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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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
‘버튼을 누르세요’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기 전인 5월의 어느 날, 식은 땀으로 흠뻑 젖은 나는 버튼을 누르라는 문구를 한참 바라보며 문 앞에 섰다. 구역질이 나고 몸이 떨렸다. 도저히 버튼을 누리지 못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버튼을 눌렀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초인종 같았다. 문이 열리고 한 발을 들어선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정신병자가 되었구나’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억울함과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뭣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지?’ 너무 힘들어 들어간 그 공간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병원의 산소밀도는 문 밖의 그것과 달랐다. 너무나 희박해서 숨 쉬시기가 괴로웠다.
첫 진료가 끝나고 약과 진단서를 받았다. ‘우울증’, ‘공황 및 불안장애’였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왜 내가 이렇게 되야 하지?’ 광화문 대로에서 통곡했다. 햇빛과 자동차 소음이 내 눈과 귀를 찢는 듯 했다. 나만 느리게 움직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문용어로 ‘해리현상’이란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병원을 다녀오겠다고 나올 때는 버젓한 한 회사의 대리였지만, 돌아갈 때는 우울증 환자가 되는 현실이 싫었다. ‘왜! 왜! 왜!’만 반복해서 소리질렀다.
약을 먹으라니 먹었다. 구역질이 났다. 의사선생님도 처음에는 구역질이 날 수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삶에 구역이 나는데 약까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간 회사, 팀장님과 동료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모든 시선을 의심했다. 나를 대하는 모든 ‘인간’이 두려웠다.
이렇게 나는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었을 거라 생각한다. 열기 힘든 문을 통과해서 받아온 종이 쪼가리(진단서)로 나를 정의하고, 나를 부정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누군가에게 분노했으리라.
이제 나는 정상인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가장 크며,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으며, 나만 불행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망가짐을 방치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놓고 싶었다. 힘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온해 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근데 안된다. 절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괴롭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말로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 의심할 수 있고, 나를 지킬 수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있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