 굶어죽는데 우리가 이를 못 본 체 내 돈 내가 쓴다고 하며 흥청거리면 그것이 바로 도둑이라는 것이다. ~ 우리 모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겠다.

 

246 우리는 도가 없는 사회에서 혼자 부하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인정하고 좀 더 이웃을, 사회를, 전세계를 하나의 유기체적 단위로 생각하며 남의 아픔에 동참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는 데 더욱 관심을 모아야 할 것 같다.

착한 부자, 착한 돈이라는 것이 이런 거겠지?

 

54장 대대로 제사를 그치지 않는다_바른 길 감의 보람

248 (도를) 자신에게 실천하면 그 덕이 참될 것이고,

가정에서 실천하면 그 덕이 넉넉하게 될 것이고,

마을에서 실천하면 그 덕이 자라날 것이고,

나라에서 실천하면 그 덕이 풍성해질 것이고,

세상에서 실천하면 그 덕이 두루 퍼질 것입니다.

 

55장 덕을 두터이 지닌 사람은_갓난아이 같은 삶

255 자연과 합일되어 조화스럽게 살아가는 무위의 법을 체득한 사람은 영원을 향유하는 사람이고, 이를 아는 사람이 바로 사물의 궁극 이치를 깨달은 명찰과 지혜의 사람이라 한다. ~

도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역효과만 초래하므로 달력의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자연과 합일되어 구름 떠가듯,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삶에서 궁극적인 삶의 스타일을 찾도록 권고하고 있다.

 

56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_언어의 한계

260 사람이 가까이하려 한다거나 멀리 하려 한다거나, 해롭게 하려 한다거나 이롭게 하려 한다거나, 귀하게 여긴다거나 천하게 여긴다고 해서 그런 데 구애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친소, 이해, 귀천, 영욕 따위의 구분에 관계하지 않고 그저 의젓하고 떳떳하고 늠름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세상에서 추앙받는 사람이 된다.

 

57장 백성이 저절로 통나무가 된다_억지로 함이 없는 정치

261 사람 사이에 잔꾀가 많을수록 괴상한 물건이 더욱 많아지고, 법이나 명령이 요란할수록 도둑이 더욱 많아집니다.

요즘 세상 얘기 같다. 도무지 뭐에 쓰는 물건일지 모르겠는 괴상한 물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63 인위적이고 가식적이고 허세 위주의 공로 제일주의적인 다스림이나 규정이나 제도나 문화 등을 거부하고, 거저 가만두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 본연의 선함과 내적 힘에 따라 그대로 잘 되어가게 마련이라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도가적 작관주의의 견해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58장 화라고 생각되는 데서 복이 나오고_새옹지마(塞翁之馬)

265 ()라고 생각되는 데서 복()이 나오고 복이라고 생각되는데 화가 숨어 있습니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영어에도 “Blessing in Disguise”란 표현이 있다. 화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화의 가면을 쓴 복.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59장 검약하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_아낌의 정치

272 검약한다는 것은 결국 뭐든지 함부로 하지 않음’, ‘고요함’, ‘일을 벌이지 않음’, ‘마음을 비움등과 궤를 같이하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그것은 그대로 도를 따르는 행동이다. 도에 따라, 순리에 따라, 재력이나 국력이나 인력 등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행동,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염려, 쓸데없는 짓 등을 멀리함으로 체력, 지력, 정신력, 정력 등도 아끼고 보존하면 안팎으로 덕이, 곧 힘가 생기와 활력이 점점 쌓이게 되고 그렇게 덕이 많이 쌓이면 아무리 울어도 목쉬는 일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거칠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이겨 내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무한한 내적 힘을 갖춘 사람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60장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_놓아둠의 정치

275 작은 생선을 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작은 생선을 구울 때는 우선 칼로 배를 따서 내장을 뺀다든가 뼈를 추린다든가 하지 않고 통을 굽는다. ~ 한쪽이 다 익기 전에는 이리저리 뒤집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작은 생선이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다. 잘 익을 때까지 한참 동안 가만히 놓아 두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

맞다. 다 익기 전에 뒤집으면 생선 살이 모두 망가진다. 그런데 잘 익을 때까지 가만히 놓아 두고기다리기가 너무 힘들다.

 

276 무위의 정치, 불간섭주의의 정치라고 해서 완전히 무관심하고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관심과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고단수 정치이다. 그러기에 이런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도에 입각하여 무의의 원리를 터득한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다.

 

61장 큰 나라는 강의 하류_대국과 소국의 관계

278 큰 나라는 강의 하류. 온 세상이 모여드는 곳. 여성은 언제나 그 고요함으로 남성을 이깁니다. 고요히 스스로를 낮춥니다.

 

280 <도덕경> 전체를 통해 여성적인 성격, 부드럽고 안온하고 차분하고 겸허하고 포용적이고 개방적이고 수납적인 태도가 떠들썩하고 덤벙거리고 저돌적이고 능동적인 남성을 이긴다고 본다. 여기서는 특히 고요함자기 낮춤의 자세를 통해 남성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천년전에 그런 사고가 가능했다니 특이하다. 유교와의 큰 차이점 중에 하나인 것 같다.

 

62장 도는 모두의 아늑한 곳_도의 포용성

285 도의 큰 품속에서 버릴 것, 버림받는 것, 쓸모없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는 듯이다. 도의 세계는 상식적인 세계에서 임의로 정한 선악, 미추 등의 대립적 이분법을 넘어서는 경지다.

 

63장 어려운 일은 쉬울 때 해야_실기(失機)하지 않는 자세

287 어려운 일을 하려면 그것이 쉬울 때 해야 하고, 큰 일을 하려면 그것이 작을 때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에서 제일 큰 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끝에 가서 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288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맞게 마련입니다.

지금 경험하고 있다. 쉽다고 쉬운 것도 아니고, 실제로 쉽다고 해도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 그 뒤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

 

64장 천릿길도 발 밑에서_큰 일의 작은 시작

292 억지로 하는 자 실패하게 마련이고 집착하는 자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하지 않음으로 실패하는 일이 없고, 집착하지 않음으로 잃는 일이 없습니다.

 

295 이런 기본적인 이치를 모르고, 처음부터 태산을 쌓는다거나 구층 누대를 올린다는 거대한 꿈만 가지고 설치는 사람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뿐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일만은 이루고 말리라는 강한 집념과 집착 때문에 실패했을 경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과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에 따라 사는 자연인, 자유인은 한 줌 티끌이나 한 줌 흙을 옮기는 기분으로 쉽게 일을 시작하여 꾸준하고 묵묵히 수행한다. ~ 그래서 결국은 태산이 이루어지고 구층 누대가 완성된다. 그러나 아무것에도 달라붙거나 집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일이 완성되면 그것으로 족할 뿐, 뽐내거나 소유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잃는 일이 없다.

 

65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아는 것이 많기 때문_무지(無知)의 정치

297 그윽한 덕은 너무나도 깊고 멀어서 사물의 이치에 반하는 것 같지만, 결국 (도에) 크게 따름(大順)입니다.

 

66장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_스스로 낮춤

302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낮추기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보니 내가 바다 같다는 말이 더욱 더 안 믿어진다.

 

67장 내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307 자애 때문에 용감해지고, 검약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음 때문에 큰 그릇들의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자애를 버린 채 용감하기만 하고 검약을 버린 채 베풀기만 하고 뒤에 서는 태도를 버린 채 앞서기만 한다면 이는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자애로 싸우면 이기고, 자애로 방어하면 튼튼합니다. 하늘도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면 자애로 그들을 호위합니다.

 

311 이 세 보물 가운데서 으뜸은 결국 사랑하는 마음인 자애라고 한다. 자애로움을 원칙으로 하면 전쟁에 임해서도 승리하고, 방어하는 일에도 튼튼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듯 안전하다고 한다.

 

68장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보이지 않는다_비폭력의 힘

313 “훌륭한 승리자는 대적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적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길이 있고, 이렇게 이길 때 완전히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게 어떤 길인지…? 궁금하다.

 

315 겨루지 않으니 나무람 받을 일도 없고, 겨루지 않으니 더욱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69장 오히려 한 자 정도 물러서야_방어전의 불가피성

320 “자애로 싸우면 이긴다고 했는데 그 자애로우누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전쟁으로 인한 인명이나 재산 피해 등 전쟁의 비참함을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슬퍼하는 쪽, 즉 자애의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는 쪽이 결국은 승리함을 이야기 한다는 뜻이라 보는 것이 조을 것이다.

 

70장 내 말은 알기도 그지없이 쉽고_깨치지 못한 자의 무지

324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있으며 손가락에 우리의 전적인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 아니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아야 한다. 상징 자체에 붙들리는 것이 아니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아야 한다.

 

71장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_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326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합니다.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입니다.

<논어>에도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아주 단순한 말인데진리는 진리인가 보다.

 

72장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_백성 사랑이 자기 사랑

333 권력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길은 결국 백성에게 군림하는 일이나 강제하는 일을 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미움이나 싫증을 사는 일이 없도록 처신하는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길이다.

 

73장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지만_사필귀정(事必歸正)

335 나서는 데 용감한 것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지 않는 데 용감한 것은 사람을 살린다고 한다.

 

74장 위대한 목수 대신 나무를 깎는 일_사형(死刑)은 하늘에 맡겨야

339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아무리 사형으로 위협한들 소용이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죽음보다 더 큰 가치, 자기가 믿기에 궁극적으로 의미 이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되었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경우이다.

둘다 무섭다.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

 

75장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_수탈 정치의 종식

345 도가적 입장에서 보면 살아가는 데 어떤 목표를 정하고 삶을 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잘 살아 보자는 목적 의식이 없이 자연스럽고 허허하게 삶 자체를 향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45 행복은 나비와 같다. 그것을 따라가 잡으려면 자꾸만 우리에게서 멀어지지만 그렇게 하는 일을 그만두면 나비가 살며시 우리 어깨에 와서 앉는다. 행복은 고양이 꼬리에 달린 방울과도 같다. 고양이가 그 방울을 잡으려고 빨리 돌면 돌수록 그 방울은 고양이를 따른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그냥 있으면 저절로 온다고? 아님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가?

 

76장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_생명의 원리로서의 부드러움과 여림

346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삶의 무리입니다.

 

346 강하고 큰 것은 밑에 놓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놓이게 됩니다.

 

77장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_공평하고 균형 잡힌 사회

351 그러므로 성인은 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공을 쌓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353 살아가다가 여유가 있으면 그 때 가난한 자, 불쌍한 자를 위해 뭔가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남을 도와 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여겨지는 때는 영원히 오지 않는 법이다.

완전 동감. 여유 있을 때는 안 오는 것 같다. 그냥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크게 할 수 잇다.

 

78장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_물의 역설적 위력

354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것 세상 사람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356 물이 가진 이런 특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스스로 물처럼 될 수 잇는가 하는 것이다. ~ 많은 사람은 물처럼 되는 것이 손해보는 일, 어리석은 일, 비능률적이며 전시 효과도 없고 화려하지도 못한 일이라 여겨 물처럼 되기를 기피한다.

손해보는 것 같아서 이기도 하고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도 물같은 삶을 살고 싶다.

 

79장 깊은 원한은 한이 남는다_척짓지 않는 삶

358 깊은 원한은 화해하더라도 여한이 남는 법입니다. 이것이 어찌 잘된 일이라 하겠습니까?

359 처음부터 원한 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원한을 사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말한 대로 자기를 낮추고, 부드럽고, 포용성 있고, 함부로 하지 않고, 남의 허물을 자기의 것으로 감수하고, 자애로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최소한 적을 만들지는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

 

80장 인구가 적은 작은 나라_도가적 이상 사회

364 노자님의 이상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 있음을 고맙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사회, 그래서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더 나은 삶을 찾는다고 떠다니는 일이 없는 사회이다.

 

81장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_아름다움과 변론과 박식함을 넘어서서

367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370 도를 알고 체득하는 길은 우리가 가진 잡생각이나 편견을 하루하루 없앨 때 생기는 직관과 통찰에 있다. 이것이 박식이나 박학일 수 없고, 박식이나 박학을 절대적인 뭐가 되는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달고 다니는 사람은 도에서 그만큼 멀 수밖에 없다.

 

 

내가 저자라면

 

l  목차에 대하여

이 책 역시 <논어>와 마찬가지로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저자 맘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목차의 순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논어>의 목차 제목은 각 장의 첫 두 글자를 따서 정한거라 내용을 알 수 없어서 아쉬었는데 이 책은 각 장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점이 좋았다. 다만 81장이나 되다 보니 너무 많아서 읽기도 전에 지레 질리는 느낌이었다. 좀 더 크게 묶어서 구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l  보완이 필요한 점

고전 풀이서로는 가장 바람직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별로 보완할 부분은 없어 보인다. 다만 한가지 한자에 음을 달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l  이 책의 장점

<도덕경>은 어렵고 재미없는 책이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쉽게 이해되고 재미있게 읽었다. <도덕경>을 도덕경으로만 풀이하지 않고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와 서양 철학과도 비교해서 이해가 쉽게 됐던 것 같다. 비교 종교학자인 저자 오강남의 내공과 통찰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본문에 영문 번역본을 포함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로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영어로 읽었을 때 더 이해가 잘 되기도 한다. 아마도 보다 명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쉬운 구조로 번역해서 인 것 같다. <논어>를 영문 번역본으로 읽었더라면 이해가 더 잘 됐을까? 궁금해진다.

 

l  내가 저자라면 

지난주에 읽었던 <논어>가 한문 교과서 같아서 재미없게 읽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논어>를 읽으면서 아쉽다고 느꼈던 목차의 제목, 네러티브식 구성 등을 모두 반영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솔직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이지만 그래도 내가 저자라면 저자 -노자, 오강남-의 프로필을 상세하게 넣겠다. 비교 종교학자이고 각 종교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분인데 왜 책에 프로필이 빠졌는지 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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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2:01:41 *.124.22.184

수정씨는 영어로 병기되어 있어 더 읽기 좋았을 것 같았어요. ㅎㅎ

수정씨가 말이 많지는 않은데... 그리고 왜 '나만 빈털털이 인것' 같은 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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