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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8일 18시 42분 등록

정민 -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잊혀진 한시를 소환하다.

 

강의는 안한다는 양반이 인터뷰는 어찌나 많이 했는지 정민 교수의 저자연구를 하려니 키워드가 차고 넘친다. 한문학, 18세기, 연암, 다산, 도교, 문장론 등등 많다 못해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어떤 시선으로 저자를 볼 것인가 고민하던 중 ‘80년 대’, ‘현실’, ‘서정시등의 키워드로 그를 살펴 보게 되었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에 국문학도로서 청춘을 보낸 그가 왜 한시 그것도 미학을 말하게 되었을까. <한시미학산책>을 펴내게 된 그 배경은 무엇일까.

 

저자는 1960년 생으로 79학번이며 따라서 80년 대에 대학시절을 보냈다. 서슬 퍼렇고 암울한 시절, ‘지금 여기의 현실이 아닌 흘러간 옛 한시를 다룬 청년 정민은 어떤 마음으로 한시를 붙잡았을까. <한시미학산책>에서 언뜻 비치는 저자의 글에서 그의 대학시절은 이념, 이데올로기, 현실참여 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당시의 한문학계는 80년대의 반독재, 반체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리얼리즘 이론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연구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다산의 애민시, 농민시 등을 분석한 연구는 넘쳐났지만 이를미학적으로분석한 논문은 드물었던 것이다. 자연히 순수 서정시의 위상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어느새는 투쟁의 무기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문학은 모름지기 현실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이데올로기만 남아있고 아름다움을 논하지 않는당시 문학 담론에 대해 저자의 염증은 깊어졌고 이는 새로운 미학이론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아름다움에로의 갈증은 그로 하여금조선의 두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시풍을 자랑하던 권필의 시 세계를 다룬 논문을 쓰게 한다. 이 시기 저자는 중국의 한시 또한 읽게 되는데, 한시에는 현실적인 면이 없었고 당시의 미학적 표현과 당시의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90년대 초 이데올로기가 마침내 종언을 고하게 된다. 이 시기 저자는 이데올로기가 문학의 본령이 될 수 없다는 기존의 신념을 굳혔고 사람들 또한 박노해 대신 도종환과 이해인을 찾기 시작했다. 1996년에 나온 <한시미학산책>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아름다움이 설 자리가 없는 문학은 선전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 과거는 바로그 때의 지금이며 또 다른현실이라는 저자. 저자에 따르면, 한시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에로의 도피가 아닌 과거의 현실을 마주한 정신을 읽는 것이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옛 정신이 담긴 한시를 소환한 저자. 그와 함께그 때의 지금불렸던 노래를 들어보자.

 

열세 번째 이야기: 씨가 되는 말

 

335 이규보의 위심시(違心詩)

人間細事亦參差 (인간세사역참차) 인간의 잡다한 일들 언제나 들쭉날쭉

動輒違心莫適宜 (동첩위심막적의) 일마다 어그러져 마땅한 구석 없네

 

盛世家貧妻常侮 (성세가빈처상모) 젊을 땐 집 가난해 아내 늘 구박하고

殘年祿厚妓將追 (잔년록후기장추) 늙어 녹이 후해지자 기생이 따르누나

 

雨湆多是出遊日 (우읍다시출유일) 주룩주룩 비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天霽皆吾閑坐時 (천제개오한좌시) 개었을 땐 언제나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腹飽輟飡逢美肉 (복포철손봉미육) 배 불러 상 물리면 좋은 고기 생기고

喉瘡忌飮遇深眊 (후창기음우심모)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儲珍賤末市高價 (저진천말시고가)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宿疾方烡隣有醫 (숙질방광린유의) 묵은 병 낫고 나니 이웃 집이 의원이라

 

335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 시참이라고 한다.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다.

참요(讖謠)도 예언의 노래, 讖은 예언 참. 나도 내가 바라는 것을 시로 지어 보기로 했다. 나의 참요를 지어 부르는 것이다. 누가 볼 것 아니니 대충 읊조려도 되리아.

 

337 시는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 시구가 그녀들의 운명을 이미 예견한 셈이다.

움직이지 않는 항구같은 가지 입장에서야 같이 오고 가는 새는 마중하고 바람은 배웅한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이걸 화류계 운운 하는 건 약간 억지 같다.

 

341

晩起家何事 느직이 일어나도 아무 일 없고

南窓日影移 남창에 해 그림자 옮겨 왔구나

呼兒覓紙筆 아이 불러 종이 붓 찾아와서는

閑寫夜來詩 간밤에 지은 시를 한가히 쓴다.

 

한가로워 구김살이 없다. 그는 수복을 다 누리고 안온한 삶을 살다가 갔다.

 

구김살 없이 오래 살려면 이런 시를 지어야 하는겐가? 한 편 적어서 어머님께 선물로 드리면 의미 있을까? 딸래미더러 써서 선물 드리라 해야겠다. 좋은 아이디어. 외워보자.

 

341 조신준의 집에 들러 시를 구하니, 조신준은 즉석에서 이런 시를 시어 주었다.

시를 왜 구하지? 예전에는 그렇게 방문해서 시를 구하곤 했나? 밥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시를 구한다라. 나름 낭만적이다. 아파트 몇 동 몇 호 지인의 집을 방문해서 나 시 한 수 좀 주라라고 하면 참 뜬금 없겠지. 

 

344 望欲時愁更

멀리서 보려 하면 근심 더욱 멀어지니 올라도 최고봉엔 오르지 말지니라

 

같은 이지만 처음 등장하는 멀어지니로 뒤에 등장하는 깊어지니로 풀이해야 맞다. , ‘멀리서 보려 하면 근심 더욱 깊어지니가 되는 것. ‘멀리서 보려 하면 근심 더욱 멀어지니이건 말이 안되잖아. (출판사 전달용)

 

345 굳이 끝장을 보려 하지 말라. 최고봉은 아껴두라.

이어령 선생님이 김정운 교수에게 그랬다지. ‘인생의 피크를 만들지 말라. 그래도 추억할 수 있는 인생의 리즈시절과 화양연화를 만들어보는 것은 좋은 거 같다. 다만 그것을 지속하려는 욕망만 갖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349 찾아온 벗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마시고 장독이 솟구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말도 안돼. , 막걸리 그리고 장독. 이게 어울릴 수 있는 건가? 잘못 아신 거 아닐까? 곤장 맞아 정신 없는 사람한테 막걸리 권할 분위기도 못되거니와 어혈 있는 사람한테 술을 권한다고? 뭔가 와전된 거 아닐까 싶다. 오히려 곤장 맞은 사람들 어혈 풀어주는 처방이 당시에도 있었는데 벗들이 약을 갖고 오진 못할망정 막걸리를 권했다는 게 이해가 안가네. 만약 사실이라면 벗님들 너무 하셨다.

 

351 그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시인은 계절의 아름다움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만 구슬픈 생각에 자조의 나락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비명에 죽었다.

조직검사를 한 바로 다음 날 괌으로 여행을 떠났다. 1주일 후에 결과가 나오기에 여행지에서 괌의 푸른 바다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마음이 잿빛이었기에. 암이 아니라는 결과를 들은 날의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로 완전 잿빛이었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푸르고 가볍더라.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마음의 평화가 먼저이다.  

 

352

옥 같은 일만 봉 쌓인 바위 속 / 가을의 눈서리 견딘 가지라.

가져와 그대에게 드리옵느니 / 저문 해에 이 마음 알아주소서

시를 선물로. 멋스럽다. 

 

354 만물을 빚어내어 형체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의 재주이다. 조화를 따라 만물의 형상을 잘 본 뜨는 것은 시인의 재주이다. 하늘보다 더 공교로운 것은 없는데 시인이 어찌 하늘의 공교로움을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재능 있는 자는 운수가 사납다. 이는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늘 또한 시기심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재주를 주고서는 어이하여 다시 궁하게 한단 말인가.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은 모두 하늘. 미인박명. 나는 오래 살 것이다. 사막의 모래알처럼.

 

354 대개 뜰 진흙과 잘린 지렁이는 천하게 될 조짐이었고, 벽 햇볕과 가을 파리는 요절의 징조였다.

거꾸로 아닌가? 뜰 진흙과 지렁이가 요절의 징조이고, 벽 햇볕과 가을 파리는 천하게 될 조짐 아닌가?

 

355 ! 시라는 것은 성정의 허령함에서 나오기 때문에 먼저 요와 천을 알아 생각이 솟아나서 그리 하지 않으려 해도 그리 되고 만다.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궁한 까닭에 시가 절로 이와 같게 된다. 재주 있는 사람은 하늘도 시기하나 세상 사람을 또 어찌 허물하겠는가? 슬프다.

 

355 언령의식/ 말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 / 어이 붓을 함부로 놀리랴!

붓도 함부로 놀리면 아니되고 입도 함부로 놀리면 안될 것이다. 언령의식.

 

열네 번째 이야기: 놀이하는 인간

 

 
豆巴
 
滿面花
 
雨打浮沙
 
蜜蜂錯認家
 
荔枝核桃苦瓜
 
滿天星斗打落花
 

뭐지
 
콩이야
 
얼굴 가득한
 
모래밭 빗방울 자국
 
꿀벌이 집인 알겠네
 
여지 열매와 복숭아 ,
 
하늘의 별들이 지는 꽃잎 때렸나.

 

복숭아씨가 아니라 호두임. 복숭아씨는 도핵’, 호두는 핵도라서 저자가 헷갈린 모양. 호두는 쭈글쭈글한 것이 여드름 투성이 얼굴같쟎아. 苦瓜는 쓴 외가 아니라 여주를 말한다. 여주도 쭈글쭈글하게 생겼음. 시 자체는 여러 모로 참 훌륭한데 곰보의 얼굴을 놀리기 위한 재주부림이 아쉽다(출판사 전달용).


366 형식에는 유희성이 있지만 내용에는 장난기가 전혀 없다. 시인은 까다로운 제한을 걸어 놓고, 여기에 진중한 내용을 담아 자신의 언어 구사력을 한껏 과시했다.

까다로운 제한 = 사서 고생. 하지만 사서 고생하는 가운데 실력이 는다.

 

370 운자를 앞뒤로 맞춰야 하고, 의미도 거꾸로 읽을 때를 대비해야 하니 제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상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앞뒤로 읽어 어느 것 하나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없다.

진짜 너무한다. 이런 재능.

 

370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있고           可以淸心也

맑은 마음으로 마셔도 좋다.         以淸心也可

맑은 마음으로도 괜찮으니           淸心也可以

마음도 맑아질 수가 있고            心也可以淸

또한 마음을 맑게 해준다.            也可以淸心

천재인가 할 일 없는 한량인가

 

371 옛날 두도의 아내 소혜가 적금도를 만든 뒤로

가만 보면 여자들이 詩才가 있어.

 

371 그런데 이것을 돌려 읽거나 가로세로로 읽거나 대각선으로 읽거나 건너뛰어 읽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읽어 무려 200여 수의 아름다운 시를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역대로 이를 읽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 여러 편 제출되고 있을 정도다.

대단하다. 감탄만 나올 뿐.

 

371 직금이라 한 것은 남편을 멀리 떠나보낸 아낙이 비단에 한 글자씩 수를 놓아 편지 대신에 부치곤 했던 전통에서 비롯

 

373 아래 그림은 한나라 때 소백옥의 아내가 멀리 촉 땅에 있는 남편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쟁반 가운데 써서 보냈다는 <반중시>이다.

 

375

지금 세상 사람들                      今時人

지혜가 부족해서                       智不足

이 편지 주어도                         與其書

능히 읽지 못하리.                     不能讀

마땅히 중앙에서 사방으로 돌도록 當從中央周四角

 

375 3자로 된 구절에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솜씨가 절묘하다. 끝에는 아예 시를 읽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달아놓았다.


377 각 구절의 끝 글자와 다음 구절의 첫 글자를 보면 절반씩 갈라 꼬리따기 식으로 접속된다. 시의 내용은 군령기의 효용과 의미를 기렸다. 그림 자체를 설명한 셈이다. 단순한 회문에 다시 하나의 파자퍼즐을 보탠 난이도가 높은 형태다.

 

378 세 개의 꼭지점에 나란했던 학문이 한 줄기로 회통하여 유학으로 일원화되는 과정을 내용뿐 아니라 읽는 순서를 통해서도 드러내 보였다. 도대체 한시 짓는 이들의 뇌구조는 어떠한지. 뭐 그런 연구는 없나?

 

381 이런저런 방법으로 읽어 단 스무 글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의 조합이 놀랍게도 각 체를 망라하여 무려 1,000수가 넘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하다.

 

382 보통 머리로는 알 수가 없어 신지체라고 부른다. 할 말이 없다. 파악할 놈만 파악하라는 거야.

 

384 대개 신지체는 한 글자가 두 글자 또는 세 글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385 이 모두 한자가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려운 창작들이다. 물론 장난기가 다분히 서려 있지만, 적어도 내용 면에서는 진중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는 상징의 극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뜻을 찾는 숨바꼭질

 

열다섯 번째 이야기: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389

生苦沈綿(일생고침면)    일생 동안 병고에 괴로웠는데

月患喉嗄(이월환후사)    이월에도 아파서 목이 잠기었네

夜耿不眠(삼야경불면)    삼일 밤을 끙끙대며 잠 못 이루니

大眞是假(사대진시가)    사대 등신 멀쩡한 몸이 헛것이로다

旬尙如此(오순상여차)    오십에도 오히려 이러 하거늘

秩安可過(육질안가과)    육십살을 무사히 지날 수 있으려나

情日煎熬(칠정일전오)    칠정이 날마다 지지고 볶으니

還終當籍(팔환종당적)    팔환에 마침내 의지 하리라

經眞自鄶(구경진자회)    구경도 참으로 보잘것 없으니

載徒悲咤(십재도비타)    십년간 구슬피 탄식 하노라.

 

389 운자를 지켜 숫자만 빼면 여느 시와 다를 게 없다.

 

390 창작상 장난기를 수반해도 문면은 서슬 푸르다./ 한시에 소양이 깊었던 개회가 시인들은 한시의 형태를 응용하여 당시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개화기 시인들이 지은 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한시는 시대의 혼혈이라 할 수 있겠다.

 

390 약초의 이름을 매 구절마다 채워 넣으면 약명체가 된다.

약명시로 약재를 설명할 수 있는 글을 쓴다면 재미있겠는데. 한의학과 문학의 만남. 그런 주제의 책을 쓰면 좋겠으나 말 그대로 역부족이다.

 

392 한 편의 시 안에 12진이나 팔음을 구비함으로써 더욱 완벽한 형식미를 갖출 수 있다고 믿은 옛사람들의 의식이 담겨 있다.

 

393

반하에 서울에 머무르자니 / 병 아직 안 나았다 말들을 하네

마땅히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 안개 달빛 앞 호수서 낚시질하리

半夏留京口 人言病未蘇 只當歸故里 烟月釣前湖

 

권필의 약명체 시다. / 약방문에 인언이란 약초가 있어 장난 삼아 지었다는 시다. ‘인언은 비상의 별칭이다. 극독을 지녀 소량만 약재로 쓴다. / 사람의 말에 극독이 있다고 한 것도 흥미롭다.

 

396 감춰진 규칙을 고려하면 각 구의 끝 글자가 놓이는 순간 다음 구절의 첫 글자가 제한되니, 창작상 고도의 기교와 언어 구사력이 요구된다.

 

397 윤봉길 의사의 첩자시

不朽名聲士氣明 (불후명성사기명) 썩지 않을 이름으로 선비 기개 밝으니

士氣明明萬古晴 (사기명명만고청) 선비 기개 밝고 밝아 만고에 해맑도다

萬古晴心都在學 (만고청심도재학) 만고에 맑은 마음 배움에 달렸으니

都在學行不朽聲 (도재학행불후성) 배워 행함 가운데 썪지 않을 이름 있네

이걸 20대에 쓰셨을 건데. 검색해보니 윤봉길 의사가 쓴 한시가 제법 되더라.

 

398 의미가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진소유의 아내 소소매가 친정오라비인 소동파의 집에 다니러 가서 오래 돌아오지 않자 아내를 그리며 보낸 시이다.

소동파, 소동파의 아내, 소동파의 처형은 소통을 시로 했나 보다.

 

400 생각이 마음 속의 밭을 간다오. 思耕心上田 사경심상전

독음으로 읽으면 사경을 헤매는 거 같다.

 

401

日月朝昏 山風自起 / 石皮仍堅 古木不死
可人
當來 意若重千里 / 永言黃鶴 志士心未已

우와 이건 진짜..한자를 많이 알기도 해야 할 뿐만 아니라뭐라 할 말이 없다.

408 고요히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담담한 시선이 독자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다.

관세음보살의 이 생각난다. 바라봄과 깨달음.

 

409 말하자면 이합체 한시는 각 구의 첫 글자를 거의 미리 정해놓고 시를 짓는 셈이다. 그러니 언어 운용상의 제한과 어려움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도 장유의 시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그런 제한을 받은 흔적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큰 사람의 인생이 이러할 듯. 여러 제한과 한계 속에서 시처럼 산 인생이라 하겠다.

 

409 이런 시들 속에는 그 어려운 한자를 마치 떡 주무르듯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던 옛 시인들의 풍류가 거나하다. 장난은 장난이되 격조를 잃는 법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습작의 과정을 거쳤으면 언어를 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을까. 언어를 매만지는 장인의 근성이 이런 잡체시를 낳았다.

사실 나는 그 분이 올 때 한달음에 쓰는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있다. 퇴고나 습작 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장인의 정신으로 언어를 매만지는 과정이 있어야 언어를 떡 주무르듯할 수 있겠구나.

 

409 오늘날 잡체시가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언어의 부단한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직조가 보여주는 즐거움 외에도 잡체시는 오늘의 시단에 의미 있는 시사를 준다. 젊은 시인들이 실험하고 있는 각종의 형태시들은 기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수없는 상호 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질곡을 만들어 놓고 질곡에서 벗어나기. 이러한 시작詩作 훈련을 인생에도 적용한다면 사서 고생이 되겠다. 젊은 시절의 사서하는 고생은 바로 도전이자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와 같은 인생이 되기 위한 의도적 질곡이라 하겠다.

 

열여섯 번째의 이야기: 말장난의 행간

 

414 위 시는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백날 골머리를 썪여도 소용이 없다. 앞서와 같은 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417

낙민루 아래로 백성 눈물 떨어지니 樂民樓下落民淚(낙민루하낙민루)

선화당 위쪽에 화가 먼저 당하리라 宣化堂上先禍當(선화당상선화당)

함경도 백성 모두 놀라서 도망가니 咸鏡道民咸驚逃(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 집안에 복이 어이 오래가리 趙基榮家祚豈永(조기영가조기영)

 

418 각각의 단어에 반어적 의미를 연결시킴으로써 풍자의 칼날을 세웠다.

422 표면 진술과 실질 의미 사이에 의도적인 괴리가 조성되어 있어 언어적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독자의 연상능력을 자극하여 말장난을 깨닫게 유도함으로써 지적 쾌감을 제공하는 경우이다.

 

423 시와 말장난은 엄격히 다르지만, 언어를 주된 질료로 삼는 시는 본질적으로 얼마간 유희적 기분을 띠게 마련이다.

 

430 근화일일영의 상식을 뒤엎어 불사이군의 의미를 읽었다.

 

431 봄은 이미 가고 살구가 익는 여름이 오도록 농사지을 사람 하나 없어 파종도 못했다. 잡초만 우거진 들판을 바라보는 시인의 심사가 안타깝다. 고려 말 대몽항쟁기에 지어진 작품이다. 무심한 자연의 질서는 주인 없는 뜰의 나무 위에 먹음직한 살구 열매를 얹어놓았지만 정작 이를 따먹을 사람이 없다.

 

434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의장청조(依杖聽鳥)

새가 새가 나러든다 복국조(復國鳥)가 나러든다.

이 산으로 가며 복국(復國) 뎌 산으로가며 복국(復國)

청산진일(靑山盡日) 피나도록 복국(復國) 복국(復國) 슬피 우니

지사혼(志士魂)이 네 아니냐

 

435 망한 나라의 뻐꾹새는 이제 더는 씨 뿌려라라고 울지 않고 복국’, 나라 찾자며 운다.

헬고려라 할 수 있는 대몽항쟁기와 헬조선이었던 일제치하 모두 뻐꾹새가 울었구나. 이제 우리 부흥부흥 復興復興하며 부엉이가 울자꾸나.

 

435

[금쌀악]

북풍한설北風寒雪 가마귀 집 귀 한줄 깨닫고 가옥가옥家屋家屋 우누나

유소불거有巢不居 저 까치 집 잃음이 부끄러 가치가치可恥可恥 짓누나

명월추당明月추堂 귀뚜리 집 일홀가 저허서 실실실실失失失失 웨놋다

 

[옥가루]

황혼남산黃昏南山 부엉이 사업事業 부흥富興하라고 부흥부흥富興富興 하누나

만산모야滿山暮夜 속독새 사업독촉事業督促하여서 속속속속速速速速 웨이네

경칩驚蟄 맛난 개구리 사업事業 저 다 하겠다 개개개개皆皆皆皆 우놋다

 

436 그저 모란꽃 그림으로 귀국의 부귀영화를 바란다는 의례적 인사를 보내온 것이었는데, 재지가 넘쳐흘렀던 여왕은 자격지심에 그만 오버센스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모란꽃 그림에 굳이 나비를 그려 넣어 여든 살 먹도록 시집도 안 가고 잘 먹고 잘 살기 바란다는 식의 격조 없는 농담을 할 당 태종은 아니었을 줄로 안다. 단지 쌍관의 원리로 전개되는 독화의 원리를 몰랐던 듯 하다.

삼국유사 보면서 이 에피소드에 고개가 갸우뚱 하긴 했다. 당 태종이 할 일 없이 그랬을 거 같진 않더라. 삼천궁녀 역시 갸우뚱 했는데 저자 덕에 갸우뚱이 끄덕끄덕으로.

 

442 사물에 언어를 결합하여 쌍관할 줄 알았던 선인들의 예술정신이 낳은 상징의 함축을 잘 보여준다.

 

442 그것은 시가 예술 위에 신선한 호흡과 생동하는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시인이 문자 유희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그러한 유희 속에 뜻밖에 드러나는 언어의 발랄한 생기를 일부러 멀리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 해체의 시학

 

449 희작시들이 집단적 양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작시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시정신은 탈중심주의, 탈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현대 해체시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453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사웅웅사(世事熊熊思)
남들은 모두 다 활활 가는데 인개궁궁거(人皆弓弓去
)
내 마음 벌벌 떨기만 하여 아심봉봉전(我心蜂蜂戰
)
나 홀로 살살 다니는도다 아독시시래(我獨矢矢來
)
말들은 비록 풀풀 뱉지만 언수초초출(言雖草草出
)
속마음은 데데하기 그지없도다 세사죽죽위(世事竹竹爲
)
마음을 꼿꼿이 지킨다면 심즉화화수(心則花花守
)
앞길이 솔솔 열리리라 전로송송개(前路松松開)

 

453 말장난을 이쯤 하려면 전부터 쌓인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 김삿갓은 없다. 세간에 그의 시로 일컬어지는 시는 김삿갓이 아니고 누가 이런 시를 지으랴 싶은 것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456

吾看世시옷 / 是非在미음 / 歸家修리을 / 不然点디귿

내가 세상의 '시옷'을 보니 / 是非가 '미음'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라
.

457
吾看世人 / 是非在口 / 歸家修己 / 不然則亡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 是非가 ''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을 닦아라 / 그렇지 않으면 ''하리라.

457
장난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아휴 내 말이! 진짜 할 말이 없다.


459 김삿갓, 〈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此竹彼竹化去竹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飯飯粥粥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 是是非非付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賓客接待家勢竹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市井賣買歲月竹

온갖 일 내 마음대로 함만 못하니 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然然然世過然竹

 

459 탈절범속한 자태로 세속을 초월한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표상하던 대나무는 이 시에서는 급전직하 될 대로 되라로 전락했다. / 이두의 원리를 이용해 낯설게 만들기를 시도한 해체의 현장이다.

 

460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吉州吉州不吉州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許可許可不許可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明川明川人不明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漁佃漁佃食無魚

8기 선배의 한시미학산책 북리뷰를 보니 경북 구미 당기는 일을 충남 부여하면 부산하게 노력하여 마음속의 경남 진주를 얻을 수 있다 뭐 이쯤 되겠다. 이것은 지역시가 될 수 있겠다라고 적은 게 있더라. 원시의 작가도 대단하고 독자의 평도 재치가 차고 넘친다.

 

462 시인의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나도 한 때 세상을 우습게 봤다. 지금은 세상을 무섭게 본다. 다만 세상을 우습게 보는 사람을 우습게 본다. 나이 들어 왕년 이야기 하거나 나 잘났소 하는 것만큼 서글픈 장면이 없다.

 

465 그에게 이런 장난질에 몰두하게끔 강요한 현실이 역으로 희대의 민중시인을 낳았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465 죽이 얼마나 묽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죽이 얼마나 묽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비칠까. 하지만 동시에 집이 놓인 환경이 어떠하길래 밥상머리에 앉아 앞산 그림자를 감상할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옛날엔 모든 집이 전원주택이었지.

 

467

슬프다 문벌은 다 훌륭한 집안으로 可憐門閥皆佳族 가련문벌개가족

풍진에 헛 늙으니 홀로 구슬프도다            虛老風塵獨可悲 허노풍진독가비

오로봉 아래에서 이치 논하며 앉았자니      五老峯下論理坐 오로봉하논리좌

세상 사람 모두가 도를 안다 일컫네          世人皆稱道也知 세인개칭도야지

 

'모두 훌륭한 族屬皆佳族'이 사실은 '개가죽' 이었고. '홀로 구슬프도다獨可悲'도깨비였다. '이치를 논함論理'이 들짐승 '노루(論理)'가 되고, '도를 안다道也知'는 기실 '도야지' 즉 돼지였을 뿐이다.

 

469 다만 중간에 한글을 끼워 말 씹는 재미를 더했다.

요리도 맛만 살린 것보다 식감을 살리면 더욱 훌륭한 거 같다. 시의 경우는 아무래도 읊조리는 것이니 말 씹는 재미가 실리면 더 좋을 듯. 저자는 글을 쓸 때 꼭 낭독을 한다더라.

 

469 육담풍월의 파격시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집적 속에서 차츰 차츰 이루어졌다.

돌연변이도 보기에는 느닷없는 출현인 거 같지만 실은 유전자가 오랜 세월을 두고 흐르다 나타난 결과이듯이. 결국 두드러지는 성과는 매일의 꾸준한 힘이 누적된 결과.

 

472 의식의 변화는 내용의 변모를 부른다. 내용만으로 의식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할 때 형식이 변한다. / 오늘의 시단에서도 새로운 담론과 말하기 방식에 대한 모색은 활발히 계속된다. / 그러나 새로운 말하기가 강렬한 실험적 의도를 가졌음에도 시대정신이나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잡체시나 파격시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의미는 여전히 생생하다.

뒷받침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안받침도 있어야 한다. 안받침이란 말은 여기서 처음 들었는데 좋은 표현.

 

열여덟 번째 이야기: 바라봄의 시학

 

475 옹은 말한다. 맥가이버의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포스이다.

 

475 빈 들판 밖으로 날려 흩어져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테니 참 애석하다.

 

476 꽃은 누가 알아주고 말고를 개의치 않고 향기를 낼 뿐이다. 인간이 한세상을 살다 가는 것도 이와 다를 게 없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인간의 인생은 구매되기를 원하는 향수 같은 것이 아니므로. 이 향을 타인이 좋아할까 말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타고난 향을 내고 그 향에 내가 취하면 그만. 그 향에 끌리는 타인을 만나면 그만.

 

477 열흘이 지나 몸이 가벼워지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옹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어릴 적 읽은 동화가 생각난다. 길고 탐스러운 머리를 가진 공주에게 왕비의 자리가 주어진다고 하자 언니들이 머리 가꾸느라 청춘을 낭비할 때 막내공주는 일찍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들판에서 뛰놀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버린 대신 스스로를 잘 지킨 것이다 


479 관물편은 이익이 안산에 살면서 생활 주변에서 사물을 관찰하며 느낀 단상을 77 항목에 걸쳐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다. 주변 사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그 사물들에 담겨 있는 이치를 캐어 이를 현실의 삶과 연관 짓는 실학적 사고가 담겨 있다. 사물을 살펴 지혜를 얻는 격물치지 정신의 실천이었다.

기상씨의 커피 단상과 성한씨의 꽃 단상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사물을 응시, 관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479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제자의 기록으로는 투명하리만치 담담하다. 슬픔이 묻어날 빈틈이 없다. 스승의 용태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창밖의 날씨로 쏠려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도 플라톤에 의해 기록되었지. 공자의 마지막 또한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스승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라. 구본형 소장님의 마지막도 그러했을까. 가족만이 아닌 제자들로 둘러싸인 임종이라.

 

480 사물에 자아를 얹고, 관물을 통해 천기를 읽었던 선인들의 삶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483 젊은 날 성취를 향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마음을 훌훌 던져버리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 다만 일신의 한적을 추구할 뿐이다.

 

485 군자는 격물로 치지할 뿐 완물하여 상지하는 일이 없다.

 

486 사물은 저 혼자 존재하지 않고 천지가 낳은 바이다. 천지도 저 혼자 생길 수는 없다. 사물은이치가 낳은 것이다.

 

490 이래서 좋으면 저래서 나쁘고, 저래서 미쁘면 이래서 언짢으니, 군자는 의연하게 제자리에 지켜 서서 변화의 기미를 보아 몸을 맡길 뿐이다.

북리뷰 하면서 주식 언급해서 민망하다만 변화의 기미를 보는 것, 변화의 추이를 느끼는 민감함을 갖추는 훈련으로 주식투자만한 것이 없다. 능력이 되면 50대 정도 되어 주식주역으로 푸는 글쓰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과연 내가 주역을 공부할 지 의문이다만.

 

498 이를 깨닫는 법은 방향도 없고 형체도 없다. / 파도가 넘실대는 것을 보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도를 때달았다

파도와 거문고는 뜬금없는 것 같아도 이런 연상으로 도약이 가능하다.

 

499 누구나 보고 있지만 못 보는 사실, 늘 마주치면서도 그저 지나치는 일상 사물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한 사물과 낯설게 만나, 그 낯섦으로 그 사물을 새롭게 만나는 것, 이것이 관물론이 시학과 만나는 접점이다.

이것 역시 영웅여정으로 풀어 볼 수 있다. 귀환 후의 파랑새는 귀환 전과 다르지 않다. 귀환 후의 일상은 귀환 전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다만 파랑새를 달리 보고 일상을 달리 보는 그 새로운 눈이 여정 이후 달라지는 점이라 하겠다. ‘떠남낯섬을 그리고 새로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499 그래야만 주변 사물이 끊임없이 발신하는 의미를 깨어 만날 수 있다. 히드라의 예민한 촉수와 같이 안테나를 세워 세계와 교신할 수 있어야 한다.

 

499 눈앞 사물과의 설레는 만남, 세계와 줄다리기하는 팽팽한 긴장이 없이 좋은 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반란자다. 그의 눈이 포착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다.

 

열아홉 번째 이야기: 깨달음의 바다

 

506

회주 땅의 소가 풀을 뜯어먹는데    懷州牛喫草

익주 땅 말의 배가 불러 터졌네.    益州馬腹脹

천하에 의원을 찾아갔더니           天下覓醫人

돼지 왼편 어깨 위에 뜸을 뜨누나. 灸猪左膊上

회주 땅의 소와 익주 당의 말은 나비효과로 보아야 하나. 우리 한의원에서도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왔는데 왜 왼쪽에 침을 놓느냐며 어디 아픈지 잘못 안 거 아닌가 의심하는 분들이 간혹 계시다. 침법 중 사암침법은 아픈 곳(반응점)이 아니라 원인점에 침을 놓는다. 균형이 깨어져 통증이 오는 것이기에 오른쪽이 아프면 왼쪽에 침을 놓는 것이다. 원인과 반응 그 사이에 관계, 그리고 인연이 있다.

 

508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로 따져 알려 들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 직지인심, 견성성불 하라는 말이다. 굳이 말로 하자면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일러주는 중이니 섣불리 사변의 잣대를 들이댈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는 우격다짐이다.

따져봤자 우물 안 꽉 막힌 사고. 그 안에서 홀로 똑똑하다 여기는 어리석음.

 

510 하지만 깜깜한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연꽃이 피어나는 그 소리만큼은 번개가 소뿔을 물어뜯듯이 웅장하다. 이런 것이 선의 세계다.

연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선의 세계란.

 

510 검을 휘두르는 것은 이제 그가 아니다.

붓도 그래. 붓을 휘두르는 사람이 내가 아닐 때, 그저 받아 적는 육신에 지나지 않을 때.

 

510 흘러가는 상태에 자신의 정신을 얹으라. ~!

 

511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꽃잎 위에 칼끝 같은 깨달음이 있다. / 언어의 길은 막혔다.

 

513 알아들을 놈만 알아들으래서 교외별전이다.

 

513 하는 일 없는 생활이지만 무위도식과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 아이들의 생활이 이러하다. 하는 일 없는 생활인데 무위도식은 분명 아닌 텅 빈 충만.

 

517 선시는 하나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 선시는 언어가 끊긴 자리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522 연못에 봄풀이 돋아나오고, 정원 버들 우는 새 소리 변했네. 池塘生春草, 園柳變鳴禽

 

이 구절의 교묘한 점은 바로 아무 의도 없이 느닷없이 경물과 서로 만나, 이를 빌려 글을 이루고, 갈고 다듬을 겨를조차 없었던 데 있다. 보통의 정으로는 능히 이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시가이 묘처는 모름지기 이것을 가지고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괴롭게 끙끙대고 어려운 것만 말하는 자들은 대체로 깨닫지 못한 자들이다.

 

522 자가료득, 도출과구, 자재원성/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전범에 붙들리지 말며, 툭 터져 자재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선도 그렇고 시도 그렇다.

 

523 교언영색으로 구차미봉 하느니 붓을 꺾고 종이를 찢어, 혀를 물고 죽는 것이 낫다.

붓을 꺾고 종이 찟고 혀를 물고. 뭔가 삼박자가 딱딱 맞네.

 

523 심장을 토해내고 폐부를 도려내는 고심참담도 좋지만, 깨달음은 원래 없는 것을 쥐어짜는 조탁과는 관계가 없다. / 남의 흉내로는 안된다. / 좋은 시는 끊임없는 반란의 산물이어야 한다.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 익숙해진 접점에서 벗어나기를 쉼 없이 추구해야 한다.

결국은 계속 낯설게 하기(Verfremdung)를 이야기 한다. 떠남, 낯섬, 새로움이 그것이다.

 

525

山氣日夕佳 산 기운 저녁이라 더욱 고운데

飛鳥相與還 나는 새 짝을 지어 돌아가누나.

此中有眞意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으나

欲辨已忘言 말하려니 어느새 말을 잊었네.

 

528 서로 말귀가 통하고 배짱이 맞기 때문이다. / 선시의 언어는 직관의 언어. 의미를 해체하고, 사물로 말한다. 풍경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직관의 언어는 무책임하다. 친절하기는커녕 때로 소통 자체를 거부한다.

다른 케이스이긴 하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잘 이해를 못하는 사람 앞에 서면 소통을 거부하고 싶긴 하더라. 뭘 설명해야 하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염화미소와는 또 다른 말없음이다. 소통도 말귀가 통해야.

 

528 좋은 시는 타성에 젖은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런 뒷통수라면 여러 번 맞아야겠다. 나는 어떤 타성에 젖어 있을까.

 

스무 번째 이야기: 산과 물의 깊은 뜻

 

531 이 작품은 고려 말 현실을 외면하고 강호에 묻혀 살며 고고함을 뽐내던 사이비 어부, 즉 속류 은사들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533 목은 牧隱, 도은 陶隱, 야은 冶隱, 포은 圃隱, 둔촌 遁村 등 당시 유명 인사들의 호에서도 알 수 있듯, 격동하는 현실 앞에서 은둔의 풍조가 만연하였다. 뜻있는 이들이 모두 저만 좋자고 강호로 들어가 버리면, 정작 현실의 질곡은 누가 감당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은 누가 건진단 말인가.

 

귀거래 귀거래 한들 물러간 이 그 누구며

공명이 부운인 줄 사람마다 알건마는

세상에 꿈 깬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533 그는 이 모습이 꼭 가짜 은사들이 방편상 강호에 숨어서는 자기가 여기 있으니 좀 알아달라며 현실을 기웃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정치적 내숭, 밀고 당김.

 

534 당나라 때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나 세상과 담을 쌓고 학행에만 몰두하는 불구문달의 선비를 찾아 유일로 천거하는 제도가 있었다. 조선에도 있지 않았나.

 

534 정처도 없고 집착도 없는 구름의 마음   / 535 금빛 기름진 햇살

 

536 빛이 사라진 밤중, 낙엽이 진 가을 산번화의 시기를 떠나보낸 뒤 물끄러미 자신을 반추하는 시간이다.

 

536 한시는 이렇듯 옛 시에서 한 두 글자만 교체해 새로운 의경을 만들어내곤 한다.

어느 정도의 모방을 허하는 구나. 그러게, 앞에 소개된 시들을 보면 모방이 많아서 의아했었다.

 

537 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때의 고금을 떠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와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 이렇게 표현하니 진부하지 않다.

 

537 부귀의 즐거움이 있고 산림의 즐거움이 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을 때는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538 첨단과학의 시대일수록 산수자연을 향한 선망과 동경은 더해만 가는 모양이다.

 

539 온갖 만물을 기르면서도 싫증내지 아니하고, 사방에서 모두 취해가도 못하게 하는 법이 없다. 구름이 바람이 일어나 천지 사이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라를 이룬다.

 

544 위 시로 그림을 그릴 때, 화면 속에는 시인만 그려야 옳을까, 아니면 지팡이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중과 그곳을 바라보는 나를 그릴까, 새 울음소리는 또 어찌 하나.

 

544 洞中仙 畵中人일세.

 

545 손님이 가고 나서 사립을 닫아거니 바람은 산들. 산들 해는 뉘엿뉘엿. 술 항아리 잠깐 열어 시를 새로 지었을 때, 이때가 산인의 득의처로다. / 평상에서 낮잠 청하니 꿈속 또한 상쾌해라

 

547 이따금 마음에 맞는 벗과 더불어 시를 퇴고하겠다 한다.

마음 맞는 벗과 술 한 잔, 노래 한 소절, 또는 한 바가지의 수다가 아니라시를 퇴고한다고.

 

스물한 번째 이야기: 실낙원의 비가

 

557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반당하고, 사랑하던 사람마저 하나 둘 떠나보낸 후 빈 들녘을 혼자 헤매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뒤돌아보면 뜻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다.

 

559 현실의 억압은 개체의 삶을 질식시킨다. 인간은 닫힌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반란을 꿈꾼다. / 시인들은 무의식의 저편에 저장된 언젠가 떠나온 곳,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완벽한 꿈의 세계이다.

현실의 억압이 나의 삶을 질식시키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게임처럼 그 억압에서 벗어나 시처럼 살 것인가. 무의식의 저편. 결국은 꿈에 이르게 된다. 변경연 과정은 이렇게 칼 융을 읽게 한다.   

 

564 그것이 시참이 되어 스물일곱의 나이로 그녀는 천상 백옥루로 훌훌 올라가고 말았다.

영화배우들이 그들이 찍은 영화처럼 운명이 펼쳐지는 것도 나름의 시참이라 할 것인가.

 

566 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인간의 의식이 한계에 도달할 때 무의식이 열린다. 무의식의 세계는 원초적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상징은 좌절되었던 본능적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욕구와 관련된다.

 

567 性眞은 인간 세상에 귀양 와 양소유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이름 그대로 인간에서의 삶이란 性의 진체를 깨닫기 위해 少遊’, 즉 잠깐 놀다 간다는 의미일 뿐이다.

소유所有 가 아닌 소유 少遊 의 삶, 좋다. 이거 글 제목으로도 좋겠는데.

 

568 도사에서 둔갑술과 검법과 병법을 전수받은 주인공은 마침내 천상의 비범성을 회복한다. 그는 때마침 쳐들어온 외적을 물리쳐 나라에 공을 세우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상으로 되돌아간다.

이때 외적의 물리침때마침이 된다. 인생에 닥친 시련은 우리의 공을 세우기 위한 조연일 수 있다. 시련이 올 때 때마침 잘 왔다라고 생각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삼자(라고 말은 하지만 그냥 가늘고 길게 업적 없이 살고 싶다).

 

575 장생편/ 한 번만 읽어도 3,000수를 한다는 그 장생편을 막 읽으려는

보통은 먹어서 장수를 누린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읽으면 장수한다라.

 

576 병든 아내는 곁에 누워 끙끙 신음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폐와 피부가 좋지 않아서 나이 들면 밤마다 기침하고 피부 간지러움으로 남편 힘들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약한 증상은 밤에 심해지므로 배우자 앓는 소리와 함께 하는 밤은 노년의 현실을 상징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576 유선의 과정에서 만끽한 인간 한계를 초월하는 해방감은 세속적 가치의 무의미함과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새삼 인식케함으로써 현실의 불우와 모순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준다.

 

576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꿈을 꿀 수가 있다. 문학이 다만 실천의 도구일 때, 사회는 꿈을 꿀 자리를 잃어버린다. 꿈이 없을 때 사회 개조는 있을 수 없다. / 우리의 혈관 속에 내재한 원초적 상징들을, 까맣게 잊고 있던 그 기호들을 유선시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스물두 번째 이야기: 시와 역사

 

580 경쟁하듯 임진년 피난길 얘기로 밤을 새운 부엌의 사연은 지친 시인의 잠을 달아나게 할 만큼 뼈저렸다.

그녀들의 넋두리는 시인의 귀로 흘러 들어가 시가 되어 시인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582 이안눌의 사월십오일이다. 4 15일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동래성이 함락된 날이다

시의 제목이 됨으로써 그 날은 시로 기록되는구나.

 

587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哀絶陽) 황구첨정은 출생신고를 갓 마친 아이에게 징집통지서를 보내는 것이다. / 어쨌건 삼정의 문란을 말할 때 당시 이를 증명하는 어떤 통계수치보다도 우리는 이 <애절양> 한 편을 통해 그 시대 백성의 절규를 실감으로 듣는다. 시는 이렇게 역사가 된다.

 

589 열다섯에 북쪽에서 황하를 지키다가 마흔에도 서쪽에서 둔전을 개간한다.

或從十五北防河 便至四十西營田 (혹종십오북방하 편지사십서영전)

에휴 안타깝다.

 

591 곤륜산맥이 앞을 막고 있는 모래먼지 자옥한 몽골의 땅이다. / 청해의 찬 호숫가

청해는 칭하이를 말하는 거지. 같은 공간이었거늘 그들은 전장으로 나는 여행지로 방문했다. 이 시대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

 

592

슬프다 무정하 강변의 해골들은 봄날 규방 꿈속에 그리는 사람이리.

可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가린무정하변골 유시춘규몽리인)

꿈 속에 그리던 사람 = 현실의 해골

무정하 강변이 무정한 강변으로 읽힌다.

 

602 치열한 역사의식도, 현실이 부조리를 고발하는 저항정신도 시인이 먼저 흥분하면 한낱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흥분을 가라앉힐 때 역사와 현실은 더욱 심각하게 독자의 뇌리에 각인된다. 1980년대 대자보에 가까운 그 숱한 민중시는 이제 아무도 읽지 않는다. 시의 정서는 이념과는 상관없다.

저자는 1960년 생이니 80년대 학번이지 않나. 80년대 운동권에 대한 시선이 약간 부정적인 거 같다. 순수시와 참여시 등의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을까? 저자의 대학시절은 어떠했는지, 그 시절을 살았던 저자는 당시 정부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정작 본인은 저항시인 권필을 전공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저자는 어떠했을까. 이번 저자연구로 이것을 키워드로 저자를 찾아보았으나 잘 검색되지 않더라. 그가 내뱉는 키워드만 엄청나게 많을 뿐.

 

602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기말시험 문제에서 이 작품의 감상을 요구했다. 한 답안이 이랬다. “부르주아적 근성에 철저히 물든 정철의 봉건 착취계급으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창밖의 일이 궁금하면 자기가 직접 문을 열어보면 되지 않는가? 그 쉬운 일도 하기 귀찮아 프롤레타리아 계층인 사미승을 부려먹고 있다.” 투철한 역사의식이 담긴 이 답안이 오랫동안 생각난다. 이런 의식 아래 시는 더는 설 자리가 없다.

 

603 사시는 시인이 과거의 거울에 비춰 현재를 읽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이 삶은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그대로 뜬다. 지나간 역사가 오늘을 비추는 등불인 까닭이다.

개인사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하나가 시대를 타고 흐른다. 가족력을 보아 어떤 질병으로 죽을 가능성이 많을 지 짐작하듯,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스물세 번째 이야기: 사랑이 어떻더냐

 

611 저 봄풀을 보아라. 저들도 싱그러움을 뽐내며 저마다 향기를 풍기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사람끼리 어깨를 비비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째서 나는 이를 모두 떠나와 깊은 산 속에서 이 청춘의 시간을 태우고 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친 그녀는 6년간의 산중 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하고 말았다. / 6년 뒤에 이 노래를 부르며 환속하여 곽원진의 아내가 되었다. 청춘의 감정은 출렁이는 물결 같다. / 감정을 누르려는 집착이 또 하나의 미망을 낳는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경우는 그냥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정답일 수도.

 

612 신위가 자신의 소실로 들어오려 하는 변승애란 기생에게 애틋한 사양의 뜻을 담아

흰 모시 적삼에 눈썹 곱게 그리고서           澹掃蛾眉白苧衫(담부아미백저삼)

마음속 정 둔 얘기 재잘재잘 애기하네        訴衷情話燕呢喃(소충정화연니남)

임이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말아주오 佳人莫間郞年歲(가인막간랑연세)

50년 전에는 스물셋이었다오                   五十年前二十三(오십년전이십삼)

 

배경을 알고 읽으니 너무 젠틀맨이시네. 다만 변승애라는 기생이 자기 취향이 아니어서 나이 핑계 들어 사양한 것이라면? 그나저나 젊은 여인이 73세 노인의 소실로 들어갈 수도 있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이 씁쓸하다. 

 

625 변함없는 자연과 덧없는 인간사가 교차되면서 적막한 심사를 고조시킨다.

 

625 정서란 애초에 모든 것이 충족된 속에서 터져 나오는 법이 없다. 소중한 무엇밖에 놓여 있다는 생각, 안겨야 할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마음에서 정서는 비로소 움터 나온다.

 

스물네 번째 이야기: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630 3연의 왜 사냐건 웃지요가 이 시의 압권이다. 이백은 <산중문답> 1, 2구에서 날더러 무슨 일로 산에 사냐 묻기에, 웃고 대답 아니해도 마음 절로 한가하다.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고 노래했다. 이백이 한자로 14자나 들여 한 말을 그는 한글 단 7자로 표현했다. 놀라운 압축능력이다.

한자야말로 그 자체로 압축된 언어인데 그 한자보다 더 짧게 표현했다니 갑오브갑이다.

 

630 강냉이가 땀과 함께 익어가는 건강한 삶을 소망했다.

무엇이든 땀과 함께 천천히 익어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삶은 돈이라는 기름과 함께 빨리 익고 부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재앙이 싹 틀 여지가 여기에서 나온다. 닭들이 스스로 몸을 흙 바닥에 대고 비벼 진드기를 없애야 하는데 그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아 살충제를 뿌리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살충제 계란을 마주하게 되었다.

 

634 벌목정정이란 단어 하나가 정서의 맥놀이를 일으켜 저 <<시경>>에서부터 당나라 두보를 거쳐 현대의 정지용에까지 이어지는 정서의 다리를 놓았다. 놀랍지 않은가?

오직 저자인 선생님만이 그 정서의 다리를 건너며 놀라워 하고 계십니다. 벌목정정에서 두보와 정지용을 넘나드는 사람이 얼마나 되리.

 

635 돌에 그늘이 졌다. 소소리바람이 몰려든다. 모두 소나기가 쏟아질 조짐이다.

돌에 그늘이 서서히 드리워지는 그 장면, 소나기가 쏟아질 조짐이라 느끼는 그 시선. 아이들은 다 이런 시선이 있는데. 얼마 전 아들래미는 구름이 무거워졌다며 비가 쏟아질 것을 걱정했다.

 

637 선문답 같은 이 장면은 내게는 무슨 상징같다.

 

642 시인은 끝까지 말을 아껴 여백을 넓혔다.

 

에필로그: 그때의 지금인 옛날

 

655 형식의 복고에 앞서 이 원형질을 찾아나서는 일이 우선해야 할 것 같다. / 이 강산, 이 흙을 밟고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민 정서는 세월로도 씻을 수 없는 원형질로 남는다.

이 정서의 원형질은 시 세계에 있어서 신화라 할 수 있겠다.

 

655 마치 내단 수련하는 이가 내관장신 하는 것 같고, 입정에 든 스님이 돈오전생 하는 듯 하다.

 

656 이제 담헌과 풍무가 서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늙은 거미가 줄 치던 느낌을 얻게 되었다.

 

657 천지자연의 조화가 음악과 하나로 만나고, 유동하는 천기 속에 시가 한데 어우러졌다.

 

657 주인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저기 구름이 피어나는 것 좀 보라고 하고, 살 사람은 뒷짐 지고 서성이면서 벽 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지 뭔가.

흥정도 잘하면 예술이 될 수 있는데. 흥정도 또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고 유쾌한 흥정이 가능했던 인간미 있는 시대가 있었다. 이제 그 흥정의 시대도 사라져간다. ‘정찰제라 적힌 안내는 가격으로 당신과 티격태격 하며 시간 낭비, 에너지 소모 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이기도.

 

658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658 세계와 가슴으로 만나려거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 일이지, 왜 좀먹고 쥐 오줌에 지린 옛 책에 코를 박는가? / 우리의 지식이란 이렇듯 살아 있는 사물, 가슴 뛰고 피 흐르는 우주를 사변이 틀 속에, 언어의 무덤 속에 가두어 죽이는 것은 아니었던가?

 

659 그 사이에 숨을 통하게 하여 오래 가게 만드는 일이다. / 새것이 힘을 얻으려면 옛것을 변화시키는 통변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옛것을 새것이 되게 하는가?

 

660 옛것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낫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이다. 참 무서운 말이다.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661 <<서경>>의 은고와 주아는 삼대 적의 당시 글이고, 이사와 왕희지도 秦나라와 晉나라의 시속 글씨였습니다.

 

662 시인은 자신의 노래로 귀신이 울게 해야 한다.

귀신 곡하는 소리의 비밀이 여기 있었다. 시를 읽은 낭만귀신.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24개의 테마로 한시의 언어미학에서부터 잡체시의 변격에 이르기까지 시의 모든 것이 전방위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저자가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모아 낸 책이라 그런지 각 테마가 어떤 순서나 흐름에 의한 전개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전개 각 테마가 독립적인 로 시가 탄생되는 물리적 배경과 정서적 배경, 시를 쓰는 사람, 시의 다양한 변신 등 시의 여러 모습을 입체적으로 두루 본 느낌이었다. 줌을 당기기도 했다가 새처럼 조감하며 보는 등 내게는 입체적인 목차였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독음을 병기했으면 좋겠다. 일반 독자들이 한자의 독음을 다 알긴 쉽지 않다. 고운기의 삼국유사도 그렇고 한자가 표기되는 경우 왜 독음을 따로 병기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출판사에서 품과 비용이 드는 겐가?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이 책 덕에 다양한 시대, 다양한 시체의 한시를 접할 수 있었다. 5언절구, 7언절구로만 알았던 한시가 층시, 회문시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음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글을 쓰면서 한자문화권이었던 우리 나라 언어환경 하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육담풍월도 신선했다. 점잖은 시, 교과서에 실린 시만이 아니라 다소 얼굴 붉게 하는 시, 욕설이 있는 시 등 다양한 장르, 다양한 내용의 시를 소개한 것은 이 책의 독보적인 점이라 하겠다. 또한 언어가 가진 힘과 아름다움이 시를 통해 마음껏 구현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가히 한시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겠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이 책을 통해 시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고 감상을 넘어 나도 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詩作 역시 어떤 포맷이 있고 훈련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이러한 책을 기획한다면, 부록으로 여러 형태의 시를 필사할 수 있는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간단한 훈련으로서의 시 쓰기를 할 수 있는 연습의 장을 소개하면 좋겠다. 시를 게임과 유희처럼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래와 같이 생활 주변에서 아무 것이나 소재로 삼아 3음보(3.3.4) 경기체가의 형식을 빌려 써보게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새우깡 감자깡 옥수수깡

꼬깔콘 아폴로 보리건빵

쫀디기 꾀돌이 라면스낵

 

위 주전부리 경긔 엇더하니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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