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香山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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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첫 모임이 있었던 남해에서 선배 연구원으로부터 들었던 조언이 떠오른다.
"연구원생활 초기에는 칼럼 소재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재가 떨어져서 쓰기가 어렵더라."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고 대략 13개의 칼럼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보니 슬슬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3기 연구원들의 곡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고, 누군가는 어렵사리 소재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글로 연결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글이 나아지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다른 이는 나아질 것이니 꾸준히 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생각도 다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겪게 되는 고민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일주일에 대략 30~40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는 연구원 과제 중에서 칼럼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얼마 전에 올라왔던 '13시간 동안 쓴 13번째 칼럼'이란 글에 많은 공감의 댓글이 달린 것은 이 부분을 잘 설명한다. 운이 좋아서 칼럼의 소재를 쉽게 찾아내는 주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마감을 앞둔 월요일 새벽을 통째로 지새우며 머리를 쥐어짜게 된다. 그렇다면 칼럼의 소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요즘 한창 유행하는 비싼 DSLR 카메라를 샀다고 생각해보자.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장 달려나가 좋은 사진을 찍고 싶겠지만 먼저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카메라의 기본 기능을 익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이 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실전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을 충실히 익히지 않고는 초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다. 기본 없이는 응용도 변형도 어렵다. 매뉴얼과 관련 책을 통해 기본을 익혔다면 그 다음에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을 찍을까 하는 것이다. 이 피사체에 대한 고민이 바로 우리의 '소재 찾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칼럼의 '소재 찾기'와는 다르게 사진의 '피사체 찾기'에 대한 해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바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집안에 들어앉아 아무리 이리저리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 보아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한정된 대상뿐이다. 똑같은 방과 똑같은 가구가 전부일 테고 운이 좋다면 이런저런 표정의 가족들 얼굴 정도가 아닐까? 가족들의 얼굴도 좋은 피사체라고? 물론이다. 그렇지만 집안의 가족들만으로는 다양한 사진을 찍어낼 수가 없다. 배경이 달라진다면 또 모를까.
집을 나서면 다양한 세상이 펼쳐진다. 어디서 무엇을 만나게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피사체들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그 속에서 우린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알맞는 대상을 찾고 날렵하게 주워 담으면 된다. 가슴을 열고 집밖으로 나서면 '소재 찾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넘치게 다가드는 재료들 중에 추리고 다듬는 노력이 필요할 지경이다.
글의 소재를 찾을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숙제에 갇힌 채로 방안에 숨어 있어서는 좋은 소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제에 쫓길수록 좋은 일상과 멀어지고 소재의 빈곤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소재가 없다면 밖으로 나서자. 누군가가 그랬듯이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보고,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자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지를 찾아보자. 그것이 어렵다면 선생님의 말씀처럼 술자리로 저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먼저 일상을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것이야 말로 좋은 소재를 찾는 방법이 아닐까?
채워야 쏟아낼 수 있다. 일상이 가득 차면 저절로 글이 쏟아진다. 좋은 경험은 보통의 솜씨로 투박하게 담아도 좋은 글이 되지만, 보통의 경험을 그럴싸한 재주만으로 포장하면 과장이 되고, 공허해지기 쉽다. 좋은 자서전은 대필작가의 화려한 글솜씨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는 화려한 문체 때문에 좋은 책이 아니라, 그의 진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게 한다.
다산문선(茶山文選)을 들고 탁주를 챙겨서 집 앞 공원에라도 나가보아야겠다. 혹시라도 '세검정에서 노닐은 기(游洗劍亭記)'같은 글이 흥에 취해 쏟아질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
IP *.227.22.57
"연구원생활 초기에는 칼럼 소재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재가 떨어져서 쓰기가 어렵더라."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고 대략 13개의 칼럼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보니 슬슬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3기 연구원들의 곡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고, 누군가는 어렵사리 소재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글로 연결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글이 나아지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다른 이는 나아질 것이니 꾸준히 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생각도 다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겪게 되는 고민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일주일에 대략 30~40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는 연구원 과제 중에서 칼럼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얼마 전에 올라왔던 '13시간 동안 쓴 13번째 칼럼'이란 글에 많은 공감의 댓글이 달린 것은 이 부분을 잘 설명한다. 운이 좋아서 칼럼의 소재를 쉽게 찾아내는 주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마감을 앞둔 월요일 새벽을 통째로 지새우며 머리를 쥐어짜게 된다. 그렇다면 칼럼의 소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요즘 한창 유행하는 비싼 DSLR 카메라를 샀다고 생각해보자.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장 달려나가 좋은 사진을 찍고 싶겠지만 먼저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카메라의 기본 기능을 익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이 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실전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는데, 기본을 충실히 익히지 않고는 초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다. 기본 없이는 응용도 변형도 어렵다. 매뉴얼과 관련 책을 통해 기본을 익혔다면 그 다음에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을 찍을까 하는 것이다. 이 피사체에 대한 고민이 바로 우리의 '소재 찾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칼럼의 '소재 찾기'와는 다르게 사진의 '피사체 찾기'에 대한 해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바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집안에 들어앉아 아무리 이리저리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 보아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한정된 대상뿐이다. 똑같은 방과 똑같은 가구가 전부일 테고 운이 좋다면 이런저런 표정의 가족들 얼굴 정도가 아닐까? 가족들의 얼굴도 좋은 피사체라고? 물론이다. 그렇지만 집안의 가족들만으로는 다양한 사진을 찍어낼 수가 없다. 배경이 달라진다면 또 모를까.
집을 나서면 다양한 세상이 펼쳐진다. 어디서 무엇을 만나게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피사체들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그 속에서 우린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알맞는 대상을 찾고 날렵하게 주워 담으면 된다. 가슴을 열고 집밖으로 나서면 '소재 찾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넘치게 다가드는 재료들 중에 추리고 다듬는 노력이 필요할 지경이다.
글의 소재를 찾을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숙제에 갇힌 채로 방안에 숨어 있어서는 좋은 소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제에 쫓길수록 좋은 일상과 멀어지고 소재의 빈곤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소재가 없다면 밖으로 나서자. 누군가가 그랬듯이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보고,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자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지를 찾아보자. 그것이 어렵다면 선생님의 말씀처럼 술자리로 저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먼저 일상을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것이야 말로 좋은 소재를 찾는 방법이 아닐까?
채워야 쏟아낼 수 있다. 일상이 가득 차면 저절로 글이 쏟아진다. 좋은 경험은 보통의 솜씨로 투박하게 담아도 좋은 글이 되지만, 보통의 경험을 그럴싸한 재주만으로 포장하면 과장이 되고, 공허해지기 쉽다. 좋은 자서전은 대필작가의 화려한 글솜씨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는 화려한 문체 때문에 좋은 책이 아니라, 그의 진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게 한다.
다산문선(茶山文選)을 들고 탁주를 챙겨서 집 앞 공원에라도 나가보아야겠다. 혹시라도 '세검정에서 노닐은 기(游洗劍亭記)'같은 글이 흥에 취해 쏟아질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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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부지깨이님~ 사진사와 사진작가... 명쾌하네요. 전 지금 매뉴얼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거라지만 요즘 다른 연구원들 글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첫 마음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옹박~ 내가 달라졌어? ㅎㅎ 넌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스스로에게 철저한건 좋지만 정희누님 말마따나 스스로에게 적절히 칭찬하고 보상하는 것도 중요할 듯... 나도 따라서 스스로에게 '넌 나름 괜찮은 놈이야'라고 몇번 다독였더니 가슴이 금방 든든해지더라. 한번 해봐~
정희누나~ 칼럼이라고 써놓으니 남들에게 하는 얘기같이 되어버렸지만 제일 문제는 저 자신인것 같네요. 농주 소리만 들었는데도 침이 꿀꺽!~ 집에 가서 시원하게 식혀놓은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습니다.
여해형님~ 글쓰기 칼럼을 의도했던건 아니었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었네요. ㅎㅎ 전에 물으셨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못드려서 마음이 좀 불편했는데, 용서해주실거죠?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사부님이 말씀하신 사진사와 사진작가 뿐만 아니라, 사진입문자, 사진애호가, 사진동호회회원 등 다른 분류도 존재합니다. 올 한해 연구원 과정을 통해서 기본에 충실한 사진사에 가까워지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절한 조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옹박~ 내가 달라졌어? ㅎㅎ 넌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스스로에게 철저한건 좋지만 정희누님 말마따나 스스로에게 적절히 칭찬하고 보상하는 것도 중요할 듯... 나도 따라서 스스로에게 '넌 나름 괜찮은 놈이야'라고 몇번 다독였더니 가슴이 금방 든든해지더라. 한번 해봐~
정희누나~ 칼럼이라고 써놓으니 남들에게 하는 얘기같이 되어버렸지만 제일 문제는 저 자신인것 같네요. 농주 소리만 들었는데도 침이 꿀꺽!~ 집에 가서 시원하게 식혀놓은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습니다.
여해형님~ 글쓰기 칼럼을 의도했던건 아니었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었네요. ㅎㅎ 전에 물으셨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못드려서 마음이 좀 불편했는데, 용서해주실거죠?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사부님이 말씀하신 사진사와 사진작가 뿐만 아니라, 사진입문자, 사진애호가, 사진동호회회원 등 다른 분류도 존재합니다. 올 한해 연구원 과정을 통해서 기본에 충실한 사진사에 가까워지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절한 조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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